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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편) 안녕,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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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허억..허...억..."

갑작스레 밀려오는 공포에 숨이 턱까지 닿았다, 그것은 마치 자연스런 생리현상 때문이 아닌, 누군가가 내 목을 강하게 조르는 듯한 압박감, 그것은 진심에서 파헤쳐 나온 외마디소리였다.



피가 멎는 듯한 거센 긴장감에 심장 박동음은 바야흐로 커져만 갔다. 살가죽에서 생생하게 전해져 오는 그 소름돋는 감각은 온 몸에 송곳이 쑤셔지는 듯한 고통과도 견줄 수 있을 것이라 느꼈다. 



"흐..허억..! 흐..헉... 허억...후..후어....."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배워놨던 요법.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의 두려움에 빠졌을 때에는, '하나, 둘, 셋.' 숫자를 세며 심호흡을 하여라. 그 자리에서 숨이 멎어 차갑게 식어나가는 것보다는 훨 나은 순간이 찾아올 것이니.



다시 한 번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허억...허...후우.... 하아....아...."

...혼돈 속에서 간신히 공황을 이겨내는 데에는 성공하였지만, 사지에 힘이 돌아오는데 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만 같았다. 마치 가위에 눌린 듯한 이 느낌, 일어서야 한다는 생각만을 머리 속에 가득히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팔다리는 그 명령에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않는다.



...초라하게 주저앉아 있는 나를, 앞에서 가엾다는 듯이 바라보는 그 존재들은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야생동물과도 같았다. 사냥감이 바라보는 최후는, 이런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면, 저는 이만 가보죠, 선생. 당신의 아이들과 원만한 개선이 있기를."

정작 나를 이리 만든 원흉은 자기하곤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듯이 책임감 같은 건 1도 보이지 않는 말을 남기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가 떠나간 자리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뒤로한 채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한층 더 나를 둘러싼 그들의 대열. 올려다보는 그들의 식어버린 죽은 눈빛은 약속이라도 한듯 모두 나를 향했다.



"...응.. 오랜만이야...너무.. 너무 보고 싶었어, 선생님."

메슥거림에 허덕이고 있을 때 그 수많은 존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꺼냈다. 그 사내와 똑같이, 나를 선생이라 칭하는 그 무리들은, 도대체 뭐하는 족속들인 것인가?



혼란이 왔으면 왔지 오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다. '선생' 과는 그 어떠한 연관도 없는 내가, 심지어 '교육' 이라는 것에도 아무런 접점이 없었던 내가, 어째서 이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리고 있는 건지. 



"쿨럭.. 쿨럭..!! 너네... 너네 뭐하는 놈들이야... 어? 뭔데 나한테 이러는 거냐고..!? 아무 죄도 없는 사람에게 이리 대하는 게 맞는 거야..!?"

되도 않는 큰 소리로 윽박질렀다. 원래 겁에 질린 자들이 소리만 크게 내지른다더니, 새삼 틀린 말 하나 없다 생각했다. 수치스러웠다, 지금 내가 겁에 질렸다는 걸 인정하게 되는 꼴이니까. 



울릴 듯한 고성에도 아무런 미동조차 없는 그들에게 위축됐다. 나는 한 명이고, 상대는 여려 명, 아무리 내가 소리를 지르고, 별에별 발작을 일으켜 봐도, 수세에서 밀리는 나는 그들이 보기에 그저 우물 안 개구리 신세보다도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뼈가 저리도록 느낀다.



본능적으로 느낀 생존 욕구, 그들이 내게 무슨 짓을 벌일 지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는 이유 하나 탓으로 입을 뚝 닥쳤다. 현실에서나, 영화에서나, 가장 나대는 애들이 명이 짧다는 불문율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 



꿀떡, 하고 침을 삼켰다. 목을 타고 느껴지는 그 타액의 기운이 참으로 거슬리기 그지 없었다. 목이 얼마나 메였으면은, 이런 기분 더러운 느낌이 몸소 타고 오는 것일까.



"...으헤... 선새앵~ 왜이리 조용해진 거야? 오랜만에 선생의 멋진 목소리 어엄~청 많이많이 듣고 싶었단 말이야아~~~..."

..차가운 분위기를 찢고 나오는 한 여자 아이가 있었다. 독보적인 분홍색의 머리와 독특한 오드아이를 가진 그 아이는 이런저런 말을 내뱉으면서 내 품에 안겼다.



주변의 분위기와는 다른 따뜻한 포옹. 그 아이가 말하는 내용이나 행동거지로 보아 반가움의 의미가 섞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포옹 하나만으로 긴장을 풀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 행위가 원래의 뜻을 숨기기 위한 기만 행위인 건지, 진짜 반가워서 이러는 것인지,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사실을 쉽게 알 수 없다는 것을. 



"..자..잠깐, 너.. 뭔 짓이야 갑자기... 이거 놔..."

...그렇지만.. 이 오랜만에 느끼는 타인의 따뜻함을, 쉽사리 놓칠 수가 없었다. 분명히, 나를 향하는 따뜻함이었다. 다른 무엇도 아닌, 내게, 내게 말이다. 


...내가... 너무 의심하는 건가? 



"..이 아저씨.. 진짜... 진짜진짜 너무 보고 싶었어. 그 때, 선생이 내 눈 앞에서 사라졌을 그 순간부터, 지금 이 때가 오기까지, 쉬지 않고 울었어, 정말 하루하루를 하염없이 울었어." 


"얼마나 괴로웠는데... 소중한 사람을 또 한 번 잃었다는 그 고통이 얼마나 아프고 쓰라렸는데.. 응..?"

...날 껴안은 그 자그마한 손이 살짝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이 느낌, 나한테도 멀지 않은 익숙한 느낌, 소중한 사람을 둘이나 잃고, 홀로 장례식장에 앉아 어버이의 눈치 없는 웃음만 가득한 영정 사진을 품에 끌어안고 처절하게 울던.. 그 순간.



침묵했다, 그 고통이 얼마나 감수하기 어려운 고통인지,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괴로운 기억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째서 나와 일면식도 없는 이 아이가, 갑작스레 나를 이리 껴안고, 내게 저런 슬픈 이야기들을 꺼내는 건지.



"언젠가는.. 선생을 볼 수 있을 거야.. 하면서.. 분명... 돌아와 줄 거야.. 라고 믿으면서... 버티고, 기다렸어..."



"하지만.. 선생님은... 하루가 지나도, 한 달이 지나도, 일 년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나도... 우리 곁으로 다가오지 않았어.. 분명 돌아온다고 했었으면서.. 사랑한다는 말도 했으면서..."

그 자그마한 손에 이번에는 옷이 움켜잡혔다. 얼마나 거세게 잡은 것일까, 빳빳하게 굳어있던 옷이 아이의 손길 하나로 한순간에 구깃구깃 구겨져 버린 채 펴지질 않았다.



1초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품, 그녀가 머릴 푹 숙인 자리로 살짝 축축해지는 듯한 느낌이 옷 사일 파고들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손으로부터 시작해서 몸 전체까지 퍼져버린 그 사연있는 떨림은, 왠지 모를 서글픈 감정를 자극하는 모체.



그 아인 한참 동안을 울기만 하였다. 다짜고짜 내 품에 몸을 던지고는 이게 무슨 일인 건가 했지만, 떨쳐낼 수는 없었다. 당장이라도 망가질 것만 같았던 아이의 안타까운 모습. 감정이 사그러지는 순간의 모습을, 난 굳이 보고싶지는 않았다.



..항상 생각했지, 남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저주한다고, 내가 이렇게 철저하게 망가졌듯이, 남들 또한 이렇게 망가지는 것이 맞다고.



...하지만, 막상 지금에 이르러 다른 이의 고비를 직면하자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남의 삶이 망가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망가진 삶은 나 하나로 족하다고, 이렇게 슬피 우는 아이를, 굳이 물귀신 마냥 같이 절망 속으로 빠뜨려야 하냐고.



"...."

...그러나, 믿음을 잃은 자는 모든 순간을 의심한다. 이같은 슬픈 순간 속에서도, 의심은 본능이 되어버린지 오래이기에.



애석하게도, 본능은 눈치가 없었다. 분명히 그 아이를 절망에 빠뜨릴 생각이 일절도 없었던 그이긴 했지만, 본능은 이성보다도 훨씬 우선 순위라는 것을.



...그는 내뱉는다. 본능이라는 껍데기를 덮어씌운 의심을, 그 순진무구한 아이들에게.



"....아이야, 이런 순간에 정말 미안하지만..."

내 목소리에 수많은 아이들의 이목이 집중했다. 방금까지 울기만 하던 분홍색 머리의 여자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고개를 들러올린 채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바로 앞에서 나를 바라보던 늑대의 귀가 달린 은발의 아이도, 머리카락이 땅에 닿을 정도로 길었던 푸른 눈의 아이도, 짧은 숏컷에다가 현대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듯한 정복을 입은 여자도, 신기하게 생긴 마스크에, 살짝 어슴푸레한 모자를 눌러쓴 여자도......

...



기대를 빙자한 불안이 보였다, 그녀들이 느끼는 불안은 망각에 의한 불안이 아닐까. 과연, 계속 만나고 싶었던 나의 선생이 나를, 또 우리 모두를 기억하고 있는 지. 그게 아니라면, 그 누구라도 상상조차 하기도 싫은 결론이 눈 앞에 매정히 펼쳐질 지.



그녀들의 마음 한 구석을 차지했었던 선생은, 그런 아이들의 머리 속을 읊을 수 있으련지. 미안하다라는 말 하지 말라고, 제발 그러지 말아 달라고, 불안하게 초반부터 왜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냐고. 

그렇게 애원하고, 재촉하여도, 원하는 미래로 흘러가는 일은, 우리에게 결단코 없다는 것을.



느낀다.



"...사람을 잘못 찾은 것 같다, 정말 미안하구나, 이런 더러운 아저씨 품에 안게 하다니."



"아까운 시간도 뺏어버리고, 하하.. 너무 간절해 보이던데.. 이런 쓸모도 없는 사람은 도움도 주지 못하고 말이야.."



많은 아이들, 아니, 모든 아이들이 경직하였다. 대충 이러리라 예상은 했었지만, 예상하지 못한 게 하나가 더 있었기에. 



우리가 알던 선생하고는 너무나도 다른 이미지. 그때의 그 멋있고, 존경스럽고, 어느 때라도 의지할 수가 있었던 그 존재가, 무엇 때문에 이리 쇠약해지고, 부정적인 사람이 되어 버렸는가.



우리에게도 미소 짓는 법을 알려주던 그 선생님이, 어째서 가장 먼저 미소를 잃어 슬픔의 구렁텅이에 빠져있고.



늘 우리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어 주던 그 선생님이, 어째서 지금은 우릴 모른 채 하며 그냥 지나치려 하고 있고.



자신감이 넘쳐 흘러 우리에게도 용기를 불러주던 그 선생님이, 어째서 모든 것을 잃고 뼈아픈 자조만을 내뱉고 있는 건지.



.....아니야.... 아니야.. 아냐...아냐아냐아냐.. 아니야, 선생님, 거짓말이라고 해줘, 응? 장난치는 거지? 그치? 그렇다고 해, 제발.



"...고맙다, 이런 아저씨한테 시간을 써줘서, 이제 그만 가ㅂ.. 응..?"

돌아와줘, 응? 가지마, 어딜 가려는 거야. 우리의 선생님으로 돌아와줘, 그때의 그 존재로 돌아와 달란 말이야. 가지마, 가지 말라고.



"...으읏.. 잠깐만.. 아이야.. 팔팔팔... 팔 너무 쎄게 잡았어.. 좀만.. 좀만 풀어줘봐.. 응..?"



"윽..! 왜 더 쎄게 잡는 건데..!? 이거 놔..!! 이제 용건은 다 끝났잖아..!! 이제 더이상 볼 일 없는 거 아냐...!? 이거 놓으란 말이야...!!"

어딜 도망가려는 거야, 우리랑 같이 가자. 


같이 가자고.





"...선생님.. 나의... 우리의 선생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은, 강제로 기억을 되살려내고. 




"놔..!!! 놓으라고오오!!!!!!!!!" 


"내 말 안 들려..!?! 이 손 놓으란 ㅁ.."

선생님이 변했다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게끔 인도하고.




"흐..허억...!! 헉...!! 허흑..!!!"

존경하고, 또 동경해왔던 선생님과 다시 한번 영원히 함께하기 위해.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그 끝없는 사랑을, 주고, 받기 위해.







우리들은, 더이상 참지 않을 거야.




"""어딜 가시려는 건가요? 선생님?"""

ㅡㅡㅡㅡㅡㅡ

미안, 군대라는 얀순이한테 도망치느라 시간이 없었음.


좀 급하게 쓴 감이 없지않아 있는데, 귀여운 마음으로 봐주리라 믿음, 아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