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다리아 



- 마키나







나를 깨운 것은 귀여운 여동생의 외침이나 옆집 

사는 소꿉친구의 귀여운 목소리도 아니었다.

 

짜악, 짝!! 자비없는 뺨 싸대기 세례가 작렬하자,

나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으갸흐아그아응앗!?”


“비상 의식 회복 프로토콜 성공. 소장님, 지금은

1923년 2월 1일입니다. 기억나십니까?”

 

...뭐? 1923년? 그게 무슨 개소리야?
그보다 얘는 누구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예쁘네.’

 

이 상황에서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은색 단발 거유 메이드라니, 오타쿠들이 좋아할

속성을 한 사람한테 몰아넣다니-

 

짜악!! 내가 멍 때리고 있자, 그녀가 다시 한 방

내 뺨에 거침없는 싸대기를 갈겼다.

 

“정신이 드셨습니까?”

 

“어으.”


그래, 이제 정신이 좀 든다. 그리고 진짜 아프다.

한 대 더 맞으면 이빨이 부러질지도 모르겠다.

 

“그럼 현재 상황을 보고하겠습니다.”

 

...왠지 뭔가 좆된 거 같은 느낌이 드는데.

지금 이 복도 전체에 붉은색 램프가 점등하면서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있다. 귀가 아플 정도로.

 

‘그보다 여기 어디서 본 거 같은 기억이...?’

 

“-격리 실패가 발생하여 지금 당장 대피하셔야

합니다. 현재 황금의 공주가 경비대의 추격을

피해 달아나고 있습니다. 곧 진압될 겁니다.”

 

황금의 공주...?

 

잠깐, 그 이름이 왜 여기서 나와?

 

‘아니 그보다 소장님이라고? 설마, 내가...?’

 

은발 메이드, 소장님, 황금의 공주.

그 단어들을 듣자 지금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대강이나마 알 것 같았다.

 

‘이건, 이건 내가 하던 게임이잖아.’

 

지옥의 파수꾼. 그게 게임 제목이었다.

이름 그대로 지옥- 정확히는 게헨나라 명명된

특수 교도소를 관리하고 살아남는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교도소장이 되어, 격리된 존재들을

감시하고 마지막 날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근데 내가 왜 여기에?’

 

기억이 안 난다. 뭐 빙의했다는 건 대충 알겠다.

근데 왜 내가 빙의했는지, 방금 전까지 뭘 하고

있었는지 전혀 떠올릴 수 없었다.

 

“소장님, 보행 가능하십니까?”


“...지금 내가 취임하고 며칠이 지났지?”


“정확히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일주일, 그럼 이제 막 게임이 시작한 상태다.

시작하자마자 튜토리얼 느낌으로 격리 실패가

발생하는 건 나도 안다. 그런데, 황금 공주라니?

 

‘그 녀석이 격리 실패를 일으켰다고?’

 

드문 일이다. 황금 공주는 다른 격리 대상들에

비해 얌전한 편이다. 격리 실패가 발생하는 경우

자체가 거의 없다.

 

-그 대신, 한 번 격리에 실패해 탈출하게 되면

대참사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럼 네가 마키나, 맞지?”


“네. 본 개체의 정식 명칭은 「다기능 오토마톤 

Ⅱ형 MKINA-17호」입니다.”

 

마키나. 그래, 확실히 알겠다. 하지만 모니터가

아닌 현실에서 만난 마키나는 내가 원래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답고...이질적이었다.

 

얼굴이나 몸은 인간과 차이를 느끼지 못하지만,

팔과 다리는 기계 부품이 그대로 드러나 도저히

인간처럼 보이질 않았다.

 

”소장님, 뭔가 내리실 명령이 있으십니까?”

 

마키나의 말을 듣고, 나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일단 이 사태부터 수습해야 한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는 몰라도, 이대로 그냥

두 손 놓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진압대장 토니한테 연락해. 지금 당장.”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연결합니다.”


띠리리- 마키나의 가슴 가운데에 달려 있는 빔

프로젝트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 빛은 어느 험상궂은 남자의 얼굴로

변하며 내 앞에 나타났다.

 

「소장님! 진압대장 안토니오, 수신했습니다!」

 

이 사람이 안토니오구나. 음, 이쪽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인상이 더럽다. 진압대장보다는 꼭

군인이나 조폭이 떠오르는 인상이었다.

 

“안토니오 대장, 지금 바로 철수하세요.”

 

「넵! 지금 당장 제압을...네? 뭐라고요?」

 

“철수하라고요. 이제 공주를 공격하지 마세요.”


내 명령을 들은 안토니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야, 그 위험천만한 괴물을 그냥 내버려두라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 그, 소장님? 제가 잘못 들은-」

 

“잘못 들은 거 아니니까 바로 철수하세요. 이제

뒷일은 저한테 맡기시고-”

 

「그럴 순 없습니다!!」

 

아오, 내 귀야. 그가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황금의 공주는 ILV 3, 즉 고위험 개체입니다!

지금 당장 격리하지 않으면 사상자가 나오거나

다른 개체의 격리가 해제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알아서-”


「저 안토니오 ‘토니’브라손! 이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제압하겠습니다!! 이상!!」

 

뚝- 토니가 자기 할 말만 지껄이고선 통신을

종료했다.

 

“...죄송합니다, 소장님.”


“네가 왜 사과해. 그리고 토니는...하아...”


안토니오 ‘토니’ 브라손은 무능하지 않다.

 

오히려 유능하다면 참으로 유능한 인재다. 

문제는 군인 생활을 너무 오래 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종종 과잉 충성이나 호승심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생겼다.

 

‘NPC면 NPC답게 굴라고, 망할 놈아.’

 

이대로 가면 폭주가 시작된다.

그리고 폭주가 시작되면...우리 전부 죽겠지.

 

“마키나, 공주의 현재 위치는?”


“...서쪽 식당 부근입니다.”

 

“좋아, 앞장서. 제압하러 간다.”

 

“명령 받들겠습니다.”


마키나만 있으면 당장 내 몸은 걱정 없다.

문제는 공주를 어떻게 설득하느냐...인데.

 

‘폭력은 최후의 수단이다.’

 

만약 내 추측이 옳다면, 지금 나는 이 개같이

어려운 게임에 빙의하여 언제 뒤질지 모르는

상황이 처했다. 이 게임이 그렇다. 빌어먹을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고인물도 폭사한다.

 

그러나 그 확률을 낮추는 방법이 존재한다.

가령, 몇몇 개체들을 설득하거나 포섭해서 훗날

찾아올 재난들에 써먹는 거지.

 

‘그리고 황금 공주는 꼭 포섭해야 해.’

 

그녀의 능력은 여러모로 유용하다.

이런 사태뿐만 아니라 평시에도 그녀의 능력을

적절히 사용하면, 앞으로 있을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 훨씬 쉬워진다.

 

만지는 걸 뭐든지 황금으로 만든다니까?

그런 미친 사기 능력을 어떻게 포기하겠는가.

 

“도착했습니다. 저기 보이십니까?”


“어, 보여.”


황금으로 변한 탁자 뒤에, 그녀가 숨어있었다.

그리고 제압팀 인원들이 거기에 총을 마구 쏘며

천천히 전진하고 있었다.

 

“방심하지 마라! 닿으면 죽는다!”


‘아니, 안 닿아도 죽일 수 있어.’

 

공주는 기본적으로 얌전하고 온화한 성격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자기 목숨이 진지하게

위협받지 않는 경우에 한해서다.

 

‘땅에 능력을 쓰면, 그 땅 위에 있는 건 모조리

황금으로 변한다고!’

 

그렇게 되면 몰살이다. 그때부턴 설득이고 뭐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죽여야만 한다.

 

하지만 그녀를 죽인다는 건 곧 앞으로 다가올

재난의 난이도가 폭등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쩌실 겁니까?”


“...”


시간이 없다. 지금 당장 손을 써야 한다.

 

토니한테 다시 연락해? 아니, 이번에도 씹겠지.

다른 개체를 꺼내올 시간은 없다.

-결국 직접 나서는 수밖에.

 

“마키나, 우린 저 사이로 뛰어들 거야.”


“알겠습니다. 방호 모드에 진입합니다.”


역시 오토마톤, 명령하면 바로 알아듣잖아.

내가 이래서 원작 게임할 때도 얘를 좋아했지.

 

후웅- 쾅! 우린 계단을 내려가지도 않고, 곧장

위에서 뛰어내렸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소장 명령이다!”


“헛!”


열심히 총알을 갈기던 대원들이 나를 보자마자

부동 자세를 취했다.

 

“소, 소장님?”


“토니! 거 상관이 명령하면 좀 들으세요!”


“죄...죄송합니다?”


여기서부턴 나 하기 나름이다.

공주의 성향은 나도 안다, 문제는 그녀가 나를

신뢰하느냐- 그것뿐이다.

 

“크흠.”


나는 조심스레 황금 탁자 너머로 걸어갔다.

 

“흑...으으...으흐으으윽...”


그녀는 구석에 웅크려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이 작은 여자애가, 그토록 위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믿기질 않지만...

 

‘방심하지 마, 손만 닿아도 죽는다.’

 

손이 닿는 순간 내 몸은 어정쩡하게 생겨 먹은

황금상으로 변하겠지. 진짜 싫다, 그건.

 

“공주님?”

 

“!”


내가 부르자, 그녀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지금 나를 뭐라고...?”


“공주님, 무례를 범한 것 사죄드리겠습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정중한 몸짓을

취하며 고개 숙였다.

 

나보다 한참 어려보이는 여자애한테 이러는 게

수치스럽게 보일 순 있지만, 사실 황금의 공주는

실제로도 공주가 맞다. 이 세상의 공주가 아니라

이세계의 공주라서 그렇지.

 

“이제 괜찮습니다, 제가 왔으니까요.”


“당신은...?”


“저는...”


뭐가 됐든 그녀를 설득해야 한다.

그래, 약간의 거짓말을 쓰더라도.

 

“저는 당신을 구하러 온 왕자님입니다.”


“...!”


그녀가 벌떡 일어서며 내게 다가왔다.

 

가깝다. 무섭다. 그러나 아름답다.

마치 황금 그 자체가 여인의 형상을 취한다면

이런 느낌이려나. 머리카락도, 눈동자도 금빛으로

반짝거렸다. 

 

만약 그녀가 평범한 여자애였다면, 아마 나는

이 자리에서 공주에게 반해버렸을 것이다.

 

“왕자...님? 진짜 왕자님이에요?”


“네. 보세요, 제복도 입었잖아요.”


이건 사실 교도소장용 제복이다.

그래도 디자인은 뭐, 제법 멋들이지니까...

그리고 제복이라는 건 거짓말이 아니다.

 

“이 무엄한 것들! 어서 공주님께 조아리도록!

감히 내 소중한 공주님께 상처를 입히다니!”

 

“어, 그, 그게-”


내가 토니에게 얼른 머리 숙이라고 눈치를 주자,

그가 서둘러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죄, 죄송합니다!!”


“와아...진짜, 진짜구나...진짜 왕자님이구나...!”


그녀가 나를 보며 두 눈을 반짝거렸다.

...아니, 이러니까 좀 죄책감이...

 

‘그래도 먹혀서 다행이다.’

 

황금의 공주, 미다리아의 성격과 과거를 아는

나만이 쓸 수 있는 방법이었다.

 

물론 이건 게임을 플레이 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거고, 이곳에선 아직 미다리아의 성질이

어떤지조차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 죽기 전에 막아서 다행이다.’

 

조금만 늦었어도...최소한 여기 있는 진압대는

몰살당했겠지.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쫙 돋는다.

 

“저, 절 구해주러 오신 거죠? 제게 걸린 저주,

이 황금의 저주를 풀어주러...!”

 

‘아니 거기까진 아닌데.’

 

그 저주를 내가 어떻게 풀어.

아니, 근데 지금은 어떻게든 속여야한다.

 

“당장은 불가능해도...어쩌면 가능할지도...”


“!”


와락! 그 순간, 그녀가 내게 안겼다.

그러나 다행히 손이 내게 닿지 않도록 해줬다.

 

“흐윽, 으흐윽...! 아아, 아으으으으...!”


“...”


뭐라고 설명을 해줘야 하는데, 얘가 너무 서럽게

울기 시작해서 아무 말도 못하겠다.

 

‘하긴 당연한 건가.’

 

-8살 이후론 아무하고도 대화하지 못했으니까.

게다가 여기와선 괴물 취급 받으며 갇혀 지내야

했으니, 멘탈이 부서져도 지금쯤이면 가루가

되고도 남았으리라.

 

“...이제 괜찮아요, 전부 괜찮을 거예요.”


나는 조심스레 그녀를 안아주었다.

 

내 교도소장 생활은, 이렇게 정신없이 시작됐다.

 

 

 

 

 

지옥의 파수꾼은 아무도 기대하지 않은, 흔하디

흔한 인디 게임 중 하나였다.

 

그러나 정식 출시 이후, 그 특이한 게임성에

반한 유저들의 입김을 타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제법 메이저한 게임이 되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럼 유저 중 한 명이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이 게임은 참 복잡하고도

오묘했다. 단순한 시뮬레이터 경영 게임이라고

하기엔 은근히 운빨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단순히 효율만 생각하며 접근했다간 순식간에

격리 실패로 인한 게임 오버를 당하고 말았다.

 

정말로 내가 교도소장이 되었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플레이해야만 깰 수 있는 게임.

 

‘...인데, 솔직히 좀 좆망겜이긴 해.’

 

일단 운의 요소가 너무 크게 작용한다.

고인물도 운이 나빠 잘못 삐끗하면 손도 쓰지

못하고 폭사한다. 반대로 공략 한 번 보지 않은

뉴비가 순전히 운만으로 엔딩을 보기도 한다.

 

더해, 이 게임은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는 운영

감각과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임기응변 모두

필요하다. 항상 격리 개체가 탈출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운이 나빠 탈출 사태가 벌어졌을 때

최대한 빠르고 효율적으로 제압해야만 한다.

 

...참 어려운 게임이다. 

 

그리고 평소 내가 밤마다 신세 진 폭유 메이드

하렘 야겜에 빙의하지 못하고 이런 지옥불 같은

게임에 빙의한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기억이 없단 말이지...전혀.’

 

내 원래 나이나 이름 같은 건 기억이 난다.

문제는 내가 어쩌다 여기 끌려온 건지 모르겠다.

 

트럭에 치였거나, 자다가 가스 중독으로 죽어서

환생했거나, 뭐 그런 사유라도 알면 좋을 텐데

정말 하나도 기억나는 게 없었다.

 

“하아...머리 아프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고, 나는 이 게임으로

밤샌 적이 많았다. 고인물...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이 게임이 돌아가는 원리를 안다.

 

물론 내가 알던 그대로 돌아간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아는 것과 모르는 건 차이가 크다.

 

“그리고 소장님이라니, 너무 벅차다고.”

빙의한 시점부터, 내 이름은 카이너스 제레드

하츠펠트다. 통칭 ‘카인’이라고 불린다.

 

나이는 22세, 금발 벽안의 재수 없게 생겨 먹은

귀족 엘리트 낙하산. 일단 그런 설정이다.

 

‘남들은 빙의하면 잘 생겨지던데...’

 

나는 손거울로 내 얼굴을 봤다가, 짜증만 솟구쳐

탁 덮어버렸다. 재수 없게 생겼다. 뭐라고 하지?

 

아, 그래. 옛날에 자주 본 마법사 소년이 마법사

학교에 간 영화에 나오는 재수없는 라이벌 같다.

사사건건 시비 걸고 다니고 깝죽대는 놈 말이다.

 

“내 인생아...”


“인생 한탄을 하고 싶으시다면 아무도 듣지 않는 

곳에서 하는 걸 추천드립니다.”

 

아참, 얘 아직 옆에 서 있었지.

워낙 조용히 서 있기만 하는 터라, 존재감이 영

희미했다. 기계라서 그런가?


“소장님, 개인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음? 뭔데?”


“일전의 공주 탈옥 사건은 저도 예상치 못했던

방법으로 해결됐습니다. 그런 해결법을 떠올리신

이유가 듣고 싶습니다.”

 

아, 그거. 아직도 신경 쓰고 있었구나.

 

‘근데 사실대로 다 말하긴 좀 그렇고.’

 

내가 사실 대한민국에 살던 좆소기업의 가엾은

대리였다고 말하면, 마키나는 아마 나도 격리

대상이라 판단하고 가둘 것이다.

 

...어디까지나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만.

 

“그리고 하나 더. 황금 공주의 격리는...”

“왕자님!”

 

덜컹, 소장실의 문이 열리며 그녀가 들어왔다.

 

“노크는 좀 해주세요, 공주님.”


“아, 깜빡했어요. 에헤헤.”


그녀가 살포시 문을 닫고 도로 나갔다.

똑똑, 이번엔 그녀가 제대로 노크했다.

 

“들어오세요.”


“실례하겠습니다, 후후.”


아, 젠장. 귀엽잖아.

손에 무거워 보이는 특수 수갑만 없었으면 더

귀엽게 보였을 텐데, 좀 아쉬웠다.

 

“새 침소는 마음에 드셨는지요?”

 

“네! 원래 지내던 곳보다 훨씬- 훨씬 좋아요!”

 

그야 원래 지내던 곳은 감방이었으니까.

지금 그녀- 리아가 지내고 있는 곳은 손님용

객실이었다. 적어도 원래 지내던 곳보다는 훨씬

지낼 만한 방이다.

 

“게다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어서 너무너무

좋아요! 이게 다 왕자님 덕분이에요!”

 

격리 대상인 리아가 이렇게 소장실까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이유는 내가 허락해주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손만 막으면 능력은 못 쓰니까.’

 

리아의 황금손은 오로지 손에 접촉한 것에만

적용된다. 그중에서도 오직 고체에만 적용되고.

참고로 저 장갑 안에는 특수한 액체가 들어 있어

황금으로 바꿀 수 없었다. 저 장갑도 내가 직접

고안한 거지만...지금은 비밀이다.

 

굳이 잡아 가둬놓고 있어봤자 능력이 폭주할

명분만 주는 것이다. 폭주하기 시작하면 뭘로

막아도 의미가 없고...그러니 이게 최선이다.

 

“그리고 저...왕자님한테 실례가 안 된다면...”


“음?”


“가, 같이 산책하고 싶어요!”


참 소박한 부탁이구나, 그 점도 귀여웠다.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황금을 만들 수 있는데,

정작 능력의 소유주는 소탈한 성격이라니.

 

“좋아요, 마침 시간이 남으니까 시설 소개를-”

그때, 마키나가 은근슬쩍 내 옷소매를 당겼다.

 

‘상대는 격리 개체입니다. 정 주지 마십시오.’

 

나는 마키나의 입 모양을 읽고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나도 안다. 미다리아는 격리 레벨(ILV) 3단계에

속하는 고위험 개체다. 그마저도 난폭하지 않은

성격 덕분에 3단계지, 능력의 위험성을 고려하면

실제론 4단계를 받아도 이상할 게 없었다.

 

‘무려 한 세상을 황금으로 바꿔버렸으니.’

 

황금의 공주 미다리아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해버린 황금 지옥에서 건너온 망명자다.

 

부모도, 가족도, 모조리 황금상으로 변해버린

그 지옥에서 홀로 살아남은 생존자.

 

-그게 얼마나 참혹하고 외로웠을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왕자님?”


“마키나, 같이 가자. 마침 둘러보고 싶었어.”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호위하겠습니다.”


우리는 마키나의 뒤를 따라갔다.

 

이곳 게헨나는 워낙 넓고 구조가 복잡하기에

꼭 안내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아니면 본인이

길을 잘 알고 있거나.

 

“우선 게헨나는 제국에서 195km 떨어진 외딴

섬에 있습니다. 정확한 위치는 기밀이라서...”

 

“그건 나도 알아. 소장이잖아.”


“와, 195km는 얼마나 먼 거죠? 근데 km가

대체 뭔가요? 처음 듣는 단위에요!”

 

그렇겠지. 나는 그냥 걸어서 몇 주는 걸릴지도

모르는 먼 거리라고만 설명해줬다.

 

“어, 근데 여기...부서진 곳이 많네요.”


“아.”


리아의 말대로, 사방을 둘러보면 아직 보수하고

있는 곳이 많았다. 몇몇 시설은 아직 출입조차

금지된 상태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약 100일 전, 대규모 탈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건 내가 오기 전, 그러니까 게임 원작 기준

플레이어가 오기 직전의 일이다.

 

당시 교도소장은 무능하고 인격에 결함이 있는

쓰레기였고, 그런 인간이 운영하는 교도소는

당연히 문제투성이였다. 그런 문제들이 쌓이고

쌓인 끝에 대규모 탈출이 일어났고...

 

‘그 뒤는 생각하지 말자.’

 

컷신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강이나마 보여준

기억이 난다. 대학살. 그보다 더 당시 상황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해서, 현재도 당시 탈출한 개체들을 찾아서

재격리하고 있습니다. 곧 소식이 있을 테죠.”

 

응, 나도 알아. 왜냐하면 그 재격리할 때도 내가

나서야 하니까. 참고로 재격리하지 못한 개체가

많아질수록 내 목숨이 위험해진다. 그게 다 어떤

이벤트의 발동 조건이거든.

 

“왕자님은 어려운 일을 하시는군요...”


“다 모두를 위해서 하는 거죠.”


크으, 연기력 봐라. 사실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때려치우고 도망치고 싶은데, 그랬다간 곧바로

제국에서 날 족치러 요원을 보낼 것이다.

 

그 다음엔 푹찍끄악, 으앙 쥬금...

뭐 그런 식으로 흘러가겠지. 뻔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도망도 못치고, 좀만 실수해도 뒤진다.

그냥 곱게 죽는 것도 아니고 사지가 찢겨서 죽을

수도 있고, 황금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이 섬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그 사실을 자각하니 갑자기 덜컥 겁이 났다.

 

“아, 슬슬 점심 식사 시간이군요.”


“그럼 뭐라도 좀 먹을까? 식당은...”
 
“복구 작업은 어제 끝났습니다.”


빠르네, 겨우 이틀 만에 일을 해치우다니.

 

“...식당은 중요 시설이니까요.”


“하긴 그러네.”


밥은 중요하지, 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아니던가. 식당은 최중요 시설임이 분명하다.

 

아무튼 우리는 곧장 식당에 가서 배식을 받은

후 자리에 앉았다. 참고로 오늘의 메뉴는 조금

미지근한 스파게티에 스프였다.

 

“잘 먹겠습니다.”


“오오...이상한 음식...처, 처음 보네요...”


공주가 포크로 스파게티를 쿡쿡 찔러댔다.

뭐라고 해야 하나, 6살짜리가 으레 그러는 것

같아서 좀 웃겼다.

 

“마키나는...”


“전 소장님이 드시는 것만 봐도 배부릅니다.”

웬일로 말을 이렇게 곱게 하나.

 

“...설레셨습니까?”

 

“그 정돈 아니고.”


그리고 우린 이런저런 사소한 대화를 나누며

평화로운 식사를 즐겼다.

 

-분명 그랬을 터인데.

 

웨에에에엥-!! 벽에 달린 램프가 붉게 깜빡깜빡 

점등되며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붉은색 램프와 긴 사이렌 소리.

즉, 격리 개체 탈출이다.

 

「진압팀에서 알린다! 모든 직원은 대피소로 즉시

대피할 것! 탈출 개체는 불사룡! 불사룡이다!」

 

“뭐!?”


불사룡이 벌써 탈출했다고!? 아니, 그보다 이제

겨우 일주일 지났는데? 이게 말이 되나?

운이 없다고 해도 이건 너무하지 않나?

 

‘ILV 4단계 개체가 무슨 한 달도 안 지나서

탈출을 해! 게임 같았으면 진작 리셋했어 그냥!’

 

이 정도면 빠르게 리셋하고 다시 시작하는 게

맞다. 불사룡이 원래 자주 탈출하는 개체라는 건

이해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초반부터 이러는 건

사실상 게임을 포기하라고 선언한 수준이다.

 

“마키나, 불사룡의 위치는!?”


“현재...아, 이런.”


“왜?”


“여깁니다.”

 

...뭐?


그 순간, 벽이 무너져내리며 놈이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더럽게

크고 머리가 하나 더 달린 코모도 왕도마뱀처럼

생겼다. 그러나 왕도마뱀 따위하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놈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불사신이거든, 이 새끼!’

 

괜히 이름이 불사룡이겠나. 이 녀석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못 죽인다. 심지어 소멸시켜도

남은 세포가 분열해서 복구한다.

 

“크아아아아-!!”


놈이 우리를 향해 포효하며 돌진했다.

 

“흩어져!”

 

내가 외치자마자 두 사람이 옆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다행인 점은 불사룡의 특성이 딱 불사인 것과

덩치가 크다는 점뿐이라는 것이다. 그 외엔

별 볼 일 없는, 그냥 머리 나쁜 도마뱀일뿐이다.

 

“소장님, 제압 명령을.”
 
“당연하지! 다리를 노려!”


철컥, 우드득- 마키나의 팔이 총처럼 변하며

불을 뿜었다. 일반적인 총탄이 아니라, 무려

플라즈마 탄환을 쏘는 것이다. 총탄은 불사룡의

그 튼튼한 비늘마저 종잇장처럼 뚫어버렸다.

 

“-----!!”


놈이 몸부림 치며 사방에 꼬리를 휘둘렀다.

나는 바닥에 납작 엎드리고선, 얼른 가지고 있던

열쇠를 꺼내 들었다.

 

‘마키나가 강하긴 한데, 불사룡을 죽이진 못해!’

 

어지간한 화력으로는 못 죽인다. 무력화시키고

싶으면 최소한 전차를 끌고 와야 한단 말이다.

마키나가 강하기는 해도 그 정도 화력을 내진

못한다. 제압팀이 와도 마찬가지고.

 

‘지금 교도소에 남은 전차도 없을 테고!’

 

세 달 전에 다 부서졌을 게 뻔하다. 빌어먹을

전대 소장놈, 후임한테 아주 개똥을 뿌리고선

잘도 뒤졌구나. 개새끼.

 

“리아!”


“!”


나는 그녀에게 달려가, 허겁지겁 열쇠로 수갑을

풀어주었다.

 

“저 도마뱀, 금으로 만들어버려요!”


“네? 네?! 하, 하지만 저는...제 능력이...”


“리아, 내 공주님.”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녀가 뭘 두려워하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의 능력이 폭주하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능력 때문에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저는 절대로 당신을 무서워하지 않아요.”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절대 혼자 두지 않을게요.”


“...!”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황금 공주는 나를 뒤로 하고선, 단숨에 달려가

도마뱀의 꼬리를 콱 붙잡았다.

 

“왕자님을 괴롭히지 마.”


“케엑!?”


쩌저적- 도마뱀의 꼬리가 황금으로 변했다.

그러자 놈이 위기를 느끼고선 허겁지겁 꼬리를

잘라냈다. 진짜 도마뱀이 그러듯이 말이다.

 

“빈틈을 보였군요.”


타다닥, 마키나가 도마뱀의 몸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심장이 있을 가슴 방향에 마구잡이로

총탄을 쏴 갈겼다.

 

“제 주인님께 위해를 가하는 모든 것을 배제,

아니 제거하겠습니다.”

 

도마뱀이 몸부림을 치는 사이, 다시 공주가

도마뱀의 다리를 만졌다. 

 

“끼에에에엑!?”


불사룡이 공포에 질려 발버둥 쳤지만, 이미 놈은

끝장난 셈이었다. 놈이 점점 굳어가며, 끝내

거대한 도마뱀 황금상이 되고 말았다.

 

‘이게...미다리아의 힘.’

 

가까이서 보니 진짜 무시무시하다.

방어력, 재생력을 무시하고 닿은 상대를 무조건

즉사시키는 능력이나 다름없다. 제 아무리 강한

개체라도 일단 손에 닿으면 끝이다. 

 

무려 ILV 4단계에 속하는 불사룡을, 이렇게 쉽게

제압 하다니...경외심마저 든다.

 

“왕자님.”


그녀가 씩 웃으며 나를 보았다.

 

“방금, 약속하신 거예요?”

-아.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이었는데.

 

‘절대 혼자 두지 않을게요.’

 

그러고 보니 미다리아에겐 또 다른 특성이 하나

더 있었다. 

 

그녀는 오랜 세월 외로운 삶을 살았기에, 특히

의존적이고 집착이 강한 편이었다. 다만 지금껏

플레이어에게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지만-

 

“약속, 한 거예요?”


“...네.”


생각해보니, 이건 게임이 아니었다.

여기 있는 모든 것은 게임처럼 예측할 수 있고

세이브, 로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나에겐 이 모든 게 현실이었다.

 

‘교도소장...그냥 때려치울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리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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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p+얀데레+하렘+감옥물을 짬뽕한 소설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썼지만 쓰읍...뭔가 좀 아쉬워...나중에 다시 만져볼까...

그리고 새로운 콘이 참 마음에 든다

앞으로도 자주 써먹어야지 ^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