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결투표(自決投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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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의식이 수면 아래에서 떠오른다.

 

성란은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그러다 문득 옆에 누워있는 온기를 느끼고 그쪽을 바라본다.

그녀의 곁에서 백이란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사랑스러운 그 모습에 한 번 피식 웃고 그를 꼬옥 껴안는다.

그 탓에 잠에서 깼는지 살포시 눈을 뜬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일어났어요?”

 

다정하게 말을 걸곤 그의 뺨을 살살 쓰다듬었다.

 

착 달라붙어 있던 탓에 서로의 몸에서 끈적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것이 어제의 행위를 생각나게 하여 성란은 침을 삼켰다.

 

팔을 뻗어 그의 아랫도리를 간질이듯 문지르자 금세 다시 커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란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이란 씨, 같이 목욕할래요?”

 

…그에게 거부권 따위 있을 리 없었다.

 

 

1.

 

두 사람이 몸을 씻고 나왔을 무렵 홀에서는 식사가 한창이었다.

 

“뭐에요? 누가 보면 초상이라도 난 줄 알겠어요.”

 

다들 묵묵히 식사를 이어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홀에는 잔뜩 긴장감이 감돌았다.

 

백이란 역시 조용히 자리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어제 점심처럼 먹는 도중에 덮칠 생각은 없는지 성란도 자기 자리에 앉기에

그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사를 시작했다.

 

이내 성란이 휘파람을 불자 홀이 환하게 밝혀진다.

위를 올려다보면 전등처럼 천장 가까이 둥둥 떠있는 불덩이가 있었다.

 

식기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이 홀에 울려퍼졌다.

 

다들 한마디도 하지 않고 먹는 데만 집중한 탓인지 금세 식사가 끝이 났다.

 

별 말 없이 눈빛만 주고받은 이시연과 박루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릇을 정리해 주방으로 떠났다.

 

“뭐, 이럴 줄 알고 있었지만 말이죠.”

 

그러나 나머지 다섯 사람은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점심과 다르게 아침식사 때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그런데 여기 가만히 앉아있는 이유는 물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더니 성란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중앙에 놓인 새하얀 정육면체로 시선을 향했다.

탈락자 투표를 개시할 수 있게 해주는 투표함.


째깍째깍. 시계가 돌아간다.

8시까지는 이제 30초도 채 남지 않았다.

 

“어디 해볼 테면 해보세요?”

 

성란은 테이블 위로 훌쩍 뛰어오르더니 투표함 위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았다.

 

뒤이은 그녀의 손짓과 함께 천장에 있던 불덩이가 점점 내려오다 테이블 바로 위에서 멈춘다.

 

─그리고 들려오는 폭발음.

 

커다란 소리와 함께 충격이 그녀를 둘러싸듯 앉아있던 인물들을 덮쳤다.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의자 째로 떠밀린다.

몇몇은 아예 뒤로 넘어가 데굴 구르기도 했다.

 

“이런 미친…….”

 

바닥에 쓰러졌던 박선정은 미간을 연신 찌푸리며 일어섰다.

 

“은하야, 네 계획하고 좀 많이 달라진 거 같다?”

 

이게 어딜 봐서 밸런스 조정이 된 거라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속으로 불평하다 옆에서 뻗은 백은하를 발견하곤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준다.

 

“아뇨, 분명 게임이 성립하려면 1대 4는 좀 힘들어야 하는데요…….”

“미안해요. 제가 좀 대단한 사람이어서.”

 

성란은 여전히 자리에 앉은 채 발 뒤축으로 투표함을 톡톡 두드렸다.

 

“…다친 사람은 없어?”

“나는 괜찮아. 문희 언니는?”

“문제없어. 은하도 안 다친 거 같고.”

 

주위를 둘러보며 백이란이 물었다.

이내 곧 대답이 돌아온다.

 

“그럼 일단 물러서서…”

“오빠, 미안한데 그럴 생각은 없거든.”

 

백은하가 양손을 모았다 펼치자 금빛 사슬이 주르르 이어진다.

 

그녀의 말에 백이란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머지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다들 무언가 결의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사실 백이란은 어제 성란이 방에 쳐들어온 탓에 작전회의를 못했으니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모르는 게 당연했다.

 

“어떻게든 카드 한 장만 집어넣으면 돼.”

 

그런 그에게 박선정이 카드 한 장을 홱 던져준다.

양면이 다른 투표용 카드가 허공을 갈랐다.

 

“아예 부숴달라고 광고를 하지 그러세요?”

 

그러나 그가 손을 뻗기도 전에 성란이 휘파람을 불더니

또다시 날아든 불덩이가 카드를 휘감아버렸다.

 

플라스틱으로 된 그 카드의 모양이 점차 일그러진다.

백이란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든다.

 

“─광고해준 거 맞아.”

 

그러나 그것과 함께 박선정이 테이블 쪽으로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백은하 역시 그 옆에 딱 달라붙듯이 돌진했다.

 

그제야 방금 전의 행동이 잠시 시선을 돌리기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고서

성란은 다급히 휘파람을 불며 그녀들을 노려보았다.

 

다시금 불덩이가 날아들지만 백은하가 손에 들고 있던 사슬을 휘둘러 막아낸다.

그러고는 거리낌 없이 그것을 버리고 새로운 사슬을 만들어낸다.

 

그동안 박선정은 도약하여 단숨에 테이블 위로 착지했다.

 

“윽…!”

 

그러나 그와 동시에 성란의 뒤돌려차기에 턱을 가격당해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이란아, 나도 갔다올게.”

 

바닥에 넘어진 박선정이 맞은 곳을 붙잡고 비틀비틀 일어서는 것과

강문희가 뛰쳐나간 것은 거의 함께였다.

 

그러나 박선정은 너무 세게 맞았는지 균형을 잡지 못하고 다시금 앞으로 풀썩 고꾸라진다.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멍하니 있던 백이란이 당황하며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의식을 잃은 박선정은 떨어질 때도 잘못 떨어진 것인지 손목이 비틀려 있었다.

백이란은 급히 그녀를 치료하다가 콰당 소리가 들려 다시 테이블 쪽을 올려다본다.

 

그의 시야에 비친 것은 팔을 뒤로 꺾여 제압당한 여동생의 모습이었다.

그녀를 걱정할 틈도 없이 또 휘파람 소리가 들리고 강문희가 저편으로 튕겨나갔다.

 

“……!”

 

강문희는 불이 붙은 옷을 다급히 벗어선 바닥에 연신 내려쳤다.

속옷에 감싸인 가슴이 드러났지만 성적인 흥분을 받을 상황이라곤 전혀 아니었다.

 

“말했죠? 제가 좀 대단하다고.”

 

그런 백이란을 내려다보며 성란은 그저 생글생글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기습을 하려고 하면 그림자 정도는 조심해주세요?”

 

이시연이 주방에서 돌아온 것인지 뒤에서 갑자기 달려들며 나타난다.

그러나 그녀는 돌아보지도 않고 즐겁게 휘파람을 불었다.

 

뒤이어 보인 것은 복부를 부여잡은 채 바닥에 무릎 꿇은 미술교사의 모습이었다.

 

“무슨… 이런 괴물이 다 있어…….”

 

제대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지 이시연은 거센 숨이 섞인 말을 내뱉었다.

 

상대는 한 명이고, 세 시간 안에 카드를 한 장만 투입하기만 하면 된다.


분명 여유가 있다. 여유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게 대체 뭐란 말인가.

시간 여유는커녕 초전만에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다.

 

“그나저나 선생님이 여기 왔으면 그 음침한 여자도 어딘가에 숨어 있을 텐데요──.”

 

성란은 나머지 사람들을 무시한 채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불덩이를 여기저기 옮겨가며 어둠을 밝혔다.

 

“여기일까요? 아니면 여기?”

 

비웃음이 가득 섞인 시선으로 사방을 훑어보는 성란이었다.

 

드르륵.

 

“……어?”


그리고 카드가 투입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란은 당혹에 가득찬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투표함이 카드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급히 그것을 당겨 뽑으려 했지만 새끼손가락이 어느새 테이블에 엉켜있던 금빛 사슬에 걸려 막혔다.

 

“히히. 이래서 플랜C까지는 만들어야 된다니까요.”

 

그녀에게 붙들려 있던 백은하가 방긋 웃으며 시선을 이쪽으로 향해왔다.

 

“성란 언니, 자기 능력은 펑펑 쓰면서 왜 남 능력은 신경도 안 쓰시나 몰라?”

 

비웃듯 바라보는 그 표정에 성란의 눈동자가 떨렸다.

무심코 손에 힘을 풀어버린 탓에 백은하는 팔을 휙 빼내곤 테이블에서 뛰어내려 물러났다.

 

“오빠, 다 됐어!”

 

그러고는 기쁜 듯 백이란에게 안겨오는 그녀였다.

 

그는 반사적으로 여동생을 끌어안곤 역시 혼란스러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내 강문희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미리 설명을 못해서 미안하다는 듯 웃었다.

 

“은하가 나름 열심히 머리 굴려서 짠 계획이야.”

 

강문희는 이어서 그의 곁에 쓰러져 있던 박선정을 똑바로 눕혀주었다.

 

“…이란아, 나도 힘냈어.”

 

노력해줘서 고맙다는 듯 어깨를 토닥여주는 그녀를 보고 있으니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박루미가 웃음을 지으며 서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음침을 넘어서 음흉이라는 표현이 어울릴만한 모습이었다.

 

“내가 카드 넣었어.”

“그, 그렇구나. 잘했어.”

“……후힛.”

 

칭찬을 요구하는 듯한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었다.

이게 정답이 맞았는지 히죽히죽 웃으며 몸을 베베 꼬는 그녀였다.


실제로 방금 가장 공을 세운 것은 박루미였을 것이다.

그녀의 능력은 투명해지는 것이니 아마 그걸 이용했겠지.

 

“……하아.”

 

그러고서 백이란은 한숨을 쉬었다.

대충 무슨 상황인지는 파악하긴 했지만 역시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뭐, 잘 풀린 것 같으니 다행인가.

 

그런 생각에 무심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길게 끌리는 휘파람. 섬광. 폭음.

최후에 몰려오는 충격.

 

백이란이 상황을 인지했을 땐 이미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있었다.

 

환하게 밝혀진 홀.

저벅저벅 걸어오는 발소리.

 

이윽고 내려다보는 성란이 시야에 잡혔다.

 

“……짜증나.”

 

그녀의 목소리와 표정에는 분노가 가득이 담겨 있었다.

 

“서, 성란아…?”

“닥치세요.”

 

성란은 일어서려는 그에게 올라타 어깨를 짓누르더니 옷을 잡아당겼다.

단추가 하나둘 떨어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금세 그의 바지까지 내리곤 자기 옷도 훌훌 벗어던졌다.

발그레 달아오른 피부는 살짝 땀까지 흘러 그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그들은 분명 계획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아직 탈락자 투표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제 거예요. 아시겠어요? 당신은 제 거라고요.”

 

성란은 이내 혀를 그의 목덜미에 기어가듯 휘감더니 천천히 타고 내려온다.

 

“이제는 몸이 기억하고 있네요.”

 

가슴과 배를 핥으며 그의 고간에 도착할 즈음에는 그의 물건이 이미 벌떡 서있었다.

 

그러더니 허리를 들어올려 각도를 맞춘 뒤 힘차게 내려찍었다.

페니스가 그녀의 음부를 파고든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마구 엉덩이를 들썩인다.

너무 세차게 찍어대는 탓에 철썩철썩 물 튀기는 소리까지 날 정도였다.

 

“무, 문희야… 보지 마…….”

 

순식간에 쾌감이 몰려왔다.

음란한 육체에 짓눌린 채 백이란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헐떡이며 그리 애원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뒤이어 성란이 싸늘하게 식은 시선으로 그의 뺨을 후려쳤다.

 

“지금 다른 여자 이름 부르지 마세요.”

 

그녀가 허리를 움직이는 속도가 더욱 빨라져만 갔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움직임을 최대한의 속도로 취하며 범하고 있었다.

아니, 범한다는 표현조차 부족했다.

 

그것은 맹수가 사냥감을 물어뜯는 수준의 것이었다.

분노인지 희열인지 모를 표정으로 이빨을 드러내며 성란은 허리를 빙글빙글 돌렸다.

 

결국 몰려드는 쾌락의 파도를 이겨내지 못하고 백이란은 사정해버리고 만다.

 

성란은 한 방울도 바깥으로 흘리지 않겠다는 듯 엉덩이를 딱 붙이고

질내에 마구 쏟아지는 그 감각을 만끽했다.

 

척추를 타고 흐르는 것만 같은 쾌감.

거센 숨을 내쉬며 백이란은 무심코 시선을 돌렸다.

 

이내 강문희의 모습이, 그의 연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아…….”

 

백이란은 탄식을 뱉고 말았다.

벌써 세 번이나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에게 범해진 것이다.

 

차마 제대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던 것이다.

 

“이젠 아예 다른 여자한테 눈까지 돌리시네요?”

 

성란이 그리 말을 꺼낸 것은 주저앉은 강문희를 백은하가 부축해서 방으로 데리고 가려던 찰나였다.

목소리에는 반쯤 귀기에 가까운 노기가 서려 있었다.

 

“그냥은 안 고쳐지겠네요. 무슨 벌이 좋을까.”

 

그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던 성란은 고개를 돌렸다.

 

“아아, 그렇죠. 문희 양, 눈 돌리지 말고 똑똑히 지켜보세요.”

 

하더니 그녀에게 가장 잔혹한 형벌을 고한다.


"윽?!"

 

그러나 강문희가 여전히 반응이 없자 큰 소리가 나도록 백이란의 뺨을 다시금 후려쳤다.

 

“제 말이 안 들리시나요?”

“미, 미안해! 볼 테니까…!”

 

그녀는 세 번째 타격이 가해질 때가 되어서야 기겁하며 시선을 이쪽으로 향했다.

 

“더 가까이 와서 보세요. 바로 앞에서 보이도록.”

 

움직임을 재개하며 성란은 그녀를 불러왔다.

 

백이란은 머리를 양손으로 붙잡힌 탓에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점점 다가오는 발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새끼가…!”

“그만.”

“…선생님, 비켜.”

“함부로 자극하지 마렴. 아직 탈락자 투표는 시작도 안 했어.”

 

그 광경에 분노하며 달려들려던 박선정이었으나

이시연이 그것을 미리 알고 앞을 가로막았다.

 

“그럼 보고만 있으라고?”

“그래. 가만히 있어.”

“언니… 문희 언니도 참고 견디고 있으니까…….”

 

이내 백은하까지 끼어들어 말리자 결국 박선정은 육두문자를 내뱉고는 스스로의 방으로 돌아가버렸다.

 

“…….”

 

다른 사람들 역시 하나둘 눈치를 보며 자리를 떴다.

그들에게도 그다지 보고 싶던 광경은 아니었던 탓이다.

 

결국 넓은 홀에는 세 사람만이 남았다.

 

성란은 그런 데에는 전혀 아랑곳 하지도 않고

여전히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강문희에게 손짓할 뿐이었다.

 

“조금 더 가까이…….”

“꺄악?!”

 

연신 그녀를 부르다가 성란은 갑자기 손목을 낚아채어 끌어당겼다.

갑작스런 그 행동에 강문희는 균형을 잃고 넘어지듯 주저앉고 만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성란은 목덜미를 붙잡아 그녀를 억지로 이끌었다.

 

대자로 누운 백이란의 다리 사이에 강문희의 머리를 억누른다.

백이란의 위에 올라타있던 성란의 둔부에 코끝이 맞닿았다.

 

음란한 냄새가 마치 비강을 범하는 것만 같았다.

 

“서, 성란아, 이건…….”

“친한 척 부르지 말아주셨음 좋겠네요. 당신은 제 것을 훔쳐간 벌을 받는 거랍니다?”

 

어느새 변질된 처벌의 세부사항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며 성란은 그녀를 쏘아보았다.

 

“자, 눈으로 보고 냄새도 맡아보세요.

이란 씨의 자지가 제 안에서 움찔대고 있는 걸 보란 말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일부러 과장스럽게 엉덩이를 들어올렸다가 한 번에 내렸다.

당연하게도 질펀한 액체가 강문희의 얼굴에 튀었다.

 

그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목구멍에 끈적한 무언가가 달라붙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분수를 알고 이란 씨와 키스도 하지 않았다는 걸 감안해서

특등석 관림 기회를 드린 거랍니다. 조금 더 기뻐해주세요.”

 

그렇게 말하고서 성란은 완전히 시선을 거두고 백이란과 입을 맞추었다.

그러면서도 허리의 움직임은 멈출 생각을 않았다.

 

그 결합부를 강문희는 코앞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온갖 감정이 뒤섞여서 머리가 멍했다.

차라리 이 퇴폐적인 냄새에 몸을 맡겨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점점 더 숨이 거세지고 심장박동은 빨라져만 갔다.

분노인지, 울분인지, 공포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인지.

 

그런 가운데 백이란은 또다시 사정감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안 그래도 잔뜩 몸을 겹치며 그를 쥐어짜는 법을 터특한 성란이었는데

거기에다 연인이 코를 박고 내쉬는 숨결이 음낭에 와닿으며 배덕적인 쾌감을 안겨주었다.

 

어떻게든 참아내려고 노력한 백이란이었지만

길게 끈 한숨이 느껴진 순간 흐느낌에 가까운 신음성과 함께 결국 정액을 쏟는 수밖에 없었다.

 

페니스가 여러 차례 움찔거리며 정액을 토해낸다.

비정상적인 양의 정액이 성란의 질내를 채우고서도 바깥으로 흘러넘쳤다.

 

방울방울이 끈적히 서로 들러붙은 정액이 흐르다가 강문희의 얼굴까지 닿는다.

흔적을 남기며 내려온 그 정액이 결국에는 입가에까지 닿았다.

 

그녀에 대하여 굳이 미리 변호를 해두자면

몇 번이고 거듭된 충격적 상황 탓에 강문희는 반쯤 취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강문희는 온갖 것들을 머리에 강제로 때려박혀진 나머지

그의 정액이 입술에 닿은 순간 그것을 빨아먹고 만 것이었다.

 

츄르릅 하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울려 빈 홀에 가득 퍼졌다.

너무 찐득한 탓에 성란의 질내에 있던 정액마저 조금 빠져나올 정도였다.

 

“아니, 그, 이건, 그러니까…….”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가를 깨닫고 강문희는 당황하며 변명하려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녀 자신도 왜 그런 짓을 했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성란이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고는 손을 뻗었다.

그 모습에 강문희는 무의식적으로 공포를 느끼며 어깨를 흠칫 떨었다.

 

“─그래요, 이게 당신에게 알맞은 입장이랍니다.”

 

그러나 그 손은 강문희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을 뿐이었다.

성란은 멍하니 올려다보는 강문희의 모습을 보곤 쿡쿡 웃었다.

 

백이란과 몸을 겹치다보니 그녀의 분노는 꽤나 가신 모양이었다.

 

“저와 이란 씨 사이에서 나온 부산물이나 핥으면서 만족하는 게 당신 본분에 맞는 일이에요.

드디어 문희 양도 자기 위치를 이해하셨군요.”

 

그 말에 뒤늦게 온갖 감정이 몰려든다.

 

이 상황 자체에 대한 굴욕. 다른 여자와 몸을 겹친 연인에 대한 원망.

그 모습을 보면서 몰두해버린 자신에 대한 자책.

성란의 분노를 사지 않았다는 안도.

 

그리고 최후에는 흥분이라는 감정이 잠시 떠올랐다가 이성이 그것을 억눌렀다.

 

“후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군요.”

“……!”

 

하지만 성란이 샐쭉 웃으며 그녀의 얼굴에 문지르듯 하며 다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 최후의 이성은 순식간에 망가지고야 말았다.

 

강문희는 꿀꺽 침을 삼켰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도,

나중에 흥분이 가라앉고 나면 엄청나게 후회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차마 스스로의 충동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그저 바로 앞에 주어진 냄새에 취해 잔뜩 숨을 들이키는 짐승만이 남았을 뿐.

 

…탈락자 투표가 개시되기까지는 아직도 거진 두 시간이 남아있었다.






어라 이상하다.

분명 구상 단계에서는 이번 편에 탈락자 투표를 끝낼 생각이었는데…?


그리고 댓글 중에 표지가 수화냐는 이야기가 있던데 사용 제한 없는 그림 가져온 거라 정확히는 모름.

아마 그냥 유명한 손동작 적당히 다섯 개 늘어놓은 거 같음 (기본, 데빌 핸드, OK, 법규, 피스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