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비속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예능을 보며 남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요즘도 저런거 믿는 사람이 있을까? 하긴, 내가 봐도 신기해 보이는데 뭐."

예능속에서 출연진들이 최면의 효과라며, 온갖 기괴한 포즈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차력쇼를 하고 있었다.


한적한 주말 오후, 남자는 자신의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그의 오른쪽에는, 한명의 여성이 앉아 있엇다. 그녀의 왼쪽 약지엔 남자의 것과 같은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여보도 저런 최면같은거 믿어?"

남자의 질문에 아내는 말없이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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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의 이른 아침.

남자는 작업복을 입고 출근을 서두르고 있었다.


그는 어느 빌딩의 시설관리를 맡고 있다. 

일은 힘들지만, 배우기 쉽고, 수요가 많아 이직도 쉬웠다.

고졸인 자신도 여느 대졸 사무직 부럽지 않게 벌 수 있었다.

덕분에 그는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아!,  ※@ 이 맞지?"


갑자기, 동년배로 보이는 여성이 자신을 붙잡는다.


"누구시죠?... 제 이름은 그게 아닙니다. 잘못 보신거 같은데요"


"내가 어떻게  ※@이를 잘못 볼 수 있겟어... 나야 나, 나 모르겠어?"

※@이라는 이름에 약간의 기시감이 느껴지는 남자였지만,

분명, 자신의 이름은 그것이 아니였다. 


얼핏 들엇던 일본의 '나야 나' 전화사기가 떠오른다.

알음알음 아는척을 하며 돈을 빌려달라, 송금을 좀 해달라는 사기수법이다.


남자는 


"포교나 사기꾼같은데, 사람 잘못보셧습니다"

다시 자신의 근무지로 향했다.


다음날.

같은시각의 출근길에서 남자가 어제 그 여성과 다시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 ※@ 아. 도대체 나한테 왜이러는거야.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는 네 여자친구잖아!"

남자는 어이가 없었다. 결혼도 한 마당에 왠 얼굴도 모르는 여자가 자기한테 '여자친구'라 말하고 있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정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하아...알겠으니까. 잠시 자리를 옮기죠"

이대로 내버려뒀다간, 집까지 찾아올지도 모른다. 적당히 구슬려서 보내고, 여차하면 경찰을 불러야겟다 생각하는 남자였다.

회사에는 약간 출근이 늦을것 같다고 전화를 하며, 근처 커피숍으로 향하는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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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당신의 말을 정리하자면. 내가 당신과 10년 가까이 사귀엇고, 어느날 내가 갑자기 사라졋다는거죠?"

미쳐도 이렇게 단단히 미친년이 없었다.


남성은 곧 결혼 3주년을 맞이한다. 고졸이다보니 이른 나이에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지금의 아내와 20대 중반에 결혼하였다.

아직 30살을 넘지 않았지만, 그는 어엿한 유부남이였다.


이 미친 여자 말대로라면, 자신은 고등학교때부터 연애를 해왔다는 소리다. 그것도 아내 몰래 말이지.


"하.... 더 이야기 들어볼 것도 없겟네. 경찰 부르기 전에, 서로 갈길 갑시다."

남자는 괜히 시간만 버렸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여기. 이 사진좀 봐바"

여자는 대학교 졸업엘범을 꺼냈다. 몆년 전 만들어진 졸업앨범을 펼쳐서, 남자의 앞에 들이밀었다.


거기에는, 남자와 흡사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 있었고, 밑에는  '※@'  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와... 신기하네요. 이러면 저랑 헷갈릴만도 하죠. 하지만 전 고졸인걸요. 대학교는 가보지도 못했어요"

남자는 신기한 듯 졸업앨범을 쳐다봣지만, 떠나는 발걸음을 멈추진 않았다.



떠나는 남성의 등을 향해, 여자가 소리쳤다


"당신, 어느 고등학교 나왔죠?"

여자의 주장대로라면, 남자는 이 여자와 고등학교때부터 연애를 해왔다.

나온 고등학교마저도 확실히 다르다면, 이 남자는  ※@ 가 아니다.


하지만


"어......그....."

남자는 그 질문에 어물쩡 거리고 있었다.

아니, 대답하지 못했다.


"그게....제가 나온 고등학교는요....어...."

왜냐면


"제가.......어느 고등학교를....나왔죠?"

남자는 자신이 나온 고등학교가 어딘지 알 수 없었으니까.


여자는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당신, 지금 아내와는 언제 만났죠?"


"3년... 결혼한지 3년 되었어요"

남자는 머리가 아픈지, 관자놀이를 부여잡고 있었다.


"어디서 아내를 만낫죠?"


"어....그게...."


"아내와 결혼기념일은 언제죠?"


"그러니까... "


"결혼하기전엔, 어디서 살앗죠?"


"저기.... 사는곳이...."


"당신.... 도대체 누구랑 결혼한거죠?"


남자는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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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이상했다. 남자는 어제 아내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저번주 저녁에 먹은 반찬이 무엇인지 기억했지만

3년 이전의 기억이 전혀 없었다.


단순히 옛날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 정도가 아니다.

어릴때 자신이 살던 곳, 친했던 친구, 아내와 만나게 된 경위, 부모님등 모든것이 기억나지 않았다.


남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자 아내가 이상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본다.


"여보? 왜 벌써 들어와. 회사는 어쩌고"


"저...저...그.....그게...."

남자는 약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왜 그래. 무슨일 있었어? 여기좀 앉아봐바."

아내는 남자를 식탁 앞 의자에 앉혔다


"그게.... 뭐냐면...저기....."

남자의 동공은 목적지를 잃은 채 흔들리고 있다. 식은땀이 비오듯 흐른다.


"어디 아파? 119 부를까?"

자신의 용태를 걱정하는 아내에게 남자는 드디어 말을 꺼냈다.



"너.......도대체 누구야?"

남자의 질문에 아내는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식탁에 항상 올려져 있던 양초에 불을 붙인다. 은은한 아로마향이 퍼져나간다.


"나.여기서 살기 이전의 기억이 없어, 내 부모님의 얼굴도 떠오르지 않아"

남자의 동공은 아직도 목적지 없이 흔들리고 있다.


"여보, 진정하고. 여기좀 봐"

아내는 횡설수설하는 남자의 손을 붙잡는다.


"난.. 당신이랑 어떻게 만낫는지도 잘 모르겟어, 여기 언제 이사왔었지?"


"여기좀 보라니까"


"우리 결혼식은 했엇나?. 내 이름은 뭐지?,,,내 이름은... 내 이름은... " 

그의 머릿속엔  ※@ 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하지만  ※@ 를 어떻게 발음해야할지 모르겠다.

※@ 라니, 애초에 읽을 수 있는 글자가 아니였다. 분명 아까 만났던 여잔  ※@ 라 불렀는데...





"여길 봐"


어느샌가 남자의 앞에 아로마 향초가 있었다.

갈곳을 잃엇던 남자의 눈동자가 이내 불꽃을 바라보고 있다.


"..."

입을 벌린채 멍하니 향초를 바라보는 남자에게 아내는 말을 이어간다


"여보는, 고아엿기 때문에 부모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거야"


"나는 고아... 부모님...몰라"


"그래 맞아, 우리는 결혼했지만, 사정이 어려워서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어"


"결혼식은, 하지 않았지"


"여보는 함부로 남한테 개인정보를 알려주면 안돼, 이상한 사람은 무시해"


"모르는 사람은...무시해"


"그리고 우린, 다음주에 이사갈거야. 내가 많이 아파서, 요양이 필요해"


"내 아내는, 이사가서, 쉬어야해"


"오늘 회사에 출근해서, 사직서 내고와, 아내가 아프니까, 바로 집으로 와"


"사직서 내고, 바로 돌아올게"


남자는 비틀거리며 현관문을 나섯다. 그는 사직서를 내고 바로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애초에 최면이라는건 TV쇼에 나오는 것처럼 만능이 아니다.

기억을 없에는게 아니라, 잠시 잊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날짜나 장소같은 구체적인 암시는 애초에 걸 수 조차 없다.

차라리 '모른다', '하지 않는다', '아내가 아프다' 같은 단편적인 사실을 주입하는게 효과적이다.

나머진 이 사실에 근거해서 논리적으로 '설득'시키는 것이다.

그나마 그녀가 재능이 있었기에, 그의 이름을 개명시키고, 혼인생활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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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시골 읍내, 20대 후반의 신혼부부가 이사를 왔다.

평균연령이 40대를 넘어가는 지역에서 오랜만에 찾아온 젊은 외지인이였다.


그들은 다른 주민들과 과거의 이야기를 잘 나누지 않았다.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햇는지, 어쩌다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등등..

주민들은 '사연이 있것지' 라며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저 배관공을 하는 젊은 남편이, 막힌 변기나 시원하게 뚫어주면 그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