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붕이. 학교에서 불리는 내 별명이었다. 분명 처음에는 이런 별명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교 2학년 즈음 이었을까. 한창 손에서 검은 용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세상 모든게 하찮아 보이던 그 시절 반 아이들 끼리 운동장에서 얼음땡 같은 것을 할때 나는 끝까지 살아남는 편이라 내게 '얌체 같다' 라는 말을 자주 해서 '얌체' 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럼 뒤의 붕이는 언제 붙었냐고?


"... 아, 오늘도 깜빡 했나?"


필통을 뒤적 거리며 중얼거렸다. 오늘도 필통에 샤프를 넣고 오는 것을 깜빡 했던 것 같다. 이번 달로 몇 번째 인지. 이게 내가 '얀붕이'가 된 이유 였다. 붕어 같은 기억력. 암체 같이 날쌔지만 붕어 같이 자주 깜빡하는 내 모습을 보고 '얌체 같은 붕어니까 얌붕이네!' 라고 외친게 계기가 되어, 자연스래 '얌붕이'가 '얀붕이'로 바뀌었다. 아무래도 전자 보다는 후자가 더 부르기 쉬우니까.


"아닌데... 오늘은 분명 중간에 샀는데."


내 소개는 이정도 하고, 필통을 뒤지며 한손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번 달로 벌써 네번째 다. 학창 생활을 하면서 잃어버린 필기구를 모으면, 과장을 조금 보태 서울에서 부산 까지 이을 수 있을 정도로 필기구를 잘 잃어버렸다. 이것도 몇년째 이어지고 있다 보니 나름대로의 해결 방안이 생겼지만.


"뭐냐, 얀붕아. 오늘도 샤프 잃어버렸냐? 행님이 선심 써 줄까?"


"뭣까, 있거든? 니가 선심 써주려고 내 샤프 먹은거 아니냐?"


"꺼져, 소름돋게 남자 샤프를 왜 훔치냐?"


1교시가 끝나고 껄렁거리며 내게 다가온 친구의 말을 대충 대꾸하며 내 교복 마의 안주머니 에서 샤프를 꺼냈다.


"너도 참 붕어 대가리라 힘들겠다. 그거 찔리면 개 아프지 않냐?"


"그래서 이 똑똑한 형님은 샤프 앞쪽에 뚜껑을 달아둔거 아니냐. 내가 붕어 대가리긴 해도 안 굴러 가는건 아니거든."


"그래 그래, 니 똥 굵어서 좋겠다."


필통에 있던 필기구가 사라지기 시작한 후로 내가 나름 고안 해낸 방법 이었다. 예비용 필기 도구를 챙기는 것. 처음에는 가방에 넣었고, 그 다음에는 자물쇠를 걸은 사물함, 체육복 주머니에도 넣어 보았고,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지기에 내 안주머니 까지 왔다. 지금은 이게 가장 효과가 좋았으니까, 처음엔 샤프 끝이 내 가슴팍에 찔리긴 했지만, 볼팬 뚜껑 같은 것을 구해 앞에다가 씌워 해결했다.


"근데 신기하지 않냐? 다른건 안 잊으면서 필기구만 그렇게 잊어먹냐?"


"니 처럼 다 잊고 사는 것 보다는 필기구가 낫지 않냐?"


"내가 뭘 다 잊고 살아. 니처럼 오락가락 하는 것 보다는 일관성 있는게 낫다."


샤프 끝을 눌러 심이 들었는지 확인하며 친구와 대화 했다. 운동을 좋아한다고 온 몸으로 어필 하는 것처럼 탄탄한 어깨와 스텟을 체력에 몰아 찍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단어 선택. 그래도 의리는 넘치고 중학교때 부터 고등학교 2학년인 지금까지 게속 나와 있어줘서 고마운 친구 였다.


"그래그래... 아, 지나간다."


시덥잖은 이야기를 할때 즈음 교실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봤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나, 싶어 교실 뒷문으로 시선을 돌리자 오늘도 자연스래 지나가는 한 여자아이. 뛰어 놀면서 뒹굴고 자란 땀내에 쩔은 나와는 다르게 기품이 흐르는 듯한 발걸음, 어깨선에서 찰랑 거리는 검은 머리와 잘 가꾼 몸. 자연스럽게 내 눈이 그녀를 훑는 것은 사춘기의 정욕이 들끓고 있어서지 절대로 내가 변태는 아닐 것 이다.


"꽤 부지런해 쟤도... 벌써 한달째 아니냐?"


내 책상 위에 앉아서 내 어깨를 툭툭 치는 친구가 입을 열었다. 생각 해보면 벌써 한 달 째다. 저 아이가 이 시간에 우리 반이 있는 복도를 지나가다가 우리 교실을 훑고 말 없이 돌아가는 것이. 처음 몇 번은 반 애들이 누굴 찾아주냐고 물었지만 성과 있는 대답은 듣지 못했고, 그렇게 지나고 좀 노는 애들이 대쉬를 했지만 그것도 좋은 대답으로 그들에게 돌아오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쟤는 누굴 좋아할것 같냐?"


"일단 니는 아니다에 내 왼쪽 부랄을 건다."


"나도 니는 아니다에 내 오른쪽 부랄을 건다."


친구의 질문에 나는 턱을 괴며 대답했다. 다시 저 여자애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우리 반 아니, 아마 우리 학년에 퍼진 소문은 쟤가 좋아하는 남자애가 있는데 어떠한 이유로 그 애한테 고백을 못한다는 결론 이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우리 반에 애인이 있는 남자 애를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고, 고백을 받고 싶은 남자 애가 용기를 내주었으면 하는 바램에 본인을 자연스래 어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 얀붕이 한테 고백받고 싶은 놈이 어디 있겠냐?"


친구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턱을 괴지 않은 손으로 이 자식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윽!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 쌤통이었다. 하지만, 사실 이었다. 일단 나는 절대 아닐 것이었다. 얌체 같은 움직임을 가진 붕어 기억력이 뭐가 좋다고. 그러니 그녀가 나와 내 친구가 있는 이쪽을 오늘 따라 뚫어져라 처다보는 것도, 쉬는 시간이 끝나가는 종이 울려도 이쪽을 뚫어져라 보는 것도, 그리고 제 자리로 돌아가는 분주한 시간에 내 쪽을 보며 입맛을 가볍게 다신 것도 우연 이다.


.... 입맛을 다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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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두문자어 라고 원래의 의미와는 다른 뜻으로 말을 짜맞추는 말 장난이 있음.


치유물 보고 치명적인 유해물 이라고 한다던지, 미연시 보고 미사일 연속 발사 시스템 이라고 장난 치는게 역 두문자어 임.


얀첸 글 보면서 '얀붕이로도 장난을 칠 만한게 없나?' 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장난 치다가 새벽에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찍 싸고 감.


다음화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얀순이'로 괜찮은 역 두문자어가 떠오르면 쓸 것 같음.


그럼 짧은 글 봐줘서 감사하고, 다음에 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