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한가했던 날이었다.

선임은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나 또한 멍하니 모바일게임이나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평소처럼 민원이란 이름의 감정을 쏟아내려 오는 악질들도, 잡범들도 없는 평화로운 오후.

그런 정적을 깬건 한 통의 전화였다.


민원 번호가 아닌, 긴급 번호인 112 전화벨 소리가 울리자 선임은 모자를 살짝 들어올리며 내게 고개를 흠칫 거리는 것 만으로 내게 모든걸 떠넘겼다.

속으로 선임을 욕하며 전화를 받자 훌쩍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 살려주세요... ]


떨리는 목소리에는 울음기가 섞여있었다.

곧장 심각한 사건이라는 것을 눈치챈 나는 바로 메모지를 뜯어 필기를 하며 상대를 진정시켰다.


[진정하세요. 정확한 정보전달이 도움을 드리는데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심호흡을 크게 하시고 자세한 상황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훌쩍.. 누군지도 모르는 여자에게 납치감금 당했어요.. 자꾸만 제 애인이라 주장하는데..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지금도 몰래 전화를.. 아아-- 그녀가 집에 온 것 같아요.. 으아아악!! 살려주세요!! 제발!!!]


도어벨 소리가 통화 도중 섞여서 들렸고, 남자는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 곧이어 통화가 종료되었고, 나는 침을 삼켰다.


꿀꺽-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나부터 진정해야했다.

성인 남성의 납치라니, 상부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최대한 내 선에서 해결해야해.


내가 내 볼을 양 손으로 짝 치는 소리에 고요했던 경찰청의 정적이 깨졌고, 내 설명에 모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속한 대처만이 그를 구할 유일한 길이니까.


하지만, 휴대폰에 찍힌 위치로 출동한 우리들은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다.

한적한 부유층 저택들이 즐비한 거리 중 한 저택에서 포착된 휴대폰의 위치 신호는 이동하지 않고 같은 위치에서 점등하고 있었다.


우리는 상대가 인질을 가지고 있기에 섣불리 행동할 수 없었다.

그래서 2층 창문으로 상황을 드론으로 확인하자, 그 곳에는 정신을 잃은채 묶여있는 남자 위로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는 여성이 포착되었다.


남성의 입에는 이상한 액체가 흐르고 있었고 냄새와 습도는 어찌나 높든지, 창 밖으로 보는 데도 포화 상태여서 방 안이 뿌옇게 가려지고 있었다.


정말로 긴박한 상황이었다.

서둘러 그를 구하지 않으면 그가 정신을 놓을거라 판단해 진입 명령을 내리려는 찰나


[이 사건에서 손 떼게]


서장님의 전화가 울려왔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시민이, 지켜야할 대상이 지금!!]


[자네 지금 어디서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아는건가?]


[당연히 여기는... 아...]


그래, 대한민국 최고부유층만이 살 수 있는 부지.

그 중에서도 최고의 저택...


[나보다 훨씬 위에서 직접 명령이 내려왔네. 이 일을 묻으라고]


[하지만, 하지만.. 저건 아무리 봐도...]


[부유층의 사랑이거니 하고 넘기게나. 여성의 아버지도 이름만 들으면 알 사람이니..]


[대체 무엇이 부족해서 저런짓을 벌이는 겁니까?]


[낸들 아나? 똥 밟았다치고 빨리 철수하게]


마음속 내 양심은 그를 구하라고 계속해서 소리쳤지만, 나도 가정이 있는 몸이라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떼이질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기며 현장에서 철수했다.


"미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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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차 소리가 들려온다.

나를 쳐다보는 얀순이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보고 마른 웃음을 지어보인다.


내가 이겼다.

이 악마같은 여자의 마수에서 드디어.. 


"얀붕아, 엉큼한 짓을 했네?"


"쿨럭! 너도 이제 끝이야.. 쿨럭!"


"사랑이 아직 부족했나보구나.. 이건 내 실책이야. 음음!"


그러고는 전화기를 들어 어디론가 전화하는 얀순이.


"어, 엄마. 난데.. 그, 조금 귀찮게 돼서.."


왜 이런 상황에서 엄마를..?

마지막 발악인가?

몸 이곳저곳이 욱씬거리고 끈적거리지만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내가 이겼다고, 내가..!! 


"응, 그니까. 아빠도 처음엔 이랬어? 내가 잘못하고 있는건가 자꾸만 고민이 돼서"


아빠라니?


"도와줘서 고마워. 남편이랑 인사하러 갈게. 언제쯤 돼야 날 사랑해줄까?"


엄마라는 사람은 대체 무슨 말을 하는거야...


"응, 응, 알겠어. 일단은 무너트려야겠네"


그러고 전화를 끊은 뒤 나를 다시 덮치는 얀순이.

그녀의 입을 황급히 떨쳐내고는 소리를 지른다.


"움푸..! 너.. 지금 밖에 경찰들이 와 있는데 무슨 짓을..!"


창 밖으로 드론 한 대가 보인다.


"당장 이거 풀어!! 다 끝났다고!!"


"으응, 아니야. 잘 봐야해?"


내 얼굴을 잡고는 강제로 밖을 보여주는 얀순이.

그 곳에는...


경찰들이 떠나고 있었다.


"에... 왜... 어째서..."


"그럼 계속할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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