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경비병을 사랑해버렸다 (1)

 

 

 

 

 

 

이런 인생에, 살아갈 이유 따윈 없었어.

 

 

 

 

 

 

1.

 

구멍이 있었다.

 

그 구멍은 한없이 크고 깊어서, 그 끝을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어쩌면 나는 망가졌을지도 몰랐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고민해도.

 

그 구멍의 이유를 알지 못한다.

 

“……아가씨! 얀데르손 아가씨!”

 

눈을 뜨니 적갈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그 다음, 루시아의 얼굴이 나타났다.


“어지간히 급한 일 아니면 깨우지 마, 라고 했을 텐데.”

 

“그게…….”


“말 안 해도 돼. 들을 필요조차 없으니까.”


무능하긴. 고작 그 정도 일도 처리 못해서 나를 깨워야 하는 건가?


나는 천막에서 나와 던전 입구로 향했다. 한 10분 정도 걸으면 도착할 거리였다.

 

“얀데르손 아가씨! 입구를 막을 수 없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너희들은 언제쯤 밥값이라는 걸 하게 될까? 죽기 전에 그럴 수 있으려나.”


던전 입구에서 자잘한 괴물들이 우글우글 몰려나왔다.

 

고작 저까짓 입구 하나를 못 막다니, 무능함도 이 정도면 처형감이다.


“비켜.”


나는 부하들을 뒤로 보내고, 괴물들을 향해 걸어갔다.

 

“크르르르……!”


“캬아악!”


흥미로운 일이었다. 괴물이나 짐승들은 항상 내가 다가오면 뒤로 물러섰다.

 

인간은 다른 인간의 강함을 파악하지 못하건만, 저 저능한 잡것들은 언제나

 

내 힘을 가늠하고선 겁에 질렸다. 인간에겐 없는 감각 기관이라도 있는 걸까?

 

“대답 못하는 건 아는데, 나는 늘 그게 궁금했단 말이야.”


땅에 손을 얹고, 상상한다.

 

“너희들의 목숨엔 아무 가치도 없는데, 왜 태어나고 죽는 걸까?”


그 순간.

 

0.01초. 눈의 깜빡임이 미처 끝나지도 않은 순간에,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괴물들도 입구도 마치 석영처럼 생긴 얼음 덩어리에 갇혔고, 괴물들은

 

그 순간 즉사했다. 자신이 죽은 것조차 깨닫지 못한 채.

 

“끝났어. 공병대 불러와서 시체 치우고 입구는 봉쇄하도록.”

 

“네!”


“매번 놀라네요. 저희들이 못한 일을 이렇게 쉽게 해치우시니……!”


“그냥 너희가 무능한 거야.”


나는 루시아를 무시하고선 천막으로 돌아가, 간이침대에 누웠다.

 

시시하다.

 

남들은 최강이니 영웅이니 띄워주지만, 솔직히 아무런 감흥도 생기지 않는다.

 

단지 ‘왜 얘들은 이렇게 쉬운 일조차 못하는 거지?’라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재미없어. 나는, 우리들은 대체 왜 태어난 걸까.”


내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궁금한 것.

 

도대체 우리들은 어째서 태어나고 죽는 것인가.

 

오직 그것만이 유일한 의문이었다.

 

 

 

 

 

 

2.

 

“건배!”


“건배! 아, 제코스 씨! 제 치킨 멋대로 가져가지 마세요!”


“먼저 잡은 놈이 임자 아냐?”


“치사해! 그러니까 40살이 되도록 노총각이죠!”


“그럼 네가 나한테 시집오던가! 하여간 계집애들이란……!”


술집, 부하들은 각자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맥주와 고기를 시켰다.

 

결국 한 일이라곤 뒷정리뿐이면서 뭐가 그리 신나고 기쁜 건지 모르겠다.

 

나는 이 자리가 불편해 떠나고 싶었지만- 일단은 기사대장으로서 최소한의

 

일은 해야 했다. 솔직히 기사대장이어서 좋은 건 하나도 없었다.

 

“전원, 수고 많았다. 술은 경비로 달아놓는 거니 마음껏 마시고 먹도록. 이상.”
 
“대장님 말씀 들었지!? 오늘 술집이 망할 때까지 달리는 거야! 가자아아아!!”


“네!!”

 

매번 이런 식이었다.

 

영지 내에서 나타난 괴물이나 던전을 처리하고, 영지로 돌아와 연회를 벌인다.

 

이런 잡일에 내가 일일이 불려가는 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만, 아버지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었다. 사실 나도 이거 아니면 딱히 할 일이 없기도 했다.

 

“대장님은.”


그 때, 루시아가 내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술자리가 싫으신가요?”

 

“싫은데.”
 
“왜요? 다들 웃고 떠드는데 재미있지 않나요?”


“내일이 되면 기억하지도 못할 쓸데없는 개소리를 하는 것뿐이잖아.”


“……뭐, 그건 그렇지만요.”


기사단에서 몇 안 되는 여자단원, 루시아는 그 중에서도 실력이 좋은 편이었다.

 

그럭저럭 봐줄만한 얼굴이어서 인기도 좋았다. 아마도.

 

“마음 같아선 당장 자리를 박차고 집에 돌아가 쉬고 싶어.”


“영주님께서 걱정하시나요?”


“아버지? 그 사람이 왜 나를 걱정하겠어. 애초에 날 해칠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없긴 하죠. 뭐, 그래도 아버지 마음이라는 게-”


“그 사람한텐 아버지의 마음 따윈 없어. 루시아.”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조용해지니 한결 편해졌다.

 

“대자아앙! 대장님! 헤헤, 왜 또 죽상이십니까?”


“제코스 씨, 술자리 시작한지 이제 1시간 정도 됐는데 벌써 취하셨어요?”


“뭐 어때서 그래?! 헤헤, 대장님. 기분이 나쁠 땐 술이랑 고기가 최고라는 거 아십니까?”


“너 같은 바보한테는 그렇겠지.”


제코스가 내 옆에 앉았다. 이게 술 냄새인지, 입 냄새인지 모르겠다.

 

“자자, 너무 인상 쓰지 마시고 좀 드셔보십시오.”

 

“……이거 마시면 귀찮게 굴지 말고 꺼져.”


“아이고, 그러죠 뭐!”


나는 제코스가 건넨 술을 마셨다. 맛은 쓰고 달았다. 

 

“진짜 부러워서 배가 아픕니다, 대장.”


“뭐가.”


“뭐긴요! 대장님은 영주님 따님에, 기사대장에, 날 때부터 엄청 강하고, 예쁘고,

 

돈 많고- 뭐 하여튼 부족한 게 없잖습니까! 아, 애교는 좀 부족하지만요.”

 

“제코스 씨, 그러다 저번처럼 얼음 주먹으로 맞는 수가 있어요?”

 

술을 마시던 루시아가 말했다.


“칭찬이잖아! 아무튼 그……너무 심각해지지 말고 인생을 좀 즐기면서

 

살아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한 번 사는 인생 재미있게 사시죠!”

 

“조언 고마워. 그러니 이제 그만하고 꺼져줄래?”
 
“넷, 마님!”


제코스가 낄낄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하여간 뭐가 그리 즐거운 걸까.

 

…….

 

즐거운 인생이라.

 

태어나서 즐겁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나, 잘 모르겠다.

 

분명 남 부러울 것 없는 삶인데. 언제나 내 마음엔 커다란 구멍이 있다.

 

왜 구멍이 있는 건지, 어떻게 하면 채울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단지 있다는 걸 자각할 뿐.

 

“……모르겠네, 정말로.”


술을 들이켰다. 들이키고, 진탕 취할 때까지 마셨다.

 

나는 취하는 것만으로 행복해 질 수 있는 멍청이들이 부러웠다.

 

 

 

 

 

 

3.

 

돌아가는 길.

 

세상이 흔들렸다. 정확히는 내 몸이 흔들리는 거지만, 어쨌든 그랬다.

 

“끅……안 어울리게 너무 마셨나…….”


평소엔 술을 안마시니 얼마나 마셔도 되는지도 모른다.

 

다른 애들은……모르겠다. 전부 모르겠다, 이게 옳은 건지 틀린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상황이 잘못된 것뿐인가, 뭐가 잘못된 거지?


“야, 거기 너.”


“…….”
 
“너 부르잖아. 아가씨, 사람이 부르면 대답을 좀 하지?”


뭐야……꼴을 보아하니 어디 다리 밑에서 사는 놈들 같았다.

 

하나, 둘……세상이 흔들려서 잘 안 보인다. 아마 다섯, 어쩌면 여섯 정도.

 

“후우……왜?”


“우리가 돈이 좀 필요해서 말이야, 기부를 좀 받고 싶거든?”


“가진 게 많으신 분이 없는 자들에게 나누는 게 미덕 아니겠어?”

 

귀찮은데. 죽일까? 죽거나 말거나 이 녀석들에겐 슬퍼할 사람조차 없을 것이다.

 

아니. 생각해보니까 나도 그렇다. 내가 죽으면 누구 하나 슬퍼할 사람이 없다.

 

아버지는 자기 패를 잃었다고 짜증내겠지만, 슬퍼하진 않을 거다.

 

루시아나 부하들도 일이 힘들어졌다고 생각하겠지. 그래도 슬퍼할 것 같진 않다.

 

“야, 듣고 있어?”


“있지……정말로, 정말 궁금한 건데 말이야……너희들은, 나는 왜 사는 거야?”


“뭐?”


“어차피 아무 의미 없잖아. 돌고 도는 바퀴처럼……그저 그뿐인데.”

 

“이 년 술을 좀 많이 처먹은 모양이네. 야, 그냥 죽이고 털어가자.”


“그럴까.”


놈들이 내게 다가왔다. 도망칠 수도, 죽일 수도 있지만 그럴 기분이 안 든다.

 

어차피 아무짝에 쓸모없는 일이니까.

 

이 모든 게 그저 병신 같은 희극에 불과할 뿐이니.

 

죽으면 이 구멍도 함께 사라질 테니.


죽어버려도, 괜찮아.

 

눈을 감았다. 그리고 동시에,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너희들, 멈춰어어어어-!!”


“엉?”
 
“뭐야, 이 새끼는.”


남자.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가죽을 덧댄 갑옷. 경비병이다.

 

“나, 나는, 그게……너희를 강도! 그래, 강도 혐의로 체포한다! 나는 경비병이다!”


“뭐라는 거야, 이 새끼.”
 
“숫자 차이 안 보이냐? 저리 꺼져, 아니면 너도 쑤셔줄까?”

 

“카, 칼이……헉, 칼을 놓고 왔어…….”


뭐지 이 멍청이는……경비병인데 방패만 덜렁 들고 오는 게 가능한가?

 

“아- 아무튼! 나는 경비병이다!”
 
“그건 아까도 말했잖아.”


“그러니까! 내 임무는, 이 아가씨를 지키는 것! 그러니 너희는 전부 항복해라!”

 

경비병이 방패를 들고 외쳤지만, 놈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듯 서로 쑥덕거렸다.


“그냥 죽이자.”
 
“그래, 그러자고.”


놈들이 다가왔고- 경비병이 나를 감쌌다.

 

“아가씨! 제가 버티는 동안 어서 도망치세요.”
 
“안 도망칠 건데.”
 
“네? 아니, 그게……솔직히 저 엄청 약해서, 그게 제가 질 거 같아서…….”


“약해빠진 주제에 뭘 어쩌려고. 내버려 둬, 상관없잖아.”


“상관없지 않습니다!”


경비병의 큰 목소리에 술이 확 깼다.

 

“제 임무는 시민을 지키는 것! 그러니, 당신을 지키겠습니다!”


“뭐라는 거야 이 새끼가!”


괴한이 망치를 휘둘러 경비병을 때렸다.

 

“크윽! 모두 물러서! 가녀린 여자를 여럿이 공격하다니, 비겁하다!”


“우리가 어디 바다 건너 온 신사라도 되는 줄 알아?!”


“억! 으, 으으윽……!”

 

이젠 나를 내버려두고선, 괴한들이 경비병을 무자비하게 두들겨 팼다.

 

방패로 겨우 몸을 지키고 있지만 딱 거기까지. 보기 안타까울 정도였다.

 

……이해가 안 된다.

 

자기 몸을 던져서 남을 구해? 그런 걸 실제로 하는 멍청이가 어디 있단 말인가.

 

게다가 약하다. 엄청 약하다,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저 경비병은 절대 못 이긴다.

 

“아가씨, 크헉! 어, 얼른 도망쳐요……!”


자기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나를 걱정하다니.

 

세상엔 이런 멍청이도 있구나. 한심해서 연민마저 느껴진다.

 

……나 때문에 죽으면 아주 조금, 기분 나쁠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만하고 꺼져, 너희 차례는 여기서 끝이야.”


“뭐?”


나는 괴한의 머리통을 잡고, 그대로 으깨버렸다.

 

마치 물러터진 진흙이 부서지듯- 뼈와 살점이 후드득 떨어졌다.

 

“어……?”


“야, 잠깐. 뭐야? 무슨 짓을 한 거야?”


“너희 같은 저능아들도 알아듣게 말해줄까? 죽기 싫으면 뛰어. 3, 2, 1-”

 

놈들이 상황을 이해하고선, 부리나케 달아났다.

 

쫓을 필요도 없다. 저런 버러지들은 어차피 오래 살지도 못하니까.

 

“저기, 그게……혹시 절 구해주셨나요?”


“어.”

 

“……경비병 실격이네요.”


경비병이 멋쩍게 웃으며 일어섰다.

 

볼품없는 남자였다. 순박하다 못해 멍청하게 생겼고, 허우대만 좋지 꼭 수수깡 같았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적당한 나이의 청년. 나흘 뒤엔 잊어버릴 정도로 흔해빠진 얼굴.

 

이 여태껏 본 적 없는 부류의 인간에게. 처음으로 타인에 대한 흥미라는 게 생겼다.

 

“너, 이름은?”


“얀센입니다.”


“구해준 보답을 해야겠지. 자, 받아. 팔면 4대 정돈 먹고 살 거야.”


나는 끼고 있던 반지를 빼 얀센에게 건넸다.

 

아버지가 직접 준 가보 중의 하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제 이 남자는 헤실헤실 웃으면서 반지를 받고-

 

“못 받습니다!”


“……뭐?”


“경비병은 업무상 그 어떤 물건도 받아선 안 됩니다! 보답은 필요 없습니다!”


“너 내가 누군지 알고 그런 말하는 거야?”


“모릅니다! 하지만 누구든 상관없이 동일하게 적용되는 규칙입니다!”


“이 반지, 비싼 거라니까? 팔면 못해도 4대는 먹고 살 수 있어.”


“4대고 5대고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경비병이니까요!”


문득 옛날에 키우던 개가 떠올랐다. 

 

나중에 귀찮아져서 죽였지만, 그래도 작을 땐 좋아했었다.

 

“……나의 이름은 그레이시아 얀데르손. 너를 기억해두겠어.”


“네?”


“곧 다시 보게 될 거야.”

 

살다보니 이런 일도 다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구원받고.

 

누군가에게 흥미를 가지게 되는 일이 생기다니.

 

정말이지 인생이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바보 같은 희극이 분명했다.

 

 

 

 

 

 

 

 

꽤 오랜만에 얀챈에 소설 쓰네.

한 몇 달 챈을 안 와서 요즘도 소설 읽나 모르겠다.

내용은 먼치킨 영주 따님이 경비병을 구워 삶아먹는 이야기일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