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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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의 손에 의해 끌려간 곳은 아파트 상가

상가에 있는 검은색 차 하나

어제 서아와 같이 탔던 그 차와 똑같았다.

서아는 먼저 타라는 듯이, 차 문을 열고선 날 바라봤고

나는 별다른 군말 없이 차에 탔다.

".....얀갤백화점요."

"알겠습니다 아가씨."

차에 타고난 뒤 조금 늦게 나온 말

약간 뾰로통한 표정

또 기분이 상한 걸까.

".....왜?"

"..응?"

"왜 그렇게 빤히 봐? ♡"

창밖을 보는 서아를 무심코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쳤는데

날 보자마자 바로 나오는 저 미소를 보니

막상 아닌 거 같다.

"응? ♡"

"ㅇ, 음?"

"왜 그렇게 보냐구? ♡"

"그, 그냥..?"

"그으냐앙~? ♡"

살금살금.

먹잇감을 발견한 고양이처럼

살짝 입맛을 다시며, 천천히 다가온다.

"ㅇ, 왜?"

"웅~? ♡"

"왜 다가오는거야..?"

"그냥? ♡"

조금 흔들리는 차 안에서

중앙을 넘어

내 옆까지 바짝 붙고서는

다리 위에 올라타서

목뒤를 양팔로 감싸서 단단히 고정시키곤

애정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보려 해도

고정시킨 팔을 살살 흔들면서

한쪽 볼을 부풀리며 애교를 부리는 탓에 시선이 원래대로 돌아간다.

"히히..♡"

슬쩍 미소 지으며 내 가슴에 얼굴을 맞댄다.

"우웅......너무 좋다.....♡"

서아는 얼굴을 파묻은 채 오랫동안 비비다가

이내 두 팔을 풀고, 내 허벅지에 누워버렸다.

"에?"

"조금만 누울게? ♡"

"그래도..."

"어제는 지수가 누웠잖아~ 그래서 오늘은 내 차례! ♡"

....할 말이 없네.

그나저나...

"음~ 이대로 그냥 자버릴까아~♡"

"근데...서아야."

"웅? ♡"

"저..종이가방은 뭐야?"

아까부터 계속 신경 쓰이네...

"아~ 저거?"

"..응."

"열어볼래? ♡ 그럼 알 건데~♡"

바닥에 있는 종이가방을 끌어와서

안이 보이게 살짝 열었다.

"이건...?"

"응! ♡ 지수 교복! ♡"

안에 있던 건 내 교복.

바지, 와이셔츠, 넥타이, 조끼, 마이

모두 가지런히 정돈되어 종이가방안에 있었다.

"정리 잘했지? ♡ 그러니까 나 칭찬해 줘! ♡"

"어...어어..잘했어...

근데..내 교복이 왜 여깄어?"

"에이~ 왜 여깄냐니~ 다 너무 더럽잖아~"

교복이 더럽긴 했다

못 빤지 오래되긴 했으니...

..그래도 말이라도 해주지...이렇게 갑자기?

"옷 갈아입다가 지수 교복이 보여서 잠깐 봤는데

먼지 투성에~ 곳곳에 얼룩진 곳이 너무 많더라?

우리 지수가 저런 교복 입고 등교한다는 생각하니까 내가 너무 마음이 아픈 거 있지?

그래서 깔끔하게 세탁하기로 했어! ♡

지수가 깨끗한 교복 입고 등교하도록 지수 몰~래 종이가방에 넣어 왔지~♡"

"아..."

"세탁 맡길 테니까~ 그대로 두면 돼~"

"응.."

누운 채로 손을 올려 내 볼을 만진다.

악의 하나 없는 순수한 미소

서아한테는 너무나도 안 어울리는 미소다.

"오늘은 사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다 말해줘? ♡

오늘은 지수를 위한 날이니까~ 마음껏 즐겨! ♡"

"으..응..."

나에게 입힌 옷

세탁하려고 가져온 교복

그리고 이때까지 있었던 일들까지.

서아의 이 애정표현과 호의들

이런 애정표현과 호의들을 하나하나 억지로 먹어가며

어떻게든 서아한테서 살아남으려고 애쓴다.

불편하다

부담스럽다

거북하다

편하지 않다.

늘 서아가 그만해줬으면 했지만..

이번에는...무조건 다 먹어야 한다.

만약 하나라도 안 먹어서 서아의 기분이 틀어지는 순간에는

사람이 많은 곳이라도...전혀 신경 쓰지 않고 날 짓밟을지 모른다.

그런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최대한...최대한 서아의 비위를 맞춰주자.

말, 행동..모두 조심하자...그거뿐이니.

"으흠~ 우리 지수 배 말랑말랑해~♡"

그새 내 옷을 들춰서 배를 만진다.

여전히 멍으로 얼룩진 배

이렇게 만든 당사자가..아무 일 없었듯이 만지고만 있다니..

...너무해.

"아 지수야! ♡"

"응..?"

"교복 세탁하는 거~ 기대해도 좋다? ♡

처음 보면 아예 새 옷인 줄 알걸~?

지수도 보면 분명 깜짝 놀랄 거야!"

"그..그래..?"

"응! 그 세탁소가 엄청 잘하는 곳이거든!

그러니까~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고~

오늘은 나랑 재밌게 놀자~ 알겠지~? ♡"

"응..."

창밖을 바라봤다.

평범히 길을 걷는 사람들

시야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걸 반복하는 아파트들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하늘

늘 그래온..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이다.

오늘..서아와의 외출도 그랬으면 좋겠다

지금은...그저 내 손을 만지작거리며 가만히 있지만

밖에서는...서아가 어떻게 행동할지 모르니까...

그냥...

...제발 하루가 평범하게 지나갔으면..하는 소망이다.






"아가씨, 도착했습니다."

"....."

"아가씨?"

"ㅇ, 아! ...네!"

...진짜 자버렸네.

"죄송해요~ 깜빡 잠들어버렸네요."

"괜찮습니다, 천천히 일어나시죠."

"으...흠!"

서아는 내 허벅지에서 일어나, 천천히 기지개를 폈다.

누워있을 때 내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점차 말이 없어지고 조용히 있길래 신경 쓰지 않았더니..

결국은..진짜 잠들었네.

.....그나저나 사람 많은 번화가도..정말 오랜만에 오네.

..몇 년 만일까.

"내리자 지수야 ♡"

"아..응."

서아가 종이가방을 챙겨 먼저 내린 뒤, 나도 서아를 따라 내렸다.

차 문을 닫자, 서아의 손은 곧바로 내 손을 붇잡았고

싱긋 웃으면서 나를 이끌었다.

"오늘 재밌게 놀자? ♡"

"응.."

"아, 지수 여기 지리 알아?"

"지리..?"

하나도 모른다.

여기 주변은 아예 처음 보는 곳이라 알 리가 없다.

".....몰라."

"음~ 그렇구나?

그러면 나랑 꼭 붙어있어야 돼? ♡

길 잃어버리면 안 되잖아, 그치? ♡"

"응.."

내 손을 안 놓치겠다는 듯이 세게 잡고는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맞춰 걷는다.

"세탁부터 맡기자? 알겠지? ♡"

"응..."

그래...뭐 도망치더라도 길도 모르고..

설령 도망치는 걸 성공하더라도 서아가 따라올 거고..

그냥 서아가 가는 곳마다 끌려가야 되네.

...때리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세탁소에 들러서 내 교복을 맡긴 뒤

서아는 시간을 잠시 확인하더니, 날 또 어디론가 끌고 갔다.

백화점을 간다 했으니..뭐 아무 말 없이 따라갔지만

정작 서아가 도착한 곳은 카페였다.

"어..?"

"들어가자 ♡"

왜?

백화점 간다고 했으면서..왜 카페지?

""어서 오세요~""

카페에 들어오자 들려오는 종업원들의 인사말.

서아는 듣긴 한 건지 신경도 쓰지 않고, 두리번거리면서 앉을 자리를 찾는다.

"어디가 좋을까....아 여기가 좋겠다 ♡"

근처에 사람이 적고, 창가와 먼 곳을 찾고는

날 먼저 앉히고, 자기는 반대편에 앉아선 턱을 괸 채 날 바라본다.

이 모든 상황들이 당황스럽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기에.

"저기.."

"웅? ♡"

"백화점.....안 가?"

"응? 아아~ 백화점? ♡"

악동 같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계속해서 날 뚫어지게 쳐다본다.

"왜? ♡"

"..응?"

"가고 싶어? ♡"

"....."

"얼른 가서 나랑 데이트하고 싶어? 응? ♡"

..그런 건 아닌데...

"흠~ 나도 어서 지수랑 데이트하고 싶은데~

아직 열 시간이 안됐지 뭐야?"

"시간..?"

"응! 백화점도 열기 전에는 준비를 해야 되니까~

그러니까....한 15분 정도만 기다리면 되는데..밖에서 기다리기는 조금 그렇잖아?

그래서 카페로 들어왔지~♡"

"..그런 거구나..."

"왜? ♡ 막상 기다리니까 심심해? ♡"

"아, 아니..그...갑자기 카페로 들어오길래..."

"아~ 그래서 놀랐구나 우리 지수? 어쩐지 표정이 조금 놀란 거 같더라! ♡"

...그걸 즐기는 건지..아니면 진심으로 몰랐던 건지..

"그래~ 다음부터는 어디 갈 건지 말해줄게~ 알겠지? ♡"

"..응."

"자 자~♡ 그동안 뭐라도 마시고 있자! ♡"

테이블 옆에 꽂혀있던 메뉴판을 뽑더니

활짝 펼쳐서 내 쪽에서 보이게 돌려준다.

"뭐 마실래? ♡"

.....

메뉴가 너무 많은데...?

"...뭐가 너무 많아."

"괜찮아~ 천천히 둘러봐~♡"

"응.."

커피는.....쓴 게 싫고..

차는..살면서 아예 마셔본 적이 없고..

탄산음료도...탄산은 싫은데....

나머지 음료들도..다 처음 보거나 싫어하는 것들이고....

"........"

"고르기 힘들어?"

"아...응.."

"흠~ 그래?

그럼 내가 지수 입맛에 맞춰서 골라줄까? ♡"

.....그러는 게 낫겠지?

아무래도 계속 봐봤자 의미가 없을 거 같으니..

"....응."

"좋아~ 내가 골라줄게! ♡

어디 보자~"

메뉴판을 돌려 뭐가 있는지 훑어보곤

여유롭게 질문을 던진다.

"단 거 좋아하지?"

"..응."

"커피는?"

"쓴 거 싫어.."

"탄산음료 마시지?"

"안 마셔.."

부정적인 답을 할 때마다 조금씩 어두워져 가는 서아의 표정.

....뭐 별수 있나

사실이라 어쩔 수도 없는데.

"흠......."

....애초에 굳이 마실 필요도 없으니..

시간 보내다가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아 찾았다!"

"응..?"

"지수가 좋아할 만한 거 찾았어! ♡"

...바로 나오네.

"이거 이거! 밀크셰이크! ♡"

".....응?"

"밀크셰이크 마시면 되겠다! 지수가 좋아할 거 같아! ♡"

".....저기.."

"응? ♡"

"그게....뭐야?"

.

.

.

.

.

"에??"

".....응?"

"뭔지 몰라?"

"응..."

"진짜로??"

"..응."

전혀 모른다.

살면서 처음 들어보기도 하고..

메뉴판을 볼 때도 처음 보는 거라 얼렁뚱땅 넘겼다.

밀크는 우유겠고...셰이크는.....흔들거나 저어서 만드나?

"진짜 몰라?"

"응..."

"어......음....그렇구나..

그래도 마셔봐! 이거 맛있을 거야!"

...맛있을 거야? 확신이 안 들었는데...?

"...무슨 맛이야?"

"엄청 달아! 단거 좋아한다 했으니 분명 마음에 들걸? ♡"

....영 믿음이 안 가지만........

한 번....속는 셈 치고 마셔볼까..


한 번만 마셔보지 뭐..

".....응."

"응? 이걸로 할래? ♡"

"..그걸로 할게."

"알겠어~ 그럼 주문하고 올테니 잠시만 앉아있어야 돼? ♡"

".....응? 어어..갔다 와..."

주문...직접 가서 하는 건가?

보통은..종업원이 와서 하지 않나?

...모르겠다..평소에 놀러 나가지를 않으니..

...세상이 참 낯설다.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고....익숙하지도 않고...

...힘들어.

..모든 게 다 힘들ㄷ

"지수야! ♡"

"ㅇ, 어, 어..왔어?"

아니 잠깐만, 너무 빨리 온 거 아니야?

원래 이렇게 빨리 오나? 주문하고 온 게 너무 빠른데?

"으이구~ 우리 귀염둥이~~~♡♡♡"

"으아, 잠깐..잠깜만..."

순식간에 내 볼을 양손으로 잡고는, 반죽하듯이 만진다.

"으우으...으부으우....."

"아~ 귀여운데 귀여운 소리까지 내고 있네~♡"

볼을 만지는 게 아프지는 않다.

끊임없이 잡고 늘어지게 해서 이상한 소리가 계속 나오는 게 문제지.

"그후만...구마안...."

"알겠어 알겠어~ 그만할게~♡"

다른 사람이 볼 수도 있는데 이런 행동을 서슴없이..

밖에서는 또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조금 두렵다..

근데....손에 뭘 들고 왔네? 저게 뭐지..?

"그..서아야?"

"웅? 왜 불러? ♡"

"그...그건 뭐야?"

"응?"

"손에 쥔..그거.."

"아아~ 이거?"

손에 쥔 무언가를 테이블에 놔두어 보여준다.

"이게 뭐 일 거 같아? ♡"

"....하나도 모르겠어."

생긴거는..그냥 동그란...기계?

"흠~ 그래? 알려줄까? ♡"

별수 없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이걸로 알려준다? ♡"

"응...? 알려준다고..?"

"응! 알려줘! ♡"

...상상이 안되는데..?

"어떻게..?"

"직접 보게 될 거야 ♡"

...본다니..?

"자 자~ 이쯤에서 다른 얘기는 그만하고~

우리 오늘 뭐 할지 정리해 보자! ♡"

"..정리?"

"웅! 정리! ♡"

서아와 나는 데이트 계획을 정리했다.

사실 계획이랄 것도..서아가 일방적으로 데이트하자고 해서 한 거지...내 의견은 거의 없었다.

서아가 이렇게 하자고 하면..거기에 그냥 응이라고 답하면 되는 것일 뿐..

즉석에서 만들고, 반강제적으로 내 동의를 받으면, 그게 곧 계획이 되는 것이었다.

"지수 옷 사고..맛있는 거 먹고..둘이서 영화 보고..."

...많기도 해라.

오늘 안에 다 할 수 있을까?

"와~ 상상만 했는데 벌써 행복하다~ 그치? ♡"

"으, 응.."

"아~ 빨리 지수랑 행복하게 데이트했으ㅁ"

-우우웅! 우우웅!     /     "으엇!?"

"아, 주문한 거 나왔나 보다! 갔다 올게~♡"

서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진동이 울리는 동그란 기계를 들고 가버렸다.

".....주문..?"

동그란 기계에서..진동이 갑자기 울려서 조금 놀랐다.

게다가 진동....?

아 잠깐만.....그...설마..

알려준다는 게..이렇게 알려준다는 거였어?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양손에 잔 두 개를 들고 온 서아.

흰색 음료는 내 앞에 두고

핑크색 음료는 자기 자리에 둔다.

"맛있겠지? 엄청 맛있을 거 같지 않아? ♡"

생긴 거는...왠지 아이스크림 같다.

꾸덕꾸덕한 액체가..순식간에 잔에서 넘쳐흐를 것만 같고..

그 위에 아슬아슬하게 있는 시리얼이랑 과일까지..

그래도 맛은...모르겠다.

"..모르겠어."

"그럼 마셔봐 ♡ 마셔보면 알 거야 ♡"

"응.."

별로 기대는 안 들긴 하지만..마셔보지 뭐..

-쮸우우우웁...

"어때? 맛있지? ♡"

"으음....."

밀크셰이크를 마시고 한참이나 오물거렸다.

생크림처럼 부드럽긴 했지만..조금 뻑뻑하기도 했다.

게다가..서아가 말한 대로 진짜 달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달콤함을 여기에 쏟아부은 느낌이랄까..

"...맛있어."

"그래? 다행이다! 지수 입맛에 맞다니! ♡"

맛을 볼 때 묵묵히 기다린 서아는

역시 자신은 틀리지 않은 거처럼 여유롭게 미소 짓는다.

"맛있게 먹어~ 지수가 원한다면 더 사주고~♡"

"응.."

이게 완전한 액체는 아니다보니..빨아먹긴 조금 힘들다.

그래서 저어주면서 마시는 게 나름 편하다.

차가워서 그런지 머리랑 이가 얼긴 하지만.

-츄우웁...

근데 서아는 뭘 마시고 있는 걸까..?

핑크색 음료인데...살면서 저런 거는 처음 본다..

대체 어떻게 만들었을까?

과일? 핑크색 과일이 뭐 있지?

아니면 인체에 무해한..막 그런 거를 썼나?

"저...서아야.."

"응? 왜? ♡"

"아 그...뭐 마시나..해서.."

"아~ 이거? 핑크 레몬에이드인데? 왜?"

레몬에이드?

레몬이면..노란색 과일 아닌가?

레몬에 핑크색이 있었나..?

"그, 근데..왜 핑크색이야..?

레몬에이드는 노란색 아니야..?"

"음~ 내가 알기론 핑크색으로 만드는 시럽을 넣었을걸? 나도 자세한 건 몰라~♡"

"그런데..레몬에이드라면서 레몬이 없는..데?"

"아이 참~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서아는 빨대를 잡더니, 조용히 젓기 시작했다.

얼음과 빨대가 부딪히는 소리가 작게 나오더니

그 속에서 동그랗게 잘린 과일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 있지? 레몬 ♡"

"아...진짜네...."

참 세상엔..별난 게 다 있구나....

저런 걸 왜 만들었을까..?

맛을 내려고? 아니면..비주얼을 더 예쁘게 만들려고?

하긴...저 레몬에이드도..엄청 맑고 투명해 보여서...보는 사람들이 좋아하긴 하겠다.

"지수야! ♡"

"ㅇ, 어?"

"나도 그거 마셔보면 안 돼? ♡"

"어.....응..여기."

밀크셰이크를 서아 쪽으로 건네줬다.

근데..빨대가 내 거뿐인데..

"음~ 진짜 달아 보인다~♡"

"어...그..빨대가 하나뿐이라서..갖고 올까..?"

"아니? 빨대는 여기 있는걸? ♡"

그게 무슨 소ㄹ

-쭈우우우우웁...!! 쭈우우우우우웁..!!!

...............맙소사.

"아~ 너무 달다 이거~♡ 당뇨병 걸리겠다~♡"

"....."

서아는..빨대를 삼킬 수 있는 곳까지 삼키곤...정말 세차게 빨아들였다.

앞 부분만 살짝 물어도 될걸..목구멍이 허락하는 곳까지 삼켰다.

"아~ 왜 평소보다 더 단거 같지? ♡ 지수가 빨아서 그런가? ♡"

"....."

"이거 진짜 맛있다~ 다음에 또 사줄게, 알았지? ♡"

".....응."

그렇게 서아는 몇 번 더 마시곤, 다시 나에게 건네줬다.

다시 온 밀크셰이크를 마시고 싶지는 않았지만

서아가 계속 나를 바라보는 게..너무 신경 쓰여서..

결국 끝까지 다 마셨다.

....다음에는 절대 안 시켜야지.






"....."

"음~ 어느 게 좋을까~♡"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지수야! ♡"

"으, 응?"

"지수는 어느 게 예뻐? ♡"

"어.....그게...음...."

"정말~ 그렇게 고민만 하지 말고 골라주면 안 돼? ♡"

내가 골라야 하는 건...옷이 아니다.

내 옷도 아니고...서아의 옷도 아니다.

골라야 하는 건 바로...

수많은 브래지어들 중....서아에게 어울리는 브래지어..하나이다.

그렇다.

여기는 속옷 매장이다.

이게 대체..어떻게 된 일이냐면...





"지수야! ♡"

"응..?"

"우리 원래~ 지수 옷 사려고 백화점 온 거잖아~ 그치? ♡"

"그..그렇지?"

"근데....."

서아답지 않게 조금 뜸을 들인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이미 백화점 들어왔는데..?

"아..말하기가 조금 부끄럽네..♡"

"뭔...데?"

"나..내 속옷 먼저 사도 될까? ♡"

.......................? 내가 뭘 들은 거지?

"뭐..뭐라고...?"

"내 속옷..먼저 사도 돼? ♡"

"....."

내가 뭐라고 말해야 될까?

아니..아니 갑자기 속옷?? 그런 얘기는 아예 없었잖아?

왜?? 또 나한테 장난치려고 그러는 건가?

......일단 침착하자..침착. 무슨 얘기인지 물어보자.

"그...왜?"

"그게..지금 내가 차고 있는 브래지어가...좀 작아서..♡" 

"....."

진짜로 그런 건지...아니면 거짓말인지...내가 알 수는 없지만....

거부해야 된다. 어떻게든.

설령 가더라도..서아 혼자 들어가게 해야 된다.

아니 그 전에..정말 가게 되면....가는 걸 제일 뒤로 미뤄야 된다.

내가 어떻게..그...그 여자..속옷...매장을 들어가...

난 남자인데...거길...

"그.."

"웅? ♡"

"안..! 하아....."

....안 가면 안 되냐고...못 말하겠어.

혹시나 서아가 그걸 빌미로 날 때릴까 봐...

"응? 뭐라고?"

"그..."

그냥...제일 뒤로 미루는 게....최상이겠지?

".....내 옷..먼저 사면 안돼?"

".....흐음."

성공...했나?

아닌...가? 약간 침울해하는 거 같은데..?

설마...밖에서까지 그러지는 않겠지...?

"지수야."

"으, 응..?"

"그래, 만약 지수 옷을 제일 먼저 산다고 해."

"어...어.."

"근데...

내 가슴에 자국 남으면 어쩔 거야?"

.....?????

뭐......뭐???

"어어...무..뭐..??"

"자국."

"아니...자국..???"

"응."

내가 뭐라고...답해야 돼??

아니 가슴에 자국 남는 게 왜 내 탓인 거야?

아니 게다가...자국은 왜 나는 건데??

"그.......자국이...왜 나?"

"왜 나긴! 브래지어가 작으니깐 나지!"

아니 아니...그럼 그전에 그걸 샀으면 되는 거잖아??

그걸 왜 지금 와서 그러고...나한테 그러는 거야??

"내 예쁜 가슴에 자국 남으면 지수가 책임질 거야?

응? 게다가 나중에 지수도 만질 거잖아, 그럼 모양이 좋아야 지수도 좋아할 거 아니야!"

아니 나는 만진다고 한적 없는데???

게다가..그게 왜 내 책임인 거야??

"....진짜 자국이 나면.."

-푹.

"????"

갑자기 내 가슴에 얼굴을 기댄다.

방금 그렇게나 볼을 부풀리며 삐진 듯이 말했는데, 이번엔 또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지수가..."

"응....??"

"내 남편 돼서....책임져줘..♡"

"....."

"응? 그러니까...내..속옷 먼저 사자? 부탁할게? ♡"

.....이번에 서아를 보며 알았다.

난 평생 말로는..서아를 못 이길 거 같다고 말이다.





"....하아."

카페에서 시킨 음료를 다 마시고..

같이 걸어 다니면서..대화도 주고받으며 백화점으로 들어왔을 때는..아무 문제 없었다.

"흐음~ 어느 게 좋으려나~♡"

근데..에스컬레이터에 오르고 나서...

갑자기 속옷이 작다고 사러 가자고 한 거는...

진짜....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아무리 그렇지..그런 말을 서슴없이 하다니..

게다가 운이 좋아서..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지...

만약 다른 사람이 1명이라도 우리 얘기를 들었더라면...

.....더 생각하지 말자.

"지수는 어떤 걸 좋아할까~ 귀여운 거 좋아하려나~ 어른스러운 거 좋아하려나~♡"

문제는...결국..매장에 왔다는 거다.

서아가 좋아할 만한 답을 일부러 고른 것도 있긴 하지만..

나는 오더라도...서아 혼자 사고 나오는 걸 생각했다.

근데...서아는...





"지수도 들어와! ♡"

"아니 아니, 뭐?!?"

"왜 그렇게 놀라~ 어서 들어와~♡"

"아니 나는..남자인데..??"

"남자가 들어오면 안 되는 법은 없잖아~ 그러니까 어서~♡"

"아니, 잠깐만..나는 괜찮으니깐...! 서아야..! 서아야..!!"





".....하아...."

나를...강제로 끌고..속옷 매장에..

.....

빨리 나가고 싶다..

공기가...되게 답답하다.

..애초에 내가 있을 공간이 아닌 것도 있지만...

하면 안 되는 일을 했다는...그런 생각이 내 머리를 가득 채운다.

"지수야~♡"

"ㅇ, 응..? 불렀어?"

"그렇게 멀뚱멀뚱히 바닥만 보지 말고~ 어느 게 좋은지 골라주라~♡"

..서아 스스로 고르도록 유도하자.

어차피 나는 아는 것도 없고..계속 나한테 물어보는 것도 조금...그러니까..

"나...그...여자 속옷은 진짜 잘 몰라서...

그냥 서아가 좋아하는 거 사면..안될까?"

"흐음....그럴까?"

...통했나? 이번엔 진짜 통한 거 같은데..?

"좋아! 내가 지수가 좋아할 만한 거 고를 테니까! 지수는 나 어떤지 봐줘야 돼? ♡"

"어어..응..."

아니 근데..자기 속옷 사는 건데..왜 내가 보고..또 좋아해야 되는 거지?

"일단 이거 입고 와볼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

"으..응..."

서아가 브래지어 하나를 들곤 탈의실에 들어갔다.

서아가 나오면.........옷은 입고 나오겠지?

제발 윗옷 입고 나오면 좋겠다..보여준다 막 그러지 말고..

만약에....안 입고 나오면....

..일단 입고 나오면 좋겠지만......그냥 서아가 입은 거 보고..예쁘다고만 말하면 된다.

나는 어차피 서아가 어느 걸 입든지 관심도 없고, 보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으니....그냥 여길 빨리 나가는 게 목표다.

다행히 근처에는..종업원 빼고는 아무도 없는 게 좋네..

만약 매장 안에 손님이 더 있었고...그 사람들이 날 보면서 눈치까지 줬으면...

...상상만 해도 숨 막힌다.

-끼익..

서아가 나왔네...다행히 옷 입고..

"우으...."

"응...?"

"조금 작아.....가슴이 그새 더 커졌나?"

아니 아니...그런 소리를 왜 대놓고..??

"저기 혹시, 여기 측정할 수 있나요?"

"네, 측정 도와드릴까요?"

"아, 네."

..측정?

내가 생각하는....그런 거 아니겠ㅈ

-주르르륵..

종업원이 꺼낸 줄자 하나.

줄자를 들고선 서아 뒤로 간다.

"편안하게 서주시면 돼요."

"네."

그러더니...줄자를 쫙 펼쳐선 평평하게 서아의 몸에 대고는...!

.....

급히 고개를 바닥으로 내렸다.

-주르륵..주륵...주륵주륵..

펼쳐지고 접히는 줄자 소리

서아와 종업원의 대화

그 외에 잡다한 소리 등.

눈을 다른 곳에 두니 오히려 귀가 더 열심히 일을 하기 시작했다.

잊어버려라...잊어버려라 생각해도..순식간에 머릿속을 돌고는

아까 그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줄 뿐이었다.

끝난 줄 알고, 고개를 살짝 들었을 때 내가 본건

아직 측정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과

이제야 나를 봐주냐고 물어보듯이 미소 짓는..서아의 얼굴...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고 마음속으로 계속 되새겼다.

"손님께서는~ 아무래도 요새 브래지어가 작다고 느끼셨다 하셨으니..."

..끝났나?

"아, 그게 좋아 보이네요."

...끝났구나.

더 대화를 해도...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용어를 써가며 대화하는 바람에 이해는 안 되네.

컵..? 이라는 말도 쓰고....

...아예 그냥 모르는 게 나으려나.

"전 이게 좋은데 조금 작네요. 더 큰 게 있나요?"

"네, 잠시만요."

.....제발 빨리 사라.

입지도 않고 그냥 사줬으면...

"어...? 이게.....왜 없지?"

...무슨 문제가 있나?

"아...아무래도 여기는 없는 거 같네요. 잠시만요."

아니 잠깐만, 찾아온다고?

그말은 잠시 간다는 소리인....데.

.....갔네.

"....."

큰일 났다 큰일 났어.

둘만 있으니 무슨 일을 벌일지도 모르는데...

"지수야! 지수야! ♡"

둘만 남자 순식간에 날 부르는 서아.

왠지 표정이...뭔가 기대하는 표정인 거 같다.

"이게 좋아? ♡ 아니면 이게 예뻐? ♡"

양손에 든 브래지어 2개.

잘 보이게 들어주고, 계속 웃으면서 묻는다.

하지만 나는..

"...모르겠어."

여자 속옷에 대한 지식이 하나도 없다.

진짜 좋게 말해주고 싶어도..하나도 몰라서 답을 못해주겠다.

"흠....."

서아도 이제 포기...가 아니라

애초에 이런 걸로 포기할 만한 애가 아니지...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거 같다. 분명히.

"일단 입고 나올게? 앉아서 기다려~♡"

"응..."

-덜컥.

. . . . .

조용하다, 그것도 엄청..

들리는 거라곤...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랑...

탈의실 안에서 나는..소리뿐.

지금 여기는...우리 둘뿐이라..

서아가 탈의실 안이라도..말 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조용하네.

근데..그 종업원...아직 안...오네..

많이 늦ㄴ

"지수야..."

"ㅇ, 어? 불렀어..?"

"그...지금 뭐 해..?"

"그냥....앉아있어."

"그렇구나....

그.."

"응..?"

"탈의실 앞으로.....잠깐만 와줄 수 있어?"

탈의실 앞? 왜?

....왠지는 모르겠지만..일단 가볼까.....?

어차피 저기 안에서는 나한테 어떻게 못할 테니...

"....."

"왔어..?"

"..응."

"그...주변에....아무도 없지?"

주변....

발소리 하나는커녕, 누군가 웅성이는 소리 하나 안 들린다.

"응..."

"좋아 ♡"

-철컥!     /     좋다니..익?!?

순식간에, 잠금이 풀리곤

문에서 하얀 팔이 나와, 내 팔을 잡고서는

"으아아아..!!"

날 탈의실로 끌고 들어가 버렸다.

-쿵!     /     "아야야야....."

들어올 때 너무 순식간에 끌려들어 온 나머지...

벽에 머리를 조금 세게 박았다..

"괜찮아?? 많이 아파??"

"아...괜찮아....많이는 안 아프......?"

.....??? ?????

".....왜 그래? ♡"

"아...아니......잠시만..."

-철컥.

잠갔어??

"....히히..♡"

"서..서아야??"

"있지, 지수야? ♡

내가~ 지수가 좋아할 만한 속옷을 골랐는데~

다 너~무 예쁘고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란 말이야?

근데~ 한 가지를 못 고르겠어..♡"

"하...한 가지...??"

"응! 그러니까~ 지수가 골라줘 ♡

지수야! ♡

어느 게 나랑 제일 잘 어울려? ♡"

내가 골라야 하는 건

서아가 양손에 든 브래지어와

그 가운데, 서아가 직접 입은 브래지어 중

서아에게 제일 어울리는 브래지어 하나이다.

그렇다.

나는 서아의 함정에 걸러버렸다.







후기

오랜만에 쓴 거 치고는 후반부가 말아먹었지만 나름 만족.

이번 년엔 조금 더 잘 쓰고 많이 써보자.

브리온 vs 콩지 보러 가야징.


다른 작품들 링크

https://arca.live/b/yandere/24222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