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얼굴에 만개한 웃음이 보인다. 


아름다운 그 얼굴을 어떤 말로 설명해도 부족할 것만 같다. 


그 얼굴에 피가 튀긴다.


그 얼굴에 피가 굳고, 끔찍한 상처들이 생긴다. 


더 이상 그녀가 눈을 뜨지 않는다. 


더 이상 그녀가 숨을 쉬지 않는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라고. 


아니야. 


에리카, 정신을 차려봐. 


내가 왔어, 에리카. 눈을 떠. 


네 사랑이 여기 왔어, 그러니 제발. 


에리카


에리카, 


에리카!
















"에리카아아! 아... 아아."


식은 땀에 젖어버린 이불 위에서 깨어난 나를 발견하고는, 이내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던져버렸다.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리는 느낌이 어떤지, 당신네들은 아는가? 


뭐, 어쩌면 알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어이 없는, 가당치도 않은 그딴 이유로 연인을 잃게 된다면?


"후욱,"


내 연인은 실수로 망할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물을 귀족에게 뿌렸다는 이유로 모진 고문을 당했고,


"후극,"


그 후유증에 그만 죽어 버렸다. 


살아서 내게 닿지도 못한 채로.


"후으으,"


아직도 이가 갈리고, 그 일만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질 것만 같아 뭐라도 부수지 않으면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으아아!"


이렇게 부순 훈련용 나무 토막만 몇 개이던가?


"하... 하아..."


망할 놈들을 얼굴을 잊지 않도록, 매일 시내에 나가 그 망할 놈과 그의 부인의 얼굴을 보았다. 


그 망할 위선적인 웃음, 남들의 공포 위에 군림하는 악마같은 놈아. 


곧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보내 주마. 


목검을 아무렇게나 던져 두고, 천에 고이 싸 두었던 내 양손검을 꺼냈다. 


모험가 시절을 함께했던 나의 분신. 


이제는 빛이 바래고 날 또한 이곳 저곳 이가 나가 있었지만


잡는 방법만큼은 내 손은 기억하고 있었다. 


검집에 내 검을 넣고, 마을로 조용히 향했다. 


언제 즈음이었을까. 마지막으로 마을로 왔던 것이. 


많은 것이 변했다. 


조금 더 깨끗해진 마을과, 화목한 웃음이 흘러나오는 거리.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고


어두워 진 것들은 분명 있다. 


검을 품에 숨긴 채로, 설령 누가 볼까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나는 대장장이에게로 향했다. 


나의 오랜 친구이자, 전우였던 그에게로. 

















"...이 검, 제련 해 줄 수 있겠나."


내 양손검. 그녀와 함께 했을 때 다시는 쥐지 아니하겠다 맹세하였던 그 검을 뽑아 올려 두었다. 


"라프, 자네가 웬 일인가? 모험가 일은 그만 둔 걸로 알았건만."


모험가, 내가 그녀에게 청혼했을 때 버리겠노라 맹세했던 그 직업. 


"...말을 섞지는 말게. 많이 섞을 수록 자네에게 실이 될 터이니."


코르, 내 친우. 마을의 솜씨 좋은 대장장이. 


"설마. 만약 그 일을 생각하고 있다면 - "


그럼, 언제나 생각하고 있었지. 더 이상 멈추지 않는다. 참지도 않을 테야. 그러니,


"빚을 갚게, 대장장이 코르."


내 얼굴에 난 상처는 너의 목숨을 구한 증표일지니.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깡.


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깡.


화기가 내 얼굴까지 닿는 것만 같다. 


깡.


더 뜨거워져라. 더 벌겋게 달아올라라. 


깡.


내 불타는 이 증오가 꺼지지 않도록. 


깡.


그 망할 둘을 죽이는 끔찍한 원동력이 되도록. 


깡.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되리라.


깡.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되리라. 















코르의 굵은 팔뚝이 뜨거운 땀을 닦아 낸다. 


"...다 되었네. 날은 세워졌고, 검댕을 묻혀 두었네."


참으로 꼼꼼한 성격이야. 그렇기에 대장장이로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거겠지. 


"그 친절에 몇번이고 감사해도 모자라겠군. "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다시 한번 생각 해 볼 수 없겠나? 목숨을 앗는 건..."


이미 생각은 끝났어. 


"그래, 나를 똑같은 놈으로 만든다고. 뭐, 내가 벤 도적놈만 몇이던가. 이제 와서 더 벤다 한들, 다를 것이 있을까?"


살인자는 영원한 살인자네, 그걸 자네도 알지 않나.


"...빚은 갚았네. 이제 썩 꺼져버려. 나 또한 떠날 채비를 해야 할 것 같으니."


그런 몸으로, 무엇보다 티가 나는 그런 얼굴로 어디를 떠날려고?


예전부터 거짓말은 더럽게 못했지. 


"그럴 필요는 없을 게야. 자네는 나에게 협박 받아 검을 아무거나 하나 던져준 것이니."


미안하네, 하지만 자네를 위한 일이야. 


"뭣 - 으헉?!"


정말 잘 들게 된 검이야. 솜씨는 어딜 가지 않는군, 친구여. 


"깊게는 찌르지 않았고, 복부를 피해 찔렀으니 치명상 또한 아닐 게야. 지혈을 하게."


너 또한 알 텐데. 수많은 흉터를 가지고 있는 전열이었던 네가. 


"이... 무슨..."


눈에 원망보다는 걱정이 서려 있군 그래. 차라리 날 원망했으면 더 나았을 것을. 


자네에게서는 마음의 짐만 더 가져가게 되는구나. 


"의심을 피하게, 친구여."


붕대와 약초를 손에 쥐여 주었다. 


"잠ㄲ - 끄으윽..."


달빛이 밝군. 꼼꼼히 칠해진 이 검댕이 참으로 도움이 되겠어. 


이미 저택의 구조는 안다. 


망할 명령을 따른 하수인 놈들과 그 밑에서 일한 놈들


그리고 내 세계를 앗아간 망할 둘. 


피비린내를 맡게 해 주마. 


어느새 그들의 소굴이 보이는 곳까지 왔다. 


나무 위에서 저 큰 저택을 보니, 다시 한번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불이 켜져 있는 저 방에 그 둘이 있겠지. 


네놈 둘만 죽이고 나갈 것 같나?


가담한 모두는 몰살이다. 


하나도 빠짐없이. 
















...보초 둘, 하품이나 해대고 있구만. 


"흐아암... 보초를 굳이 설 필요가 있나? 애초에 우리 영주님을 누가 건드린다고..."


"건드렸던 그 여자 아직도 생각 안나냐? 꽤나 볼 만 했는데 말이지."


그래, 구경거리가 되었나? 


"난 네가 이해가 안 간다. 나는 무서워 죽을 것 같았는데."


...말을 꺼낸 첫 놈부터 베어 주마. 


"하! 나는....으...게엑..."


"뭐 어얽...끄으읅..."


목을 정확하게 그어 버리면, 피가 차서 말도, 숨도 쉬질 못하지. 


"...그래, 볼 만 하던가?"


좋은 눈빛이군. 두려움에 떠는. 


그래. 오늘 만큼은 두려움의 시선을 즐기자. 



"카일? 맥스?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방금 전까지 같이 다녔는데, 횃불도 없고..."


"그러면 침입자가 들어 온 것이 아니던가?"


"게에엑..."


이딴 놈들이 보초라니. 이딴 놈들한테 내 연인이 조롱당하고 처참하게 죽다니.


그 망할 둘의 낯짝을 보게 될 때가 기대되는군. 


피바다가 된 복도를 건너서, 내가 죽인 자들의 시체를 넘어서. 


머릿 속으로 그리던 그 망할 문을 열어 본다.


망할 악연으로 들게 된 펜으로 쓴 이야기의 끝이 다가오는군. 


"경비, 경비는 없는가!"


하다 못해 자신의 검을 들어라. 쓰레기 같은 놈아. 


"누, 누가 보냈는가! 맥시멈? 프룰테? 그것도 아니라면 래스?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 테니 - "


"...내 얼굴을 알아 보겠나?"


곁에 놓여져 있던 랜턴을 들고, 얼굴을 가리던 후드를 벗는다. 


너도 내 얼굴이라면 잘 알고 있겠지. 잊기는 힘들 게야. 


네 놈이 그녀를 죽였다는 걸 알게 된 그날에, 니놈의 앞에서 그녀의 시체와 함께 몇번이고 울부짖었으니.


고문으로 죽이는 건 분명 불법임에도


사적 제제는 옥에 갈 정도로 엄히 다스리는 이 나라에서


너는 그저 웃으며 근신 처분만을 명 받았지. 


"...설마, 그녀의 연인인가?"


새파랗게 질렸군. 아하. 알아보니 다행이야. 


그렇지 않았다면 그 쓸모없는 눈깔을 파내버리려 했으니. 


"아하, 잘 아시는군. 그럼 내가 왜 여기 왔는 지도."


"잠시만... 충분히 이해하네, 자네가 분노하는 것도 이해가 가. 하지만 복수는..."


뻔한 대사나 지껄이는군. 내 머릿 속에서 상상하던 그 모습 그대로야. 


"옳지 못하다, 그러니 용서라는 관용을 베풀어라."


아하, 안도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군?


"...으, 으아아아악!"


팔 한짝이 날아올라, 그의 곁에 힘 없이 떨어진다. 


장관이군. 


이렇게나 격렬한 감정은 그녀를 잃고 나서 처음인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런 사람이 잘도 내 연인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던가?"


"제, 제발! 내가 잘못 했으니!"


잘못한 걸 알면서도 저질렀다면, 그 죄가 더 무겁다 했을 텐데. 


자, 이제 옆에서 함께 있던 이 여자 차례다.


그녀에게 칼 끝을 겨누고,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마님, 한 가지만 소인이 물어 보겠나이다."


창백하게 질렸군. 그 자리에 얼어붙어서는. 


"마님?"


"제발, 그녀의 목숨만큼은 살려 주게나...!"


"내가 너에게 지금 묻고 있던가?"


그가 뻗은 그 팔에 검을 다시 휘두른다. 


어이쿠, 이번에는 완전히 베지도 못했군.


"-- 흐아아악?!"


"그 입, 당장 다물어. 내가 그날 시끄럽다고 한 지는 언제고, 이제 와서 비명을 지르던가?"


문지기를 시켜 나를 쫓아내던 그 때가 기억나는군. 


나와 그녀의 시체를 향하던 발길질을 막아서려고


내가 그녀의 싸늘한 몸을 필사적으로 품에 안았던 그 느낌도. 


그래, 차갑기 그지없었지. 


하지만 가슴은 그 무엇보다 뜨겁게 불타 올랐는데. 


"...네...네... 말씀하세요, 검을 든 자여..."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읊조리는군. 


"당신은 내 연인이 어떻게 죽었는지, 보았소?"


봤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참을 수 없으니까.


네 년의 남편 되는 놈이 이딴 짓거리를 하는 것조차 몰랐다면, 너는 - 


"몰, 몰ㄹ"


내가 방금, 그녀를 벤 것을 눈치를 챘을 때에는, 


그녀의 뜨거운 피가 내 얼굴에 흩뿌려 졌을때였다. 


"니아베에에! 안돼!"


"그녀의 이름은 니아베였군. 니아베. 내 연인의 이름은, 기억이 나던가?"


"아... 아아..."


"그녀는 편히 보내 주었네. 내 연인이 당한 그대로 너에게 보여 주기를 원했지만... 너에게는 다른 상상을 하고 있었거든."


그래, 망할 것아. 네놈에게는 걸맞는 최후가 있지. 


"사실 네 부인은 죽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


망할 거짓말만 하지 않았어도. 


"헌데, 내가 그녀가 비웃는 것을 내 눈 앞에서 봤는데 그딴 거짓말이 통할 줄 알았나?"


어떻게 알았냐는 눈이로군. 절망에 빠진 눈이야. 


약하기 그지없는. 의지력조차 한심하기 그지없군


이딴 놈에게 내 연인이 죽어 버렸다는게 


내가 권력 따위에 굴복해서 내 여자를 지키지 못했다는 게


그것이


"제, 제발..."



그 사실이 


"아흑, 제발 목숨 만.. .큼은..."





너무나도 - 








\\서걱.


뿌드득.


꼬르륵. 끄으윽.


콰직.


... 정신을 차렸을 때는, 피를 흠뻑 뒤집어 쓴 나와 떨리는 내 손이 있었고,


내 앞에는 차마 인간이라 하기도 힘든 살 덩어리들이 굴러 다니고 있었다. 


"하... 하하..."


복수는 끝이 났다. 저지른 사람은 죽고, 이제 복수를 행한 사람만 남았다. 


복수의 끝은, 그 피해자 역시 죽어야만 비로소 온다 했던가. 


그래, 그러면 그녀가 기다리는 곁으로 가자. 


같이 누웠던 그 꽃밭에서 시원한 바람이 서로의 코를 간지르던 그 동산으로. 


너와 내가 서로를 쓰다듬으며, 미소만이 꽃밭처럼 환개하던 그 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다시 잠들면 아름다운 너를 한번 더 보게 될 수 있을까?


눈을 감고, 피가 짙게 묻은 그 검을 내 목으로 향했다. 


"응애애!"


...설마. 


검을 거두고, 눈을 똑바로 뜬 채로 피가 묻어버린 랜턴을 들었다. 


꽃이 어렴풋이 그려진 문. 그리고 그 너머에는 아이가 있었다. 


"...네놈들은 내 꿈을 짓밟고, 너희들은 새 꿈을 그리고 있었군."


살려 둘 자신이 없다. 그럴 마음도 없을 것만 같았다. 


당장에라도 검을 휘두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불에 비치던 그 눈망울이, 한없이 작은 저 손이 꼼지락대면서,  


무심코 뻗은 내 손가락을 덥썩 붙잡았을 때.


"아... 아아..."


어쩌면, 정말 어쩌면 그녀와 함께 할 수도 있었던 


사랑의 결실...이라는 것이.


...아이에게는 무슨 죄가 있을까. 


단지 부모가 내 손에 죽어 마땅한 자들이였다는 것 외에, 그 이외에는 없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래, 내가 검을 휘두르며 곱씹던 그 구절. 


"네 아비와 네 어미를 내 손으로 죽였으니... 너에게도 그 자격이 있겠구나."


아이를 데리고, 피냄새가 진동을 하는 그 방에 랜턴을 던졌다. 


참혹한 현장을 거칠게 집어삼키는 그 불을 뒤로 했다. 


파편들 사이에서, 그 여자가 끼고 있던 


이제는 피가 묻어버린 반지를 품에 넣은 채로. 


나는 연기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뒤로 한 채, 


깊은 숲 속에 있던 내 집으로 향했다. 


그녀와 내 집이었어야만 했던 그 집으로. 


나의 마지막을 장식 해 줄 이 여린 아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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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야기의 시작을 끊었다. 


이번에도 아이디어를 제공한 얀붕이들에게 감사의 절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