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경비병을 사랑해버렸다 (62)

 

 

 

 

 

124.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그야 뭐, 임신하고 이 녀석을 낳을 때까지 하나도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베오우른은 약속을 지켰다. 

 

그 녀석은 드로비우나의 존재를 어디에도 알리지 않겠노라 맹세까지 했다. 

 

아마 왕족 문제에 엮이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겠지.

 

아무튼, 내게 가족이 생겼다. 나를 쏙 빼닮은 딸이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말이지…….”
 
“빼애애애애액-!!”
 
아아, 죽겠다.

 

아기라는 것들은 원래 이렇게 시끄러운 건가?

 

거의 30분 단위로 우는데, 쓸데없이 목청만 커선 귀가 아파 죽겠다.

 

애가 태어나면 그저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틀린 모양이다.

 

젖을 먹이고, 등을 두들기고, 달래주고, 재우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하루 종일 내 시간이 없다. 지금도 나는 한 손으로 드로비우나를 달래고 있다.

 

“제발 그만 울어……이러다 다 죽어……!”


“빼애애애액!!”


“차라리 혼자 살 때가 좋았어……윽.”


아마 나는 어딘가 잘못된 걸지도 모른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자기 자식을 사랑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나는 이 쥐방울만한 악마 녀석이 벌써 싫어졌다.

 

쓸데없이 울고, 똥 싸고, 괜히 귀찮게 하고.

 

외로움을 느낄 시간조차 없이 나를 들들 볶는다.

 

“안 되겠어.” 

 

이대로 가면, 나는 죽는다.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죽는다.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묘수를 찾아냈다.

 

그건 바로 마을 아낙네들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성녀라는 호칭까지 가진 내가 고작 마을 아줌마들한테 손을 빌린다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한 시간만이라도 더 잘 수 있다면 악마랑 거래할 수도 있었다.

 

아낙네들은……음……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즐거워했다.

 

“아이고오! 이렇게 예쁘장한 애기는 처음 보네 그려!”


“성녀님을 닮아서 머리색도 요상하네, 그치?”


“꽃처럼 밝으니 좋구먼 뭘! 성녀님, 저희가 다 가르쳐드릴 테니까 걱정 붙들어 매십쇼!”

 

“어……으응…….”


그 후, 나는 마을 아낙네들에 특훈을 받았다.

 

“성녀님, 애기는 그렇게 눕히면 머리가 주저앉아요.”
 
“엥? 어떻게 머리가 주저앉아? 그게 가능해?”


“가능하니까 말씀드리죠. 그리고 애기 똥 색깔이 검거나 희면 바로 말씀하세요!”


“어……그러니까……그게 가능한가? 어떻게 똥이 흰 색일 수가 있어?”


“그리고 안으실 때 그렇게 안으면 목이 뒤로 젖혀요! 이렇게, 네? 이렇게 안으세요!”


이 아이를 기르는 게,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도전이었을 것이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걸 배우고, 많은 걸 연습한 적은 없었다.

 

그야 대충 치료만 해줘도 돈이랑 먹을 것을 갖다 줬는데, 이젠 스스로 아기를

 

돌봐줘야 하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며칠, 몇 주를 그렇게 고생하고.

 

어느 날, 네가 햇볕을 받으며 자는 모습을 봤다.

 

“……코오…….”


“…….”


작고, 희고, 부드러웠다.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 뺨, 솜털 같은 머리카락, 조그마한 손발.

 

눈을 감으면 너의 숨소리가 들렸다.

 

이마에 코를 대면 달콤한 우유 냄새가 났다.

 

너를 품에 안으면, 그 작은 심장이 얼마나 세차게 뛰는지 느껴졌다.

 

“사랑해, 우리 딸.”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았던 내가, 널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게 사랑이구나.

 

그렇게, 나는 그제야 널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다.

 

 

 

 

 

125.

 

“엄마아아아-!!”


“시끄러워! 이 망할 딸내미!”


“딸한테 망할 딸내미라니, 너무해!”


“거북이 밥 줄 때는 귀찮게 하지 마!”


그렇게 몇 년이나 지났을까.

 

나는 많은 걸 잊었다. 일기를 다시 읽어봐도 이게 정말 있었던 일이었나 싶었다.

 

베오우른은 기억이 났다. 근데 라비스는 누군지 모르겠고, 그 아낙네들도 잊어버렸다.

 

참 이상한 일이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기억이 깔끔하게 도려내진 느낌이었다.

 

“그게 아니라! 손님 왔어, 손님!”


“또 환자야? 오늘 쉬는 날이라고-”


“그게 아니라, 웬 예쁜 사람이 왔어!”


예쁜 사람?


그게 누구인가, 궁금해서 밖으로 나가보니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안녕, 플로라. 날 잊지 않았나 모르겠네.”


“……에……뉘신지?”


“어머, 날 잊었니?”
 
“농담이야. 오랜만이네, 에스티아.”


에스티아가 마지막으로 여기 찾아온 게 언제였지?


역시 기억나질 않는다. 


“그래……저 아이가 네 딸이야?”


“드로비우나. 이름 제대로지?”


“……음…….”


“뭐야, 그 표정은!”


아무튼 우리는 오랜만에, 함께 차를 마시기로 했다.

 

에스티아는……변한 게 없었다. 원래 마녀는 거의 늙지 않으니 말이다.

 

“뭐하고 지냈어?”


“항상 그렇듯, 아이들을 돌보고 있지.”


“근데 너 진짜 대단하다……나는 저거 하나 키우는 것도 장난 아니던데…….”


“후후, 원래 육아는 어려운 법이야.”


“어려워? 그냥 어려운 게 아니고 토 나오게 어려워!”

 

“그래도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네, 플로라.”


“……뭐……조금은 행복해. 아주 조금.”


왜 이런 말을 하는 게 부끄러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도 참, 나잇값을 못한다.

 

“실은 너한테 부탁을 하러 왔어.”


“어디 아파?”


“으응, 그건 아니고. 음……너한테 의견을 물어보러 왔다는 게 더 나은 표현일까?”


뭘 불어보러 왔다는 걸까, 조금 궁금해졌다.

 

“아이들을 돌보면서 깨달은 게 있어.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말이야.”


“이대로는 안 된다……?”


“응. 마녀들은,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찾아야 돼.”


에스티아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각오, 혹은 결의.

 

그런 것이 깃든 얼굴이었다.

 

“마녀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하고, 학대받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


“흠……그거야 뭐, 너나 나처럼 운이 좋은 경우를 제외하면 그렇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니? 마녀가 되길 선택한 적도 없었던 우리가, 어째서-”


어째서 이런 혹독한 처우를 감내해야만 하는지.

 

그녀의 목소리는……듣기 힘들 정도로 가라앉아있었다.

 

“얼마 전에, 또 다른 아이를 부탁받았어.”


“이번엔 어떤 아이인데?”


“세크메트라는 아이야. 몸에 닿은 걸 폭파시키는 마법을 지녔어.”


듣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 녀석은 십중팔구, 마녀가 되자마자 살해당할 뻔했을 거라고.

 

……아니면 그녀 자신이 누군가를 죽였을 거라고.

 

“그 아이의 아버지는- 세크메트를 죽이려고 했어. 적어도 시도는 했지.”


“하지만 실패했고?”


“실패한 건 아니야. 결국 죽이는 걸 포기했으니까.”


제 손으로 자식을 죽인다.

 

지금의 나는, 그게 얼마나 어렵고 비극적인 일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맨정신으로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인간은 몇 없을 테니까.

 

“그 아이는 믿고 따르던 아버지가, 자길 죽이려고 했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

 

“…….”


“나는 더 이상, 이런 비극이 반복되길 바라지 않아.”


“하지만 뭐 어쩌려고?”


“아직은 모르겠어. 하지만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그 때가 오면…….”


“도와줄게. 정말 그 방법이 통한다는 가정 하에 말이야.”


“……고마워, 플로라.”


에스티아는 내 대답을 들은 뒤, 곧 돌아갔다.

 

……사람은 언젠가, 사랑하는 걸 스스로 상처 입혀야만 하는 순간이 오는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때가 됐을 때.

 

나는 그런 상처를 입힐 수 있을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126.

 

드로비우나는 금방 성장했다.

 

이런 못난 엄마를 두고서 혼자서도 잘 자라줬다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엄마- 오늘 저녁은 뭐 먹어?”


“그러게. 대게 먹을까?”


“웩, 대게 질렸어! 이 망할 바다엔 왜 물고기뿐이냐고!”

 

“그럼 바다에 물고기가 살지, 불고기가 살진 않을 거 아냐?”


“……그거 농담이라고 한 거면, 진짜 최악.”


“너무하네-”


나는 이런 날을 사랑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딸과 함께 해안을 산책하는 날을.

 

눈이 오는 날에는 둘이서 마루에 앉아 눈 구경을 하던 날을.

 

비가 올 때는 정원에 사는 개구리들이 우는 소리를 듣던 날을.

 

너와 함께라면, 이토록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아, 엄마! 나 잠깐 골드만 씨한테 갔다 올게!”

 

해안을 거닐던 중, 드로비우나가 뛰쳐나가며 말했다.


“응? 갑자기 왜?”


“저번에 빌린 물건 돌려주러 가야 돼! 잠깐이면 되니까, 기다려!”


“천천히 와-”


드로비우나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바위 위에 앉았다.

 

“후아……잠깐 눈 좀 붙일까…….”


그렇게 잠깐 낮잠을 자던 도중.

 

……불행은 갑자기, 어부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서……성녀님……! 아씨께서, 아씨께서!!”


“뭐?”


부리나케 달려갔을 때, 상황은 이미 끝나있었다.

 

드로비우나는 배가 갈라진 채 누워있었다.

 

어째서? 라고 생각해도 답을 알 수가 없었다.

 

“드……드로……아, 아아, 아아아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드로비우나의 상처를 치유했다.

 

하지만 부상이 워낙 커서, 마법을 써도 쉽사리 낫질 않았다.

 

죽는다.

 

내 딸이, 내 하나뿐인 딸이, 죽어버린다.

 

“어, 어째서……누가……누구야……! 누가 이딴 짓을 했어!?”


“나다.”


내 외침에, 어부들이 웬 남자를 끌고 나왔다.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어부들 중 한 명이었고, 가끔 보는 얼굴이었다.

 

“큭큭……딸이 죽으려고 하니 꼴이 볼만하군.”


“너!! 내 딸한테 왜 그랬어!? 당장 불지 않으면 혀를 뽑아버릴 테다!!”


“그럼 당신은 왜 우리 어머니를 치료해주지 않았어?”


어부의 외침을 듣자마자,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의 어머니는 죽어가고 있었다. 노환 때문이었다.

 

노환으로 인한 죽음은 나도 어찌할 수 없었다.

 

수명이 다해서 죽는 것은 치료할 수 없다,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어머니가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데, 너는 어쩔 수 없다며 시도조차 안 했지!”


“그……그럼……그럼 나한테 그러지……왜……왜 내 딸한테……!”


“당신도 가족을 잃는다는 게 어떤지 보여주려고 했지.”


어부가 씩 웃으며 말했다.

 

“빌어먹을 마녀 같으니. 저주받아라, 너희 둘 모두.”


그 남자는 곧장 처형당했다. 어부들이 바다에 빠트려 죽였다.

 

하지만 드로비우나가 죽을 뻔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내 탓이었다.

 

내가 마녀인 이상, 드로비우나는 언제든지 살해당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편지를 썼다.

 

드로비우나는, 내 곁에 남아있어선 안 됐으니까.

 

 

 

 

 

127.

 

그는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보다 많이 늙어있었다.

 

하긴, 그게 거의 15년 전의 일이었으니 당연했다.

 

“오랜만이야, 베오우른.”


“날 잊지 않았군.”


“어째서인지 당신만은 잊을 수가 없더라고.”


“편지는 읽었다만……정말 그래도 되겠느냐?”


“돼. 아니, 그래야만 해.”

 

잠시 후, 병사들이 내 저택에서 드로비우나를 끌고 나왔다.

 

“이거 놔! 당신들 누구야!? 엄마! 이 사람들 좀 어떻게 해줘!”


“드로비우나.”


마지막으로, 나는 너와 작별해야만 했다.

 

너는 충분히 자랐고, 내 곁에 있으면 위험했고,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했으니까.

 

“여기 이 사람은 네 아버지……음, 국왕 전하이신 베오우른이야.”


“뭐?”


“이제부턴 이 사람이 널 지켜줄 거야. 확실하게, 말이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납득되게 설명해! 왕? 아버지? 그게 갑자기 무슨-”


“베오우른, 부탁할게.”


“음.”


그가 손짓하자, 병사들이 드로비우나를 끌고 마차로 향했다.

 

“놔!! 엄마, 엄마!? 설명을 해줘! 이……이렇게 헤어지는 건 싫어……!!”


“…….”


설명해봤자 너는 납득하지 못할 거야.

 

그러니,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널 지키기 위해선- 널 다치게 할 수밖에 없어.

 

“엄마!!”


“안녕, 드로비우나.”


마차의 문이 닫히고, 목소리가 그쳤다.

 

“정말……이걸로 괜찮겠느냐?”


“괜찮을 리가 없잖아.”


나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게 최선이야. 베오우른, 저 아이를 지켜줘.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는 이미 짐의 맹세를 받았다.”


“그랬지. 응……그랬네.”


아마 드로비우나도, 베오우른도, 이게 마지막으로 만나는 것이리라.

 

그리고 언젠간 전부 잊어버리겠지.

 

“인간은, 마녀와 함께 살 수 없어.”


“…….”


“그러니 인간인 네가, 드로비우나를 지켜줘야 돼.”


“최선을 다하마.”


“응.”


마차도, 왕도, 너도 떠났다.

 

그리고 나는 또 혼자가 됐다.

 

아마 이마저도 전부 잊어버리겠지.

 

이 일기도, 너도, 이 슬픔마저, 이 추억마저. 전부.

 

그렇더라도.

 

네가 행복하면, 네가 안전하다면 그걸로 충분해.

 

……안녕.

 

내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나의 딸아.

 

 

 

 


128.

 

“……이게 마지막 일기야.”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이상한 사람처럼 보였던 그녀가……얼마나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지 몰랐다.

 

그리고 공주님도, 이런 슬픔을 참고 살아가고 있었다.

 

“비극적인 일이지만, 공주님한테는 오히려 잘 된 일이었어.”


“그래도-”


“우리의 일이 아니야.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마.”


아가씨가 내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린 인간에 불과해. 그 모든 비극들을 어찌할 순 없어.”

 

“알고 있습니다.”


“……얀센.”


스윽-

 

하고, 그녀가 내 머리를 끌어당겼다.

 

“만약, 날 위해서 나를 상처 입혀야만 한다면……어쩔 거야?”


“……모르겠습니다.”


“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 내가 널 상처 입히는 일은, 결코 없을 거야.”

 

가깝다.

 

아가씨의 숨결이, 목소리가 너무 가까웠다.

 

“플로라한테 공주님이 유일한 사랑이었던 것처럼…….”


“…….”


“……너는 내 유일한 사람이니까.”


우리는 조금 더, 그렇게 있었다.

 

그저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을 곱씹으면서.

 

나는 아가씨와 함께 있었다.

 

 

 

 

 

 

 

 

 

 

 

인기가 없어서 좋은 점도 있다

그건 바로 글을 못 써도 악플은 거의 안 달린다는 거지...

그래도 꾸준히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겨우겨우 연재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