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결투표(自決投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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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탈락자 투표는 아침식사부터 점심식사 사이의 시간에 이뤄진다.

 

“후후, 먹여드릴 테니 입 벌려주세요.”

 

반대로 말하자면 탈락자 투표가 끝난 뒤에는 곧장 점심식사가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다만 이전과 다른 게 있다면 의자가 하나 비어있었다는 점.

 

그 의자의 주인인 성란은 생글생글 웃으며 백이란의 무릎 위에 앉아 스푼을 내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반대쪽 손으로는 그의 아랫도리를 살살 문질러댄다.

 

당연히 모두의 시선은 그쪽으로 향한다.

나름 보지 않으려 하는 것 같긴 했지만 흘끔흘끔 눈이 돌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머나.”

 

백이란은 그녀에 대한 나름의 반항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성란은 그 모습을 보더니 빙긋 미소를 짓곤 휘파람을 분다.

 

그 순간 어두컴컴하던 홀이 갑자기 밝아진다.

뒤이어 열기를 머금은 바람이 뺨에 와닿았다.

 

빛에 눈이 익숙해졌을 무렵 그쪽을 살펴보니 허공에 불덩이가 둥실둥실 떠올라 있었다.

 

“사망자가 나오면 게임이 중단된다는 건, 한 명까지는 확실히 죽일 수 있다는 거죠?”

“…불이라니 고약한 취미네.”

 

그녀를 바라보며 이시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성란에 대한 불만인지 눈부신 불꽃에 대한 반응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제가 고른 능력은 아니랍니다?

설문지에 갖고 싶은 초능력이 없다고 썼더니 그 호박이 멋대로 준 거죠.

뭐, 그때 저는 이란 씨를 제외하면 다 갖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말에도 성란은 능청스럽게 너스레를 떨 뿐이었다.

이 상황을 지배하고 있는 건 자신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

 

“누가 좋으려나요?”

 

불덩이가 테이블을 빙빙 돌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 앞에 잠시 멈춰선다.

그 협박에 결국 백이란은 입을 벌리는 수밖에 없었다.


"후후, 잘하셨어요."

 

그렇게 구도만큼은 로맨틱한 식사는 금세 끝났다.

신이 나서 말해대는 성란을 제외하면 아무런 수다도 떨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나 점심식사 때는 한 시간 동안 테이블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는 탓에

아무도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일어나려고 하면 누군가가 어깨를 억지로 짓누르는 듯한 무게가 느껴졌다.

 

“하지마…….”

“싫어요. 할 거예요.”

 

성란 역시 그것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히죽히죽 웃더니 백이란의 바지를 내렸다.

 

그의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훌륭한 물건이

식사 동안의 애무 때문에 팽팽하게 부풀어 있었다.

 

본래라면 이 어둑한 곳에서는 테이블 그늘에 가려진 그것이 잘 보이지 않을 터였지만

홀을 환하게 밝힌 성란의 불꽃 탓에 그의 물건은 너무나도 선명히 보였다.

 

“윽… 문희가, 보고 있단 말이야…….”

“그게 뭐 어때서요?”

“적어도 나중에 다른 데서… 으.”

 

그러나 백이란의 요청을 완전히 묵살한 채 성란은 스스로의 옷도 훌훌 벗어던지더니

다시 그에게 올라타 순식간의 그의 물건을 질로 삼켜버렸다.

 

“하아… 그래요. 이거예요.”

“빼, 제발 빼줘어…!”

“이란 씨가 바라는 대로 몇 발이고 뽑아줄게요!”

“그런 의미가 아니라… 흐윽…….”

 

그리고 마구 허리를 흔들기 시작한다.

상하좌우로 연신 튕기는 듯한 그 움직임이 쾌감을 이끌어낸다.

 

그저 문명이 만든 의자 위에서 행해지고 있을 뿐

그것은 이미 성난 야수의 행위에 가까웠다.

 

“움직이는 거 어때요? 저번에도 느꼈을 테지만 저 나름 운동도 했거든요.”

 

이빨을 마구 드러내는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엉덩이를 찍어내린다.

살과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홀에 가득 울려퍼졌다.

 

“……쯧.”

 

싸늘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시연은 혀를 찼다.

눈동자에 분노의 기색이 꽤나 섞여 있었다.

 

“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

 

박루미는 머리카락에 가려지지 않은 입가만 보고서도

광기가 서려있음을 알 수 있을 정도의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연신 낮은 목소리로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오빠…….”

 

백은하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지막이 오빠를 부를 뿐이었다.

 

“…….”

 

박선정은 이마를 짚은 채 고개를 숙였다.

조금이라도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었다.

 

어제 그녀가 추가한 규칙만 아니었더라면 이 정도까지의 상황은 있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때의 판단 자체는 옳았다.

 

누가 뒤통수를 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떠보기라도 하려면 일단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야지 않겠는가.

어떻게든 매일 모두가 모이는 시간을 만들려고 했을 뿐이었다.

 

설마 규칙을 무시하고 돌아다니는 무법자가 탄생할 것이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 음란한 광경을 피해 테이블에만 시선을 고정해도

끈적끈적한 물소리와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소꿉친구의 신음은 피할 수 없었다.

 

“이란아…….”

 

그리고 연인인 강문희는 그저 멍한 표정이었다.

 

남자친구가 눈앞에서 범해지는데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그것이 너무나도 충격이었다.

 

“문희야, 미안… 미안해…….”

 

그녀가 무심코 이름을 부르자 백이란 역시 그쪽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려 그녀와 시선을 맞춘다.

 

반쯤 울먹이기 직전이 된 목소리는 그녀를 향한 애정과 사죄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러나 강문희는 그 녹아내린 표정 속에서 질펀한 쾌락을 읽어내고 만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그 음란한 당혹감을.

 

그것이 또 그녀에겐 충격이었다.

 

사실 어떻게 보자면 이틀 전에도 있었던 일의 반복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게 끝난 상황에서 사후보고를 듣는 것과

이렇게 실시간으로 쾌감에 적셔지는 남자친구의 목소리를 듣는 건 차원이 달랐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그녀였기에 그것은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다.

 

그런 절망과 혼란이 뒤섞인 표정을 한 그녀에게 백이란은 조심스레 손을 뻗는다.

 

허리가 한 번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손가락이 움찔거려

그가 얼마나 쾌락에 잠겨있는지를 짐작케 했다.

 

강문희는 그런 그의 손을 붙잡기 위해 파들파들 떨리는 팔을 들어올렸다.

이윽고 손끝이 서로 닿았다.

 

“……!”

 

하지만 그 온기를 느낄 새도 없이 성란이 그의 손목을 탁 채갔다.

그러더니 움찔거리는 손가락을 다정하게 핥기 시작했다.

 

마치 사랑스러운 연인과 애정표현을 하듯 상냥함을 듬뿍 담아 혀를 움직인다.

그것과 대조적으로 폭력적으로 찍어내리던 허리는 더욱 격렬해져갔다.

 

그야말로 서로 다른 두 영상을 위아래로 재생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현실감을 잊어갈 때면 질척이는 물소리가 강제로 실감을 느끼게 했다.

 

뒤이어 성란은 헐떡이는 그의 눈을 슬쩍 바라보더니 손가락을 가볍게 깨물었다.

동시에 그의 허리가 살짝 젖혀지며 정액을 토해낸다.

 

결합된 바깥으로 질질 흘러나올 정도의 그 액체는

모두에게 그것이 절대 평범한 양이 아님을 머릿속에 때려박았다.

 

어디선가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란은 그것이 질내를 때리듯 쏟아지는 감각에 백이란을 끌어안고 그 여운을 느꼈다.

 

모두가 그 광경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흥분한 남녀의 거센 숨소리만이 새어나올 뿐이었다.

 

그리고 성란은 다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침묵 가운데 째깍째각 탁상시계 소리가 스며들었다.

 

…식사시간이 끝나기까지는 아직도 너무 많이 남아있었다.

 

 

1.

 

얼굴을 파묻고 있으니 시트 냄새가 풍겨왔다.

박선정은 자기 방으로 돌아온 뒤로 그저 침대에 엎어져있을 뿐이었다.

 

친구가 눈앞에서 남친을 빼앗기는 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던 남자가, 아직도 미련이 남은 남자가 범해지고 있는데

그녀는 그때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스러웠다.

 

강문희가 주먹을 쥐고 억지로 감정을 누르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녀가 그런 표정을 짓게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의 연심을 포기했던 게 아니었나.

이게 대체 무슨 추태란 말인가.

 

이 게임에 말려든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위안을 해보려 했지만

그다지 유의미한 위로는 되지 않았다.

 

그런 와중 스르르 방문이 열린다.

두 사람의 기척이 안으로 들어왔다.

 

“선정이 언니.”

“왜.”

 

이윽고 백은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돌아볼 생각도 들지 않아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퉁명스럽게 답했다.

 

“언니.”

“…문희야.”

 

뒤이어서 강문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제야 박선정은 꾸물꾸물 움직여 몸을 일으켰다.

 

“누가 샀어?”

“이거? 문희 언니가.”

 

그러다 문득 방이 밝다는 것을 깨닫고 살펴보니 백은하의 손에 랜턴이 하나 들려있었다.

 

“문희야. 돈 좀 아껴서 써.”

“사람이 너무 어두운 곳에만 있으면 우울해진다잖아요.”

“어차피 방에 뭣도 없는데 밝기만 해서 무슨 소용이야.”

“거 봐요. 이런 데 있으니 부정적인 생각밖에 안 들고.”

 

유감이지만 그녀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

아니, 이건 어쩌면 참 부정적이라는 고도의 돌려까기일지도 모른다.

 

“퍼즐 다 맞췄으니까 한동안 언니가 쓰세요.”

“역시 우울한 거랑 아무 상관없이 산 거였잖아.”

“헤헤…….”

 

…물론 그녀만큼은 그런 걸 할 수가 없겠지.

 

“도로 가져가. 난 어두운 게 좋아.”

“언니, 또 그런다.”

“…애초에 네 말 대로면 지금은 네가 제일 필요할 거 아냐.”

 

정작 이 상황에서 제일 침울해진 건 강문희였을 텐데도 이런 모습이다.

이러니 어디 나가면 사기를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괜찮아요, 저는.”

 

그러나 강문희는 빙그레 웃으며 말해온다.

 

“거짓말. 전혀 안 괜찮으면서.”

“아냐, 저 진짜로…….”

“내가 널 봐온 게 몇 년인데?”

 

그리 말하며 박선정은 손짓하여 두 사람을 침대에 앉게 했다.

두 명 분량의 무게가 더해지자 침대가 푸욱 들어간다.

 

“하고 싶은 있으면 다 토해놔. 좀 나아질 테니까.”

“…언니야말로 괜찮아요?”

“네 남친 문제인데 내가 괜찮고 말고가 어딨어.”

 

그러면서 이쪽을 바라보는 강문희의 표정에서는 미소가 꽤나 무너져 있었다.

 

“언니… 나 때문에 언니 마음도 포기하고 양보해줬는데 대체 왜 이렇게…….”

“얘 좀 봐라? 누가 보면 아예 실연한 줄 알겠어.”

 

그녀의 어깨를 살짝 끌어안아 토닥여주며 박선정은 시선을 돌렸다.

옆에 앉아 있던 백은하와 눈이 마주쳤다.

 

“그래서 뭐하러 온 거야? 문희 위로나 해주라고 찾아온 거 같지는 않은데.”

“아… 그러면 안 되나요?”

“괜찮긴 한데. 그거 때문이었으면 둘이서 같이 오진 않았을 거 같아서.”

 

그렇게 말하니 백은하는 살짝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문희 언니랑 선정이 언니랑 대화하면 서로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한 것도 있고요.”

“나도 위로해준다고?”

“선정이 언니도 우리 오빠 좋아했잖아요.”

“…나름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왜 죄다 알고 있는 거람. 혹시 TV에도 나왔어?”

 

백은하는 그녀의 반응에 피식 웃더니 ‘우리 오빠는 몰라요.’라며 덧붙여왔다.

 

당연하다. 만약 이 감정이 들켰으면 박선정은 이미 창밖으로 뛰어내려 불귀의 객이 되었을 테니.

 

“아무튼 포기했으니 그걸로 끝이지 뭐.”

“그런 거 치고는 들어왔을 때 꽤 풀죽은 모습이던데요.”

“그건 문희가 이번 일로 우울해할까봐…….”

 

손을 휘휘 저으며 잡생각이 스며드는 것을 쫓아낸다.

그러고서 박선정은 화제를 돌려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말하는 걸 들어보면 다른 이유도 있던 것 같은데 그건 뭐야?”

“게임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요.”

 

백은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설명했다.

 

“성란 언니를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어요. 대처를 해야 해요.”

“힘으로 찍어누를 수도 없는데 그 년을 무슨 수로?”

“무법자가 날뛰는 게 문제면 보안관을 준비해야죠.”

 

그녀는 손끝을 척 세우더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한 사람을 더 탈락시켜서 성란 언니를 제어해야 돼요.”

“그래, 그게 맞는 말이긴 한데…….”

 

정론이었다.

그러나 박선정은 한숨을 쉬며 문을 가리켰다.

아마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 년이 목숨 걸고 투표를 막을 텐데 무슨 방도가 있어?”

“여섯 명 전원을 동시에 제압할 힘까지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백은하는 손바닥을 펼쳐 그 안에서 모래 같은 걸 만들어내며 말했다.

이전에 말해준 그녀의 능력을 생각해본다면 아마 금이겠지.

 

“그 호박 머리는 재밌으려고 게임을 한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밸런스 통제는 이뤄진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요?”

 

손바닥에 쌓이고 쌓이던 사금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스르르 흘러내린다.

 

“전부 달려들면 카드 한 장 정도는 충분히 넣을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해도 소용없어.”

 

그러나 박선정은 고개를 내저었다.

 

“탈락자 투표를 개시하느냐 마느냐로 투표를 하는 의미를 이제야 알았어.

호박 대가리 년은 이런 구도가 될 걸 예상했던 거야.”

 

탈락자 투표 자체의 의견은 갈리겠지만

그것을 하느냐 마느냐에 대해서는 대부분 찬성할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반대표를 던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만약 그럴 필요가 있다면… 지금의 성란과 같은 경우겠지.

 

“최소 여섯 장의 카드를 투입해야해.”

 

즉, 반대표는 탈락자들을 위해서 준비된 요소다.

다르게 말하자면 탈락한 성란에게도 카드가 보급된다고 예상해볼 수 있다.

 

심지어 연속으로 투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카드는 자판기에 지폐를 넣는 것처럼 들어가니 투입에도 시간이 걸린다.

 

그것을 적어도 여섯 번은 해야 한다.

 

과연 거의 무제한으로 폭력이 허용된 초능력자를 상대로 그런 게 가능할까?

 

“아뇨. 한 장이면 돼요.”

 

그러나 그녀의 말에도 백은하는 씨익 웃었다.

 

“성란 언니 카드는 제가 가지고 있으니까.”

“뭐? 그걸 왜 네가 갖고 있어?”

 

갑작스러운 발언에 박선정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그것을 보더니 강문희는 미소 지으며 끼어든다.

 

“성란이가 이제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해서 줬대.”

“하긴… 나도 탈락자는 시설 추방이라고만 생각했고.”

 

다만 역시 불평이 끓어오르고 만다.

기왕 체념했으면 끝까지 체념해주면 어디가 덧나느냔 말이다.

 

“그런데 내일이면 투표권이 다시 지급… 되지는 않겠네.”

 

다섯 장 모두 양보한다고 해도 ‘소지한 투표권이 없다’라고 판단하는 일은 없을 테다.

만약 그런 게 허용된다면 두 명이 손을 잡고 투표권을 무한히 증식시킬 수 있으니까.

 

아마 백은하가 갖고 있다는 카드를 사용할 때까지 성란에게 새로운 투표권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거… 어쩌면 될지도 모르겠는데?”

 

나머지 사람들의 도움도 받아야 하니 성란의 투표권에 대한 이야기는 해야 하긴 해야겠지.


어차피 누군가가 자신의 탈락을 노리든, 게임을 끝내려 하든 탈락자 투표는 개시해야 하니 그건 괜찮다.

 

여기 있는 세 사람, 그리고 아마 협력해줄 백이란을 더하면 이미 그것만으로 과반수를 넘는다.

누구든 원하는 사람을 탈락자로 지정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이걸 이용해서 무제한의 폭력으로부터 백이란을 지켜줄 방벽을 세운다.

 

“그런데 그럼 선정이 언니랑 은하 중에 누가 탈락할 거예요?”

 

그러다 문득 강문희가 질문을 했다.

그녀를 우승시키기로 한 이상 떨어지는 건 둘 중 하나가 될 테다.

 

“어떻게 할래?”

“으음, 제가 할까요?”

 

딱히 별 상관은 없다는 듯 백은하는 어깨를 으쓱였다.

 

“남는 사람은 아직 탈락하지 않은 사람들끼리 조정도 해야 할 테니까요.

저만 오빠와 다른 학교에 다니니 그런 걸 하기엔 아직 좀 어색하고

이 부분은 선정이 언니가 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름 일리 있는 말이었기에 박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럼 내일까지 기다려야 하네요…….”

 

그럭저럭 좋은 계획이 세워졌지만 그때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 강문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내일 정오가 되어야 비로소 성란을 제압할 수단이 생긴다.

아마 오늘은 밤새 백이란이 범해질 터였다.

 

…사실은 이미 그의 방에서 몸을 겹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시간이 흐르는 것을 기다릴 뿐.

 

“…언니들, 저 오늘 언니들 방에서 자도 괜찮을까요?”

 

그러던 중 머뭇거리며 백은하가 입을 열었다.

 

“응? 괜찮긴 한데. 갑자기 왜?”

“저, 오빠랑 바로 옆방이라서요…….”

 

어물어물 말하며 시선을 돌린다.

가나다순으로 배열된 방이니 남매인 두 사람은 당연히 붙어있겠지.

 

“그날에는 오빠가 잠든 다음에 움직였을 테니 괜찮았던 거 같은데

아마 오늘은 아마 계속 그걸 할 테니까 소리 때문에 못 잘 거 같아서…….”

 

그 말에 박선정은 한숨을 쉬며 납득했다.

 

옆방 소리가 그대로 들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방음을 목적으로 설치된 것도 아니어서

아무래도 격렬한 행위를 한다면 그 소리가 들릴지도 몰랐다.

 

벽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다면 더욱 신경이 쓰일 테다.

 

“그래, 나중에 이불 가져와서 바닥에 깔아.”

“고마워요, 언니!

 

박선정이 그리 말하자 백은하는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다.

 

“오늘만이면 되니까요.”

“그래, 안 그래도 이런 데 끌려왔는데 푹 쉬기라도 해야지.”

 

다들 고생이다 싶어 연신 한숨이 터져나왔다.

 

참 피곤한 게임이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