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전까진 평범한 대학생활을 지내던 얀붕이.


때는 초등학교 시절.


담배연기 자욱한, CRT모니터로 득실득실 차있는 피시방을 다닐때였다.

카운터에서 이름을 노트에 적는 곳은 있긴 있었지만 드물었고, 선불 번호카드를 충전하던 방식으로 바뀌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입구에 스타크래프트 패키지와 나란히 꼭 있던 그 게임.


까만배경에 우두커니 그려져있는 무서운 새빨간 후드쓴 해골은 그 시절엔 조금 무서웠던 얀붕이었다.


POE에 한때 빠져서 학점을 제물로 바치기도 했었고 더군다나 POE의 원류인 그 게임의 리마스터, 레저렉션의 광고를 본 얀붕이는 호기심이 일었고 고민하다가 결국 구매하고만다.


'내가 4살때 나온 게임을 20년이나 지나서 할줄은.'


구관이 명관이라 했던가. 왠걸, 재밌다. 요즘 게임이 재미가 없어서 그런가. 시간가는줄 모르고 열심히 게임을 하던 얀붕이는 그 인기에 서버가 박살이 나서 백섭을 3번이나 당하고, 그 과정에서 맨땅으로 꾸역꾸역 진행하던 액트의 같은 구간을 2번이나 밀었지만 이를 바득바득 갈며 디아블로와 바알을 때려잡는데 성공했다.


이제는 낮엔 열심히 공부하고 저녁에 미리 게임을 켜서 대기열까지 기다리며 악마를 때려잡는 훌륭한 성역의 영웅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런 게임이 취향에 맞을경우 유일한 단점은 같은 관심사가 아닌 사람들과는 인간관계가 소홀해진다는 것.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얀붕이의 친구들은 어느날부터 저녁 일정한 시간에 항상 디아블로 플레이중이라는 얀붕이의 배틀넷 친구창 표시와 디스코드 게임 알림을 캡처해서 박제하고 젊은틀딱이라고 깔깔거리며 놀리는 정도였지만 얀순이는 아니었다.


얀순이는 전형적인 소꿉친구였지만 요즘 소꿉친구가 대수랴.

인터넷의 발달로 초고속 이동통신을 작은 모바일 디바이스를 통해 간편하게 이루어내는 시대다.

소꿉친구라는 개념이 옅어지는 시대인 것.


그럼에도 얀붕 얀순은 초중학교를 같이 다녔는데, 고등학교때는 비록 남고 여고로 떨어졌지만 집이 가깝기도 해서 요즘 시대 드물게 소꿉친구로서 인연이 이어졌고 운명의 장난처럼 같은 지역대학교에 진학했다. 

과는 달랐지만.


얀순이는 어떨지 몰라도 얀붕이에게 얀순이는 그저 오래 알던 여자사람친구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부탁을 잘들어주고 묘하게 친절해서는, 얀붕이를 연애대상으로 보는건지 아니면 남동생으로 여기는건지 나이가 찰수록 부담스러워서 연락이 뜸해졌긴 말이다.

물론, 본인이 직접 얀순이한테 하는 연락말이다.


얀붕이는 평소에 이성에 관심이 없는건 아니었다. 헌데, 요즘 삶이 팍팍해지고 미래준비하랴 코로나 조심하랴 게다가 요즘 또 추워서 밖에 돌아다니기도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자연스럽게 사람만나는 시간보다 이불뒤집어 쓰고 책상에서 과제하고 게임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그건 얀붕이와 함께하던 친한 친구들도 비슷했지만.


얀순이는 잘모르겠다.

얀순이한테서 오는 연락은 다소 정기적이었고 대부분은 안부를 물어보는 정도였다. 대뜸 집으로 찾아가겠다는 연락은 가끔 온다. 물론, 열에 아홉은 거절이지만. 집이 가까워서 빨리 거절해야함을 알고 있는 얀붕이였다.


대학도 사이버수업으로 전면 변경 후에는 집에서 틀어박혀있으므로 얼굴 볼 일도 없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등하교 시간이 다르다는 이유로 매일 같이 밥먹는 것을 강요당해 밥먹기 귀찮아서 거르려고 했음에도 '밥은 먹어야 해.' 라며 좀처럼 볼 수 없는 완강한 태도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둘이서 붐비는 학생식당을 찾곤 했었다.


그마저도 거절한다면 다음날은 학생식당 데이트보다 더 부담스러운, 어두운 얼굴을 한 얀순이의 도시락을 알콩달콩 먹었어야 하니까. 

이건 학생식당 데이트보다 더 소문의 파급력이 큰 이벤트였다. 그 이후로는 얌전히 식당으로 향했다.


그렇다. 어렴풋이 얀순이의 호의와 그 속에 깃든 애정의 의미를 조금은 눈치채고 있었다.

알고는 있는데 왜?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오래 만나서? 가족 같아서?


물론 하루이틀 생각하다 금세 까먹는 주제였다. 더군다나 연애는 시기상조다. 돈도없고.

게다가 디아블로를 할때만큼은 왜인지 현실의 어느것도 생각나지 않는 얀붕이였다.


ㅡ얀붕. 뭐해?

ㅡ요즘 저녁에 뭐해? 공부해?

ㅡ바빠? 저녁에는 연락이 뜸하네~ 


요근래 미처 못본 카톡이 많이 늘어난 것 같다. 주로 얀순이다.


ㅡ어 미안 못봤네 별일없어.


ㅡ진짜? 요즘 이 시간에 답장이 좀 늦어.


자신은 몇 십분후에 답을 보내지만 1분도 안지나서 오는 답장을 받다보니 괜시리 미안해진다.

어쩌겠는가 앵벌은 멈출수 없는걸.


ㅡ그러면 전화걸테니까 받아봐.


ㅡ뭔 전호ㅣ..


띠리링 벨소리가 고막을 뚫고 진동이 책상을 울렸다.


"이 뭔 갑자기 전화지?"


이제는 지옥 난이도에 갓 입성해서 액트1의 보스를 패는것에도 얀붕이는 컨트롤에 온 신경을 다하고 있던 터라 벨소리의 첫 사이클이 끝나고 중간쯤 흘러서 마을로 돌아간 후 전화를 받았다.


"어. 뭔일..."


"요즘 뭐해? 바빠? 꼭 저녁에는 톡 답장 느려, 보는것도 늦어, 저녁에 공부해? 수업있어? 혹시 밥먹..."


"그만그만, 알았어. 알았어. 별 일 아니고 그냥 게임하고 있었던 거 뿐이야."


기관총같은 질문세례에 식겁한 얀붕이는 바로 대답했지만 탄창을 재장전한 얀순이가 재차 물었다.


"너는 롤도 안하고 애들 다한다는 게임은 잘안하지않아? 그리고 보통 두세시간만 하고 넷플릭스보잖아. 요즘은 내가 소홀히했더니 무슨 게임하는진 잘모르겠지만 이거 다시 알아봐야..."


"뭔 소리야. 나 한창할 땐 이 정도 했어. 근데 무슨 용무로 전화한건데?"


슬슬 짜증이 묻어나왔지만 억눌렀다. 그래도 친한 친구니까.

그리고 얀순이의 마지막 말이 좀 이상한거 같았지만 말을 끊느라 잘 못들었다.

묘하게 자신의 생활패턴을 훤히 보이듯이 묘사하는 얀순이에게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지만 보스를 패고 얻은 아이템을 감정하면서 금새 까먹었다.


"아니... 뭐 용무가 있었던 건 아니야. 알았어."



"이거 신비한 녀석일세."


디아블로를 시작한지 딱 4일차,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다. 4일이 지나는 동안 얀순이가 점점 집요해짐을 느끼는 얀붕이었다.





그런 나날은 계속되었다.

이제는 교복도 맞추고 지옥 난이도의 모든 보스를 섭렵한 얀붕이는 슬슬 괜찮은 아이템들이 쌓여갔고 창고정리도 귀찮아져서 이걸 팔기로 마음을 먹었다.


매니아에 아이템을 올리는데는 어렵진 않았다. 게다가 어느순간부터 매물을 올리자마자 1초만에 나가기 시작하더니 점점 디아블로에 빠져드는 얀붕이었다.


"이야, 이거 짭짤한데. 이 재밌는걸 아저씨들만 했었단 말이야? 래더 열리면 볼만하겠는데?"


키득키득 거리며 매니아에서 1초만에 팔린 아이템을 보고 컴퓨터를 끈 얀붕이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간은 새벽 3시였다. 


새벽 3시?


"잠시만, 최근 기록좀 보자."


요근래 물건이 수상할정도로 빨리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좋았기도 했고 시세보다 쬐끔 싸게 올려서 그런거겠지 했지만 이런 새벽에 1초만에 나가는건 조금 이상했다.


"어디보자 yanbungdaisuki... 다 이사람이네."


1초만에 모든 아이템을 채갔다.

더욱 놀라운 건, 매니아에 올릴땐 시간이 정해져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저녁부터 겜끌때까지 사이지만 그 텀도 은근 길다.


게다가


"직업이고 셋팅이고 교환품이고 뭐고 상관없어. 그냥 무지성으로 다 사갔네?"


이거 좋은거 아닌가? 하다가도 깨름칙했다.

마치 자신을 감시하듯이 말이다.


"얀붕다이스키? 젊은 사람인가 이런 닉이라니 또 뭔 사람이름이 무슨 얀붕 으흐흐."


자야겠다. 하고 풀썩 쓰러진 얀붕이는 그렇게 누군가에게 납치당하여 영혼석에 갇히는 악몽을 꾸었다.





요근래 저녁에 얀순이에게서 연락이 조금 줄었다.

나름 서운하긴 했지만 역시 디아블로로 부업마냥 돈버는것이 더욱 신나는 얀붕이였다.


그러던 와중에 연락이 왔다.

오늘은 이른저녁 매니아에 아이템을 올린 첫 날이다.


ㅡ저기요. 혹시 yansunkowaiyo님 맞죠. 아이템 올리신거

ㅡ네 맞워요.

 

얀붕이는 허~ 같은 소리를 입으로 내며 답장했다.


"아니 뭔 올리자마자..."


가만, 올리자마자?

어차피 닉네임은 알 수 있다. 분명 예약을 걸려고 미리 연락한거겠지.

다만, 궁금하다... 왜인지 엄청 궁금했다.


ㅡ그 저기 닉네임이 어떻게?

ㅡ닉이요? 어차피 알게될텐데요. 


"뭘 튕기고 그러는거야..."


ㅡ아뇨. 그냥 개인적으로 궁금해서리.

ㅡyanbungdaisuki요. 잘알지 않아요? 사기는 안쳐요. 여태 기록 있잖아요?


뭐?


ㅡ오픈톡방 프로필이 이거였어? 귀엽네.


이 인간 뭐야.

얀붕이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알아챘다.


이 사람은 나를 추적하고 있었다.


ㅡ곧 찾아갈거니까 잘 기다리고 있어요. 답장 늦으면 큰일날지도.


'뭘 찾아온다는 거지? 아, 거래이야기인가? 이 상황에서 거래를?'


큰일은 무슨 큰일이야 뭔 집으로 찾아오겠다는 것도 아니고. 라며 혼잣말을 중얼거린 얀붕이었다.


쿵쿵


"..."


띠로링 띠로링


문을 두드리는 소리.

현관 벨을 울리는 소리.

분명 집 밖이다.

그 이상한 닉네임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ㅡ문 안열어요?


이 시발 뭐야.


"시발, 시발 뭐야. 난 정직하게 팔았다고. 설마 그 인간인가?"


문좀 열어주세요~ 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다.

여자?


"뭔데 저 미친년이 내 집을 알고 찾아온거야!"


갑자기 문두드리는 소리가 멈췄다.

띠링 카톡이다.


ㅡ미친년?


얀붕이는 폰을 떨어뜨렸다.

이윽고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소리가 들렸다. 얀붕이는 겁먹었지만 행동을 늦추진 않았다.

달려가서 고리를 채워야한다. 이해가 가진 않지만 저 미친년은 날 감시하고 있었고 집문도 열 수 있다.


생각이 미친 얀붕이는 즉시 행동에 옮겼다. 만

늦었다.


끼익하고 집문이 열렸다.




"얀순..이?"


"그래. 얀순이야. 미친년. 너한테 미친년. 얀순이야..."


얘는 또 무슨 말을... 아 참 그게 아니다.


"아니, 너 디아블로 했었어? 아니지 내집 감시하고 있었던거... 맞,맞지?"


흐흥 하며 얀순이는 씨익 웃고만있었다.

그게 더 무섭다.


"도대체 뭐때문에 이렇게 연락을 안받던지... 바람이라도 난 줄 알았잖니."


바람? 무슨소리, 근래 여자를 만난적이 없다.

얼굴도 본 적이 없다고.


"뭔가 했더니 게임에 빠져있었구나. poe인가 뭐시기때마냥..."


그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애초에 혼자 좀 즐기다 접었던 게임이었거든. 


가만, 그걸 어떻게 알고있지?


"너 만나는게 이렇게 힘들 줄 누가 알았겠어. 돈도 많이 썼다고."


그렇다. 아이템을 팔아서 300만원은 벌었으니까.


"내가 돈쓴만큼... 시간 낭비한 만큼... 책임을 져야겠지?"





아, 문이 닫혔다.










디아재밌다 히히



사료없어서 직접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