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붕아, 이거 좀 치우자."

"응? 아, 그거..."

얀순이가 바닥에 놓인 커다란 쓰레기 봉투들을 가리키며 말하자 얀붕이가 빠르게 일어나 두 개를 들쳐맨다.

"다녀와~"

"너도 한 개 들어줘..."

"나는 '이곳저곳'을 데우고 있어야 해서 바쁘거든?"

"예, 예."

얀붕이가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고, 얀순이는 몰래 문을 잠갔다.

문을 잠가놓고 장난을 준비하던 얀순이는 얀붕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문 밖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숨었다.

철컥-

"어?"

철컥철컥철컥철컥-

아무리 흔들어도 열리지 않는 문 앞에 얀붕이는 과거를 회상하며 무릎꿇었다.

우리는 그것을 트라우마라고 부른다.

_____

나는 한 저택의 하인이었다.

"어이, 김얀붕. 내가 굳이 이것까지 이야기 해야겠어?"

퍼억-

주먹에 맞고 손톱에 햘퀴어졌다.

"음, 생각보다는 잘 했네?"

쨍그랑!

이뤄낸 것이 망가졌다.

"너 같은 게 나를 옆에서 모신다니."

문 밖으로 쫒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기 위해 태어났으니까.

내가 당하는 것들, 그보다 심한 것도 받아내기 위해 태어난 게 나니까.

그래서였다.

어느 추운 겨울날에는 외투도 걸치지 못한 채 얇은 바지와 상의만으로 6시간을 문 앞에서 버텼다.

그러던 날들 중, 고양이 수인 메이드 하나가 저택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안녕."

그녀는 내 생활을 조금씩 바꾸었다.

정확히는, 그녀가 온 이후로 내 주인은 날 괴롭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 환상이었다.

"수인 주제에, 주인한테 말대꾸를 해?"

난 봐버렸다, 내가 맞지 않은 건 단순히 그녀가 나 대신 맞아서였다는 사실을.

"그만...하세요."

추운 겨울이었다.

"어, 이제 둘이서 같이 대들겠다?!"

"아닙니다, 얀붕이는 그런 게...!"

그녀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그녀에게 날아가는 주먹을 내가 대신 맞았고, 나는 그대로 기절할 때 까지 맞고는 내쫒겼다.

춥고 아프고 배고프고 힘들고 졸리는 상황.

그러나 버텼다.

뭐 하나에라도 지면 죽을 것이기에 버텼다.

다음날 아침에야 어디 하나 잘라내기 직전 상태에서 저택에 들어간 나는, 그날 메이드와 함께 도망쳤다.

그 메이드는 당연히 얀순이였다.

_____

그리고 지금, 얀순이는 겨울 밤에 문을 잠갔다.

"어...?"

춥고, 아프고,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무릎에 닿은 바닥의 감촉은 없다.

벌써 얼어죽을 것만 같다.

"죄솔해요살려주세요열어주세요죽기싫어요잘못했어요잘못했어요잘못했어요"

철컥-

문이 열렸다.

그러나 신경쓸 여유가 없다.

빌어야 한다, 죽고싶지 않다.

"음... 오랜만에 이러네. 어서 들어와, 얀붕아."

누군가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사는 것이 중요할 터였다.

"아아... 으아아..."

"하..."

누군가 나를 들어올린다.

주인일까?

따듯하다, 뜨거운 것 같기도 하다.

몸이 무언가 푹신한 것 위에 놓인다.

...

내가 왜 이러고 있었

_____

오랜만에 얀붕이가 이렇게 되었다.

문 바깥에서 얼어죽을 뻔 한 경험이 있는 녀석에게, 가장 믿는 사람이 같은 짓을 했으니 그럴 만도 했지.

"미안, 얀붕아. 떨면서 빌고 있는 너도 귀엽더라"

조그마한 장난이었는데, 이런 귀여운 반응이라니.

역시 그 메이드와 제 주인이 같은 사람이라는 건 눈치채지 못한 듯 하니 다행이긴 한데...

주인 연기를 다른 사람한테 시키고 내가 항상 곁에 있어줄 걸 그랬나?

"안심해도 돼, 그 주인은 이제 없어. 너를 너무 사랑하는 얀순이가 있을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