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오랜만에 만난 얀순이가 귀찮게 군다. - 얀데레 채널 (arc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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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결과, 얀순이는 모르는 자기의 흑역사가 생성되었다.

크큭. 그녀석은 모르겠지.




내일은 일요일이기에 같이 또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얀순이 측에서 먼저.


어제 만났는데 굳이? 라는 생각이 없던건 아니었지만 인간관계에서 거절은 흔히 일어나선 안되는 것임을 감안해 차마 거절하진 못했다.



카페로 가는 버스정류장.

도착까진 12분이나 남았다.

잠깐 편의점이나 들렀다 가는것도 나쁘지 않을거 같다.


편의점에 들어서서 초콜릿과 녹차음료를 고르고 계산하려는데...


"아? 어?! 어어?!?!"
지갑이 없다.

급한대로 삼성페이를 켜보려 했으나 얼마전 폰을 바꿔 삼성페이 등록은 되어있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하고 나가려는 순간.


"제가 대신 결제할게요."

"네...?"


쿨하게 카드를 계산대에 건네는 누군가.


"얀진..?"

"가자."

카드를 되돌려받고 내 손목을 잡아 편의점 밖으로 이끄는 얀진.


그녀와는 고등학교때 처음 만난 사이다.

한번도 같은반은 된적이 없지만 같은 독서동아리였어서 꽤 친했었지.

하지만 한동안은 연락이 없었는데...


"고마워 얀진아. 돈은 나중에 내가.."

"아니. 됐어. 어디가는길이야?"

"아..친구 만나러 카페가고 있었어."

"같이 가자."

"뭐어?! 여사친 만나러 가는 길인데?!"

"너 걔랑 사귀는 사이도 아니잖아."

"그건 그런데..너가 어떻게알아?"
"너 얼굴 보면 견적 나오지. 풉. 변한게 하나도 없네..가자."


방금부터 조금 불편했던, 얀진이에게 붙잡힌 손목을 풀고 정류장으로 향했다.


"몇번타?"

"512번."

"곧 오네. 아, 저기 온다."

"근데 꽤 먼데 괜찮겠어..?"

"나 시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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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진이와 도착한 카페에 얀순이는 없었다.

시간을 보니, 우리가 10분 일찍 도착했다.


얀순이가 좋아하는 카푸치노를..

"아, 돈 없지."

"새끼. 지갑도 두고다니고~ 정신을 어디다 팔아먹은거야?"

"사람이 가끔 깜빡할수도 있지.."


결국 얀진이의 돈으로 우리가 먹을 음료를 샀다.

굉장히 미안해지는걸.


"진짜 돈 안받아도 되겠어?"

"아 안받는다니까! 애가 왜이렇게 변했어?"

"방금은 안변했다면서.."


커피를 홀짝이고 있으니, 얀순이가 도착했다.

정시에 딱.


"아."

입구에 들어서 우릴 발견한 얀순이는 잠깐 얼어붙었다.

나처럼 집에 뭐 두고왔나?


"아, 안녕. 얀붕아."

"안녕. 일로와. 앉아."


자리를 비켜 공간을 만들고 의자를 톡톡 두들겼다.

그러나 어째 얀순이는 썩 내키지 않는 눈치다.


"얘는 처음보지? 얀진이라고 하는데.."

"안녕. 난 얀진이고..얀붕이의 친구야. 얀붕이랑 고등학교 때부터 알던 사이였지."


대단하다. 처음보는 사람에게 말을 놓다니.


"아..안녕하세요. 아니, 안녕! 난 얀순이고, 얀붕이와는 1살때부터 알던 사이야~. 만나서 반가워?"

"응응. 앞으로 서로 연락이라도 하면서 지낼까?"

"좋아. 근데 처음보는 사람한테 반말하는 그 싸가지는 어디서 났으려나~"

"뭐라고 이년아?"


얀진이의 이마에 핏줄이 선다.


"야, 야! 싸우지마! 사람들 쳐다보잖아..!"

"후우..미안. 내가 잠깐 흥분해서.."

"아니야. 그쪽은 몇살~?'

"난 25살. 너는?"

"어머. 나도 25살인데~"


서로 말투는 예의바르다.

근데 도망가고싶다.

둘사이에 그렇고 그런 엄청난 기운이 흘러서..


서로 죽일듯이 쳐다보는 얀순과 얀진.

나는 무슨죄야.


"흠흠. 일단, 내가 얀순이하고 있던 썰이라도 풀까?"

"좋아. 진행시켜."


그리하여 나는 얀순과 얀진에게 머릿속에 담아두고만 있던 썰을 풀었다.

내가 얀순이 생일을 챙겨준 일, 같이 수박 서리했던 일 등등..


보잘것 없는 이야기지만 서로 잘 들어줘서 기분은 좋다.

들어주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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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벌써 5시네."

"그러게. 슬슬 가봐야겠네."

"오늘 즐거웠어, 얀순아."

"나도, 잘가 얀진아~"


처음 만났을때의 분위기가 여전하다.

도대체 둘은 어떤 일때문에 초면인데도 기싸움이 대단한걸까.

아니면 초면이 아닌가?


"가자, 얀붕아."

얀순이가 나에게 팔짱을 끼며 출구로 발을 재촉한다.

그러나..


"아니, 얀붕이는 나랑 가야 하는데."

"앙?"


얀순이의 표정이 급격이 썩어 문드러진다.

내가 살면서 단 한번밖에 보지못한 표정..

계곡에서의 일 빼고는 보지 못했던 표정이다.


"얀붕이하고 나랑 귀갓길이 겹쳐서. 나랑 갈수밖에 없을걸?"

"치.."


얀순이가 내 팔을 세게 놓는다.

뭐야. 기분나빠.


"하하..얀순아 잘 들어가고. 들어가면 연락해?"

"응응. 잘가 얀붕아!"


방금까지 얀진이와 기싸움을 한것이 무색하게, 나랑 대화할때는 또 그 표정이 풀린다.

여자들은 신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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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진아."

"얀붕아."

"아..너 먼저 얘기해."


얀진이에게 대화 순서를 양보했다.


"얀순이라는 애는 대체 뭔데 그렇게 싸가지가 없냐?"

"몰라..근데 너도 만만치 않았어."

"뭐어?"

"아니아니. 얀순이라는 애, 원래 그런 성격이야. 너가 좀 이해해줘."


사실은 얀순이의 이런 표정은 친구로 지내면서 두번째로 볼 정도로 희귀하지만...


"하..너가 얘기하려던건 뭔데?"

"아, 정말로 돈 안줘도 괜찮나 싶어서. 중간중간에 디저트도 많이 시켜 먹었잖아."

"에라이. 이놈아."

"으엌!!!"


얀진이에게 정강이를 걷어 차였다. 괜히 PTSD오게..

그나저나 굉장히 아프다. 

혹시 요즘 무술이라도 배우고 있나?


"내가 돈 안줘도 된다고 몇번을 말해."

"미안.."

"따라해. 다시는 돈얘기 안하겠습니다."

"다시는 돈얘기 안하겠습니다."

"응응. 그래. 다시는 꺼내지도 마."


돈을 이렇게 쿨하게 쓸 정도로 돈이 많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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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 얀진. 오랜만에 만나서 즐거웠어. 또 고맙고.."

"그래 임마. 내일 병원가서 정강이 검사받아라."


여전히 유쾌한 녀석이다.


[우웅- 우웅-]


핸드폰이 계속 울린다.

짧은 진동이 엄청 많이 울린다.

카톡이 쉴새없이 쏟아지고 있다.

폰이 켜지지도 않을 정도로.


그러고보니, 폰을 바꾼 계기는 다름아닌 엄청난 연락 때문이다.

계속 발신번호 표시제한으로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를 받아도 약 1분가량 아무말없이 있다가 끊고, 기지국에 상담을 해봐도 전화의 근원을 파악하지 못하겠다는 답변 뿐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계속 쏟아지는 문자와 카톡.

그리고 정체모를 혈서로 매일 우체통이 가득 찬다.


경찰에 신고하는 방안도 고려해 봤지만, 증거가 부족해 수사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해 신고도 망설여진다.


혹시 이 모든 일의 범인이 얀순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아는 가장 친한 여사친은 얀순이기에, 원인도 가까지 있지 않을까란 추측이다.


하지만 얀순이라고 하면 모순이 생긴다.

굳이 정상적인 연락법을 두고 발신번호 표시제한으로 전화를 걸고, 매일 집에 혈서를 보낸다?


또 얀순이는 일반적인 민간인인데, 발신번호 표시제한 근원지 추적을 피할 방법도 마땅하지 않다.


그럼 누구? 대체 누가 나한테 이런짓을? 무슨 이유로?


"하..."

그만 생각하자.


복잡한 생각을 접고 현관에 들어갔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