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짜증나는군."


최근 일이 줄지를 않는다. 신계로 올라가서 다른 신들하고 만날 여유도 없다. 특히 다른 여신들은 다 신계에 쳐박혀서 노는데 난 여기 쳐박혀서 일이나 하고있다. 그나마 다행인건 꽃의 여신은 최근 자주 볼 수 있다는 거다. 이상할 정도로 동선이 겹치지만 그 문제는 둘째 쳐두고 최근 과로 때문에 내가 먼저 죽을 지경이다. 식사를 할 시간도 없었지만 초근 그녀가 과일이라도 챙겨주기에 일할 수 있었다.


"자 여기 과일이라도 드시면서 일하세요."


"고맙긴 합니다만 대체 왜 이런 호의를 베푸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에이 우리 사이에 무슨 그런걸 따져요?"


무슨 사이였더라 최근 몇년간 날 귀찮게 하는 사이였나. 이쪽은 최근 급증한 전쟁하고 재난으로 일이 늘어서 죽을 맛인데 언제 어디서나 유유자적 꽃놀이라 팔자의 차이에도 정도가 있어야 하는데 이건 뭐,,,


그녀가 주는 과일은 언제나 달콤했다. 대부분이 처음보는 것이었고 외견은 끔찍하다는게 옥의 티지만. 가면의 입부분을 벗은 채 과일을 베어물자 그녀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생글생글한 미소와 저 아름다운 금발, 그리고 그녀의 백합 장식이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그냥 과일은 평범할것 같아서 직접 새로운 종을 만들어보았는데 어떠신가요?"


"달긴 하군요 사람 머리통 뜯어 먹는거 같아서 기분은 묘하지만."


"그래요? 그럼"


돌연 그녀가 내게 입을 맞춰왔다. 그녀의 보드랗고 따듯한 혀가 내 입안을 휩쓸고 지나갔다. 순간 너무 당황해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음 역시 달콤하네요 모습만 고친다면 쓸만한 과일이 될거에요."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신의 첫키스를 앗아 가놓고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저 왜 굳이 과일을 내버려두고 입을..."


"그렇지만 남이 먹던 걸 먹는건 부끄럽잖아요."


아아 그쪽이었나 그래 있지 이런 쪽으로 둔감한 녀석들. 머리가 아파온다, 말이 좋아 둔감한거지 나쁘게 말하면 상식이 부족한건데 앞으로 같이 다니면 피곤할거 같은 느낌이 팍팍 몰려왔다. 어째서 내 주변에는 제대로 된 놈은 없고 하나같이 뇌가 만들어지다 만 놈들만 가득한걸까. 


"피곤하신거 같은데요? 얼굴색이 안좋아요."


그 정도 눈치는 있는데 왜 내 얼굴색이 안좋아진 원인은 모르는걸까. 지금 키스한 장면 그새끼가 봤다면 1000년은 놀려먹을 것이다. 그리고 요즘 일이 많아서 피곤하기도 하고 말이다. 눈꺼풀의 무게가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진다고 해야할까.그런데 그건 그렇고 이 꽃의 여신은 인기도 많고 친구도 많고 구혼자도 많으면서 왜 굳이 지상까지 내려와서 날 귀찮게 하는걸까. 나하고 어울려 다니는건 그 별종 새대가리 새끼하고 그 새대가리의 아내 뿐인데, 이렇게 다니는게 본인들 평판을 깎아먹는것도 모르고.


"실제로 요즘 잠을 통 잔 적이 없군요."


"어머 그럼 여기서 주무세요, 이제 일 어느정도 끝냈잖아요 수면에 좋은 향도 피워드릴테니까!"


"오늘치 일이 어느정도 끝난건 대체 어떻게..."


"감이죠! 감! 아 그 과일 말구요!"


감만 좋고 머리도 개그 센스도 나쁜 여신이라 어찌 생각하면 밸런스가 맞을지도 모른다. 이런 외모에 저 감이면 머리가 어느정도 나빠도 곤찮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백치였다. 최근 30년 동안 매일 쫓아다니며 날 귀찮게 하는 고민거리는 날 눕히더니 내 머리를 제 무릎에 배게 해주었다. 무릎배게라고 하는 행위였는데 이녀석 백치라서 이게 뭔지도 모르나보다. 이녀석의 무릎배게 한번이면 전재산을 싸들고 와서 한번만 체험하게 해달라고 아우성을 칠 녀석들 천지다. 푹신하면서 부드럽고 시원하면서도 따듯한 감촉과 어딘지 모르게 향긋한 벗꽃향도 느껴졌다. 이렇게 평안하게 잠든건 몇천년 만일까.






꽃의 여신의 시점



역시 과일로 환심을 사는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처음에는 경계하다가도 달콤한 과일을 들고 찾아가면 내심 환영해주는 모습도 아이같아서 너무나 귀여워서 참을 수 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관계는 진전되지 못한다, 조금 과감한 수를 써서라도 관계를 진전시키고 싶었다. 그가 과일을 베어물었을 때, 특별히 만든 약을 혀에 머금고 그와 입술을 포갰다. 그의 입술은 달콤한 느낌 보단 어딘가 모르게 그윽한 향기가 나는 듯 했다. 그렇게 그의 입에 특별히 만든 약을 입에서 입을 통해 먹였다. 그런데 그는 당황했는지 약을 먹인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럴 때는 시치미가 최고겠지.


"음 역시 달콤하네요 모습만 고친다면 쓸만한 과일이 될 거에요."


뭔가 체념한 표정을 짓는데 그 모습 마저 사랑스러웠다. 백치 연기는 항상 하고 있기에 자신이 있다. 주변에 여자가 없다는 사실 정도는 조사해두었다, 기껏해야 친구나 친구의 집에 갈 적에나 만나는 친구의 아내가 전부였다. 그가 최근 신계로 가지 못하도록 전쟁을 일으킨 것도 나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통 잠을 자지 못한 것 처럼 걸음걸이도 기운도 이전보다 훨씬 약해졌다. 거기에 더해 내가 만든 특제 수면제의 효과가 더해지자 그는 눈꺼풀은 더할 나위 없이 무거워졌겠지.


서둘러 그를 내 무릎에 눕혔다. 과연 이 사신께서 내 무릎에 누워보고 싶다고 온갖 금은보화를 들고 오는 이들이 있다는걸 알고 있을까? 그는 짐짓 놀라더니 졸음에는 이기지 못했는지 금방 잠들었다. 그가 잠든걸 확인한 후에야 그의 까마귀 가면을 벗겼다.


흉터로 얼룩져 사람들이 그를 피했기 때문일까,그는 항상 이런 가면을 쓰고 있었다. 물론 나한테는 그 어떠한 모습이라도 똑같이 사랑스러웠지만. 그의 사랑스러운 얼굴에 입맞춤하고 조금만 이 여유와 행복을 즐기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