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더라면.

가족을 잃지 않았더라면.

총을 잡지 않았더라면.

평범한 사람과 만남을 가지고,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깨어나곤 한다.


"..안 좋아.."


요즘 아침이 되면 항상 느끼는 것. 역시 몸이 좋지 않다. 잔기침은 물론이요, 평소에 심할 때는 갑자기 정신을 잃기도 한다. 


..요즘 너무 몸을 혹사시켜서 그런가. 컨디션이 더 나빠진 것 같네..


"..분명 세..알이였지..?"


..기억력도 안 좋아진건가. 이건 그냥 내가 멍청한 걸 수도 있겠다.


알약을 입에 거칠게 털어놓고, 오늘 할 일을 머릿속에 상기시킨다. 그래봤자, 할 일이라곤 자료 하나 찾으러 돌아다니는 것 밖에 없지만. 

..그래도 이 몸뚱아리론 꽤나 귀찮은 일이긴 하다.


..어쨌든, 약도 먹었겠다 슬슬 일어나볼까.




"..오늘도냐.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어?"


"앗! 지휘관이다! 드디어 일어난거야? 점점 일어나는 시간이 늦어지네, 지휘관?"


옷을 갈아입고 대충 준비한 뒤 나가기 위해 문을 열면, 문 앞에서 항상 기다리고 있는 녀석이 있다. ..처음에는 진짜 깜짝 놀랐었지. 문을 열었더니 이 녀석이 코앞에서 방긋 웃고 있었으니.. 그래도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응. 요즘 자꾸 늦게 일어나게 되네. 잠이 많아져서 그런가봐."


"..몸이 안 좋아서 그런게 아니고?"


....내 몸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준 건 딱 두 사람. 이 녀석에게는 말해주지 않았다. 딱히 걱정을 끼치고 싶진 않으니까.. 하지만, 요즘은 숨기기도 힘들 정도로 많이 안 좋아져서 가끔 곤란한 상황이 생긴다. ..앞으론 더 힘들겠지.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 마. 오늘도 난 팔팔하다고?"


"..응! 지휘관은 항상 건강할거야. 그치? 언제나, 계속 내 곁에 있어줄거고."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응. 당연하지. 이제 슬슬 내려갈까?"


"그래! 그 전에.. 잠시만.."


..뭐 하려는.. 아.


"헤헤.. 지휘관 품. 역시 따뜻해.. 계속 이러고 있고 싶을 정도야!"


..귀여운 녀석이라니까. 

평소에 눈알이라든지, 손가락이라든지, 이상한 것들을 선물해 줄 때 빼고는 영락없는 어린애다. 인형이지만.


..어이, 킁킁 대지 말라고. 무슨 강아지냐.


"헤헤.. 이제 됬어! 내려가자, 지휘관!"


..왜 취해 있는 표정을 하고 있는거냐. 기분 나빠..




"..! 지휘관..! 괜찮은거야? 안 그래도 걱정되서 방에 들어가 보려고 했는데, SOP이 워낙 방해를 해서 말이야.. 어디 불편한 곳 없어..?"


..M16.. 비밀이라고 몇 번을 설명해줬는데도 아침마다 그렇게 반응하면 들킬 수 밖에 없잖아..


"우우! 지휘관이 곤히 자고 있는데 깨우고 싶지 않았단 말이야! 그리고 지휘관한테 그렇게 붙지마, M16!"


요즘 꽤나 질투가 늘었단 말이지.. 역시 어린애야, 어린애.


"M16한테 그러면 안되는거야, SOP."


"..지휘관은 M16만 좋아해.. 항상 M16한테만 잘해주고.. M16은 뭘 하든 믿어주고.."


..엄밀히 말해두지만, 난 그런 적 없다. 물론 M16을 가장 신뢰한다는 말엔 뭐라고 할 말이 없긴 한데, 그건 M16이 믿음직스럽기 때문에 그럴 뿐이지, 내 소대의 애들은 모두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넌 왜 저런 소리 듣고 얼굴 붉히고 있는거냐고..


"..무슨 소리하는거야. 물론 M16도 소중하지만, 난 너희들 모두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콜록."


..아, 이 느낌은 좀 위험하다.

분명 약도 먹었는데 왜..


"..지휘관..? 지휘관..!!"


"괜찮.. 콜록.. 괜찮아, SOP.

..M16. SOP2 좀 다른 애들한테 데려다 주겠어? 저 녀석, 분명 말로만 하면 절대 안 들어먹을 것 같아서 말이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엇.. 지금 이게 뭐하는 걸까. 분명 공주님 안기를 부탁한 적은 없는데 말이지..


"어차피 모두들 곧 알게 됬을거야. 지금은 지휘관 몸이나 걱정해."


"M16..! 빨리 설명해줘..! 지휘관이 어디 아프기라도 한거야..?"


..무린가. 여기서 발뺌하기도..


"..나중에 전부 설명해줄게. 지금은 잠깐 M4한테 가 있으면 안될까, SOP2? 지휘관을 위해서야."


".....꼭.. 전부 설명해줘야 돼. 알았지? 아래에서 M4랑, AR-15랑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의외로 쉽게 물러나 주는구나. 다행이라고 해야겠지. 

..결국.. 들키긴 들켰지만.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증상이 오래 갈까봐 걱정했는데 그래도 평소보단 일찍 가셨다. 아마.. 약을 먹어둬서겠지.

덕분에 꽤 금방 괜찮아지긴 했지만, 약을 먹은 직후였는데도 증상을 보인건 오늘이 처음이였다.

...큰일이네.


"..약은 먹은거야, 지휘관?"


"왜? 약이 써서 안 먹기라도 했을까봐? 그 정도로 어른스럽지 못하진 않아."


"...요즘 너무 걱정 돼. 지휘관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떠나버릴 것만 같단 말이야."


...떠날 때 미련만 남게, 정이 생겨버렸네. 오랫동안 같이 동고동락한 사이인데 생길 수 밖에 없긴 하지.

..적어도 나도, 이 녀석들에게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승천하고 싶진 않다.


내가 가는 모습을 이 녀석들에게 보여 주긴 더욱 싫고.


..그러고보니, 슬슬 말해줄 때도 됬나. 

M16한텐 미리 말해줘도 상관 없겠지.


"걱정 마. 네가 걱정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테니까.  


──여기를 곧 나갈 생각인데, 말도 없이 나가진 않을거야. 꼭.. 인사는 하고 갈거니까."


"..응? 지금.. 뭐라고 한거야, 지휘관..?"


..많이 놀랐겠지.

하지만, 마음은 이미 꽤 전부터 단단히 굳힌 상태다. 이 소대에 나도 정이 많이 들어버리긴 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그 동안 해보지 못했던 것을 해보면서 살아보고 싶다.

몸 상태가 악화되면서 모두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지금 떠나면, 이 녀석들에게 멀쩡히 서 있는 모습으로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겠지. 


죽어가는 것을.. 보여주지 않을 수도 있고.


분명 내가 떠난다는 것이 꽤 큰 상처가 될 수도 있겠지만, 차라리 내가 죽는 걸 보여주는 것보단 훨씬 나을거야.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누구나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 같지만.


"..말 그대로. 곧 떠날 생각이야. 아마.. 꽤 먼 곳으로 가겠지. 아직 목적지는 정하지 않았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걸 해보고 싶어. 기회가 된다면 멋진 남친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하.. 물론 당장은 아니니까 너무 우울해하진 마. 방금 말했듯이 갈 때는 꼭 말하고 나갈테니까."


..응. 곧 작별이구나. M16에게 말하니까 이제서야 좀 실감이 가는 것 같네. ..뭔가 기분이 이상한걸. 

M16도 많이 섭섭하겠지? 덤덤하게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ㄴ..




".....................대로 안돼.."


"..응? 잘 못 들었어. 다시 말해줄 수 있.."


..뭐야. M16의 상태가.. 이상하다.

...전장에서나 보던 눈빛이잖아. 소중한 사람을 잃고,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자들의 눈빛이다. 수도 없이 봐온 저 공허한 눈빛. ..하지만, 조금 다르다. 그 사람들은 잃어버렸다는 것에서 오는 고통에 의해 만들어진, 슬픔이 느껴지는 공허함이였다면, 저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공포를 담고 있는 눈빛이다.

.....왜, M16이 저런 눈을 하고 있는거야.


"..M16? 괜찮은거야? 상태가 안 좋아보이는.. 윽..?!"


끄...흑..!? ㅁ..목을.... 숨을.. 쉴 수가 없...어..켁...!


"........안돼.. 갑자기 이렇게 떠나버리는게 어딨어. 이건 아니잖아 지휘관.. 분명, 분명 내 곁에서 계속 있어주기로 했잖아. 절대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해줬었잖아. 근데 거짓말이였던거야..? 아니지..? 분명 또 잠깐 까먹었던걸꺼야. 응. 분명 그런거겠지. 아니, 그래야만 해. 지휘관은 절대로, 내 곁에서 벗어나지 못하니까. 

..이래도 떠나려고 한다면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곳에 지휘관을 묶어두고 영원히 나만 바라보게 할거야. 걱정 마. 내가 의식주는 다 해결해줄테니까. 지휘관은.. 지휘관은 그냥 나만 바라봐주면 되는거야. 그 이외의 것들은 아무것도 필요없어. M4도, SOP2도, AR-15도 전부, 전부!! 지휘관한텐 필요 없는 존재야. 오로지 나만 지휘관한테 필요한 존재라고. 그러니까.. 나만 소중하게 생각해줘.. 나만 진심으로 사랑해줬으면 좋겠어.. 지휘관의 그 병도 내가 전부 책임질게. 무슨 짓을 해서라도 괜찮아지게 해줄게. 그러니까.. 제발 떠나지 말고 내 곁에 있어줘.. 응? 지휘관. 날 떠나지 않을거지..? 내 곁에 계속 있어줄꺼지..? 빨리 대답해줘.."



.......도대체.. 이게 무슨... M16이 처음 만났을 때 느낄 수 있었던 그 듬직한 모습에서, 위화감이 들 정도로 많이 변했다는건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나한테 집착하고 있었던 거야..? 큭..!


"..케헥..ㅇ..이거 놔줘...! ㅁ..명ㄹ..읍..!!"


"..지휘관. 아직도. 나를. 떠나려는 거야?"


위험해.. 저항하지 않으면.. 죽을거야..!! 신뢰하는 동료의 손에 의해서 죽다니, 웃기지 말라고..!!


"..이젠 더는 못 참겠어, 지휘관.."


"읍..! 우웁.. 츄릅.."


..목이 졸리면서, 강제적으로 입술을 빼앗겼다. 숨을 쉴 수가 없어.. 정신이..


...황홀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소름끼치게 웃고 있는 M16을 마지막으로, 점점 내 시야는 어두워져 갔다.

..저렇게 행복해 보이는 표정은, 처음 봤어..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거야.. M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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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쨩한테 집착하는 45 보고 싶다. 누가 소설로 좀 써줬으면.. 나중에 2편 들고 올게. 봐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