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것도 내용 수정 함

똥럭시 죽어......



***



체육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관악대의 힘찬 연주가 울리고, 웅장하게 퍼지는 음악소리에 맞춰 체육대회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렸다.


모두가 관악대의 음악에 맞춰 흥을 올리기 시작했고 여러 가지 독주를 돋보이더니 어느새 관악대의 연주는 끝나고 체육대회는 학생회장의 소개로 시작했다.


학생회장이 단상 앞을 나와 진행 순서와 점심시간, 종목, 점수표, 선물 등등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가지들을 설명하더니 곧이어 서론 없이 본론으로 진행했다.


운동회의 하이라이트이자 빼놓을 수 없는 이어달리기, 2인 3각 달리기는 점심시간 이후 마지막 종목으로 배치됐고 가장 많이 하고 상투적으로 나오는 종목들은 모두 오전 시간으로 배치가 되었다.

 

 

댄스 부는 설명 안 하냐고 여기저기서 질문이 나왔지만 재밌는 건 모두 밥 먹고 집중력이 저하되는 점심 이후로 배치를 해놓으면 더 재밌는 체육대회가 된다고 말했기에 흥분한 학생들을 마음에 들은 듯 조금씩 마음을 가라앉혔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우리는 2-1반 푯말이 걸쳐있는 그늘막으로 가 자리에 앉고 서로 하나둘씩 음료를 챙겨 목을 축였다.


한창 햇볕이 내리쬘 날씨와 요 근래 들어 가장 더운 날씨가 오늘이었기에 우리는 어떻게든 햇빛이 안 드는 곳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서로 무리 지어 삼삼오오 앉고, 적당하게 친해진 얘들끼리 앉아있는 아이들은 그저 점심시간과 댄스부 만을 기다리며 귀찮은 표정으로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나는 우리 반 얘들 중 딱히 친한 얘들은 없었기에 그냥 남자애들 뒤에 앉아 적당하게 존재를 숨겼다.


서희도 친구랑 있고, 유린이도 친구랑 있어서 아무도 날 찾지 않아 소외감이 드는 느낌이 들었지만 짧게나마 후배인 시현이가 몇 번 말을 걸어줘서 나는 외로움을 달랠 수가 있었다.


" 그냥 빨리 밥 먹고 끝났으면 좋겠다. "

 


뛰는 거도 귀찮고 참여도 귀찮아 모든 걸 하기 싫었지만 댄스로 유명한 교내 댄스 부를 나는 놓칠 수 없었기에 지루함을 참으며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저 멀리서 선생님이 다급하게 뛰어오더니 인원표를 들고 반 얘들 앞에 서서 무언가 말하기 시작했다.


" 자! 집중해! 다들 여기 봐! "


" 네? 왜요? "


"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급하게 너희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 점심 전까지 4종목을 하는데 2종목에서 인원이 빈다. 혹시 지원할 사람 있나? "


" .............. 네? 뭐라고요 선생님?"



미친 듯이 내리쬐는 햇빛, 옆 사람과 붙어있기도 힘들 정도의 습도, 재미없는 오전 종목들까지. 삼위일체가 합체되어 그 누구도 섡불리 체육대회에 참가할 생각은 없었다.


25명이나 되는 인원이지만 원래 참가했던 소수의 인원을 빼고는 누구든 튀는 걸 싫어했기에 그저 바닥에 그림을 그리거나 벌레를 쳐다보며 어떻게든 선생님의 눈을 피했다.


" 야 아무도 참가 안 할 거야? 한 명이면 되, 한 명. 적당히 어울리다가 가면 된다고 아무도 안 할 거야? 너네 진짜 아무도 없으면 내가 지목한다? 골라도 내 탓하지 마라? "


"선생님 하루 전날도 아니고 시작 전에 바로 그러면 아무도 안 나가지 않을까요? "


" 나도 똑같이 그 말을 전했는데 하필 하루 전에 다쳐서 급하게 연락이 온 거래. 지금은 다쳐서 병원에 있고. 이번에는 나도 어쩔 수가 없다. "


 

 한숨을 쉬며 자신도 비슷한 처지라고 말하는 선생님은 머리를 잡으며 누구를 채택해갈지 눈을 굴리며 이리저리 보고 있었다.


그 누구도 손을 들지 않고 조용히 딴청 피우는 학생들이 못 미더운 듯 선생님은 인상을 찌푸리며 비운의 1명을 골라내고 있었다.


선생님의 레이더에 걸리지 않도록 병풍처럼 숨어 빨리지나 가도록 기도하며 빌었지만 어이없게도 선생님과 눈이 딱 맞아 버렸고,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보며 웃었다.


하필 눈을 오래 감았다가 뜬 게 선생님과 눈 맞은 타이밍이라 잠깐의 침묵 후 나는 선생님에게 선택이 되었다.


" 인우, 인우 너 나와. 너 어차피 밥 먹고도 하나 뛸 거니까 그냥 와라. 못난 우리 반 얘들 대표해서 네가 간다 생각해라. "


" 네? 제가요? 아니 선생님 저보다 건강한 얘들 많고 팔팔한 얘들 많은데 굳이요? "


" 네가 딱 눈에 마주친 걸 어떡해. 그리고 봤으면 고개라도 돌리던가 계속 눈마주 치는걸 어떡해. 날 보는 건 뽑아달란 거 아냐? "

  


 " 아뇨 선생님 전 나가고 싶은 게 아니라, 선생님이 평소보다 예뻐서 쳐다본 겁니다. 이 더운 날인데도 불구하고 땀방울이 이마에 맺혀도 한결같이 예쁜 외모를 가진이라 선생님이라 저도 모르게 멍 때린 것뿐이에요. 제가 본 사람 중 가장 예쁜 우리 선생님이 강압적으로 뽑는 건 좀 아니라 생각해요. 그렇지 않나요? "


" 뭐... 뭐? 이쁘다고? 내가? 어....야! 야!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출전해! 어디서 선생님을 놀려 괘씸하게. 백인우 넌 두 종목 다나가!"


" 엥? 진짠데? 미워요 선생님. 칭찬해 주는 내 맘도 몰라주고...... 얼굴만 예쁘지 성격은 야박해! 나빴어.. "


선생님이 이쁘다는 걸 핑계로 어떻게든 나가는 걸 피해보려 했지만 알기 뻔한 심리전이라 칭찬을 가장한 회피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얘들 앞에서 선생님이 예쁘고 매력적이라는 말을 해서 그런지 선생님은 보기 좋게 볼과 귀가 빨개졌고 그 말을 바로 옆에서 들은 아이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 새끼가 드디어 미친 건가?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은 황당함과 어이없음이 적당히 섞여 표정을 도통 감출 수가 없어 보였다.


" 저 새끼 저거 인우 아니고 여우라니까? 말하는 거 보면 은근 선수야. 이젠 하다 하다 선생님까지 꼬시는 거야? "


" 야 그러면 안 돼. 선생님이 미혼이라지만 먹고는 살아야지 직장 잘리게 할 거야? 인우야 책임질 거야? "

 


" 연애하자는 것도 아니고 예쁘다는 말 몇 번 해서 잘리면 내가 책임지면 되지. 나랑 살면 얼마나 좋아. 저 어때요 선생님? "


" 뭐? 너 진짜 나 미쳤어? 날 경찰서로 보내고 싶은 거야? 구애할 거면 수능 끝나고 해. 네가 외모가 반반하고 좋다 해도 난 젊은 나이에 잡혀가긴 싫어."


내가 한 말에 받아치기라도 하듯 말하는 선생님은 볼이 빨개지곤 고개를 저었다.


" 푸흡, 서희야 지민아, 네 남자친구 바람피우는데 어떡해? 기강 안 잡아? 양다리를 넘어 이젠 삼다리인데? 선생님 보고 예쁘다고 난리 치고 있잖아. "



" 잘리면 데려간다는데 이 정도면 그냥 플래그 내리꽂은 거잖아. 선생님도 아닌척하는데 볼 이랑 귀도 빨개졌고 둘이 죽이 잘 맞네! "


 

 이런 상황이 오히려 재밌는지 서희네 친구들은 그 틈을 타 나를 놀리는 척하며 서희와 지민이까지 농락하고 있었다.


장난이라고 멋쩍게 웃으며 손사래치며 적당히 넘겼지만 매섭게 째려보는 둘의 시선에 나는 위험을 느끼고 급하게 화제를 넘겨 운동장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 시, 시끄러 괜히 헷갈리게 하지 마. 오전 종목이니까 축구하고 농구 뛰면 돼. 둘 다 뛰는 놈이 있었는데 엊그제 다리 다쳐서 네가 뛰어라. 결승전이라 대타는 안되는데 하필 교장선생님이 우리 반 골라서 나가는 거야. 자랑스럽게 해. "


" 네.... 근데 하필 축구하고 농구가 쥐약인 종목들인데..... 선생님이나 저나 운도 지지리 없네요. "

 

 

나와 같이 어이없게 걸린 선생님은 억울하다며 내게 하소연을 했고 나도 선생님과 심정이 똑같아 그저 공감을 해주는 거 말곤 딱히 없었다.


이어서 하는 종목들이라 체력이 떨어졌다고 핑계 대서 적당히 할 수 있을 거라 믿고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엉덩이의 먼지를 털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고 대충 손발을 털듯이 준비하고 운동장으로 나가려는 찰나 유린이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멋쩍게 웃으며 파이팅을 외쳤다.


" 유린아 나 뛰고 올게. 꼭 봐줘야 돼 알겠지? "


" 열심히 뛰고 와. 다치면 죽일 거야 2인 3각 때 못하니까. 알겠지? "


 

 " 다치면 유린이 네가 나 치료해 주면 되지. 우리가 그 정도도 못해주는 얄팍한 사이는 아니잖아. 응? 알겠지? 알아서 맡긴다? "


" 야 이 씨...... 다치면 진짜 너 가만 안 둘 거야! 져도 되니까 다치지 마! "


" 응 고마워 유린아. 이따 보자."


걱정해 주는 건지 경고를 해주는 건지 지뢰 섞인 말들이었지만 다치면 안 된다는 말은 진짜로 걱정하는 말이었기에 나는 고맙다는 말을 하며 유린이에게 미소로 보답했다.


누군가 보면 썸 타는 사이 같아 달달하며 질투나 나겠지만 서희와 지민이 때문에 쉽사리 여자들과 친해지지 못하는 나에게 유린이는 그저 천사 같은 존재나 다름없었다.


다른 누구보다 나를 걱정해 주고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나를 감싸 안는 걸 좀처럼 느껴본 적이 없기에 유린이에게는 그저 잘해주고 싶은 마음만 가득 찰뿐이었다.


 

 " 야 쟤 내가 보기엔 학기 초의 백인우가 아닌 거 같은데... 진짜 그 개찐따같던 백인우가 맞냐? 하다 하다 선생한테 저 지랄하다니 내 가슴이 웅장해진다... "


" 미친년아 네 가슴이 왜 웅장해. 돌았냐? 그냥 립 서비스겠지. 인우가 저러는 거 한두 번 봐? 그냥 둔감한 새끼인 거야"


" 아오 최유린 등신아 드립도 못하냐? 그러니까 인우가 딴 여자한테 새는 거지. 어휴 나 같으면 이미 잡고도 남았다. 너 그러다 아무것도 못 잡아. "


" 닥쳐. 안 좋아하니까 개소리마. 챙겨주는 거뿐이라고, 친구니까......"


" 멍청한 년, 챙겨준다는 년이 알면서 지켜만 보고 그러냐. "

 

 

" 아직은 때가 아니야. 존버를 타고 있는중이라고. "

 


 뒤에서 무언가 수군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어차피 들리지도 않기에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다시 걸어나갔다.


운동장에 도착해 같이 뛰는 친구들과 적당하게 소개를 한 뒤 포메이션을 설명 받아 설렁설렁 뛰며 패스만 잘해주라고 주장에게 전해 들었다.


어차피 대타인 걸 다 아는 얘들인지라 나를 별로 크게 신경을 안 쓰고 오히려 골을 더 잘 넣고 자 어필하는 게 내 눈에 잔뜩 보였다.


잠시 뒤, 축구 결승전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운동장을 울리고 나는 적당하게 수비를 맡아 팀의 수문장 역할을 다졌다.


몇 번이고 먹히나 싶었지만 다행히 잘하는 친구들은 서로가 마크해 줬기에 나는 어렵지 않게 볼을 사수할 수가 있었다

 


잘하는 친구들이라 그런지 열심히 달리며 세 골이나 넣으며 잔뜩 세레모니를 학생들에게 어필했고 여자애들의 환호소리를 들으며 그들은 더욱 열정에 젖어있었다.


그렇게 45분이 지나 잠깐의 휴식을 맞이하게 되었고 한 골도 먹히지 않은 팀원들을 보며 서로 승리를 다짐했다.


그저 병풍처럼 걸어 다닌 나였지만 조금이라도 기여가 된 거 같아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 전반전을 쉽게 끝낼 수가 있었다.


각자 쉬다 시간 맞춰오자는 주장의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삼삼오오 흩어져 편하게 쉬기로 했다.


" 후우..... 더워 죽겠네 진짜. 이게 날씨냐? "


비록 공격수 만큼은 뛰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수비에 열 일 하느라 땀을 흘린 나는 수건이 없어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우리 반이 있는 그늘막으로 향했다.

 

 

반으로 가면 좀 더 편하게 쉬고 나를 반겨주는 줄 알았지만 현실은 자기들끼리 노느라 나는 안 중에도 없고 서로 폰 하면서 놀기 바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린이라든지 서희가 있을까 싶었지만 모두 없고 그저 모든 게 귀찮아진 아이들만 있고 다 사라져있었다.


이유 없는 희생으로 강제적으로 땡볕에서 뛰게 됐지만 나를 반기는 건 내 자리의 얼어있는 생수 한 병뿐이었다.


" 어째 반겨주는 놈들 하나 없냐? 매정한 것들.... 좀 쉬자. 안 뛰다 뛰어서 그런지 체력이 달리네......... "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적당히 더위를 식히려 했지만 아무래도 습도가 높다 보니 머리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역시 아무도 없는 건가... 싶어 벌컥벌컥 물을 들이켜며 눈을 감았을 때 누군가 내게 휴지를 주며 말을 걸었다.


" 고생했어. 나름 잘 뛰던데? "


" 응? 땡큐, 네가 날 챙기고 웬일이냐? 왜 혼자 있어, 옆에 서희라든지 민아나 다른 얘들은 없는 거야? "


" 서희는 모르고 두 명은 주장 보러 갔지. 시작 전부터 잘생겼다고 옆에서 지랄을 떨더라. 느끼하게 생겼는데. "



" 그런가..... 잘 뛰긴, 그냥 적당히 뛴 거야. 어차피 걔네도 대타인 거 알고 공격만 치고 달리더라 오히려 좋았어. 더워서 문제지. "


" 일로와 이마 대봐. 땀이 줄줄 흐르네. 넌 땀도 안 닦아? 그냥 그대로 오는 미친놈이 어딨어 화장실이라도 가야지. 식수대도 안 가고 멍청이가 따로 없네."



 "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화장실로 얘들 다 같이 달려가길래 자리가 없길래 그냥 온 거야. 식수대는 농구 얘들이 준비하느라 다 있고, 난 선택지가 없다. 어쩔 수 없어.. 담임은 하필 날 골라 가지고..... 진짜 미치겠어. 담임은 맨날 나만 시켜."


" 네가 그냥 만만해서 그런가 보지. 어차피 다들 너한테 관심은 없거든. 거기서 거기인 것들뿐이야."


내가 혼자 있을걸 알고서 일부로 노린 건지 지민이는 휴지를 들어 이마의 땀을 조금씩 닦아주었고 걱정까지 하는 뜬금없는 행동에 놀라 나도 모르게 지민이를 보며 눈이 커졌다.


멋대로 행동한다는 걸 알지만 이런 의외에 모습에 난 감동과 놀람이 반반 섞였다.


몇 번을 더 이마에 맺힌 땀들을 조심스레 닦던 지민이는 깔끔해진 날 보며휴지를 내려놓았다. 



" 왜 뭐 할 말이라도 있는 거야? "


" 이런 거.. 처음 받아봐서 그래. 너한테도 이런 것도 받아보고 오늘 좀 행복한 거 같아. "


처음 받는 호의에 어쩔 줄 몰라 말조차 제대로 안 나와 바보처럼 웃는 나를 보며 지민이도 웃었다.


" 처음... 나쁘지 않네. 사실 이런 걸 했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더 잘 봐줬을 텐데 .. 아쉬워라. "


" 그게 무슨 소리야? "


" 아냐, 혼잣말이야. 그냥 흘러버려. "


며칠 전과는 전혀 다른 오랜 만에 받아보는 지민이 호의에 내 머릿속의 지민이에 대한 편견도 조금은 풀린 것 같았다.


장난을 좋아하고 멋대로 하다가도 이렇게 챙겨주는 걸 보면 꽤나 익숙했던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이런 지민이가 더 본래의 지민이 같다고 생각했다.



" 이따 끝나면 한 번 더 와. 또 해줄 테니까. "


" 서비스야? 오늘 너무 좋은데?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어? "


" 시끄러, 딴 데로 튀지 말고 와 알겠지? 해줄 때 와."


" 응! 바로 올게. 너도 어디 가면 안 된다? "


경기가 끝나고 곧바로 오라는 지민이의 말에 난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동의했다.


보상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오래간만에 누군가에게서
이런 걸 받으려니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기뻐할 틈도 없이


잠시 뒤 후반전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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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인원체크를 하고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운동장에 불리며 나는 이리저리 npc나 ai처럼 나는 적당히 돌아다녔다


다 이긴 게임이기에 반쯤 포기한 상대에게 숟가락 하나 얹어 한 골을 넣었다. 나름의 세리머니라고 머리를 쓸어넘기며 승리 포즈를 취했고 뒤에서 지켜보던 친구들은 하나둘 하이파이브를 쳤다.


" 하하.... 이겼네. 고생했어. "


" 그냥 막히고 뻇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잘 재쳤네? 1골을 넣은 건 잘했어. "


" 너 다음에 농구도 나가지? 너네 반 사람 없다고 난리던데. 고생해. 농구는 거칠어서 좀 힘들 텐데. "


" 어쩔 수 없어. 운이 없던 거야. 고생했어 난 갈게."


 

거친 마초들의 운동인 농구를 곧이어 나가는 걸 잊고 있던 나는 승리의 표정에서 금세 허탈한 표정으로 바뀌어 입에서 한탄만 나왔다.


힘든 몸을 이끌고 복귀하려던 찰나 주장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왔다


" 아 맞다 네 이름이 인우라고 했었나? 너네 반 여자애들이 네 얘기 엄청 하던데? 의외로 잘한다고 칭찬하더라. 생각보다 너 네 얘기가 여기저기 들리더라고. "


"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내 얘기가 들린다니? "


" 들은 대로야. 전반 끝나고 복귀하는데 여자애들끼리 네 얘기로 쑥덕 거리는 게 들렸어. 다는 못 들었는데 되게 잘한다고도 하고 요즘 들어 잘생겨진다든지 여러 말이 많던데. 진짜 의외인데? "


신빙성이 없는 허무맹랑한 말을 듣자 내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 찼다.


내가 못 믿을걸 이미 예상했다는 듯 주장은 어깨를 툭툭 쳐댔다.



" 말을 못 믿네. 거짓말 아니라니까? 넌 모르겠지만 널 보는 시선이 예전과는 달라. 걔네도 그렇고 다른 얘들도 마찬가지거든. 이젠 보는 눈이 많아졌어. "


" 딱히 시선을 올릴만한 게 없는데..... 잠깐 걔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너 뭘 알고 있는 거야? "


어깨를 으쓱하며 정색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주장은 경고를 했다


" 너도 이미 알잖아. 걔들이 너한테 뭘 하고 있는지. 조심해야 할 거야. 네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위험해. 감당이 되질 않으면 스스로 멀어지는 걸 택해도 좋아. 그보다 더 좋은 인연도 너에겐 많을 테니까. "


" 너..... 뭐야.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그리고 이런 말 하는 이유가 뭐야? "



" ........ 그냥 조언일 뿐이야. 넌 위험해 보여. 그리고 뺏는다던가 그런 취미는 없으니 안심해도 돼. 너도 알겠지만 잘 생각해 봐. 너의 행동 하나하나가 걔네를 컨트롤하는 거야. 네가 목줄을 잡을 수도 있고, 목줄을 잡힐 수도 있어. 다음에 봤을 때는 더 밝은 표정이길 바래. "


말을 끝마치고 물을 챙겨 사람들 사이로 주장은 사라졌다.


오래전부터 지켜본 듯 조언하는 그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애써 잊고 있었던 사실, 회피하기 바빠 미뤄뒀던 것 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 같았다.


재난의 전조가 울리듯 주장의 말은 나에 대한 경고였다.


그녀들을 컨트롤하지 못하면 스스로 절벽에 내몰려지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스스로 멀어지라 말한 거겠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말로 통할 때 그녀들을 마주해야 한다.


천천히... 천천히 끝내야겠지


한숨을 내뱉는 걸 반복하며 나는 헝클어진 머리를 내리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다시 우리 반이 있는 쪽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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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이 있는 쪽으로 가니 유린이와 유린이네 친구들이 나를 반겨주었고 축구하는 걸 봤는지 환호하며 내게 음료수를 건네줬다.


" 오! 인우다! 인우야 너 골 넣은 거 봤어!! 진짜 잘하던데! 덥지? 이거 먹어. "


" 고마워 유린아. 병풍처럼 서있다 마지막에 한번 찬 거라 주워 먹은 거나 다름없어. 아까는 어디 갔었어? 전반전 뛰고 오니 안 보이던데. "


" 배고파서 매점 갔지. 화장하고 꾸미느라 아침도 못 먹었단 말이야. 배고파 죽을뻔했어. "


어딜 갔나 했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매점에서 사 먹고 있던 유린이었다.


 

 나 역시 공복이라 많이 배고프지만 목이 더 말라 물로 배를 채울 수밖에 없었다.


유린이가 들고 있는 빵이 먹음직스러웠지만 배가 고팠다는 말에 한 입만 달라고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물로 공복을 채우는 타이밍이 많아 헛웃음만 나왔지만 생각해 보니 무언가 먹을 시간이 없어 그냥 참고 있었을 뿐이었다.


" 배 많이 고프지? 한 입 먹어. 너도 못 먹었잖아. "


" 고마워 유린아. 되게 맛있는걸. 내가 좋아하는 맛이야."


" 얼굴은 말끔하네? 안다치고 잘했어. 농구도 하다가 다치지 마. 몸 싸움하려고 부딪히려 하면 그냥 먹혀버려 ."

 


" 욕 엄청 먹을 텐데 그래도 돼? "


" 대타로 뛰었으면서, 나한테 먹을래? 걔네한테 먹을래? "

" 암.... 걔들이 낫지..."


대답이 맘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유린이는 빵을 물었다.


몸을 걱정해 주는 데는 유린이만큼 날 생각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지민이도 있지만 늘 나만 보면 걱정해서 이젠 유린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부상에 허덕이는 꼴을 나도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 걱정하지 마. 너랑 같이 뛰고 싶어서 내가 몇 달을 기다렸는데 다치면 억울해서 못 있어. 안다치고 올 거니까 걱정하지 마. "



" 부상에 허덕이면서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 잘하고 와 응원할 테니까. 끝나면 나랑 같이 댄스부 보러 가자. "



응원한다는 말에 한층 더 기분이 좋아진 나는 유린이를 향해 웃음 지었다.


이런 내 모습이 행여나 우스꽝스럽지는 않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유린이의 반응을 보고 안심했다.


" 잘... 웃네. 요즘 들어 웃는 걸 못 본거 같은데 그게 훨씬 너 같아. 마음에 들어. "


" 고마워. 이렇게 웃는 것도 오랜만이야. 유린이 덕분에 오늘은 기분이 좋은 걸. "


우린 두말할 거 없이 흐뭇하다는 듯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누구와도 트러블 없이 잔잔한 하루, 이날 나는 오래간만에 행복을 느꼈다.



정말 뭐든 할 수 있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반복되는 피폐한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듯 반쯤 감정에 메마른 나에게 유린이는 샘물과도 같게 느껴졌다.


달콤하고도 포근한 유린이에게 스며들었다.



부디 이 얘만큼은 이대로 남아주면 좋겠다.


" 농구 결승전에 참여하는 인원은 지금 바로 집합 바랍니다."


결승을 알리는 목소리가 스피커로 들려왔다.


조그맣게 손을 흔들며 나중을 말하며 농구장으로 달려갔다.



처음 만난 그때가 떠오른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