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https://arca.live/b/yandere/20955149?p=3


-얀순이 시점 -

 

얀순이는 전쟁의 여파를 피해 부모님과 피난길에 올랐어. 부모님과 함께 한 폐허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지.

추운 밤이었지만 얀순이는 부모님의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잠에 들었었어.

그러나 어디선가 날라온 포탄에 얀순이가 머물고 있던 건물이 허물어진 거야. 전쟁에 밤낮이 없듯이 포탑 또한 눈이 없었거든

 

얀순이의 부모님은 포탄소리가 들리자마자 얀순이를 끌어안았어. 그 덕분에 얀순이는 목숨은 건졌어.

그러나 짓이겨진 부모님의 시체와 건물의 잔해가 얀순이를 무겁게 짓눌렀지.

긴긴밤이 끝나고 포탄소리가 멈추자, 얀순이는 자신을 대신해 희생한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살려달라고 외쳤어

 

하지만 그 소리를 들었던 부랑아, 군인 등 수많은 사람들은 그 소리에 응답하지 않았지.

잔해를 파헤치다가 무너져 죽을 수도 있고, 함정일 수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을 살려서 얻는 이득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야.

 

그들은 잡초가 꺾이는 걸 보는 것처럼 무심하게 지나갔지.

어느덧 얀순이의 기력이 다하고 꺼져가는 촛불처럼 생명이 다하기 전에 얀붕이가 나타난 거야.

 

이 세상에서 오직 얀붕이만이 자신의 목소리에 응답해주었고 자신을 구원했어

나만 살아남아서 깊은 어둠속에 홀로 떨고 있었고어두운 밤은 길었으며

세상 어디도 기댈곳이 없었는데 얀붕이만이 자신의 빛이 되어준거야.

 

그 안도감에 얀순이는 까무룩 정신을 잃고 말았지깨어나 보니 밤중이었고 얀붕이는 자신에게 음식과 물을 주었어

 

‘‘밤 중에 모닥불을 피우면 군인들에게 발각되어 위험해그래서 춥더라도 이해해줘.’’

 라고 말하며 담요를 덮어주었지

 

얀순이는 얀붕이가 건네준 음식을 허겁지겁 먹었어. 음식이라곤 하나 딱딱한 군용 비스킷과 얼마 안되는 물이었지만,

갈급한 얀순이에게는 진수성찬이나 다름없었지.

배를 어느 정도 채우고 고개를 돌려보니 입술이 바싹 마른 얀붕이의 얼굴이 보였어.

 

설마..? 자기는 안 먹고 날 위해 양보한 거야..? 생면부지의 날 위해서..?’

 

황급히 비스킷을 주려고 했지만 거의 다 먹었기 때문에 줄 수 없었어.

안절부절하는 얀순이의 모습을 보고 얀붕이는 눈치를 채고 자신은 이미 먹었다며 괜찮다고 말했지.

얀순이는 얀붕이의 세심한 배려에 이 은혜에 꼭 보답하겠다고 다짐했어.

 

밤은 길었고 서로간의 대화를 통해 얀붕이와 얀순이는 서로 통성명과 사정을 알게 되었지.


얀순이는 어둠 속에서 밤눈이 밝아옴에 따라 얀붕이의 얼굴을 보게 되었어

우수에 찬 눈빛이고 어두운 표정이었지만,

자신을 바라볼 땐 활짝 웃어주고 따스하고 다정한 눈빛이었어.

 

얀순이는 속으로 생각했어

저 미소와 눈빛이 나만 바라봤으면.. 나만이 어두운 얀붕이의 얼굴을 밝게 해줄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얀순이에게 얀붕이는 유일한 빛이었으며 구원이었기에

비뚤어진 욕망을 가지게 된 거야.

 

이후엔 살길을 찾아 얀붕이와 정처 없이 떠돌다 기력이 다해 얀붕이의 등에 업혔어.

자그마한 등이었지만 얀순이에겐 매우 듬직하고 넓어보였어할수만 있다면 계속해서 업혀있고 싶었어.

 아니얀붕이의 등뿐만 아니라 그의 몸 전체를 구석구석 만져보고 싶었지.

하지만 기력이 없었기에 상상으로만 그치고 잠에 들었어.

 

눈을 떠보니 낯선 곳이었지만 자신의 곁엔 얀붕이가 같이 누워있었지.

얀순이는 잠결에 껴안는 것처럼 얀붕이를 꼬옥 껴안았어

그리고 곁눈질로 얀붕이를 힐끗힐끗 봤는데 얀붕이의 입에선 자신의 이름이 계속 불려졌어.

 

얀순이는 황홀했어얀붕이에게 내가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된 것을 알 수 있었으니 말이야.

 

그래.. 얀붕이의 온기나만이 가질 수 있고 느낄 수 있어.

 얀붕이의 곁엔 평생 내가 같이 있을거야.’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어떤 여성이 다가오는 것을 봤고 얀순이는 자는 척을 했어.

하지만 귀는 활짝 열고 있었지그리고 그 여성의 이름이 우순이 선생님인 걸 알았어.

곧 일어난 얀붕이와 나누는 대화들과 그녀의 스킨십이 불쾌했지만

그 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었어.

들어보니 얀붕이와 자신을 구해줬을뿐더러 나이차이가 꽤 났기 때문이지

이는 자신의 경쟁상대가 아니라고 판단한 거야.

 

얀순이는 이 곳에서 얀붕이와 둘이 오붓하게 알콩달콩 살아가는 것을 꿈꿨지만

얼마 못 가 그 꿈은 산산조각날 수 밖에 없었어.

자신들 이외에 전쟁고아들이 물밀 듯이 들어왔기 때문이지.


얀순이는 고운 아미를 찡그리고 달갑지 않게 생각해서,

처음에는 그들에게 별 관심을 주지 않았어.

그런데 얀붕이를 보니 다른 이들을 돕는 데에 적극적인 데다가,

우순이 선생님을 열심히 도와주는 모습을 본 거야.

 

그 모습에 얀순이는 슬그머니 불안해졌어

얀붕아너에게는 나만 있으면 되잖아그런데 왜 다른 여자들에게 다정하게 웃어주고,

남자애들에게는 바보같이 걔네들 몫까지 일해주는 거야

그리고 우순이 선생님이랑 너무 가까운 거 아니야?’

 

얀순이는 불안감을 느꼈고 다른 아이들을 통솔할 필요성을 느꼈어

그래서 가면을 쓰기로 했지.

다정한 척 해서 얀붕이에게 돌아가는 관심을 자신에게로 돌리고,

싸움을 중재하면서 얀붕이의 관심을 빼앗기지 않게 않고,

우순이 선생님에게 자신이 유능하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얀붕이말고 자신을 이용하게 해서 자연스럽게 사이가 벌어지게 유도했어.

 

그걸 모르는 다른 아이들은 얀붕이와 얀순이를

각각 대장부대장으로 부르며 따르기 시작했지.

얀순이에게는 귀찮고 껄끄러웠지만 얀붕이는 얀순이가 잘 적응하는 것 같아 기뻐했기에,

마지못해 그들과 어울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