끈끈이주걱을 아는가? 끈끈이주걱은 잎에 달려있는 여럿의 촉수들이 향기가 나는 점액을 분비해 벌레들이 꼬이게 한 다음 자신의 영양분으로 흡수하는 식충식물이다.


그리고 내 인생은 끈끈이주걱에 꼬여 꼼짝 없이 흡수 당하는 신세가 된 하찮은 벌레에 불과했다.


그런 내 인생을 꼼짝 없이 저당 잡아버린 녀석은...


"헤헤..."


자신이 만든 수제 도시락을 먹는 내 모습을 보며 기분 좋은 듯 실실 미소 짓는 이 녀석. 현재 대한민국을 막론하고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스타라이프"의 리더인 유연화였다.


그리고 거의 태어났을 적부터 함께 했던 소꿉친구이자 현재 고3인 아직도 과한 그녀의 관심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세상이 돌아버린게 틀림 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도시락을 먹는 내 모습을 바라보는 유연화.


나는 처음 이상함을 느꼈던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인 지금까지. 처음에는 단순한 의심이지만 지금은 완전히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내 인생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그녀에게 잡아먹히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과거 이야기를 하자면, 앞서 설명 했던 대로 나와 연화는 어릴 적부터 함께한 소꿉친구 사이였다.


연화는 어릴 때부터 밝고 명랑한 성격과 어릴 적부터 돋보이는 외모 덕분에 아직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못한 7살 때 아역 배우로 캐스팅 되었다.


첫 작품은 가벼운 시트콤이었지만 훌륭한 연기력과 작품의 흥행 덕분에 단숨에 국민 아역 배우가 되었고 다음 작인 평범한 드라마에서도 대박을 터트려 역대 최고 시청율을 기록한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한창 하고 싶은 것을 그리며 꿈을 키워나갈 때 연화는 이미 하고 싶은 것과 잘 하는 것을 동시에 찾아 이미 보장된 미래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내겐 그저 부러울 뿐이었지만 연화는 인기에 힘 입어 나를 천대한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오히려 평소와 같이 나를 대해주었고, 흔히 자식과 부모가 나오는 육아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던 연화와 촬영팀이 그 모습을 그대로 찍어 방송에 내보냈다.


결과는 대성공. 연화가 다른 남자애들에겐 관심을 일절 주지 않고 내게만 들이대는 모습이 그대로 송출 되어 결국 나와 연화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제일 집중하는 커플링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곤란했다. 연화는 이쁘고 아이돌 출신이니 몸매도 좋고 오랫동안 봐온 만큼 그녀의 성격이 좋다는 것까지 알고 있다. 연애 대상으로는 모자람 없는 대상이지만 정작 나는 연화에게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관심이 부담스러웠을 뿐.


결국 주위의 과한 관심에 미약한 공황장애까지 왔었지만 금방 치료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공황을 치료하던 시절인 초등학교 6학년 도중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잘 하는 것을 동시에 찾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그림. 나는 의외로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까지 그림 실력을 쌓고, 연화는 연기 생활을 끝내고 연습생 생활을 하던 중 스타라이프에 데뷔한다. 나와 연화는 동시에 가람예고에 입학하게 된다. 고등학교에 입학 할 때 쯤 연화는 이미 세계적인 아이돌이 되있었다.


학교 제일의 아이돌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 전국에서 나와 연화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전세계의 사람들이 나와 연화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었다. 저 둘은 대체 언제 사귀냐고.


나는 그런 관심이 아직도 낯설고 부담스러웠지만 연화는 뭐가 좋은 지 첫 입학 날에 내 팔짱을 끼며 연화의 트레이드 마크인 실실 웃는 미소를 지었다.


고등학생에 걸맞는 신체로 성장한 나와 연화에게는 이상한 방송 제의가 많이 들어왔다. 대표적으론 나와 연화가 꽁냥대는 것을 촬영하여 연애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문의였다.


연화는 별 상관 없다고 했지만 난 과한 관심은 별로였기에 거절했다.


어차피 거절해도 나와 연화의 모습을 촬영해서 SNS에 올라오는 것은 일상이였기에 별 의미가 없었다.


이게 다 유연화 탓이었다. 입시 준비한답시고 점심을 거르는 내 모습이 걱정된다며 어느샌가 요리를 배워와 매일 내게 도시락을 만들어주었다.


지금 내가 먹고 있는 도시락도 연화가 만들어준 도시락이다. 교실에서 먹자기엔 반 친구들의 질투가 견디기 힘들어 화장실에서라도 먹을까 고민했지만, 교장 선생님이 옥상 사용을 이례적으로 허락해주었기에 그런 일은 없었다.


근데 이게 무슨 소리냐고? 나도 잘 모르겠다.


교장 선생님도 나와 연화의 커플링을 응원한다며 대놓고 둘만 옥상 사용을 허락하는 특혜를 주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다른 학생들은 그것에 불만을 전혀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이런 걸 의미하는 것이다.


애초에 이상했다. 아이돌은 열애설 한 번에 대거의 팬이 빠져나갈 정도로 예민한 이슈다.


하지만 전 세계의 사람들이 열애설이라며 팬을 그만두긴 커녕, 나와 연화의 커플링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내 친구들에게 말하면


"그러니까 이게 이상하다고? 지랄하네. 나같으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면서 실실 쪼개고 다녔을텐데."


대부분... 아니, 전부가 이런 반응을 보였다. 씹새끼들.


나보다 몇 배는 재능있는 녀석들이 나와 같이 미대 입시를 한다는 압박감과 함께 고3에 올라온 나는 결국 스트레스가 극한에 달해버렸다.


하지만 연화는 그런 내 압박감을 전혀 모르는 건지,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건지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난 그림에 진심이었다. 나와 같은 과지만 더욱 큰 재능을 가진 녀석들과 경쟁 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연화의 관심에도 시달리고 싶진 않았다.


결국 나는 3교시 쉬는 시간, 연화가 우리 반에 찾아오기 전, 먼저 연화의 반에 당당하게 찾아가 반 모두가 듣고 있는 상황에서 연화에게 외쳤다.


"유연화. 옥상으로 따라와. 할 말 있어."


"⋯에?"


연화는 처음 보는 내 모습에 순간적으로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이내 내가 고백 하는 것으로 착각했는지 얼굴에는 작은 홍조를 띄우고 있었다.


"우와아악!!"

그와 동시에 주변에서 터져나오는 함성들. 솔직히 나도 당황스러웠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그렇게 먼저 발걸음을 옮겨 나는 천천히 옥상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그런 내 뒤에는 연화가 따라오고 있었다.


-철컥.


옥상에는 나와 연화 단 둘만이 있었고 옥상과 계단 사이의 철문 너머에선 수많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마도 철문 너머에서 나와 연화의 이야기를 엿듣을 생각인 듯 했다.


연화는 부끄러운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한껏 기대가 담긴 말투로 말했다.


"그...그래서 할 말이 뭐야...?"


그런 기대감을 한껏 품은 연화에게 나는 최대한 무심한 표정으로, 무덤덤하게 말했다.


"우리 잠깐 거리를 두자."


"나도 좋... ⋯응?"


연화는 잠시 이해가 안 된다는 눈치였다.


항상 나에게 잘 대해주던 연화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나로써도 죄책감에 시달릴만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지금 당장의 목표가 더 중요했다.


"그...그게 무슨 소리야...?"


연화가 내게 손을 뻗어오며 말을 더듬는 사이, 나는 그것을 쿨하게 무시하고 옥상의 문으로 향했다.


내가 하려던 것은 협상이 아닌 통보다. 연화의 말을 들을 새는 없었다.


-끼익...


옥상의 문이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철문 뒤에서 우리를 엿듣던 학생들이 뒤로 물러선다.


나와 연화의 대화 내용이 심상치 않은 걸 알았는지 아무 말 않고 다들 뒤로 물러서주었다.


"⋯⋯."


그렇게 조용히 교실로 돌아온 나는 스케치북을 폈다.


점심 시간에 연화가 또 찾아오면 어떡하지 싶었지만 다행히 집에 돌아갈 때까지 연화가 내게 다가오는 일은 없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많아 봤자 1년이다. 그렇게 연화의 관심에서 해방 되어 입시 준비에만 힘을 쏟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나는 중요한 한 가지를 잊고 있었다.


바로 어릴 적부터 연화의 집착은 꽤나 심했다는 것.


평소 연화에게 순종하던 나였기에 연화에게 일방적 통보를 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후폭풍을 초래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정확히 일주일 뒤에 절실히 느끼게 된다.


"난 분명 일주일이나 시간을 줬는데... 이건 다 네 탓이야..."


하교를 하고 방에서 그림 연습을 하던 나에게 갑작스레 찾아온 연화.


문은 당연히 어머니가 열어주셨을 것이다.


푹 숙인 고개 사이로 싸늘하게 느껴지는 연화의 시선. 나는 처음으로 연화에게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꽈악...


연화가 내 팔뚝을 꾹 잡는다. 몸매 관리를 탄탄히 하는 아이돌 출신이라 그런지 나보다 힘이 훨씬 더 강했다.


"아얏...!"


내가 아파하는 시늉을 해보아도 연화는 눈도 깜빡하지 않는다.


그대로 침대에 던져진 나. 한계가 있는 침대 위에서 슬금슬금 뒤로 이동할 수록 천천히 침대에 기어올라와 내게 다가오는 연화.


그리고 나는, 그 날 소중한 무엇을 잃게 되었고, 그로 인한 치명적인 약점을 연화에게 잡혀버렸다.


나는 더 이상 연화의 말을 거스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연화의 바람대로 그녀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하기 시작했다. 싫은 티를 내서는 안 된다. 그녀가 화를 내면, 그것을 감당하는 것은 내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