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굉장히 옛날부터 얀데레를 좋아하고, 또 팠다.


사람들은 얀데레를 왜 좋아할까. 개인적으로 나는 그 이유를 타인에 대한 불신능동성에 대한 거세에 초점을 두고 싶다. 아닌 이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 이제는 타인에게 사랑받을 수 없을 거라는 비관, 다른 누군가와 관계를 멪고, 이어나가기에는 부족한 열정.


그렇기 때문에 이유 없고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는 메가데레나, 본심이 어쨌든 상대를 밀어내는 츤데레는 내게 썩 크게 와닿지 않았다. 우리는 사랑을 불신하며, 관계를 개척하기에는 너무 지쳤다.


그런 의미에서 극단적이고 정신병적인 얀데레의 사랑은 매너리즘에 빠진 나에게 굉장히 크게 와닿았다. 얀데레는 상대를 사랑하지만, 상대를 배려하지는 않는다. 이기적이고 독선적이지만 그 행동의 동기가 되는 것은 순수한 사랑이다. 적어도, 서브컬처에서는 그렇다.


이야기 속의 '나'에게 해를 입히는 그 모든 행동들이 결과적으로는 그 얀데레의 사랑을 증명하는 요소가 되며, 강제적으로 관계를 크게 진척시킨다. 얀데레는 불신과 수동성이라는 두 가지 고질병을 가장 쉽게 때려부수는 해결책이다.


시대의 탓도 있겠다. 섹스는커녕 이성과 대화할 기회도 없는 칙칙한 현실과 온갖 매체에서 난무하는 고어와 에로스, 내가 접하는 매체와 현실의 경계가 멀어질수록 불만족은 더욱 커지고, 이는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한다. 관계에서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