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앗, 선생님. 여기 화제의 신작 '바이오하자드 137' 도 있습니다!]


"이야.. 게임이 어느덧 137편까지 나욌구나. 좀비게임 치고는 참 오래도 해먹네."


[나와도 나와도 질리지 않는 갓겜이니까요.]


아리스는 바이오하자드 게임팩을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리스는 그런 공포게임, 좋아해?"


[네. RPG만큼은 아니지만 그 다음에 버금갈정도로 좋아합니다. 갑작스럽게 출현하는 적, 무력으로 제압할 수 없기에 도망가야만 하는

그런 신박한 플레이방식이 매력적이여서..]


"그럼 이 게임도 사가자."


나는 아리스에게 바이오하자드 게임팩을 건네주었다.


[선생님, 마음은 정말 고맙지만... 이러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선생님이 아리스때문에 자꾸 지출을 늘리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만 드니까요.]


"딱히 부담가질 필요 없어. 내가 좋아서 사주겠다는건데 뭐."


[...으음, 그렇게 말씀하셔도 아리스는 용납못합니다. 동료에게 의지만하는 용사는. 용사의 자격이 없어요!]


나는 아리스의 이런 착해빠진 어린애같은 모습이, 그렇게나 좋았다.


꽃밭에 있는 해바라기처럼 고운 성품을 지닌 딸을 보는 느낌이랄까.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갖고, 모두에게 호의적인 이 아이는..동물로 치면 마치 벨루가같으리라.



[선생님. 아리스의 원래 옷이 들어있는 쇼핑백을 잠시 건네주실 수 있으실까요?]


"되는데..왜?"


[아리스와 선생님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니까요.]


아리스는 입술을 삐죽 내밀곤, 자신의 밀레니엄 복장이 들어있는 쇼핑백을 뒤져보더니.. 


[뽜바밤! 찾았습니다! 자켓 주머니 속에 있었어요!]


던전의 보물상자를 여는 것 마냥, 팔을 위로 뻗으며 '무언가'를 자랑스럽듯이 내밀었다.


"그건..지갑아니니?"


[맞습니다. 이 지갑안에는  60000크레딧이 있어요.]


"나와 반띵해서 사자는 그런 말이야?"


[네. '바이오 하자드 137'의 게임팩 가격은 120000크레딧. 서로 힘을 합쳐 반반 씩 지불하면... 선생님과 아리스 모두 만족할 수 있는겁니다!]


"그거 좋은 방법인걸? 아리스."


나는 그리 말하며 아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에헤헤...아리스는  인조단백질 피부가 따스해지는 이 행위를 너무나도 좋아합니다.]


"이 게임, 나중에 시간나면 같이 해볼까. 아리스?"


[선생님과 단 둘이서라면 아리스는 얼마든지 좋습니다.]


"아.. 내 말은, 게임 개발부의 모두와 같이 하자는 소리야. 벌써부터 애들의 반응이 예상되서 기대되지않아? 좀비가 갑툭튀하는 장면에 놀라 비명을 지르는 모모이라던가.. 겁이 많아서 게임을 하다말고 캐비닛으로 도망쳐버리는 유즈라던가 말이야. 아하하.."


[....]


"아리스..?"


너무 신나서 혼잣말을 떠들어버린 탓일까? 아리스의 대답이 들려오지않는다.


"그..아리스? 미안해. 나 혼자 텐션이 올라서 너무 떠들어버렸네..하하."


조심스럽게 아리스를 향해 고개를 돌려보니 -


"어..라?"


아리스는 고개를 반쯤 숙이고 눈꼬리는 축 처진채로, 자신의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심지어 눈에는 생기하나 보이지 않은 채.


....내가 혼잣말을 떠들은 것에 그 정도로 화가 난걸까.


뭔가 머쓱해진다.


"미안해. 아리스. 선생님이 흥이 올라서 그만.."


[ ?!선생님...?]


아리스는 그제서야 내가 자신을 보고있었다는걸 눈치챈건지, 당황에 빠져버렸다.


마치 부모님몰래 컴퓨터하다 걸린 아이처럼 말이다.


생기없던 눈에는 순식간에 생기가 돌아오고, 자신의 입술을 깨물던 그 행위는 한적 없다는것마냥 황급히 그만두었다.



[서..선생님. 지금 아리스에게 무슨 말 하셨나요?]


"내가 떠든 탓에 아리스가 화난게 아닌가싶었지."


[아니요! 아리스가 선생님에게 화를 낼리가 없습니다! 그야..소중한 분이니까요.]


"뭐야, 그럼 그냥 멍이라도 때리고 있던거야?"


[네! 맞습니다! 완벽한 로봇에게도 인간미있는 모습이 좋아보일꺼라 판단되어서..헤헤..]


"그런거면 다행이네. 하마터먼 선생님 간떨어지는 줄 알았다고."


나 때문에 화가난게 아닐까 걱정됐는데, 다행이도 그런건 아니였나보다.


하긴.. 아리스같이 세상 착한아이가 나에게 화를 낼리가 없지않은가.


그런데.. 고작 멍때리는걸로 입술까지 깨물어가며 그런 험상궂은 표정을 지을 수 있는걸까?


살짝 의문이 들기도 한다.


[모두와..같이..좋죠..]


"..그렇지?"


아리스의 목소리에는 살짝 기운이 빠져있었지만...


뭐, 괜찮겠지..?



.

.

.

.

.


계산대로 가기전에, 나와 아리스는 게임코너를 좀 더 구경해보기로 했다.


한참 FPS 게임코너를 보던 중이였을까.


"어? 선생님아니야? 그리고..아리스도 있네?!"


"여기서 만나게될줄은 몰랐네요. 선생님."


누군가들이 부르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이 목소리는 모모이와 미도리아닌가.


"안녕. 모모이. 미도리. 여기는 무슨일로 온거야?"


"저희야 뭐..평소처럼 신작게임들이나 탐방하러 왔어요."


"응응! 이렇게 선생님과 아리스를 만날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말이야. 이게 게임개발부의 인연이란걸까?"


"선생님은 아리스와 무슨일로 오신건가요?"


...여기선 아리스와 데이트하러온거라고 솔직하게 말해야할까?


근데 그렇게 사실대로 말하면...뭔가 내가 페도필리아같지않은가.


위험하다 이거.



[아리스는 선생님과 '데이트' 라는걸 하는 중입니다!]


"아, 아리스?!"


하지만 그런 내 마음과는 다르게, 아리스는 당당하게 이실직고해버렸다.


"에엑?! 데이트?!"


"...단 둘이 있는 것부터 그럴거란 예상은 하긴 했지만요."



[아리스가 원해서.. 선생님과 '데이트'를 하는거에요.]


"에에~ 부러워 아리스! 모모이도 선생님과 데이트해보고싶었는데 먼저 선수치다니~!"


"좋은 시간을 보내길바래. 아리스."


[....]


다행이게도, 모모이와 미도리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자기들도 나와 데이트 하고싶어 한달까.


그런데..아리스가 모모이가 한말을 듣고나서부터 얼굴을 찌푸리는 것만같은건 기분탓일까?


"그나저나 계속 궁금했던 건데 말야. 아리스. 지금 입고있는 그 하늘색 원피스는 뭐야? 너와 엄-청 잘 어울려! 게임 속 여신같다구!"


"..확실히 아리스 너와 잘 어울리는 옷이네. 어디서 구한거야?"


[칭찬 감사합니다. 모모이. 미도리. 이 옷은..선생님께서 직접 골라주시고, 사주신겁니다.]


"엑? 선생님께서 직접 사줬다고? 으으..뭔가 질투가 나는데.. 선생님. 다음에는 우리들과도 데이트해주면 안 돼?"


"너희가 괜찮다면야. 언젠가 해줄게."


[....]


또 다시 아리스의 얼굴에는 어딘가 화가 서려있는 듯 보였다. 어째서?


그리고 미도리도 이를 눈치채기라도 한듯, 순간 몸을 살짝 움츠렸다.


진짜 뭘까. 이 상황은?


"그..언니. 조금만 목소리를 낮추는게 좋지 않을까."


"미도리. 오늘 따라 왜 그렇게 소심하게 굴어? 사실은 너도 선생님과 데이트 해보고 싶잖아?"


"아니, 그렇기는 한데.."


"그럼 상관없잖아. 선생님. 저 쪽에 게임체험하는 곳이 있는데, 아리스와 선생님도 같이 껴서 해보자! 마침 게임도 4인용이니깐 인원 수도 딱

맞으니ㄲ - 으아아악?!"


"저희는 할게 있어서 먼저 돌아가볼게요. 선생님. 그리고.. 아리스도 좋은 시간보내고.."


미도리는 그렇게 말하며, 한 손으로 모모이의 입을 틀어막곤 끌고 가 순식간에 어딘가로 가버렸다.


[선생님. 모모이와 미도리도 갔겠다. 저희도 슬슬 계산대로 가볼까요?]


"아..그럴까?"


...이렇게 해맑은 웃음을 지어보이는 아리스를 보고있으니, 아까 전의 의문들 같은것도 전부 아무래도 좋아졌다.



-



"윽..켁! 숨막히잖아 미도리! 왜 이러는건데!"


"...언니는 너무 눈치가 없어."


"에엣, 뭐가?"


"아까 아리스... 우릴 매섭게 노려보던걸. 언니는 둔감해서 눈치못챘겠지만."


"헉..정말 그랬어?"


"그래. 그리고.. 원래 데이트란건 둘만의 시간인 법이니까.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 안되기도 하고."


"힝..그래도..아리스 너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