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화한 위치에 있는 한 카페.


사람들로 붐비는 피크 시간을 보내고 시간은 어느 덧 마감할 시간이 다가왔다.


항상 이 시간이 되면 나의 일주일이 끝난다는 느낌이 든다.


계산대에서 마감을 하던 중 카페에 남아 있던 여자 손님이  다가왔다.


“저기, 너무 제 스타일이라 그런데 번호 좀 주실래요?”


갑작스런 말에 여자 손님과 눈을 마주쳤다.


요즘 20대 여자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패션에 얼굴도 어디가서 예쁘다는 소리를 꽤나 들어봤을 외모다.


‘이런 사람이 내 번호를 왜 묻는거지?’


정말 순수하게 그런 의문이 들었다.


나도 어디가서 못생겼단 말을 들어본적은 없지만 스스로 잘 생겼다 생각하진 않는다.


더군다나 여자와 말을 주고받을 자신조차 없다.


그래서 거절의 말을 입에 담았다.


“죄송합니다.”


“아...그, 알겟습니다.”


여자는 거절당할거라곤 생각도 못했는지 고개를 숙이고 도망치듯 가게를 나갔다.


난 다시 아무일이 없었다는 것처럼 마감을 진행했다.


“이걸로 몇 번째냐.”


“형, 화장실 청소 끝났어요?”


화장실에서 밀대와 물통을 들고 한승준 형이 나왔다.


승준이 형은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로 카페 알바도 형을 통해서 하게 되었다.


“너 숨겨둔 여자친구라도 있어? 여자들이 가만 놔두질 않네.”


“여자친구라니, 제 형편에 무슨. 그런거 없어요.”


“야, 형편이 안좋으면 좋은 여자 만나서 형편 좀 좋게 해봐라.”


“하하, 제가 그럴 능력이 있나요. 그냥 쉬워보이니까 여자들이 찔러보는 거죠.”


“너...내가 말을 말아야지.”


승준이 형은 한숨을 쉬고 테이블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말 없이 각자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테이블 정리, 매출 정산, 카페 청소 하나, 둘 일이 마무리 되어 가고 퇴근 5분전.


“현승아, 이제 슬슬 퇴근하자.”


“네? 아직 5분정도 남았는데.”


“괜찮아. 넌 왜 이렇게 정직하냐? 생긴건 전혀 그렇지 않게 생겨가지고.”


형이 투덜거리듯 말하는 걸 들으니, 조금 억울한 감이 없잖아 있다.


‘내 얼굴이면 평범한거 아닌가?’


순수하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승준이 형을 바라봤다.


“제가 생긴게 어때서요? 이 정도면 어디서나 있을 법한 얼굴 아닌가요?”


“...너 어디가서 그런 말 하지 마라. 아무튼, 다음주에 시간 좀 비워놔라. ”


“네? 무슨 일 있어요?”


“내가 저번에 소개팅 시켜준다고 했었잖아.”


“아...”


그러고 보니 얼마전에 그런 소리를 한 것 같기도 하다.


형이 그냥 지나가는 말투로 말해서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었다.


“그거, 농담 아니었어요? 제가 누군가 만날 형편이 안되는거 잘 아시잖아요.”


“형편은 무슨. 사람 만나는데 그게 중요해? 사진 보면 그런 소리가 싹 들어갈거다.”


그 말을 끝으로 승준이 형이 스마트폰을 내게 들이 밀었다.


“형, 이거 연예인 사진 이에요? ”


임수정 이라고 적힌 카톡 프로필에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예쁜 여자 사진이 걸려 있다.


형은 어깨를 으슥이며 덤덤하게 대답했다.


“연예인은 아니고 그냥 대학생.”


#


결국 형의 등쌀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나온 소개팅 당일.


“진짜 나오는 건 맞나?”


소개팅 장소인 카페에 먼저 나와 있으면서도 그런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애초에 상대방도 나의 사진을 본 상태인데 내 얼굴이 마음에 들리 없었다.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이 있듯이 적당히 수준이 되어야 만나든 말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소개팅에서 아무런 기대감을 가지지 않았다.


만약 상대가 갑자기 약속이 생겨 소개팅을 파토내도 큰 실망을 없을 거다.


“유현승 씨?”


언제오나 시간을 보던 중 옆에서 고운 목소리가 들렸다.


다행이 약속 파토까지는 아닌 모양.


그녀는 사진에서 봤던 것보다 실물이 훨씬 예뻣다.


청초한 검은색 생머리에 큰 눈망울과 작은 얼굴. 언뜻보기에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를 두르고 있다.


이런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나 같은 놈이랑 만난단 말인가.


어차피 실패할거 대충 이야기하다 빨리 헤어져야겠다.


사람 좋은 미소를 입가에 두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임수정 씨, 맞으시죠?”


“네.”


소개팅 자체는 무난하게 흘러갔다.


다만, 내 예상과는 상당히 다르게 진행되었다.


간단한 호구조사를 끝내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녀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었다.


“승준 씨. 저희 동갑이니까 편하게 말 놓죠? 아니, 놓자.”


“어, 그럴까요?”


“그럴까요가 뭐야. 우리 말 놓는 거다?”


“...그러자.”


다가가기 어려워보이는 첫 인상과 다르게 임수정의 친화력은 상당했다.


덕분에 평소 내 사적인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딱히 하고 싶은 이야긴 아니었지만, 말을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평일은 알바만 한다고? 전혀 그렇게 안보이는데 성실하구나.”


“그렇게 안보인다는 건 무슨 뜻이야?”


“으음, 약간 기생오라비 같은 느낌?”


“...”


그녀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이 얼굴에 무슨 기생오라비 짓을 한다는 건지.


약간의 어색한 침묵이 감돌자 임수정이 황급히 사과를 했다.


“기분 나빳어? 미안해. 나쁜 의미로 말한건 아니었어.”


“그다지 기분 나쁜건 아니야.”


“사과 받아준거다? 나중에 이걸로 뭐라 하기 없다?”


“알았어.”


나중에 만날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만날 사이도 아니고.


그녀의 외모에 친화력이면 주위에서 만나자고 하는 사람이 한 트럭일 것이다.


그 중에 나 역시 포함되겠지.


‘딱히 만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임수정이 보기엔 나도 수 많은 사람 중 한 명일 거다.


사과를 받아준게 기쁜지 그녀의 입가가 올라가 있다.


“영화 좋아해? 이번에 개봉한 영화가 있는데 그거 보러 갈래? 아니면...”


그리고 자연스레 카페를 나가서 뭘 할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나를 배려해서인지 뭘 해도 괜찮다는 뉘앙스다.


하지만 이 뒤엔 집에서 쉴 예정이라 그녀와 무언갈 더 할 생각은 없다.


애초에 여자와 노는데 쓸돈이 없기도 하다.


“집.”


“...응? 우리 처음 만났는데 집을...”


“아, 아니. 나 집에 좀 가봐야 할 것 같아서.”


“왜? 무슨 일 있어?”


“정말 미안한데 저녁에 약속 잡아둔게 있어서...”


“아...”


당연히 약속같은건 없다. 그냥 집에 가기 위한 핑계일뿐이다.


“저기,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정말 약속 있어서 가는 거 맞지?”


“응, 사실 가볍게 차 한 잔 마시고 헤어질 줄 알았거든.”


“그럼...어쩔 수 없네.”


“먼저 가볼게. 다음에 또 보자.”


“응.”


어째서인지 아쉬워하는 임수정을 뒤로하고 카페를 빠져나왔다.


다음에 보자 말하긴 했지만 아마 다음은 없을 거다.


나보다 잘생기고 좋은 남자가 많은데 굳이 더 이상 나를 만날 이유는 없다.


#


“아, 씨. 팀운도 더럽게 없네.”


-패배.


5연패를 내리 꼬라 박은 한승준은 창문 밖을 바라봤다.


이미 해가 졌는지 어둑어둑한 풍경만 비친다.


모처럼 쉬는 날에 스트레스 풀겸 시작한 게임이지만 오히려 허탈감만 들었다.


-깨톡.


다시 게임을 시작하려던 순간 알람이 들려왔다.


유현승이 보내 문자 메시지 였다.


그걸보고 오늘이 무슨 날인지 떠올랐다.


“아, 오늘 현승이 소개팅 하는 날 이었구나.”


이런 이야기는 문잔로 하는 게 안 맞는 그는 곧장 유현승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유현승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오늘 소개팅 어땠냐? 성공했지? 나중에 밥 한끼...”


“성공은 무슨, 그냥 카페에서 이야기나 조금하고 돌아왔어요.”


“엥? 뭐, 카페에서 이야기 조금하고 사귀는 거냐?”


“네? 그냥 별 얘기 안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요?”


“...?”


한승준은 유현승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애초에 소개시켜 달라던 사람이 임수정 본인 이었으니까.


그런데 커피 한 잔하고 바로 돌아왔다니?


“그, 임수정 씨랑 만난건 맞지?”


“네. 대화 조금 해보니까 저랑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커피 조금 마시고 돌아왔다?”


“네. 저랑 만나봤자 별로 재미도 없을텐데. 일찌감치 집에 돌아왔죠.”


한승준은 돌아온 대답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커피만 마시고 돌아와?’


아직, 현승이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듣진 않았다.


혹시나 여자가 현승이를 만나고 마음이 달라졌을 가능성도 존재했다.


머리를 부여잡고 침착하게 어떻게 된 건지 물어봤다.


“...그래서 애프터 신청을 거절하고 저녁약속이 있다는 거짓말로 도망쳤다는 소리야?”


“굳이 도망이라기 보다, 오늘만 만나는 사람이랑 돈을 쓰기 싫었어요.”


“뭐, 그 사람이 더치페이는 죽어도 싫대?”


“아뇨, 그런건 아닌데. 제가 누구랑 놀면서 돈 쓸 여유는 없거든요.”


“그럼 면전에 대놓고 나 돈없으니까 애프터 하고 싶으면 다 사달라 그러지, 응?”


“하하, 사람이 어떻게 그래요. 게다가 형이 소개시켜준 사람인데.”


임수정.


한승준이 지인이라며 소개팅을 주선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한승준과 임수정은 거의 모르는 사람이다.


“너, 혹시 알바할 때 수정 씨 본적 있지 않냐? 가게에 자주오는 사람인데.”


“그런가요? 제가 사람얼굴 기억은 잘 못해서...”


“너도...아니다. 이만 들어가봐. 내일 보자.”


“네, 형도 들어가세요.”


황급히 통화를 종료한 한승준은 답답한지 가슴을 두드렸다.


진짜 뭐라 한 소리 하려다 꾹 참았다.


거의 매일 우리 카페에 오는 손님이 임수정이었다.


‘근데 얼굴도 모르는게 말이 되나?’


아무리 눈치없다 말하지만 이건 도를 넘었다.


딱 봐도 현승이한태 관심있는 티가 팍팍 나는데 정작 본인은 전혀 모른다.


유현승이 한사코 여자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고 그 여자가 

자신에게 부탁했었다.


돈을 줄테니까 유현승과 소개팅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물론, 돈은 거절했지만 부탁은 들어줬다.


겉으로 보기에 임수정은 유현승하고 어울려 보였으니까.


‘눈치는 어떻게 만들어줘야 하나?’


한승준은 오늘부터 본격적인 눈치교정 작업에 들어가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


바라고 바라던 유현승과 소개팅 이후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임수정은 생각했던 것보다 그와 가까워 지기란 쉽지 않았다.


무언가 묘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중 번뜩 엄청난 생각이 떠올랐다.


‘그냥, 모텔가자고 꼬시고 덮쳐야 겠다.’


아무리 답답하다지만 자기가 떠올린 천박한 방식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차피 언젠가 유현승이 자기에게 넘어올 거란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을까?


오늘도 그가 알바를 하는 카페를 지나던 중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했다.


누구에게도 여지를 주지않는 그가 어떤 여자에게 번호를 건냈다.


속에서 알 수 없는 진득하고 음습한 감정이 솟아오른다.


‘나는 사정사정 해서 겨우 받았는데 저 여자는 그냥 받았네?’


억울함, 분노, 질투 여러가지 부정적인 감정이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당장이라도 유현승한태 가서 따지고 싶었다.


‘참자, 그냥 어쩔 수 없이 준 걸지도 모르지.’


그날 저녁.


이번에도 역시 임수정이 여러번 부탁해서 카페로 겨우 불러냈다.


“궁금한 게 뭔데?”


어딘가 날 서있는 유현승의 말투에 임수정은 자기도 모르게 움츠러든다.


“그게 오늘 정말 우연히 봤는데 카페에서 번호 준 여자 누구야?”


그러자 눈에 띄게 당황하는 유현승이 보인다.


“어? 으음. 별거 아니야.”


“그렇구나. 아무일도 아니지?”


“...”


“...”


서로간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고 커피 마시는 소리만 들려왔다.


침묵을 먼저 깬건 유현승 이었다.


“미안한데 앞으로는 만나기 힘들 것 같아.”


유현승은 대뜸 그렇게 말했다.


그의 가치관 속에 남여사이에 친구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벼락같은 말을 들은 임수정은 손이 덜덜 떨려왔다.


애써 침착한 척, 여유로운 척을 해봐도 도무지 그럴 수 없었다.


“어째서?”


“나, 그게. 신경쓰이는 사람이 생겨서 너랑 만나는 건 조금...힘들 것 같아.”


“그래? 그렇구나. 그런데 신경쓰이는 사람 오늘 번호준 여자는 아니지?”


“아, 저. 크흠. 그런건 아니고. 아무튼 오늘 이후로는 만나기 힘들 것 같아.”


사실 유현승이 임수정과 만나기 힘들다는 이유는 본인의 가치관도 있지만 다른 이유가 컸다.


소개팅 당시엔 몰랐는데 알고 보니 임수정은 재벌 3세 였다.


매번 만날 때마다 그녀와 자신의 차이를 실감해야만 했다.


비싸보이는 식당에서 밥을 먹자길래 솔직하게 돈이 없다 말한 적이 있었다.


그에 돌아온 대답은 '자기가 사줄테니 가자' 였다.


얻어 먹는 것도 한 두번이어야지, 매번 그것도 비싼곳만 골라서 사주니까 그녀 앞에선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임수정과 만날 수록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의 돈을 뜯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맹세코 자신이 먼저 비싼걸 사달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드는 비참한 기분은 어쩔 수 없다.


“그, 수정아. 정말 미안. 난 사실 남여 사이에 친구가 없다고 생각해서. 이대로 너랑 친구로 지내는 건 민폐인 것 같아.”


“남여 사이엔 친구가 없다고? 그럼, 그 여자 손님한태는 번호 왜 준 거야?”


이건 정말로 할 말이 없었다. 하필 그런 장면을 보였으니.


첫 만남부터 한심하게 거짓말하고 도망쳤으니 끝까지 한심한 남자로 밀고 나가야겠다.


유현승이 선택한건 대놓고 도망치는 것이었다.


“나, 밤에 약속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


“그 여자랑?”


“...그런건 아니야.”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갑자기 시야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라? 어째서...’


안간힘을 다해 버텨보지맛 미친듯이 잠이 쏟아져왔다.


끝내 몸이 버티질 못하고 테이블 위로 쓰러졌다.


“이런 천박한 방법은 안 쓸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잖아?”


임수정은 혹시 몰라 유현승이 오기 전에 미리 수면제를 섞어 넣었다.


“난 그냥 보내줄려고 했었어. 다 너 잘못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