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에 도착한 얀붕이는 조용히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의 자리는 창가쪽 맨 뒷자리. 위치 자체는 좋았다. 수업 중 바깥 쪽 풍경을 볼 수 있으며, 가끔씩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은 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안정시켜 주었으니.

하지만 자리의 이점 때문에, 바로 옆 자리 애가 노는 쪽의 여자애인 바람에, 쉬는 시간만 되면 무리의 남자애들과 여자애들이 주변에 몰려와 수다를 떠는 바람에 매번 긴장하게 된다.

 

얀진이는 어느 때와 같이 자리에 몰려오는 애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목까지 내려오는 주황 빛을 띈 갈색 머리, 살짝 찢어져 건방져 보이는 눈, 전체적으로 매혹적인 용모다. 그녀는 이야기 도중 다리를 교차해서 얹었다. 그때 보일 듯 말 듯 펄럭인 치맛자락에 순간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던 남자들 몇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녀는 이러한 시선을 즐겼다. 먹어치우고 싶어 안달난 짐승의 눈빛, 하지만 반대로 말해 그들이 그녀를 매력적으로 여기는 한 언제든 그들을 원하는 대로 다룰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얀진이는 이러한 입장을 즐겼다. 남자들이 이럴 수록 자신의 우월함이 입증되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녀가 이런 남자들에게 자신을 내어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가끔 필요할 때나 살살 굴리는 거지, 얀진이는 대화를 나누다가 흥미가 없어져 재밌는 걸 찾아 이리저리 눈알을 굴렸다.

 

그리고 얀진이의 시선이 얀붕이 쪽에서 멈췄다. 큰 키와 건장한 체격과는 상반되게 항상 쭈그리고 다니는 이상한 녀석. 그것 뿐이라면 얀진이도 그냥 덩치 좋은 찐따 중 한 명이라고 흥미를 거뒀을 것이다. 하지만 저 선글라스, 단순히 눈이 안 좋은 거라면 그냥 안경을 쓸 텐데 왜 굳이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걸까? 언제 한 번은 궁금해서 다른 사람에게 물어 봤더니 그만한 사정이 있어 선생님들도 터치를 안 한다 했었나.

 

'저러면 벗겨보고 싶어 지잖아?"

 

얀진이는 오랜만에 재밌겠다 싶어 미소지었다. 그녀는 기지개를 주욱 폈다.

 

"으~ 피곤해."

 

교복을 줄여 입은 탓에 단순히 팔을 하늘 위로 쭉 뻗는 행위임에도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가 눈에 띈다. 꿀꺽, 무리 중 남자 한 명이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시선을 모았다, 그렇게 생각한 얀진이는 얀붕이 쪽에게 몸을 기울였다.

 

"야, 너 뭐 해?"

"어? 아, 응... 그냥 잠깐 웹툰 좀 보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얀진이가 부르자 얀붕이는 당황하며 보고 있는 웹툰을 보여줬다. 이런 건 곧바로 보여주지 않으면 괜히 의심만 산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얀진이는 관심없다는 듯이 휴대폰을 흘깃 보고는 곧 얀붕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마치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이.

 

"그런데 그런 걸 쓰면 잘 안 보이지 않아? 왜 굳이 불편하게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는 거야?"

"이, 이건 그러니까...."

 

얀붕이는 허둥지둥 선글라스를 고쳐 잡으며 말 끝을 흐렸다.

 

"야, 듣고 보니까 너 진짜 왜 맨날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거냐?"

 

그때 얀진이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남자 한 명이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그러자 얀붕이는 깜짝 놀랐지만, 얀진이는 계획대로라는 듯 슬쩍 웃었다. 이제 자기는 먼 발치에 있으며 구경하면 된다.

 

"뭐 심봉사 코스프레라도 하는 건가? 아니면 눈에 뭐 흉터 자국이라도 있나?"

"아, 아니야."

"아니면 뭔데?"

 

남자가 다가온다. 얀붕이는 선글라스를 벗기려 뻗은 그 손을 무의식적으로 꽉 잡아버렸다. 그러자 남자는 의외로 강한 힘에 깜짝 놀라 팔을 빼려 했지만 도저히 빼지질 않는다. 무슨 힘이 이렇단 말인가? 그러나 여기서 밀리기라도 했다간 그것만한 개망신이 없다. 이를 악물며 고통을 참은 남자는 반대쪽 손으로 선글라스를 재빨리 벗겼다. 자기도 모르게 힘을 줘버렸다는 생각에 당황하던 얀붕이는 그만 이어지는 행동에 저항조차 못하고 뺏겨버렸다.

 

"좆밥새끼가 그냥 달라할 때 줄 것이지."

 

그것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던 얀진이는 그의 선글라스가 벗겨지자 눈을 반짝이며 얀붕이의 얼굴을 살폈다. 깜짝 놀라 커다래진 검은색 눈, 매력적인 눈이었다. 어딘가 흉터 자국 같은 것도 없었고, 무엇보다....

 

'내 취향인데?'

 

처음이었다. 보자 마자 확 꽂힌다는 건. 다른 어떤 것보다 이런 매력적인 남자가 찐따라서 한 번 이성한테 꽂히면 다른 누구보다 순종적이고 나만 바라보게 될 거라는 기대가 그녀를 설레게 만들었다.

다른 특별한 것도 없이 훈훈해서 의외의 반응이 펼쳐지는 한편, 남자는 그러건 말건 분명 우스꽝스럽게 생겨서 그냥 웃음용 도구로 쓰이고 말 줄 알았던 얀붕이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방금 잡힌 손목이 계속 쓰라리자 그 생각은 더욱 흉폭해졌다.

 

"도, 돌려 줘!"

 

그때 얀붕이가 몸을 일으켜 순식간에 선글라스를 가져 와 썼다. 손에 들린 선글라스를 눈 뜨고 뺏긴 남자는 어이없는 듯 코웃음을 치고는 곧장 주먹을 휘둘렀다.

 

쿠당!

 

갑작스런 충격에 얀붕이는 바닥을 나뒹굴었다. 또한 구르면서 선글라스는 저기 먼 발치까지 멀어졌다. 남자는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욕짓거리를 내뱉으며 얀붕이에게 다가갔다. 주변의 친구들이 당황하며 뜯어 말린다.

 

"야, 야야 씨발, 참아!"

"새끼 뭐 별것도 아닌 걸로 지랄이야."

"놔 봐 시발년들아!"

 

친구들이 필사적으로 말리는 바람에 꼼짝없이 잡혔으나 그럼에도 남자는 성난 짐승처럼 발작을 일으키며 얀붕이를 쏘아봤다. 그때 얀진이가 기겁하며 쓰러져 있는 얀붕이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는다.

 

"얀붕아, 얀붕아! 괜찮아? 아아, 코피 터진 것좀 봐."

 

그리고 홱, 하고 고개를 돌려 남자를 원망하듯이 쳐다봤다. 깜짝 놀란 남자는 발악하는 걸 멈춰 멍하니 있었다. 왜 그런 눈을 하는 거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얘들아, 나 얀붕이 좀 간호실에 데려다 주고 올 게. 선생님한테 잘 말씀 전해줘."

"아, 으응."

 

얀진이는 쓰러진 그를 부축하다가 얀붕이가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눈을 가리는 걸 보고는 바닥에 있는 선글라스를 주웠다. 그렇게 둘이 모습을 감추자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남자는 답답한 마음에 거칠게 악 소리를 내질렀다.

 

다행히 이 모든 소동은 선생님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단지 얀붕이가 넘어져서 얀진이가 간호실로 데려갔다는 얘기를 전해들었을 뿐이다.

 

-

 

얀진이는 간호실로 걸어가는 내내 얀붕이가 신경쓰여 제대로 길을 걷지 못했다. 맞은 건 얼굴이지 배가 아닐 텐데. 그는 지금 부축 받는 내내 헛구역질을 하며 언제든 토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는 찰싹 붙어서 걷던 얀진이는 혹시라도 토사물이 묻을까 조금은 떨어져 걷고 있다.

 

"왜 그래? 혹시 어디 아파?"

"떠, 떨어... 우욱!"

 

잠깐 헛구역질을 하던 얀붕이는 숨을 가쁘게 내쉬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떨어져."

"...뭐?"

 

떨어지라니, 설마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인가? 평소 외견에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던 얀진이는 충격을 받아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발길이 멈추자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의아해 하며 살짝 고개를 든 얀붕이는 얀진이의 표정이 굳은 걸 확인하고 아차 싶어 허둥지둥 거렸다.

 

"그, 그게 아니라. 네가 싫다는 게 아니라. 내가... 여자한테 약해서."

 

그렇게 말하며 눈을 못 마주친다. 순간 쑥쓰러운 거구나 하고 생각한 얀진이는 히죽 미소지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얀붕이는 여자한테 약하구나?"


그렇게 양호실에 도착한 둘, 하지만 안에서부터 급하게 문쪽으로 뛰어오더니 그들이 문을 열기도 전에 쾅 하고 거칠게 열렸다. 얀붕이만큼이나 장신인 중년의 선생은 무슨 일이 있는 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서, 선생님? 왜 그러세요?"

"뭐, 뭐야 너넨...."

"다름이 아니라, 얀붕이가 지금 몸이 안 좋아서...."


선생은 흘끗 얀붕이의 상태를 살폈다. 얼굴이 파랗게 질렸고, 온몸에 땀을 뻘뻘 흘린다. 가끔씩 헛구역질을 하고, 조금씩 몸이 떨리고 있다. 그러다 뱃속에 천둥번개가 치자 그는 신음을 삼키고는 온몸을 배배 꼬며 고통스러워했다.


"이, 일단 침대에 누워 있어. 선생님은 잠깐 자리 좀 비울 테니까, 응?"


발 앞꿈치를 든 채 종종걸음으로 어딘가 급하게 간다. 그러다 문득 선생의 몸이 활처럼 휘며 두 손으로 엉덩이를 누르는 걸 보고는 아하, 싶었던 얀진이는 곧 피식 웃었다. 아침부터 재밌는 일이 연속이다.

얀붕이를 침대에 눕히자 그는 곧바로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썼다. 조금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러다 잠깐 자리를 비운 얀진이가 "자, 상처 치료해야지." 하고 이불 시트를 벗기려 들었다. 그는 이불 시트를 꼭 잡고 놓지 않는다. 잠깐 힘겨루기를 하던 얀진이는 이내 포기하고 손을 놓았다.


"얀붕아, 아까부터 왜 그러는 거야? 암만 내가 부끄럽다지만 치료할 건 치료해야지."

"...부끄러운 게 아냐."

"아냐? 그럼 뭔데?"

"...무서워."

"뭐?"


얀진이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반 친구가 이렇게 무서워할 만큼 나쁘게 굴었던 기억이 없는데. 흰 이불너머로 잔뜩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만 무섭다는 게 아냐. 난 그냥 여자애들이 다 무섭고,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그래서 선글라스라도 끼지 않으면 버티지 못하는 거야."


복에 받친 듯 말을 끝맺고는 우는 소리를 내었다. 평소 같았으면 무슨 남자 새끼가 찌질하게 우냐고 정색했을 그녀지만, 어째선지 상처 받은 얀붕이 앞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오히려 서글픈 그 목소리가, 문득 든 생각이 그녀의 마음을 울렸다.


'그럼 방금 전까지, 계속 헛구역질하고 몸을 떨었던 건....'


얀진이는 우물쭈물하며 갈 곳 잃은 시선만 데굴데굴 굴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 때 해야 할 행동은 무엇일까. 알고 싶었지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를 보듬고 싶어진 것도, 이렇게 침묵이 불편한 것도, 그녀는 이 모든 상황이 처음이었다.


"저, 저기."

"그러니까...."


조용히 우는 소리를 내던 얀붕이는 서러움에 복받쳐 큰소리로 말한다.


"그러니까 이딴 장난은 두 번 다시 치지 마."


그때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린다. 양호 선생은 이제야 살겠다는 듯이 편안한 얼굴을 하고는 뚜벅뚜벅 안으로 들어왔다. 아차, 하고는 닫힌 커튼을 이것저것 열더니 얀붕이와 얀진이를 발견했다.


"응? 뭐야, 너는 그렇다 치고 넌 아직도 안 갔...?"


선생은 순간 말끝을 흐렸다. 얀진이의 표정이 죽어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잠깐 그녀의 눈치를 살필 겨를도 없이 그녀가 벌떡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양호실을 나간다.


"저저, 인사도 안 하고 가는 거 봐라, 에잉."


양호 선생은 끌끌 혀를 차고는 얀붕이 쪽을 살폈다. 침대 바로 옆에 있는 책상 위에 솜과 멍 연고, 휴지와 선글라스가 놓여 있다. 그는 반쯤 열린 문과 얀붕이를 번갈아 보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싸우기라도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