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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커튼 너머로 햇살이 눈을 찔러왔다.


도저히 잘 수가 없을 만큼 밝은 아침햇살은 내게 어서 일어나라는 듯, 망막을 강타한다.


“으으…”


분명 멜리사와 늦은 밤까지 격렬한 정사를 나눴음에도. 활력이 샘솟는 몸. 작정하고 망상을 때려부은 몸이 아닐 수가 없었다.


“으으응… 데미… 안…”


혹여나 그녀가 일어났나 싶어 힐끔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보이는 아직 눈을 감고 잠꼬대를 하는 그녀가 보였다.


안겨도 딱딱함 밖에 느낄 수 없을 것 같은 이 품이 제 딴에는 아늑한 것인지 좀 더 파고들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그것도 문제다. 움직일 수도 없고 그녀의 알몸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침이 되어 같이 기상한 아랫도리도 껄떡이며 어젯밤의 연장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녀가 부부간의 관계는 주 1회라고 못박아 둔 것이니, 나는 그녀에게 신뢰받기 위해서라도, 지킬 의무가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아쉬움에 쩝하고 입맛을 다시고는 그녀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안긴 팔을 풀어내고 살금살금 침대 밖으로 기어나갔다.


서로의 땀과 체액이 묻은 온몸은 끈적끈적해 당장이라도 씻고 싶은 불쾌감을 선사했다.


대충 가운 하나만을 입고 욕실에 들어가 몸을 씻으며 생각했다.


‘이제 어쩌면 좋을까.’


막상 계약 결혼을 했다고 해서 마냥 안심할 수는 없었다.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작중에서는 남편을 비정하게 죽일 정도로 권력에 미친년이 아니던가.


‘마냥 계약결혼만 믿을 수는 없어.’


이대로 계약결혼의 신뢰성과 그녀의 성품을 믿으며 기둥서방으로 사는 것과 내 한몸 지킬만한 무력을 조금이라도 손에 넣는 것. 둘 사이를 저울질 해보았다.


‘말할 것도 없지’


판타지의 중세시대는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장 2년이 지나 외딴 곳에 집 한 채 지어서 호의호식 하며 평생을 산다?


‘평생 산적도 안 만나고, 몬스터도 안 만날 확률은?’


내가 판타지 세상을 안살아봐서 알 턱이 없었지만.


만약 만난다고 해도 호위만 믿고 사는 것보다 내가 직접 물리치는 것이 더 속 시원하지 않겠는가.


호위가 내 재산을 노리는 도적놈이 될 줄 어떻게 아는가.


‘폼도 살고 말이지.’


로판 작가들은 어차피 전투에는 공들이지 않는다.


대충 다 남주들이 소드마스터니 마탑주니 하면서 여주가 잡혀가거나 마수가 덮쳐 위험하면 절체절명의 순간, 단칼에 썰어버리며 폼나는 등장을 할 뿐.


그 많은 로판중에 검이나 마법, 금전력 셋 중에 아닌거 쓰는 놈을 본적이 없는 것 같다.


검도 멜리사를 처음 에스코트 할 때 처럼 알아서 잘 배우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연무장으로 향했다.


‘일단 혼자서 휘두르면 보정 생길지 혹시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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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진맥진한 멜리사는 해가 중천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텅 빈 침대에는 오직 나 홀로.


아픔을 호소하는 골반과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허리, 끈적하게 말라붙은 체액이 덕지덕지 붙은 몸이 어젯밤 열락에 절여진 꿈같은 기억에 현실감을 불어넣어줬다.


“데미안…, 데미안…?”


혹시나 근처에 있는 것인데, 아직 비몽사몽한 자신이 못 찾는 것일지도 몰라,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넓은 방 안에는 어디에도 그의 흔적조차 없었다.


‘왜… 왜 가버린 걸까… 혹시 나만 좋았던 걸까?’


불안감이 엄습했다.


저 혼자 멋대로 허리를 덜덜 떨며 몇번이고 몇번이고 극치에 달하고는 혼자서 의식을 잃다니. 자신과는 다르게 사실은 불만족스럽지 않았을까.


자신은 남편이라는 두 글자를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어쩐지 달콤한 사탕을 입에 문 것 처럼 입맛이 달았다.


과거 먼저 결혼한 영애들이 부인의 호칭을 달고 다과회를 열 때 들은 적이 있었다.


‘저 요즘 정말 우울한 거 있죠…’

‘어머, 어머, 무슨 일 이신데요?’


백작 부인이 된 친구가 한숨을 푹 내쉬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아니, 글쎄… 요즘 밤에 잠자리를 슬금슬금 피하더니. 요즘엔 메이드들을 은근슬쩍 건드리고 다니는 거예요! ’

‘어머나, 어머나 세상에!’


호들갑스레 반응하는 다른 영애의 모습에 그것이 뭐가 대수라고 속으로 코웃음 치며 듣고있었다.


‘글쎄 제가 질렸다고… 흑, 원래 정략결혼이라는 것이 다 그런게 아니겠느냐고…’

‘어휴, 정말 백작님 그렇게 안봤는데 정말 매정하시네…’


그때 나는 어떻게 생각했더라.

그래, 분명 나도 백작이랑 똑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제안했다. 백작의 사랑을 받지 못해 서러운 그녀에게.


‘까짓거 부인도 애인 하나 들이는 것은 어떨까요?’


그녀의 심정을 코빼기 만큼도 이해하지 못할 몹쓸 소리였다.


나도 그저 2년이 끝나면 서로 갈길 가는… 아이를 위해 내키지도 않는데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닐까?


“아, 아니야… 좋아한다고… 나만큼 아름다운 사람도 본 적 없다고 했잖아…”


혼잣말이라도 해서 애써 부정해 본다.


그래, 아니다. 그럴리가 없지않나.


사교계의 장미라는 칭호에 걸맞게. 자신의 앞으로 구혼장과 저 혼자 마음졸이며 멋대로 내 앞으로 날아드는 연서가 어찌나 많았던가.


귀찮아서 다 불태워버렸지만.


그딴 쓸데없는 남자들의 연서따위, 버려질 아까운 종이들을 불 지피는 데라도 쓰다니 얼마나 현명한 처사였던가.


“그럴… 그럴리가 없어…”


그를 찾아서 어젯밤 나에게 보여주었던 꿀처럼 달콤한 눈빛과 미소를 보지않으면 어쩐지 진정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종을 흔들어 시녀들을 불렀다.


이내 찾아온 시녀들이 문 밖에서 노크했다.


(똑똑)

-네, 아가씨. 혹시 어디 불편한 곳 있으실까요?


그래 일단 자신을 결코 떠날 수 없게, 계약서 따위는 찢어버리고 평생을 내 곁에서 살기를 꿈꾸도록 만들자.


‘일단은 가장 예쁜 모습으로 치장부터 하자…’


“별 건 아니고…, 내 남편 어디있어.”

-……네?


자신이 생각해도 싸늘한 어조였다.


‘이게 아닌데… 이때는 퍽 여유로운 어조로 목욕과 치장부터 부탁했어야 하는데…’


입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수습을 해야한다.


“아, 그게 아니고… 제가 지금 몸을 잘 못 가누겠어서요… 혹시 씻는 것과 치장을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드, 들어가겠습니다…


반드시 그에게 만전을 갖추고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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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은 근육을 혹사하며 점점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근육의 피로를 즐기며 검을 휘두르는 것에 심취해 있었다.


‘이거 진짜로 보정이 있네…’


저가 생각해도 이상하지만 검로가 떠오른다. 베면 벨 수록 능숙해지는 자신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구슬땀을 흘리고 몸을 움직이는 상쾌함을 느끼며 저택으로 돌아가던 중. 갑자기 데미안은 오한을 느꼈다.


직감이 경종을 울린다.

‘뭐지?, 대체 뭐지? 왜 이렇게 가슴이 서늘하지…?’


저 멀리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인들의 무리가 보였다.


그 중앙에는 시녀들의 시중을 받으며 미소짓는 멜리사.


‘뭐야, 표정이 왜저래…?’


한 떨기 꽃처럼 치장한 그녀는 무척이나 아름다웠지만.


그녀가 해사하게 웃고있으면 분위기가 봄볕처럼 따사로워야 할텐데.


서리가 내린듯 어쩐지 싸늘했다.


반응을 보면 무언가 자신에게 잘못이 있음은 명백했다.


‘내가 무슨 실수를 한거지?’


등줄기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정사 후 곁에 붙어있을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깨우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데미안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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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태는 저의 아는 동생이 저질렀다가 여친이 남으로 돌변하고 결국 눈물의 술잔을 기울인 적이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에피소드 입니다.


그러므로. 얀붕이 분들은 성행위 이후 쌩하고 씻으러 가버리거나 그러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얀순이면 몰라도 평범한 여친일 경우. 여친이 남이 되어버리는 중대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얀순이도 섭섭해 할만한 중대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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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3일 지난 글이 베라 왜 간건진 모르겠는데. 9편까지 나왔으니 더 보고싶은 분들은 아래 하이퍼링크로 들어가서 보시면 됩니다.


이 작가놈이 썼던 작품 링크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