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순이는 늑대라는 별명을 가진 헌터였다.

그 이름은 웬만한 아이돌보다 널리 퍼져 있고 애초에 은퇴를 한지도 3개월째이기 때문에 그녀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그랬던 그녀는, 치명적인 부상으로 헌터 생활을 내려놓고 연금을 타며 살아가고 있다.

왼팔이 팔꿈치 위, 그 절반 정도가 잘려나간 부상.

사람 하나만한 대검을 휘두르는 그녀에게 그 부상은 말도 못할 정도로 심했다.

아무리 치유계 능력이 강해도, 이미 늦은 상처는 수습 불가능하다.

그런 그녀는...

아니지, 나는 그런 그녀의 집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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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김얀붕!!!"

그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공격을 잽싸게 피해냈다.

그리고는 반격이라는 것은 꿈도 꾸지 않고 빠르게 전열의 뒤쪽으로 물러섰다.

애초에 그는 운나쁘게 휘말린 하급 능력자니까.

그게 당연했다.

"괜찮아?"

"응, 괜찮...!"

이얀순, 늑대라 불라는 헌터는 하급 능력자인 그를.

정확히는 자신의 오랜 친우인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운은 굉장히 나빴다.

어쩌다 사고에 휘말려 들어온 게이트는 상급 게이트.

그리고, 피하지 못해 생긴 상처는 커져간다.

마지막으로 김얀붕과 이얀순 두 사람을, 괴물의 공격이 덮쳤다.

"하지 마!"

"안돼!"

'안 되긴.'

입모양으로나마 말을 전한 이얀순은 쓰러지고, 대검을 억지로 들어 공격을 쳐낸 왼팔은 이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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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순이는 오른손으로 캐릭터의 공격을 컨트롤하며 염동력으로 움직임과 록온을 조작하고 있다.

재밌어 보이네.

"잠깐만 나갔다 올게."

"어디?"

"아, 약속이 좀 있어서."

"약속?"

좀 춥네.

히터를 킬 시기가 온건가?

"누구... 또 저번의 그년이야?"

"그년이라니?"

"아, 그러니까 그게..."

그 년이라는 게 누굴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친하게 지내는 여자라...

가까운 관계에 있는 여성을 모두 포함해도 가족 외엔 없는데.

무슨 소리지.

"응, 그래. 잘 다녀와!"

나는 그대로 길을 나섰다.

선금으로 돈을 지불해두었으니 물건만 받으면 끝.

구하는 데 필요한 돈은 가진 돈을 다 털어서 마련했다.

이 선물을 두고 떠나면 되겠지, 내 집도 있는게 여기 있을 수는 없으니.

며칠 굶는다고 죽진 않는다, 그렇지만 그녀가 왼팔을 희생하지 않았다면 나는 죽었다.

"아, 김얀붕 씨 되시나요?"

"제가 김얀붕 맞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와주세요."

뒤가 구린 물건의 거래는 아니지만 워낙 고가의 물건이다 보니 어느새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게... 사실 원래는 두 시간 전에 매장으로 들어왔어야 하는 물건인데, 문제가 생겨서 삼십 분 정도 후에 여기로 오게 했거든요..."

쉽게 말해 어차피 늦게 오는거 시간 때울 겸 제품 설명을 해두겠다는 거다.

뭐, 어쩌겠나.

물건이 늦게 도착한다는데.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설명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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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붕이가, 또 누군가를 만나러 떠났다.

왜?

나를 두고 뭘 하러 가는거지?

나는 그를 위해 왼팔을 희생했다.

그런데 그는 왜 나를 버리는 거지?

잠깐, 진정해.

그래... 왼팔을 희생?

넌 헌터였고, 얀붕이는 일반인과 같은 자격으로 휘말린 사람이었어.

얀붕이가 나를 버려?

그럴 리가 없어, 설령 그렇게 되어간다 하더라도 되찾으면 그만이니까.

조금만 진정하고, 얀붕이가 있는 카페가...

"하."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얀붕이는 여자와 한 테이블에 앉아 무언가를 보며 웃고 있다.

편안해 보이네.

하하...

정말,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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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

물건을 받자마자 달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앞에 박스를 두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 자기로 했다.

'잘려나간 부분이나 형태가 좀 많이 자세해서 덕분에 쉽게 만들었어요, 흰색 베이스에 비이올렛으로 일부를 꾸몄고요.'

내 탓에 왼팔을 잃은 그녀를 위해 내가 준비한 것은 의수다.

그녀가 가진 마력으로 작동하는 여러 편의기능이 추가된 의수라는 점이 다르지만.

'감각도 연결이 가능한데, 처음엔 원래 감도보다 약해요. 익숙해질 때 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리니까 기억해두세요.'

나는 여러 주의사항을 기억하는 나를 뿌듯해하며 잡에 들었다.

근데, 얀순이는 집에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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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붕이가 집에 없다.

좋았나봐?

중간에 보다가 떠난 나보다 먼저, 우리 집보다 더 먼 너의 집으로 가버린다니.

문 앞에는 박스가 놓여있다.

거칠게 대충 뜯어보니 보이는 것은 의수.

내 왼팔에 맞게 만들었음이 보인다.

그리고, 언젠가 보았던 소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는 그녀를 떠날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일을 하며 그녀를 지켜보는 것도 작은 낙이었다. 이 엘릭서를 두고 떠나면... 그녀와는 이별이다.'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의 곁은 지키는 사람이었고,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의 유일한 단점인 마법을 커버하기 위한 영약을 이별의 편지와 두고 간다.

이것도, 그런 의미인가?

바로 그 의수를 껴보았다.

따끔한 감각이 전해져오고, 2초만에 내가 원하는 대로 의수가 움직인다.

그러나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얀붕이가, 나를 떠나?

안돼.

그렇게 두지 않을 거야.

얀붕이의 집이 있는 동네로 달려가, 얀붕이를 찾는다.

"아."

그의 집.

자그마한 방이지만 있을 것은 웬만큼 있다고 자랑했었지.

문을 열고, 들어간다.

비밀번호 안 바꿨네.

세상 모르고 자는 그에게, 사온 목줄을 채운다.

그가 내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물건으로는 안성맞춤이다.

소리가 새어나갈 수 있는 모든 문을 잠그고, 방 문을 잠갔다.

누워있는 그의 위에 올라탔다.

꽈악-

하는 효과음이 목 주변에 써있어야 할 듯 강하게 목을 조른다.

"크흑... 야, 얀순..아?"

"닥쳐, 내가 너를 위해 왼팔도 희생하고 이렇게 가까이 두기도 했는데... 바람을 피워? 넌 내 거야. 그러니까, 그걸 절대 잊지 못하게 만들어 둘 거야!"

"얀순아... 오해... 으윽...!"

오해?

오해는,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네가 내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일을 오해라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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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어보니 얀순이가 내 목을 조르고 있었다.

강하개 조르는 것은 아니지만, 말대답할 때 마다 점점 강해진다.

그녀가 나를 놓자 나도 따라 일어서려 했다.

철컹-

내 목에 묶인 목줄과, 벽에 고정되서 나를 속박하는 쇠사슬.

어디까지 준비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하자 나온 결론은 이랬다.

'그녀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일 자체가 나름의 준비이다.'

"넌 내 건데, 말을 듣지 않았으니까... 거기다 의수 하나만 선물로 두고 그대로 떠나려 했으니까. 벌을 받아야 해."

"그게 무슨...!"

남겨놓은 편지가 았을 터였다.

그러나 칼을 들고 다가오는 한 쪽 팔이 기계인 늑대.

한 마리 늑대는 그런 것과는 관련아 없다는 듯 내게 다가왔다.

"괜찮을 거야, 피 한 방울도 허투루 버리도록 만들지는 않을테니."

---

내 앞에는 침대에 누워 잠든 나의 개가 있다.

나의 강아지, 나만의 얀붕이, 내 사랑.

어느 쪽도 내게는 너무나 맘에 드는 별명이다.

뭐 어때, 가끔씩 바꿔가며 쓰지 뭐.

얀붕이의 목줄을 벽에 잘 매어두고 나온 내 눈에 보인 건 현관에 어지러진 박스의 흔적.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그를 생각나게... 한다.

박스의 흔적을 치우려 다가가니 바닥에는 하얀 봉투가 놓여있다.

당연하게도 그 안에는 편지가 들어있다.

"?"

[얀순이에게.
얀순아. 내가 미숙한 탓에 일어나버린 사고에 팔을 잃게 만들어서 미안해. 내가 팔을 고쳐줄 수는 없지만, 못해도 평범하게 살면서 불편하진 않도록 준비해봤어. 오랜 시간동안 너와 함께하며 쌓은 추억들이 있고 받은 도움도 있잖아? 그런 것과 비교하면 이건 너무 싸서 미안할 정도네. 잘 써주길 바래.]

누가 썼는지를 쓰지 않았지만, 모르는 게 이상하지.

얀붕이는, 바람을 피긴 개뿔 고백도 못해놓고 속으로는 내 거니 뭐니 하는 더러운 년에게 뭐라도 해주려고 했을 뿐이었다.

"야...얀붕아..."

"아, 봤나보네?"

어느새 옷을 챙겨입은 얀붕이가 침대에 걸터앉아 나를 바라봤다.

"미... 미안해. 제발 용서해줘 내가 뭐든지 할테니까 곁에 있게 해줘 버리지 말아줘..."

"일어나 얀순아."

아.

이건, 그가 내게 명령을 한 것이다.

빠르게 일어나 차렷자세로 있었더니 얀붕이가 의수를 잡았다.

"음, 딱 맞네. 얀순이 넌 좋아?"

"네..."

"존댓말같은 거 하지 말고, 진심으로."

"좋아... 정말 좋아..."

그 말을 끝내자마자 얀붕이가 나를 안아주었다.

"미안해, 여러모로."

"괜찮아, 사랑해. 그러니까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