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순이는 한 제국에 소속된 제후국의 공주였어.


어렸을 때부터 아름다운 외모로 인해 온 제국에 그 이름이 퍼졌었지.


그랬던 얀순이에게 수많은 남자들이 다가갔지만


그녀는 전부 거절했어.


얀순이에게는 이미 얀붕이라는 사랑하는 애인이 있었거든.


제국과 우호적이 관계를 맺고 있던 이웃 왕국의 왕자였던 얀붕이는


양국간의 교류회에서 우연히 만난뒤로


그 만남을 계속 이어나갔어.


결국 약혼을 하는 사이까지 되었지.



둘의 사이는 무척 좋았어.


얀순이의 집착이 조금 강하긴 했지만.



"얀순아, 오늘 내가 졸업한 아카데미의 친목회가 있는 날인데,"


"그것 때문에 다시 고향으로 잠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한 1주일 정도 있을 것 같은...."



"안가면... 안돼...?"



"얀순아.... 나도 널 혼자 두는 건 싫지만,"


"이건 반드시 참석해야만 하는 행사인걸...?"



"아...알았어...."


"그... 그래도...! 다른 여자랑 이상한 짓 하면 절대 안돼!"


"나 정말.... 그런건....."



"하하.... 얀순아, 걱정마."


"우리 집안에서 먼저 약혼 제의한 것 기억 안나?"


"내가 왜 널 놔두고 그런짓을 하겠어."



"그...그치? 정말이지? 믿을게?"



"물론! 걱정안해도 돼."



얀붕이는 그 대화 이후 고향으로 돌아갔고,


정말 아무런 문제도 저지르지 않았어.


어떻게 알았냐고?


그야 얀순이가 얀붕이를 일주일 내내 따라다녔거든.


풀숲에 숨어서,


테라스에 숨어서,


골목에 숨어서.


사랑하는 얀붕이의 모습을 보면서도,


계속 혹시 모를 바람에 마음 졸였지만,


얀붕이는 오히려 얀순이를 위한 선물까지 사가는 등,


얀순이 생각밖에 하지 못했어.


이렇게 얀순이가 걱정하고,


스토킹 끝에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고 안심하는 것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았어.


어찌됐든, 둘은 행복했어.



그러던 그들의 행복에 커다란 문제가 생기고 말아.



"불을 꺼라!"



"불길이 너무 거세서 진입할 수 없습니다!"



"맙소사...! 안에 공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나?"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건물 자체가 오래되서 붕괴중입니다!"



얀순이가 시찰 겸 나간 한 교회에서 불이 난 거야.


건물이 붕괴하기 시작하자, 불은 금방 꺼지기 시작했지만,


구조된 얀순이는 과거와는 달랐어,


왼쪽 얼굴에 커다란 화상을 입은거야.


아름다웠던 푸른색 왼눈은 파열되어 흐릿해졌고,


하얀 피부도 전부 벗겨저 붉은 근육이 보였지.


오른쪽은 아직도 과거의 미인이었지만,


왼쪽은 마치 악마의 형상과도 같았어.


그녀는 금방 의식을 되찾았지만,


자신의 흉측한 모습에 충격을 받고 방에서 나오지 않았지.


자신이 사랑하던 얀붕이의 면회까지 거부한채 말이야.



"왕자님, 제발 돌아가주십시오! 공주님께선..."



"헛소리하지 마시오! 내 아내가 될 사람인데, 뭐가 어떻단 말이오!"



"그 아내 될 분께서 접견을 거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발, 다음에 와 주십시오!"



"이런 젠장.....!!"



"아... 안돼!!"



"얀순아!! 얀순아!!!"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얀붕이는 시종을 밀치고 얀순이의 방으로 들어갔어.


방 한가운데 있는 침대에서,


얀순이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



"나가!!!! 나가란 말이야!!!"


"보지말아줘!!! 제발!!!!"



"....얀순아."


"이미 너의 상태에 대해서는 다 들었어."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온거야."



얀순이의 비명이 뚝 끊기고,


이불을 여전히 뒤집어 쓴 채로 떨기 시작했어.



"나....날 버리는거야...?"


"이제... 추해졌으니까.... 버린다는거야...?"


"그런거야.....?"



"하...."


"아니야. 그런거."


"너 안버려."


"너랑 계속 있을거고,"


"결혼도 할거고,"


"가능하다면 애도 나을거야."



".....ㅁ...뭐?"



"얼굴이 뭐가 어쨌는데?"


"얼굴은 살쪄도 변하고,"


"늙어도 변하고,"


"심지어 조금 늦게 자기만 해도 변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가 아닌건 아니잖아?"


"우리 추억이 그 정도로 얕은거였어?"



'파악!'



얀순이가 덮고 있던 이불을 재치며 일어났어."



"아... 아니야!!!!!"


"....아?"


"....ㄲ....끼야아아악!!!!!"


"보...보지마!!!! 보지 말아줘!!!!"



"얀순아!!!!!"



얀붕이는 몸부림치는 얀순이에게 달려가 그녀를 안아주었어.


얀순이가 진정될때까지, 그녀를 아직도 사랑하고, 앞으로도 사랑할 것이라며


계속 안심시켜주었지.


처음에는 거칠게 저항하던 얀순이도, 


이내 점점 지치기 시작하며


얀붕이가 자신을 아직도 사랑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어.


이 장면을 지켜보던 시종들은, 


얀붕이의 초월적인 사랑에 감동하며


둘의 사이를 축복해주었지.


앞으로는 더 이상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말이야....



둘의 사이는 과거로 돌아온 것 같았지만,


얀순이의 집착은 이전보다 더욱 강해졌어.


얀순이와 얀붕이가 새로 이주한 성의 모든 인력은 남자였고,


여성의 출입은 일절 허용되지 않았지.


얀붕이가 어디로 갈 때도, 


얀순이는 울고 불며 사정했어.


하지만 얀붕이를 도저히 막을 수 없었을 때면,


본인이 직접 과거처럼 얀붕이를 미행했지.


과거의 미행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피해망상이 심각해졌다는 거야.


과거에는 그가 여성과 필요한 만큼의 대화를 하는것에


신경을 쓰지않았어.


하지만 이제는 얀붕이가 자신을 위한 것을 사는 모습을 볼 때,


자신을 위한 선물을 사줬다는 사실보다


종업원이 여자라는 사실을 복 이를 갈기 시작했지.


얀순이는 끊임없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어.



'이렇게 추하게 불타버린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있을까?'


'제아무리 얀붕이라 하더라도, 분명 날 질려할거야.'


'어떻게 잡아두지? 어떻게? 어떻게 얀붕이를 내 곁에 두지?'


'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아.'


'그러면 되겠구나.'



며칠 뒤, 제국의 축제가 있기 하루 전.



"이런 제기랄...!"



"불길이 너무 거셉니다! 진입이 불가능합니다!"



"맙소사, 왕자님의 집무실이 불타고 있잖아!"



"공주님은! 공주님은 어디계시는가!"



"아까까지 성안에 왕자님과 같이.... 엇!"


"저길 보십쇼!"



불타는 성안에서,


얀붕이를 부축하며 건물 밖으로 나오는 얀순이가 보였어.


그 모습을 본 소방관들은 바로 달려가 두 사람을 구했지.


얀순이는 큰 상처를 입지 않았어.


몸 이곳저곳에 난 자잘한 화상이나 찰과상을 제외하면 말이야.


반대로, 얀붕이의 상태는 끔찍했어.


불타는 구조물이 얼굴을 강타했기에,


얼굴 전체에 커다란 화상을 입었지.


두 눈은 멀어버렸기에 앞을 볼수도 없었어.


결정적으로, 머리에 가해진 충격으로 인해


얀붕이는 완전한 바보가 되어버리고 말았어.


자신을 구해준 얀순이가 아니면,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했지.


하지만 얀순이는 그런 걸 상관하지 않았어.


'누구의 짓인지는 모르지만',


얀붕이는 자신만을 바라보게 되었고,


다른 누구도 얀붕이에게 관심을 갖게 되지 않았을테니까.


하지만 얀순이는 자신의 모든 사랑을 얀붕이에게 줄 준비가 되어 있었지.


얀순이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에도, 그걸 눈치채지 못했어.


그녀는 이미 속까지 문들어져있었거든.


자신이나 얀붕이의 얼굴보다 더 말이야.



그 일이 있고서부터 1년이 지났어.


얀순이는 방에서 얀붕이와 단 둘이 지냈지.


시종들이 식사를 가져오더라도, 문 밖에 놓고 가야만 했어.


얀순이는 얀붕이의 식사를 도와주고,


몸까지 씻겨주며 지극정성으로 돌보았지.


비록 얀순이의 눈은 죽어있었지만,


입에는 항상 커다란 미소를 짓고 있었어.


비록 이 모습을 본 시종들은 '악마를 보았다'며


그녀의 변한 모습을 두려워했지만,


얀순이는 상관하지 않았어.


얀순이는 얀붕이를 자신만의 새장에 가둔거나 마찬가지였지.



그러던 어느날, 얀순이의 방의 문을 누군가 두드렸어.



"공주님, 방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왕자님의 일과 관련해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우선은 남자라는 사실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부디."



"말하거라."



문으로 한 왜소한 남자가 쭈볏쭈볏 들어왔어.



"고...공주님... 우선 여기...."



그러고는 얀순이의 손에 반지 두개를 주었지.


정말 아름다운 반지였어.


아름다운 보석이 수를 놓았고,


황금색 몸통에서도 빛이 났지.


마치... 결혼반지처럼 말이야.



"네깟놈이.... 지금 나를 우롱하는 것이냐....?"


"지금 나의 남편이 살아있는데도....감히.....!"



"아..아아아닙니다!!!! 당치도 않습니다!!"


"저 반지들은.... 왕자님께서 주문하신겁니다!"



"뭐?"



"그게....."



사건의 전말은 이랬어.


얀붕이는 얀순이가 자신을 미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


평소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지만,


사고를 당한 이후로 크게 불안해하는 그녀를 안심시키고 싶었지.


그는 얀순이와 정식으로 혼인하기로 했어.


그러려면 여러 준비가 필요했고,


거기서 제일 중요한게 반지였어.


하지만 얀순이가 끊임없이 자신을 따라다니는 와중에,


반지 제작을 의뢰하기는 힘들었지.


그래서 얀붕이는 얀순이가 집무실은 미행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자신의 성의 집무실로 장인들을 불러 반지를 의뢰한 거였어.



"....왕자님꼐서는 작년 축제 때 공개적으로 청혼을 하실 계획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고를 당하시어...."


"저의 작업실에 있던 반지를 가지고 가실 계획이셨기에,"


"저는 일년동안 다른 대륙으로 여행을 떠났었던지라...."



"아."


"마...말도 안돼."


"그이가... 그랬다고?"



얀순이는 손에 놓인 반지를 보고,


침대에 누워 침을 흘리며 흐리멍텅한 표정을 하는 얀붕이를 보았어.


얀순이가 태운건 얀붕이의 몸이 아니었어.


바로 자신들의 행복을, 스스로의 손으로 불사질러버린 것이었지.


얀순이는, 그제서야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어.


너무 늦었다는 것도.



각자의 손에 반지를 낀채로 침대에서 서로를 껴안은 채,


왕자와 공주가 분신자살한 사건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건,


얼마 뒤의 이야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