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셨습니다.”


 나는 길드 관리 위원회에서 받은 상금을 파티원들에게 분배했다.


 “감사합니다.”


 “저기, 저녁에 뒤풀이라도 하지 않을래요?”


 “저, 저는 괜찮아요!”


 “저도 별로…….”


 “아, 네……그럼 안녕히 가세요.”


 같이 몬스터를 잡았던 파티원들은 마치 나를 피하는 것처럼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늘 이런 식이네.”


 “둘만 있어서 좋잖아요?”


 “그래, 얀순아. 너밖에 없다…….”


 익숙한 일이다. 언제나 퀘스트가 끝나면 내 곁에 남아주는 사람은 얀순이뿐이었다.


 나머지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서둘러 나를 떠나고, 후에 마주치더라도 나와 아는 척하려 들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모험가 일을 시작한 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얀순이밖에 없다.


 얀순이는 꽤 실력 있는 힐러로, 아무리 심각한 부상이라도 순식간에 낫게 하는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다.


 과장이 아니라, 숱한 힐러들을 봐왔지만, 그녀만큼 뛰어난 실력의 힐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녀는 나와 함께 적당한 난이도의 퀘스트만 수행할 뿐, 막대한 보수가 주어지는 퀘스트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나야 든든한 지원군이 있어 안심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 오늘 저녁에 만나.”


 “아, 네!”


 나는 얀순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처음에는 많은 인연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이제는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그저 얀순이 한 명이라도 내 곁에 남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



 “어서 오세요.”


 늘 가던 포션 상점에 들어서자, 못 보던 얼굴이 보였다. 아무래도 가게 주인의 딸인 모양이었다.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여우처럼 매혹적인 눈매에 마음을 조금 들뜨게 하는 목소리. 흔히 볼 수 없는 미인이었다.


 “아, 저……체력 포션 큰 사이즈로 하나요.”


 “모험가님이신가요?”


 “아, 네.”


 “부러워요. 넓은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건.”


 “하하……그렇죠.”


 어색하게 그녀의 말을 맞받아쳤다. 그녀가 허리를 숙여 포션을 찾기 시작했다.


 아래로 늘어진 탄력 있는 흉부에 시선을 두지 않으려고 해도, 본능에 따라 자꾸만 눈이 움직였다.


 “어렸을 때부터 바깥세상을 동경했어요.”


 그녀가 커다란 포션 그릇을 카운터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전 아무런 능력이 없어서 모험가가 될 수는 없었지만요.”


 “그……렇군요.”


 “다음에 오실 땐 모험담이라도 들려줘요. 이름이 뭐예요?”


 “야, 얀붕……입니다.”


 “전 얀진이에요. 얀붕 씨, 다음에 봐요!”


 얼떨결에 통성명을 하고 말았다. 생글생글 웃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허둥지둥 값을 계산하고 가게를 나섰다.


 ‘뭐, 뭐지…….’


 그제야 전에 몇 번 그녀와 눈을 마주쳤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렇다곤 해도, 내게 이렇게 살갑게 대해준 것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나랑 거리를 두려고 했기 때문에, 기분이 조금 들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근데, 뭔가 불길한데…….’


 예상치 못한 행복을 마주하면, 혹시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게 된다.


 가슴 한쪽에 작은 불길함을 안고 나는 숙소로 돌아갔다.

 


*



 똑똑.


 “네?”


 숙소에서 쉬고 있던 도중,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자 얀순이가 조금 상기된 얼굴로 내 앞에 서 있었다.


 “야, 얀순아?”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야? 뒤풀이는 저녁에 하기로 했잖아?”


 “아……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뭔데?”


 “직접 만든 포션이요.”


 그녀가 내게 커다란 포션을 내밀었다. 조금 위화감이 들었다.


 ‘내가 오늘 산 거랑……사이즈가 똑같네?’


 “자, 받아요.”


 그녀가 싱긋 웃었다. 어쩐지 그녀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야, 얀순아?”


 “그리고 어서 마셔 봐요. 제가 직접 만든 거라서, 효과가 직빵일 거에요.”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식은땀이 흘렀다. 지금까지 내가 알던 얀순이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나, 아픈 곳도 없고 체력도 충분한데? 다음에…….”


 “어서 마셔요.”


 살얼음처럼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평소에는 한없이 따스한 그녀였기에, 갑자기 화난 듯한 모습에 나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뭐지? 내가 그녀를 화나게 할 만한 일이라도 한 건가?


 “아, 알았어. 마실게.”


 “한 모금만 마셔 봐요. 건강에 좋아요.”


 나는 그녀가 준 포션의 뚜껑을 열었다. 매혹적이면서도 달콤한 향기가 느껴졌다.


 천천히 목구멍으로 포션을 넘겼다. 달짝지근한 것이 평범한 포션보다 훨씬 풍미가 깊었다.


 “……어?”


 마치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처럼 눈앞이 새카매졌다.


 마지막으로 본 얀순이의 모습은, 희미하게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정신이 들어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불쾌한 피 냄새가 났다. 천천히 눈을 떴다.


 “어서 일어나요.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요.”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오자, 사지가 강하게 묶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푹신한 침대에 팔다리가 구속된 채로 누워 있었다.


 “야, 얀순아?”


 “살려 주세요!”


 절박한 목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분명 들은 적이 있는 목소리였다.


 “야, 얀진 씨?”


 “얀붕 씨……얀붕아. 어딜 보는 거야?”


 나는 뒤늦게 내 위에 올라탄 얀순이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꾸, 꿈인가……?’


 내가 아는 얀순이는, 조신하고, 착하고, 여리고, 피를 무서워하고, 심성이 곱고, 타인을 배려하고, 마음씨가 따뜻한, 정말 성녀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 위에 있는 얀순이는, 중요 부위가 전부 드러날 정도로 얇은 붉은색 속옷 차림에, 끈적하게 젖은 비부, 미약이라도 한 듯 흔들리는 동공, 거칠게 내쉬는 숨까지, 얀순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영혼이 그녀의 몸에 들어간 것만 같았다.


 “자꾸 네가 다른 사람을 보니까……내가 이럴 수밖에 없잖아…….”


 그녀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책상에 있던 식칼을 집어 들었다.


 “오, 오지 마, 오지 마!”


 그리고는 느린 걸음으로 밧줄에 묶인 얀진 씨를 향해 서서히 다가갔다.


 “얀순아! 무슨 짓이야! 그만둬!”


 “잘 봐, 얀붕아.”


 얀순이가 칼을 얀진이의 목에 천천히 갖다 댔다. 서늘한 그녀의 표정은 당장이라도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일 것만 같았다.


 “얀붕아. 이 사람한테 이상한 마음 품었어? 안 품었어?”


 “도, 도대체 무슨 소리야!”


 아까부터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상한 마음이라니, 설마 얀진 씨가 말을 걸어준 것 때문에 기뻐했던 걸 말하는 걸까?


 아니, 혼자서 생각한 일인데 어떻게 그녀가 그걸 안단 말인가. 생각이라도 읽지 않는 이상.


 “하,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솔직하게 말해, 얀붕아. 안 그러면…….”


 얀진 씨는 공포로 인해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다.


 이대로라면 정말로 얀순이가 그녀를 찌를 것만 같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내뱉었다.


 “맞아! 이상한 생각 했어! 그 사람은 아무런 잘못 없어! 그러니까 풀어줘!”


 “……그랬구나.”


 그녀가 칼을 거두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 정도만 할게.”


 푹!


 “꺄아아아아아악!”


 어두운 방 안에서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피가 사방에 흩뿌려지며 단말마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얀순이는 얼굴에 묻은 피 한 방울을 닦아내며 해맑게 웃었다.


 “걱정 마세요. 금방 낫게 해드릴게요.”


 환한 빛이 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명은 수그러들었다.


 방금 전 상처는 온데간데없이 얀진 씨는 찡그린 얼굴로 기절해 있었다.


 그녀의 옷에 묻은 선혈만이 조금 전 참상을 알려줄 뿐이었다.


 “이, 이게 대체…….”


 “얀붕아. 다 너 때문이야.”


 그녀가 칼을 버리고 다시 내가 있는 침대에 올라왔다. 두려움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네가 자꾸 나 아닌 다른 여자랑 친해지려고 하니까, 내가 계속 이렇게 경고했어…….”


 “얼마나 편리한지 몰라. 죽지만 않으면, 아무리 심한 고문을 해도 말끔하게 낫게 할 수 있으니까…….”


 “뭐, 대부분 여자들은 손가락만 잘려도, 네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지만 말야…….”


 중얼거리는 그녀의 말들이 하나하나 뇌리에 선명하게 박혔다.


 오싹함에 온몸이 전율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난 달라. 얀붕아. 너만 있으면 사지가 잘려도 괜찮아.”


 얀순이가 매끈거리는 오일을 내 하반신에 흩뿌리기 시작했다. 끈적해진 내 고간을 그녀가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문질렀다.


 “윽……!”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래도, 한눈을 판 벌은 받아야지?”


 갑자기 성기가 참을 수 없이 뜨거워졌다. 동시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나는 미칠 듯한 성욕을 느꼈다.


 그녀가 내 하반신에 바른 것은, 아무래도 환각과 흥분 효과를 가진 약물임에 틀림없었다.


 “야, 얀순아, 우선 이거부터 풀고!”


 “싫어, 싫어, 얀붕아, 넌 내 거야, 어디에도 못 가!”


 그녀가 자신의 안에 나를 거칠게 받아들였다. 민감한 부분을 사정없이 조이는 느낌에 허리가 크게 떨렸다.


 “하아!”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온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느낌이, 안쪽에서부터 솟구쳐 온다.


 순식간에, 얀순이의 안쪽이 나의 백탁액으로 물들어 간다.


 평소보다 몇 배나 되는 양이었다.


 “얀붕아……내 몸으로 흥분한 거야? 기뻐…….”


 그녀가 풍만한 가슴을 내 얼굴에 들이밀었다. 고귀한 성녀의 몸가짐은 어디에도 없었다.


 “혼자서만 가버리다니, 치사해!”


 얀순이는 사귄 지 얼마 안 된 애인 같은 목소리를 내었다.


 시시각각 바뀌는 그녀의 어조도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


 다만 지금은 왕성하게 끓어오르는 성욕을 어서 배출하고 싶을 뿐이었다.


 “괜찮아, 얀붕아. 밤은 기니까…….”


 그녀는 나긋한 목소리로 내 뺨을 어루만지며, 다시 천천히 엉덩이를 흔들기 시작했다.



*



 “야, 얀순아, 그만……!”


 한계다.


 몇 번이나 사정했는지 모른다. 몇 번이나 그녀의 교성을 들었는지 모른다.


 성기의 통증이 너무 강해서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고환을 억지로 쥐어 짜내는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다.


 간신히 형태만을 유지하고 있는 내 성기를 얀순이는 지칠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자극했다.


 하지만 고문 같은 쾌락도 이제 끝이다. 고간에 몰렸던 혈액은 잦아들기 시작했고, 윤활유 없는 마찰만 계속될 뿐이었다.


 마침내, 그녀의 착정은 끝이 난 것이다.


 “그만해, 이제…….”


 애원하는 목소리로 얀순이를 쳐다보았다. 그녀 역시 지친 듯 표정이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지금이 기회였다. 우선은 이 상황을 벗어나야만 했다.


 “그만……?”


 얀순이가 흥분이 가라앉은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거칠게 움직이던 그녀의 허리가 이내 잠잠해졌다.


 “그래, 이제 그만…….”


 “무슨 소리야.”


 “아, 아아악!”


 하지만 내 소원은 달콤한 망상일 뿐이었다. 그녀는 부드러운 손으로 내 성기를 꼭 쥐기 시작했다.


 그 작고 가녀린 팔에서 무슨 힘이 나오는 건지, 요도에 남아 있던 액체가 전부 흘러나올 정도로 강한 악력이었다.


 “아직, 더 할 수 있어.”


 그녀의 손이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눈에 익은 색깔의 빛이었다.


 동시에 통증이 마법같이 사라지고, 혈류가 순식간에 성기를 다시 딱딱하게 세웠다.


 이윽고 나는 다시 한번 엄청나게 강한 성욕에 사로잡혔다.


 회복 마법은, 이렇게도 쓸 수 있는 거였구나.


 “얀붕아……벌을 받는 아이는, 엄마한테 대들면 안 되는 거잖아? 그치?”


 타액으로 범벅이 된 입술을 그녀가 내게 들이밀었다. 혀가 어지럽게 섞이는 쾌감이 신경을 지배했다.


 “웁, 우읍……!”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계속 싸게 해줄게. 그리고 편해지자. 응?”


 맥박과 함께 아플 정도로 발기한 내 성기도 같이 움찔거린다. 그녀의 뜨거운 아랫입이 다시 내 하반신을 감싼다.


 아……모르겠다.


 이젠 아무래도 좋아.


 얀순아, 사랑해. 얀순이 최고.


 나한텐, 오직 얀순이 뿐이야.


 “사랑해요, 나만의 용사님…….”


 그녀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