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자주 출장을 가서 많이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여유롭게 살아갈 만큼의 돈을 꾸준히 보내주셨고, 나는 남들과 같은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비슷한 고민을 하고 마찬가지로 비슷한 사춘기를 겪으며, 어느덧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었다.

 

특별히 잘하는 것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는. 그림으로 그린 듯한 평범함.

나를 나타낼 말로는 이것이 가장 적당했다.

그러던 나의 인생은 졸업식 날 오랜만에 집을 찾아온 아버지의 말로 인해 완전히 변하게 된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명심해야한다.”

 

딱히 아무런 사건도 없이 끝났던 졸업식 날, 아버지는 나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였다.

평소 밖에서 생활할 때도 절대로 들어오면 안 된다고 엄포한 방이었기에, 처음으로 들어갔던 아버지의 방은 생각과는 달리 의외로 평범했다.

여느 서재처럼 책장을 빠듯이 채운 책들과 단조로운 분위기 속 책상만이 각종 그림과 스케치, 글들로 엉망진창이 되어있었다.

 

잘 들어오지도 않는 방의 시계는 언제 건전지를 넣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제 시간을 가리키고 있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만 돋우어주었다.

아버지의 직업은 귀신 테마파크의 매니저였다.

특별하게 잘나거나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직업이 아니었기에, 아버지의 책상 위 귀신들을 그린듯한 낙서와 글들은 조금 아버지를 낯설게 만들었다,

 

마음을 정리한 듯,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아버지는 두 무릎을 꿇어 나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큰 키의 아버지가 나와 눈을 마주친 것은 처음이거니와, 두 눈의 주름이 유독 눈에 들어와 그간 고생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층 진지한 모습에 조금 숨을 멈추고는 팽팽한 분위기 속에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끼며 아버지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너는 나를 이어 테마파크의 매니저를 맡아야 한다.”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솔직히 내가 긴장했던 것과는 달리 맥이 빠지는 소리였다.

내 진로를 걱정해 자기의 직업을 이으라는 그저 평범한 소리.

난 그 반전된 분위기에 거의 웃음이 터질 뻔했다. 난 아직 상황을 인식하기에는 어렸고, 처음보는 아버지의 진지한 표정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내가 그에 대한 답변을 말하기 전에 아버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테마파크 속 그들은 현실이야. 사람이 연기하는 것이 아닌, 지구에 존재해서는 안 될 생물들을 모아둔 장소, 너는 그곳에서 그들을 조율하고, 관리를 해야 할 것이야. 내 말을 명심해. 너는 이 일을 할 수 있어. 아니, 해야만 해,”

 

의문투성이였다.

이 농담을 굳이 이렇게 이어갈 필요가 있는가? 

내가 이 말에 장단을 맞춰주길 바라는 건가?

졸업식에 맞추어서 하는 말에 나는 어찌할 수 없었다. 

수없이 많은 질문이 머리를 스쳐 갔지만 진지한 아버지의 표정은 내 입을 다물게 하였다.

 

“지금 당장 그곳으로 너와 이동할 거야. 의문점과 새로운 것투성이겠지만, 티를 내서는 안 된다, 네가 생뚱맞은 부외자라는 것을 들키면 안 돼. 정말 미안하다. 나의 대로 이 저주를 끝내고 싶었지만, 새로운 테마파크의 지배자는 그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야. 항상 내 말을 기억하려무나. 너는 이 일에 있어서 전문가이며, 어떤 일이든 능히 해낼 수 있을거야.”

 

혼란스러운 나를 잡고 아버지는 그대로 어떠한 책을 뽑아 들었다.

동시에 시야가 빙글빙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고, 뒤이어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느낌을 받으며 서늘한 분위기가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다음으로 내가 눈을 떴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귀신 테마파크가 내 눈 앞에 펼쳐져 있었으니까.

불과 몇 분, 아니 몇 초 전만 해도 나는 내 집에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이렇게 먼, 대한민국이 아닌 미국으로 올 줄이야.

 

한번도 와본적은 없었지만, 이 테마파크는 세상에서 가장 현실감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온갖 베테랑 연기자와 그를 뒷받침해주는 최첨단 CG는 가히 영화보다 뛰어났으니까.

사람들은 이곳에서 그간 경험해보지 못했던 전혀 색다른 경험을 하였으며, 인기와 유명세는 끊이질 못했다.

하지만, 이 모든 사실을 뒤로 놓고서.

내가 왜 이곳에 있는 거지?

 

“많이 혼란스러운건 이해하지만 그대로 나를 따라서 오너라”

 

해골이 큰 입을 벌리고 있는 공간을 아버지를 따라 들어갔다.

들어가는 내내 내 이성이 아닌 무언가가 끊임없이 나를 말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딱히 다른 도리는 없었다.

꺼림직하게 생긴 입을 통과하며 이 테마파크를 누가 디자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꽤나 일을 잘했다는 감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두리번거리지 말거라. 어디까지나 침착하게. 중요한 것은 이성을 붙잡는 것이다.”

 

그런 나를 아버지는 타박하며 이끌었다.

이윽고, <관리실>이라고 적힌 낚은 건물이 입구 근처에서 보였고, 아버지는 그 곳으로 들어갔다.

관리실의 문은 깨진 유리문이었는데, 용케도 간신히 붙어서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이상하게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안이 어둑어둑한 연기로 가득 차 들어가기 몹시 꺼려졌다.

흔히 뮤지컬에 나오는 드라이아이스처럼 연기는 낮게, 그리고 천천히 내 발목 부근에서 나를 질척거리게 붙잡는 듯했다.

 

눈을 꼭 감고 들어간 관리실은 그다지 크지 않았는데, 민원을 접수하는 안내 데스크부터 관리인실까지. 평범한 구조였다.

다만, 안내 데스크 뒤로는 깨진 컴퓨터가 깜박거리며 점등하고 있었고, 데스크에는 그로테스크한 좀비 분장을 한 스태프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윽고 기척을 눈치챈 스태프가 천천히 눈을 뜨고는 나를 보고 ‘아.. 새로운...’ 이라며 히히 웃는 모습에 조금 식은땀이 흘러 뒷걸음질을 쳤다.

너무나 실감나는 분장. 나는 그 모습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어쩐지 그것이 분장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 들려온 아버지의 헛기침에 정신을 차리고 따라간 복도는 입구의 분위기를 가중하는 공포였다.

온 구석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핏자국에서는 실제로 냄새가 났는데, 복도에 갈기갈기 찢긴 채로 무너진 채 있는 인형들도 너무나 생동감이 넘쳤다.

조명은 또 왜 이리 깜박거리는지 분위기를 악화시키고 있어 나는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모든 분위기는 나른하면서도 엄중한 - 앞서 말한 좀비 분장의 스태프와는 다른 – 목소리에 깨졌다.

 

“이 아이느냐?”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새하얀 인물에 기겁을 하며 물러나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내었다.


 


미국에 있는 테마파크에서 그녀는 자기의 머릿결과 같은 새하얀 한복을 입고 있었고, 현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잘 단련된 칼을 한 손에 쥐고 있었다.

시뻘건 두 눈은 귀기가 서린 듯,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 그 반대로,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운 매력을 가지고 있어 자꾸만 눈이 갔다.

 

한국인처럼 생기지 않은 그녀의 이질적인 모습.

몹시도 아름다웠지만 어딘가 절대로 그녀에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다,

이것을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아버지도 몸을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며 그녀에게 말을 했다.

 

“그렇습니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나이의 인물에게 존댓말을 하는 모습에 의문이 들었지만, 그저 직업상 윗사람이겠거니와 생각해 그냥 넘겨버렸다.

그녀가 또 순간이동을 하여 내 앞에 올 때까지.

 

단 한번이었다. 딱 한번 눈을 깜빡이는 순간, 그녀는 아버지 앞에서 내 앞으로 왔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거리였다.

놀란 나를 뒤로한채로, 그녀는 그저 흥미롭다는 듯이 내 몸을 구석구석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가까스로 합격이다. 무리해서 이 모형정원의 장이 된 보람이 있겠어.”

 

그녀의 만족스런 웃음과는 반대로, 아버지의 얼굴은 점점 굳어만갔다,

 

“혹시 한 번만 재고해주실 수는 없는 것입니까?”

 

“무엇을 말이냐?”

 

“이 아이는 아직 몹시 어립니다. 이곳에서 헤쳐나가기에...”

 

아버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작스레 분위기가 돌변했다.

조금 풀어져 있던 긴장감이 확 살아나며 온몸의 털이 돋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폴터가이스트 현상.

관리실에 있던 모든 사물들, 그리고 인형들이 위로 떠 오르더니 부들부들 진동하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침을 삼킬 뿐이였지만, 이것은 시작이었다.

 

인형이라 생각했던 사람의 장기들이나 찢긴 부분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내 말을 하였다.

잘못했다니, 가만히 쉬고 있었는데 이게 뭔 날벼락이니.

그간 평범하게 살아왔던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 상태에서 귀를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무서웠다.

 

“감히! 네가 네 주제도 모르고 내 말에 토를 다는 것이냐!! 네 놈을 #!@$!@$!#*$*$%#@”

 

이상하게도 그녀의 말의 뒷부분은 바로 앞에 있는 내게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느낄 수 있는건 지금 그녀를 멈추지 않으면 아버지께 큰 피해를 주리라는 것.

나도 그 당시 내가 왜 이렇게 행동했는지는 모른다.

나는 떨리는 와중에도 그녀의 두 손을 잡았고, 갑작스레 일어난 사건에 깜짝 놀란 그녀에게 당당하게 멈춰달라고 했다.

그녀의 부탁을 내가 들어줄 거라면서. 내가 그녀의 한을 풀어주겠다면서.

 

아마 이때부터 나는 사람이 아닌 존재를 받아들이고 있었는지 모른다.

어찌 되었든, 그녀는 처음에는 놀라움. 그다음에는 흥미로움. 마지막에는 기쁨.

이렇게 감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면서 크게 웃기 시작하였다.

 

“흐하하하!! 역시 나는 틀리지 않았어! 그래, 어쩌면 나는 이 곳에서 눈을 뜬 순간부터 너 같은 존재를 기다렸는지도 모르겠구나!!”

 

이렇게 웃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며 눈시울까지 붉히던 그녀는 나를 보며 큰 미소를 지으고는 손을 붙잡았다.

 

“얀순이다! 잘 부탁한다. 새로운 관리인”

 

어딘가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상처받은 것 같으면서도 한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느낌이 드는. 그런 모든 것이 역설적이며 모순투성이인 소녀에게 나는 그대로 답장을 돌려주었다.

 

“얀붕이야. 잘 부탁해”

 

을씨년스러운 관리실은 또다시 그녀의 웃음으로 가득 찼고, 나는 그제야 내가 맡을 일의 초석이 보이기 시작한 것 같았다.

이 테마파크가 그녀처럼 말이 통하고 기분이나 성격을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리 생각하며 어느덧 날이 저물고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테마파크 입구를 보며, 그녀와 악수를 나눴다.

어느새 아버지는 사라져 있었고, 나는 나와 그녀 둘만이 남은 공간에서 내일부터 내가 해야할 일을 어쩔 수 없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내 새로운 직장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온갖 실제하는 귀신들이 가득한 공간에서 유일한 인간 직원인 내 생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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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보고 삘 받아서 빠르게 써봄

아마 가끔씩 이어서 쓸 것 같아.

기본적으로 히로인은 얀데레인데, 얀데레보다 귀신에 포커스를 맞추고 싶어

항상 읽어줘서 고마워 


링크종합 : https://arca.live/b/yandere/207587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