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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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AdiFWJJmL_8





카이저 소유의 산업구역 연구소 앞.



“여기가…

선생님이 찾아낸 곳이라고?”


깔끔하고 미래 지향적으로 보이는 큰 건물.


여기서 조금 떨어져 있는 군수공장들 하고는 

전혀 다르게 넓은 아름다운 조경이 깔려있어

친환경적인 풍경을 갖고 있었다.


“네, 이곳이에요. “


아로나가 선생님 휴대폰에 있었던 

기록을 보여주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선생님이 남기신 자료에 따르면, 이곳에서 

생화학무기가 만들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라는 내용이 담겨 있어요.”


아로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턱에 손을 괴고는

무언가 생각하며 이어서 말했다.


“유우카씨가 카이저에게 탈취한 극비 샘플의 출처도

조사해 보니깐 이곳이었어요.”




유우카는 카이저 임원이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어느 정도 선이면 적당히 이용하면서

내버려 두려했는데, 극비로 둔 물자까지

탈취해 가면서 슬슬 거슬리던 참이었거든요.’


예전에, 카이저가 어떤 물건을 수송할 때

유난히 경계가 삼엄한 적이 있었다.


검은 양복이 내 행동이 오히려

카이저에게 이익을 준다는 소리를 들은 후에,

그들에게 확실한 타격을 줄 생각으로 

치밀한 계획을 세워 그 경계가 삼엄한 곳을 습격하였고.


그때 그 취급 주의 물품을 탈취했었다.


그들은 평소와 다르게, 이전에 보이지도 않던 

정찰 드론과 헬리콥터까지 동원하였고, 

열화상 같은 장비까지 이용하면서 

끈질긴 추격을 해와서 잡힐뻔하기도 했었다.


만약 그때 잡혔거나 

그 취급 주의 물품에 손상이 갔다면…


이제 와서 보면 정말 아찔한 순간들이었다.




“아로나...혹시, 선생님이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리시지 않은 이유에 대해 알고 있어?”


아로나가 자료를 닫으면서 

씁쓸한 표정으로 메일함을 보여주었다.


거기엔 선생님이 총학생회에 보내려 했지만

미처 보내지 못한 임시 저장된 글이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이 일이 외부에 알려지면 반응이 클 것으로 보고 

철저하게 조용히 조사하려 하셨어요.”


“특히 학생들이 정말 위험해질 수도 있으시다면서,

이 일에 학생들을 동원하지 않으시고 홀몸으로

조심스럽게 움직이셨거든요.”



선생님께서는 학생에게 문제가 생기면 항상 

학생과 같이 움직이며 문제를 해결하시곤 하셨다.


하지만 이번 일은 어른들만의 일이라며,

발키리 학생들의 도움마저 받지 않고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했던 것 같다…



아로나 말에 의하면.


선생님은 익명의 누군가에게서 

심상치 않은 제보를 받았고.


그 정보가 사실인지 증거도 모을 겸 혼자서

직접 조사하러 다니셨다고 하였다.


수상한 움직임이 있는 현장, 비공식적인 교섭이나 

거래하는 곳에 접근해 정보를 얻으려거나, 

키보토스의 특정 위치의 인원 이동이나 

화물 운송 상황을 살펴본다거나.



아마도, 그게 화근이 되어버린 것 같지만…



아무튼, 그러한 자료들의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면서

자료들이 한 집단을 가리키고 있었다고 하였다.



카이저 코퍼레이션.



대부분이 오토마타로 이루어진 그들은 

은연히 키보토스를 손에 넣기 위한 

개수작들을 펼쳐왔고.


일부를 제외한, 자기 소속의 오토마타가 아닌 

다른 존재들에게 냉혹하면서도 잔혹한 면을 보여왔다.


나중에 아로나가 

카이저 정보망에 접근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들은 평소 선생님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그들이 선생님이 자신들의 기밀에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게 되는 건 시간문제였었고.


이 사실이 키보토스에 알려지면 키보토스의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은.


위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작업을 한 것이었다.



사전에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는지.


샬레 폭발 사건 당시에

그들은 건물 유지 보수를 하는 인원으로 위장해

샬레에 잠입했고.


그 당시 샬레를 포함해 주변 건물에는 

정전과 동시에 전파 방해가 일어났으며.


샬레 주변에서 

불량배 패거리들이 서로 싸우면서

주변의 감시망 시스템이 파손되거나

발키리 인원이 동분서주했다고 하였다고 한다.



선생님이 사무실로 올라갔을 때.


그들은 선생님의 컴퓨터와 자료 보관함에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선생님의 휴대폰과 

싯딤의 상자마저 강탈하려 하였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선생님은 저항하시다가,

그들이 설치한 폭탄의 폭발에 그대로

휘말리시게 된 것이었다.


병실에서 겨우 의식이 돌아오신 선생님이

입을 열지 못하셨지만 말씀하시려던 것도.


아마 이 내용이었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선생님은…

우리를…


키보토스를 걱정하셨던 거였다.



늘 지겹도록 생각하던 것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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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88sQFHSdolw





별 하나 뜨지 않는 밤하늘을 방 삼아

추운 바람을 이불 삼아 지낸 날이든.


지독한 굶주림에 개미들의 행진이 이어지기 시작한

녹아내린 초코바를 벼룩의 간을 빼먹듯 

털어내 먹던 날이든.


그런 자신의 처지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정말 지겹도록 생각나는…



그때 내가 샬레에 조금만 더 일찍 갔다면…


그때 도시락을 만들지 않고 바로 나왔더라면…


조금만 더 빨리 뛰어가서 사무실에 갔더라면…


선생님이 무사하셨을 텐데…



머릿속에서 들리던 선생님의 

목소리도 이제 들리지도 않는데도.


오랜 시간이 지나 흐릿해지고 

이제는 익숙해질 만한데도.


이상하게, 그 생각 순간에 

끓어오르는 감정의 느낌은 늘 그대로였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항상 다짐했다.


‘선생님이 어른의 방식으로 해결하시지 못하신 일…’


‘제가 이어서…어떤 식으로든…

다른 어른의 방식으로라도 해결하도록 할게요…’


힘이 강한 자가…약자를 지배한다…






유우카는 그런 생각들을 털어내며 

연구소 입구 앞에 서서 건물 내부를 보았다. 


불이 꺼져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처음, 이 시설의 위치와 정보를 폭로할 생각도 

해봤지만, 총학생회가 카이저에게 먹힌 지금. 


섣부르게 행동하다간 

그들이 꼬리 자르기에 들어가거나, 

총학생회가 늦장 대응하여

부질없는 짓이 되어 버릴 수도 있었고.


최악의 경우, 그들이

시설의 내용물을 이용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이 위험한 시설은 다른 이의 손이 아닌,

본인의 손으로 직접 파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로나, 이 문, 열어줄 수 있겠어?”


아로나가 문서를 꺼내 쓱 흩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저기에 출입 통제장치가 붙어 있어요.

절 거기에 대시면 시도해 볼게요.”


아로나를 장치에 갖다 대자, 곧

건물에 불이 켜지면서 문이 열렸다.


“해제할 수 있는 보안 장치들은 해제해 놨어요.

감시 카메라도 확인해 봤는데

안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고마워, 아로나.”


아로나하고는 같이 다니면서 어느새 가까워졌다.


같은 공감대와 목표 덕분인지,

다양한 상황 속에서 나름 죽이 잘 맞기도 하였다.



유우카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연구소 정원에 있던 

오리와 닭, 토끼 같은 다양한 동물 모형 사이로 

무언가가 반짝거렸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수많은 장비와 

에어 샤워 부스, 멸균실이나

제독 샤워실들 같은 것들이 보였다.


그리고 점점 많아지는 경고 문구들과

범상치 않은 보관함들, 그리고

지금은 비어있는 철창 우리들이 보였다.


아로나가 띄워준 지도에 따라 길을 걷자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시설 관리 컴퓨터와 

수많은 보조 장치가 즐비해 있었다.


유우카는 컴퓨터에 태블릿을 연결하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함정인 것 같은데? 너무 조용해…”


태블릿에서 아로나가 우산으로 자료들을 건드리는

모습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음, 시설의 자료들이나 내용물 보관함 기록을 살펴봤는데,

딱히 건드린 흔적은 보이지 않았어요.”


“보안 기록에서도 따로 자료를 빼둔 기록은 없었어요.

이런 점을 미루어 보아 함정 같지는 않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아로나는 컴퓨터를 조작했다.



[경고. 시설 보존 장치가 정지되었습니다.]


[경고. 필터링 및 제독 시스템이 작동되었습니다.]


[경고. 살균제 배치 및 소각 장치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컴퓨터의 경고 문구를 뒤로하고 

유우카는 양복 안 주머니에서 폭탄을 꺼내 

컴퓨터 위에다 두었다.


“놈들이 그냥 포기한 거면 좋을 텐데…”


그때 아로나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라?”


“왜? 무슨 일이야?”


유우카가 아로나를 바라보았다.


“다수의 인원이 이곳을 향해 접근하고 있어요!”


“카이저 장비를 사용하고 있지만, 전술 용어나

지휘체계는 카이저를 따르지 않고 있어요…”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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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v6Zw9m89CS8?list=PLh6Ws4Fpphfqr7VL72Q6HK5Ole9YI54hv






아로나는 매우 당황한 표정으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예전에 선생님이 만났던 

SRT 특수학원 소속이었던 학생들이에요!”


SRT 특수학원…선생님께 얼추 들은 기억이 있다.

폐쇄가 결정되고 발키리와 통폐합되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중 일부가 공원에서 농성 부리다 

결국, 카이저가 그곳을 재개발하면서 

쫓겨났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설마 그들 밑에서 일하고 있는 것인가…



아로나는 충격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로나, 일단 소각 계속 진행하고 있어.”


“내가 가서 직접 대화해볼게…

위치 정보, 내 휴대폰으로 전달해 줘.”


유우카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다시 한번 긴 복도와 계단을 지나며

아로나가 보낸 위치에 도달하자 

깔끔하고 화사한 2층까지 이어진

넓은 로비에 도착했다.


이 건물에서 하는 일과는 대비되게

관엽 식물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고,

사람들의 일상이 담긴 초상화가 장식되어 있었다.


주변에 조금씩 기척이 느껴져 입을 열려는 순간.



콰아앙-!



굉음과 함께 유우카의 머리에 묵직한 탄환이 강타하였다.

이면의 힘을 얻기 전이었다면 진작에 쓰러졌을 타격이었다.


통증을 느끼는데 더뎌지기는 했지만, 충격을 버티는 것은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다.


충격으로 한쪽으로 기울어진 얼굴로

눈살을 찌푸리며 탄환이 날아온 깨진 창문 너머를 째려보았다.


아주 먼 곳에서 매우 잘 숨어있지만 순간 

미세하게 떨리는 잎이 보였다.



투다다다-!



그러자 기척이 느껴지던 

로비 위층 복도에서 바로 사격이 가해졌다.


“잠깐…”


유우카가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리면서 입을 열었지만,

이번에 뒤에서 누군가가 재빠르게 유우카에게 달려들었다.


할 수 없이 유우카는 몸을 틀어 돌진하는 철모를 쓴

아이를 피하면서 동시에 그 아이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유우카의 빠른 반응 속도와 대응에 놀라면서도 그 아이는

뒷발을 차며 저항했고, 그 사이에 또다시 굉음과 함께 

유우카의 머리에 묵직한 탄환이 강타했다.


‘하…’


이 상태로는 절대 대화를 할 수 없을 것 같은 유우카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무기를 꺼내 들어, 목덜미를 잡힌 

아이의 뒤통수에 총구를 겨누었다.



그러자 사격이 멈추었고,

이제 인질이 된 아이도 이 상황을 눈치챘는지 가만히 있었다.


아무래도 카이저가 그녀들에게 

내가 공격이 씨알도 안 먹힌다는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나 보다.


격한 분노가 올라왔다. 


예전부터 그들이, 

선생님과 관련된 것들을 보란 듯이 

짓밟고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너희들, SRT 소속 애들 아니야?

카이저 밑에 들어간 거야? 여기서 뭘 하는 거야?”


유우카의 말에 목덜미를 잡힌 아이도 위에서 조준하던

아이도 흠칫 놀란 듯 보였다.


유우카가 잡은 아이를 놓으면서 입을 열었다.


“난 너희들이랑 싸우고 싶지 않아.

한때 선생님이랑 인연이 있다고 들었으니 

경고할게, 여기서 지금 당장 나가.”



선생님이란 말을 꺼내서인지 

인질을 놓았음에도 반격이 없었다.


방금까지 목덜미를 잡혀있던 

철모 쓴 아이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한때 SRT 소속이었다는 것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그리고

너, 선생님이랑 무슨 관계야?”


유우카는 새삼스러운 듯 말했다.


“동네방네 소문내면서 공원에서 농성 부린 얼굴을

아직까지 잊지 않은 것뿐이야.”


“그리고, 선생님하고는…그냥 알고 지낸 사이야…”



선생님과의 관계에 대해 말할 때 유우카는 살짝 망설였다.


선생님을 위해 복수를 하였지만…

그 방식들은 하나같이 경악스러운 것들이었다.


지금 자신의 모습과 행동들은 분명, 선생님이라면 

원치 않는 것들이었을 것이고.


그런 자신의 존재가 선생님의 얼굴에 먹칠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희들이 무슨 소리를 듣고 

이곳에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긴 위험한 곳이야.

생화학무기가 만들어지는 곳이라고.”


유우카의 말에 철모 쓴 아이가 당황해했다.


“네가 멋대로 침입한 거잖아, 그리고 생화학무기라니? 

여긴 희귀 질환 치료제를 만드는 곳이라고?”


그때 위층에서 발소리가 들리며 말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조금 의심이 드는 장비들이 보이긴 했어요.”


위층에서 조준하던, 머리에 토끼 귀 장식을 한 아이가 

어느새 계단을 통해 내려와 있었다.



세상일은 쉽게 돌아가지 않는 법.


유우카는 그녀들이 내 말을 믿지 않고 

다시 공격해 올 거로 생각했었다.



“잠깐만, 미야, 아니 RABBIT 1 

지금 적의 말을 믿는 거야?”


“아뇨, 

하지만 이 전투에서 우리의 패배가 분명하다는 겁니다.

목표였던 그녀는 우리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았어요…”


“오히려 인질로 잡히기까지 했죠. 인정하기 싫지만, 지금

그녀를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토끼 귀 장식을 한 아이가 유우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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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da22g5snShQ?list=PLh6Ws4Fpphfqr7VL72Q6HK5Ole9YI54hv





“저희가 공원에서 지낸 걸 기억해 주시는 분이

아직 계실 줄은 몰랐네요.”


“카이저 밑에서 일하냐고 하셨죠?

어찌 보면, 틀린 말은 아니네요.”


그 아이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흰 이 연구소를 보호해 주는 대가로 

카이저 인더스트리에게 자금 제안을 받았거든요.”


이번엔 철모를 쓴 아이가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잠시만, 그거 이야기해도 되는 거야?”


그러자 토끼 귀 장식을 한 아이가 대꾸하였다.


“굳이 숨길 이유는 없죠.”


“형상 유지를 위해서라도…저흰 보급이 필요했거든요.”


“어쩌면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공원에서 쫓겨난 후, 어찌저찌 새로운 터전을

잡았어도 기름과 탄약은 땅 파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기존에 있던 물자를 정리하고, 교대로 알바까지 하며

사비를 털어 유지하려 하였음에도, 하마처럼 돈을 먹는

장비들의 자금을 메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쪼들리는 환경 속에서 어쩌다 보니,

그녀들은 결국 용병 일에도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도, 나름의 신념에 따라 옳고 그른 일인지

구분해 가면서 해왔다고 자부했지만.


어느 순간 자신들 고용주의 횡포를 목격한 후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진작에 일을 접고 손을 털 생각도 하였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늘 뜻대로 되지는 않았고.


어느새, 지금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들을 몰아넣은 자들 밑에 들어가

풍족함과 안락함에 취해, 스스로 족쇄를 

달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적의 말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석연치 않은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인지라.


그녀는 이번 임무의 실패를 기점으로

이 짓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무엇보다도.



“선생님과의 인연을 생각해서라도 그 말…

믿어보겠습니다…”


선생님을 언급하면서 자비를 베푼 그녀의 모습에

싸울 의지가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래빗소대 전원, 철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아이가 무전으로 철퇴를 알렸다.


그러자 무전기 너머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어? 재미는 이제 시작인 줄 알았는데?

시설 관리실에서 폭탄을 발견해서 

타이머를 작동시키고 나왔거든, 쿠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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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eKHjTWzN4Y8?list=PLh6Ws4Fpphfqr7VL72Q6HK5Ole9YI54hv






“…뭐라고?”


유우카가 크게 당황해했다.


“너희들 당장

여기서 최대한 멀리 도망쳐!”


유우카는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발걸음을 돌렸다.



‘아로나!’



유우카는 시설 관리 컴퓨터 위에 두었던

폭탄을 생각했다.


이면의 힘을 얻고 처음으로 만든 그 폭탄은 

이 시설을 파괴하는 데 사용하려고

준비한 것이었다.


자기 자신은 몰라도 그것을 

싯딤의 상자가 견딜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았다.


다시 한번 계단과 긴 복도를 지나며, 

유우카는 샬레에 뛰어가던 그때보다 

더 빨리 뛰어갔다.


온몸이 비수에 꽂히듯 따가웠고 몸이 뜨거워졌다.


자신의 부주의로 아로나를, 선생님의 유품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숨이 차지는 않았지만,

두려움에 차서 헐떡거리며 계속 뛰어갔다.


문을 박차고 관리실에 들어가자, 폭탄의 타이머는

2초 남아 있었다.


유우카는 재빠르게 총을 꺼내 폭탄에 조준한 다음.



1초.



그 사이에 머릿속에서 무언가를 생각한 후

바로 방아쇠를 당겨 폭탄에 맞췄다.


탄환이 폭탄에 맞자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본래라면 바로 터졌어야 할 폭탄이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폭탄이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린 것을 본

유우카는 안도하면서 그대로 땅에 주저앉아 버렸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 

컴퓨터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싯딤의 상자… 

아로나는 보이지 않았다.


유우카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연구소와 거리가 좀 있는 정문 검문 시설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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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Ol0npw95Pp0





“그래서,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미야코?”


“글쎄요…

적어도, 이 바보 같은 짓은 그만둘 생각입니다.”


허무하게 패배를 인정한 그녀들은 

어째서인지 후련해 보였다.


“이상하네, 아까 작동시킨 폭탄, 지금쯤이면 펑! 하고

터졌을 텐데~”


“우리 임무는 보호였지 파괴가 아니야 모에, 

시설 정상화만 하라고 했잖아…

그것보다 그건 어디서 난 거야?”


“아까 관리실에서 

이게 연결되어 있었어, 신기해서 가져와 봤어~”


“화면은 꺼져있는데?”


태블릿에 전원 키를 눌러보아도 반응이 없었다.


“망가진 거 아냐?”


“사, 사키…그 태블릿, 뭔가…

선생님이 들고 다니시던 거라 똑같지 않아?”


“으앗 깜짝야, 미유,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그렇게 4명이 서로 떠들며 길을 걷는 중.



갑자기 하늘에서 제트 엔진의 우렁찬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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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RhyOTXCuZl8





“지원 부대인가? 우리 철수한다고 보고하지 않았어?”


“네, 적에게 구역이 넘어갔고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알렸어요.”


그녀들의 대화가 엔진 소리에 묻혔고, 곧이어

무언가 발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뭐, 뭐야?!”



콰앙-!



큰 폭발 소리와 함께 후폭풍에 

그녀들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연구소가 조금씩 붕괴하기 시작했다.



“무, 무슨?!”


당황하는 사키와 발사체를 보던 모에가 소리쳤다.


“하아, 미사일로 연구소를 터트리는 거야?! 화려한걸!!


날벌레보다 작게, 겨우 보일 정도로

멀리 있는 전투기가 다시 한번 굉음 소리를 내오며 

고도를 낮추고 또다시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번 타격으로 연구소는 완전히 무너져 내리면서,

내부에서 무언가 터졌는지 폭발이 일어나며 활활 타올랐다.


“이상하군요. 

철수한다는 보고는 했지만, 따로

지원해 준다거나 대피 명령은 없었어요.”


미유가 총에 달린 스코프로 전투기 모델을 확인했다.


“저, 적기는 아닌 것 같은데…”


미야코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저희가 안전 지역인지 확인하는 무전도 없었고,

아무리 적이라 해도 보호하라는 건물을 붕괴시킬 정도의 

공격이라니, 이런 대응은 과격하고 뭔가 수상한 것 같은데요.”


“잠시만, 저거 또 발사했어? 설마…”


이번엔 전투기가 그녀들에게 미사일을 투하했다.


“아아…이렇게 화려하게 파멸하는 건가?”


그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빠르게 날아오는 미사일은

머리에서 피할 생각을 꺼내기도 전에 눈앞에 도달했다.



콰아앙-!!



고막이 찢어질 정도의 큰 굉음과

불과 먼지로 이루어진 폭풍이 만들어지면서

하늘로 솟구쳤다.


“콜록! 콜록!”


주변의 보도블록이 형체가 없어질 정도로 

강력한 폭발이었음에도.


“케엑, 콜록.”


연기가 걷히자, 그녀들은 어째서인지 

바닥에 주저앉아 기침만 할 뿐 매우 멀쩡했었다.


“다들 콜록…괜, 크흠…괜찮은 건가요?”


“켁, 우, 우리 지금 콜록, 저 공격에 무사한 거야?”


“마, 말도 안 돼…”


“하아, 짜릿해.”


그녀들은 어느 정도 큰 부상을 예상했지만, 의외로 

매우 멀쩡한 몸 상태에 매우 놀라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있는 틈에도 또다시

굉음과 함께 빠르게 미사일이 날아왔다.



타앙-!



그때, 우렁찬 소리에도 총성이 묻히지 않고 

뚜렷하게 들리면서, 빠르게 날아오던 미사일이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없어져 버렸다.


그리고, 또 한 발의 총성이 울리자, 겨우

식별이 되었던 전투기가 연기를 내뿜더니 

그대로 터져버렸다.


“뭐야?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당황해하고 있는 그녀들 사이에서 

어느새, 유우카가 나타나 사키가 들고 있던 

태블릿을 낚아채 갔다.


“잘했어, 아로나.”


유우카가 태블릿을 집어 들자, 전원이 켜지면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어요! ”


아로나가 안절부절못하며 입을 열었다.


“4분을 동시에 지키는 건, 한 번이 한계였거든요!”


매운 연기에 눈물을 훔치던 사키가 놀라며

태블릿을 바라보았다.


“어, 켜졌어? 그리고, 말을 하네?”


“우, 우릴…지켜줬다고?”


“네!  제가 힘을 좀 발휘했죠!”


아로나가 으쓱대며 자랑했다.


“방금, 그 총으로 저걸 터트린 거야?!”


모에의 눈이 반짝이면서 

유우카의 총을 보며 말했다.


연속으로 일어난 혼란 속에서도 마음을 가다듬으며 

미야코가 입을 열었다.


“그건 말도 안 돼요. 총기의 사거리 한계나 

강화 장갑을 갖추고 고속으로 기동하는 전투기를

총으로…

그것도 단 한발로 무력화한다는 건 불가능해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미야코는 장갑을 벗고 

유우카의 총구에 손을 갖다 댔다.


“...설마, 정말로…당신이 그런 건가요?”


미야코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믿기 어려웠지만, 아까의 전투 속에서 그녀가

일반적인 존재와는 다르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그리고, 저 말하는 태블릿이 

우릴 보호해 줬다는 것도, 방금 상황의 

신빙성을 더해주기도 했다.


유우카는 말없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아이들의 상태를 확인하듯 쓱 훑어봤다.


그러고는 자기 갈 길을 가려는 듯 발걸음을 옮겼다.


“잠…”


“잠시만요!”


미야코가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로나가 소리쳤다.


“혹시나 해서 주변을 넓게 탐색했는데,

다수의 통신이 감지되고 있어요!”


아로나는 귀에 손을 대는 포즈를 취했다.


“알 수 없는 말들뿐이지만, 주변 소리를

분석해 보니 무언가를 파괴하는 소리가 나요.”


이번에는 손으로 망원경 모양을 만들어 

눈에다 대는 포즈를 취했다.


“...주변을 살펴보려 했는데, 마땅한 카메라가 없어요.”


“아, 방금 주변을 살펴볼 수 있는 

휴대폰 4대를 찾았어요!”


“여기서 꽤 떨어진 곳에서, 이곳을 기준으로 

주변 건물을 파괴하면서 무언가를 하고 있어요!”


유우카가 관자놀이를 누르며 중얼거렸다.


“산 넘어 산이네…”


유우카는 게임 개발부 애들이랑 하던 

액션 게임들처럼, 끝없이 몰려오는 

적들과 사건들에 허탈함과 짜증이 밀려왔다.


“어…근데, 이 휴대폰 주인분들…”


“선생님하고도, 유우카씨하고도 아는 분들인데요?”



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