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신체훼손을 당한 상태임. 이런 내용에 거부감이 있으면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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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뜬다...


어두운 방... 피가 잔뜩 묻어있는 의자...

시선을 돌리자 눈에 들어오는 사라진 왼팔


주문을 외우듯이 되뇌인다.

이건 꿈이야 이건 꿈이야 이건 꿈이야 어서 일어나 이건 꿈이야


끼이익...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옆집살던 친한 친구.. 친구였던 은영이가 들어온다


"찬열이 일어났구나?? 몇시간동안 미동도 안하길래 잘못된줄 알고 걱정했잖아~"


은영이는 내가 눈을 뜬 것을 확인하자 반가운듯이 싱긋 웃으면서 다가온다


"미안해 찬열아.. 내가 톱질은 처음이라 그랬어... 많이 아팠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고 속으로만 생각한다. 겉으로 내비치면 또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


"우리 찬열이 아프지 않게 내가 톱질 연습하려고 고기도 많이 구해왔다?? 이거로 연습 많이 해서 다리를 자를때는 아프지 않게 잘 해줄거야! 걱정마!"


아무래도 은영이는 아예 미쳐버린것 같다. 이번 금요일에 학교에서 만났을때 까지는 이런 기색을 느끼지 못했는데 뭐가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왼팔이 쑤신다 있지도 않은 왼팔이 쑤셔온다

다리도 쑤신다... 오른쪽 발목... 왼쪽 정강이... 아니 나의 온 몸이 고통에 몸부림친다


" 우리 찬열이 많이 아픈가봐... 내가 약 발라줄게 어디 상처 한번 보자"


그만 해... 내 몸에 손대지 마... 날 걱정하는 척 연기하지 마...


"찬열아!"

그만해...


"찬열아!!"

제발...


"그만해!!!"



눈을 떴다 내 앞에 은영이는 사라졌다

검은 방도 사라졌다 피묻은 의자도


"허억!!.. 헉... 흐읍.... 훅"

"찬열아 괜찮아?!"


다급한 목소리에 눈을 돌리자 고등학교 선배였던  진아누나가 보인다


또 그 꿈이다... 일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그 여자에 대한 꿈이다...


"찬열아 누나 얼굴 똑바로 봐! 심호흡 해!"


"흐으읍... 후... 허억! 흐읍.."


"그래 천천히... 들이쉬고... 잘하고 있어"


"후우.. 후우... 누나... 고마워요 이 늦은 시간에 또 깨우게 됐네요..."


"아니야 찬열이 힘든거 누나가 다 아는데 미안해 할 필요 없어. 누나는 괜찮아"


숨을 진정시키고 나니 다시 몸에 격통이 찾아온다.


그날 이후 밤이면 밤마다 격통에 시달리고 통증이 심해지면 어김없이 그때의 꿈을 꾼다.


왼팔을 바라본다. 이은영이 처음으로 자른 곳

왼쪽 정강이를 바라본다.. 이은영이 두번째로 자른 곳

오른쪽 허벅지를 바라본다. 이은영이 마지막으로 자른 곳


양쪽 다리 길이가 다르게 잘린 이유는 똑같이 잘라 놓으면 허벅지로 걸어서 도망갈까봐 그렇게 잘랐다고 한다

오른팔은 나의 최소한의 자유를 보장해주기 위해서 자르지 않았다고 한다


하여튼 미친 여자가 따로 없다


그나마 오른팔은 멀쩡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식사나 문 열고 닫기와 같은 것들은 가능한게 다행이었다.

의족을 사용해서 걸을 수는 있지만 의수는 정밀한 동작이 힘들기 때문에 오른팔도 없었다면 정말로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몸이 된 후에 주변에서 날 불쌍하게 바라보는 그 시선이 너무 싫어서 나는 결국 고등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오른팔이 남아 있어 공부를 하는것은 가능했고 선생님이 학교에서 너를 도와줄 테니 포기하지 말라고 응원해 주셨지만 부숴진 나의 마음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이은영은 그 사건 후에  학교에서 퇴학 처리를 당했지만 백이라도 있었던 것인지 심신미약한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달리 처벌은 받지 않았다.

그 이후의 소식은 알 수 없다. 이 소식도 진아누나가 알려준 것이다.

 

그 후, 원래 부모님이 없었던 나는 차라리 이대로 자살을 하려고 생각했지만 내가 학교를 그만뒀다는 소식을 들은 진아누나가 달려와 나를 위로해주었다. 

진아누나는 내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앞으로 내가 책임지고 널 돌봐줄테니 함께 살자고 했다.


누나의 인생을 나 때문에 망치고 싶지 않아서 거절했지만 누나는 지방에서 혼자 올라와서 가족도 없고 쓸쓸했다며 너와 함께 사는 것 쯤은 아무일도 아니라고 계속해서 날 설득해 결국 내가 살던 원룸을 처분하고 누나가 사는 원룸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집을 나오면서 본 옆집... 그러니까 이은영의 집은 이미 비어있었다.




옛날 생각을 하고 있자 진아누나가 물어왔다


"찬열아 괜찮아졌어?"


"네 누나 덕분에요. 고마워요 정말.."


"아니야.. 우리 찬열이 아직 많이 아픈거 누나가 다 알아. 진통제 가져올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렇게 말하고 누나는 진통제와 물을 준비하러 갔다.

시간을 보니 새벽 3시 20여분. 고3이라 수능 준비를 하느라 피곤할 누나를 깨웠다는 사실이 너무나 미안했다.


"자 찬열아 약이랑 수건도 가져왔어 땀은 내가 닦아줄테니까 약 먹어"


누나는 그렇게 말하며 수건으로 땀에 젖어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톡톡 두드려주었다.

누나가 날 빤히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 나는 괜히 부끄러워졌다


"누나 피곤할텐데 이제 그만 자요... 아침에 학교에 가야 하잖아요"


"우리 찬열이 잘 자는거 보면 잘거야~"


"알겠어요.. 이제 잘테니까 어서 불 끄고 누워요"


"응~ 어서 자자~"


누나는 불을 끈 후에 조심조심 내 옆으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부끄러워서 따로 자려고 했지만 누나가 울고불며 나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함께 자게 되었다.


"누나"


"왜?"


"누나는 언제까지 저를 돌봐줄 생각이세요?"


나는 늘 궁금했던 것을 물어봤다.


"음~ 우리 찬열이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 할 때까지??"

누나는 답했다.


"제가 이런 몸인데 결혼하지 못하고 평생 혼자면 어쩌려고요?"

나는 어찌보면 당연할 수 있는 미래일에 대해 다시 물었다.


"그럼 누나가 평생 돌봐줘야지~"


"..."

왜 그렇게까지 해주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 찬열이 어서 자야지? 누나도 피곤해지려 그래~"

내가 하고싶은 말을 가로막듯이 누나가 말했다.


나는 더 물어보지 못하고 잠을 청했다.



그렇게 아침이 왔다. 누나가 준 진통제 덕분에 그 이후에는 푹 잘 수 있었다.


" 그럼 누나는 이제 학교 갈테니까 찬열이는 집 잘 지키고 있어야해?"


" 알겠어요. 학교 늦겠다 어서 가세요"


"...급한일 생기면 바로 연락하고"

누나는 내 오른손을 꼭 잡으며 내 눈을 보고 말했다.


이 행동의 의미는 알고있다

누나가 말하길 이은영 그 여자가 아직 이 근처에 살고있을 확률이 높고, 무슨짓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늘 말했다.

그러니 항상 조심하라는 뜻이다


"알겠어요 누나"


"응 그럼 누나 갔다올게!"


그렇게 누나를 배웅하고 나는 냉장고를 열어 오늘 저녁에 먹을 거리를 생각하기로 했다.


냉장고 안에는 우유 한팩 하고 반팩... 계란 6알정도... 그리고 방금 토스트 만들 때 쓴 식빵 쪼가리...


더 있는게 없었다. 나는 한숨을 쉬고 시장에 나갈 준비를 했다.


외투를 챙겨입고 의수에 장갑을 끼며 겨울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무섭다. 사건이 터진 후 학교에 처음 갔을 때, 내 의수.. 내 의족을 보고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던 그 시선이 무섭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둔 후에는 밖으로 나가는 것 조차 두려워했다.

하지만 진아누나가 나를 위해 헌신하는데 나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집안일을 시작한 이후로는 그것을 극복하기로 했다.


그래서 밖에 나갈때는 늘 두꺼운 옷과 장갑, 마스크를 쓰고 모자로 눈을 가리고 밖을 산책을 하면서 조금씩 익숙해지기로 했다.

몇주가 걸렸지만 점차 나의 상태는 나아졌다. 하지만 두꺼운 옷과 챙으로 눈을 가린 모자는 여전하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다. 이것만은 극복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봄에도 여름에도, 늘 두꺼운 옷에 장갑을 끼고 있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봤지만 불쌍하게 바라보는 시선보다야 이쪽이 나았다.



집앞 시장에 온 나는 우선 정육점으로 향했다. 오늘 저녁에는 불고기를 만들어볼까 고민하며 손질된 고기를 바라봤다.


"요즘 돼지고기가 많이 비싸네... 앞다리살이 싸긴 한데 이건 육질이 좀.."


고민하던 나를 바라보던 사장님이 싸게 줄테니까 목살로 사가라고 추천해주셨다

사장님께서 가격을 많이 깎아주셔서 돈을 아낄 수 있었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며 정육점을 뒤로했다


그 다음은 뭘 살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야"


목소리를 듣자마자 소름이 돋았다.  절대 잊을 수 없는 목소리


나는 조심히 방향을 돌렸다.


"야 너!!"


다시 한 번 그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달려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양쪽 다리 모두 의족인 나는 달릴 수 없다.

지금 쓰러지지 않고 걷고 있는게 다행인 수준이었다.


탁탁탁탁

나에게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야 너 박찬열 맞지?"


어째서? 어째서 들킨거지? 

마스크도 모자도 푹 눌러썼다. 바로 앞에서 날 보지 않는 한 나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그 목소리를 들은것 만으로도 정신이 무너져 내릴거 같았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탁탁탁탁탁


발소리가 들린다. 나는 도망칠 수 없다. 연락해야 해. 진아누나한테 연락해야 해


하지만 마침내 도착한 그 사람에 의해 나의 오른손은 붙잡혀버렸다.


"야 박찬열. 너 맞지?"


그 사람이 내 앞에 섰다


나는 무서워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몸이 덜덜 떨린다. 당장이라도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기절해 버릴 것 같았다.


" 맞네 박찬열"


"..."


"야 나를 이렇게 만들어놓고 아무렇지 않게 잘 살고 있었냐?"


"..."


내가 계속 고개를 들지 않고 아무말도 하지 않자


"재밌게 잘 살고 있었냐고 물어보잖아"


고개를 숙여 모자 아래로 내 눈을 들여다 봤다



마주친 이은영의 눈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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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편은 설명충처럼 이것저것 들어갔는데 내용상으로 보면 프롤로그 같은거고

내 예상으론 뒤에 3편이나 4편정도 더 나올 것 같음.


프롤로그 - 이은영편 - 본편 이렇게 진행될 예정인데 본편이 길어지면 4편까지 가는거고 짧게 빠지면 3편으로 끝날듯


등장인물 

이은영 사건 당시 고1, 현재 퇴학

김진아 현재 고3

박찬열 사건 당시 고1, 현재 자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