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애초에 원신이라는 게임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부터 우연의 시작이었겠지만


원신이라는 세계에 들어와서 시작부터 험한 산속에서 츄츄족에게 쫓기다가 우연히 그녀에게 구원받았다.


그녀는 자신을 '신학'이라고 소개했고 나의 딱한 사정을 들은 그녀는 나를 보호해주겠다는 이유로 그녀가 살던 곳에 나도 살 수 있게 해주었다.


처음엔 좋았다. 게임 스토리만 진행해왔던 나에게 혼자 떨어진 게임 속 세상은 절망 그 자체였다.

그러나 신학 덕분에 나는 적어도 죽을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적어도 원신이라는 세계 속으로 오자마자 허무하게 죽지는 않게된 것이다.


처음에 그녀는 나에게 보호해주는 대상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정도였다. 나도 그 정도로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그녀와 같이 생활하면서 뭔가 그녀의 반응이 변해가기 시작했다.


한번은 그녀가 이상한 약초 같은 걸 뜯어 먹는 걸 보고 기겁한 나는 대신 요리를 해준 적이 있었다. 그녀는 놀라면서 내가 만들어준 요리를 먹었고, 먹고 난 뒤에는 만족했는지 "다음에... 또 해줄 수 있어...?"라는 물음에 나는 기쁘게 승낙했다.


미세하게 밝아진 듯한 신학의 표정을 보니 기분이 좋아 보였고 은인이었던 그녀에게 좀 호감 갈만한 일을 하는 정도야...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어느 날은 그녀가 자신의 가정사에 관해서 얘기해주며 자신은 쓸모없어서 가족에게서 버려졌었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겠나 싶었지만 무표정한 그녀가 아무런 말 없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분위기가 그녀의 우울한 기분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무언가는 생각에


"당신이 왜 쓸모가 없어요. 제가 봐온 사람 중에서도 제일 세고 누군가를 구해주는 착한 마음씨까지 있는데 쓸모가 없을 리가 없잖아요?"


"내가... 쓸모가 있다고...?"


"보통 쫓기고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게 쉬운 일인가요? 그런데도 신학 당신은 직접 나서서 날 구하러 와줬어요. 보통 그런 사람은 흔치 않다구요. 그런 사람들이 쓸모가 없다면… 누가 쓸모가 있는 사람인가요? 당신은 훌륭한 사람이에요. 제가 보증할게요."


"내가... 훌륭한 사람..."


그녀는 내 말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자신에 대해서 좀 자신감을 가져요. 당신은 아주 훌륭하다구요. 그리고... 음... 이렇게 예쁘기도 하고요..."


"내가... 예쁘다고...?"


"그래요! 제가 생각하기엔 리월항에서 신학씨가 걷고만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당신한테 사랑한다고 엄청나게 고백할 것 같은데...?

고백하지 않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지 않을까요?"


"음..."

“그리고 보세요. 이 의상과 붉은 끈… 솔직히… 남자인 저한텐 힘들다고요…”


“힘들어…?”


솔직히 그녀의 복장은 너무 파격적이다 보니 남자의 욕망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몸을 묶고 있는 붉은 끈은 그녀의 매력을 더해주었다.


그녀는 엄청 이쁜 편에 속하기도 하고 세기도 엄청나게 세니까 그녀가 쓸모가 없다는 것을 말이 안 된다.

당장 여길 나가서 리월항에 가서 일을 하려 하면 누구든 반길 것 같은데?


“몇 가지 틀린 것이 있어..."


“몇가지 틀린 것이요?"


곰곰이 생각하던 신학은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실제로 리월항에 갔을 때는 다들 날 피하기 바빴어. 다들 내가 선인인 줄 알고 조심하더라고."


"그... 그렇군요."


“그리고… 붉은 끈은…”


“붉은 끈…?”


“붉은 끈은 나의 살의를 억제해주기 때문에 쓰고 있는 거야.”


“사… 살의…!?”


설마… 신학은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는 걸까?...

그야… 적을 만났으면 어쩔 수 없이 죽이는 경우도 있을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냐"


신학은 내 손을 꼭 잡으며 신뢰의 눈빛을 보였다.


"지금까지 나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나에게 괴물이라고 말하지 않은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고마워 얀붕..."


그녀는 진심으로 나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그녀의 진심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조금 어깨를 으쓱하며 미소를 지었다.


"나에게 이렇게 관심을 두고 칭찬해준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너로 인해 내가 쓸모없다고 느끼지 않게 될 수 있었어.

너와 함께라면... 주변에서 나에게 뭐라고 하든 괴물이라고 부르든 상관없어. 부디 약속해줘 얀붕아. 나와 함께 해줄 수 있어?"


'많이 외로웠나 보네'


그녀가 얼마나 외로웠으면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싶었다.


조금 생각을 해본 나는 어차피 이 세계에서 살아가려면 그녀의 도움이 절실했고 그녀도 내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 약속은 나쁘지 않다.


"좋아요. 신학 당신과 함께할게요. 그리고 추가로 약속해줘요. 더는 자신을 쓸모없다고 생각하지 않기로요."


"응... 약속할게. 고마워. 얀붕."


신학은 조심스럽게 다가와 나를 안았다. 처음 여자의 품에 안겨본 나는 신나서 지금 분위기를 제대로 읽고 있지 않았다.


그때 그녀의 표정을 봤었다면... 나는 절대로 이런 걸 약속하지 않았을 텐데...



...


그녀와의 생활도 익숙해질 때쯤 나는 이제 슬슬 리월항으로 향할 필요성을 느꼈다.


원신 속 세계관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분명 이 게임의 주인공인 여행자가 몬드부터 시작해서 리월 그리고 이나즈마까지 차례대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을 것이니 나도 상황 파악을 위해 일단 리월항으로 가서 자세히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신학한테 상담했지만...


"안돼. 얀붕. 밖은 위험한 것들이 너무 많아."


"아... 네... 그렇군요..."


평소 무표정하던 그녀의 표정이 싸늘해지는 것을 느낀 나는 더 얘기하려다가 멈췄다.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다시 그녀와 얘기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나중에 다시 한번 더 얘기해보았지만...


"얀붕아,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밖은 너무 위험해. 굳이 나가지 않아도 괜찮지 않아?

우리 둘이서 여기 있으면 아무런 위협에도 노출되지 않아"


"그건 그렇긴 한데... 아무래도 정보가 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좀 더 누군가를 만나서 대화해본다던가..."


"누군가를... 만난다고...?"


순식간에 차가워진 분위기에 나는 순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평생을 지내는 것은 절대 싫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 더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평생 여기서 살 순 없잖아요? 신학씨도 뭔가 더 필요한 게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리월항으로 가서 좀..."


"아냐... 얀붕아... 난 아무것도 필요 없어. 너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어."


그녀가 노려보는 눈빛은 어둡고 공허하기만 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아 일단 한발 물러섰다.


"그래... 얀붕... 잘 생각했어. 이곳에서 너와 나만 있으면 돼...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아.

그러니까 굳이 나갈 필요는 없어."


"..."


아무래도 말로는 통하지 않겠다 싶어서 다음엔 행동으로 나서기로 했다.

신학 몰래 도망치기로.

신학한텐 미안한 일이지만 이건 나를 위해서도 그녀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목표 실행은 새벽쯤으로 정했다. 보통 그녀가 잠들기 시작하는 시간이 10시쯤 되니까

새벽 1시쯤이 적당할 것이다.


조심스럽게 하산 후 언덕을 지나 리월항일 것 같은 느낌의 방향으로 향하던 중 사람 실루엣이 보여 기뻐하며 달려갔지만...


"얀붕아...?"


사람의 실루엣으로 다가가자 보인 것은 그녀 '신학' 이었다. 그리고 신학은 그녀의 무기인 식재(장창)를 들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 나는 바로 뒤로 돌아 도망쳤다. 무언가 본능이 그녀는 지금 위험하다고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나에게서... 도망치는 거야... 얀붕아...?"


"너도...












날 버리는 거야?"


엄청난 속도로 따라오는 신학을 피해 나는 부리나케 주변의 바위 사이로 도망쳐 숨었다.


숨죽이며 신학이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파악하던 중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벅 저벅…


“내가 저번에 말해주었던 어렸을 때의 이야기를… 아직 기억하고 있어…?”


저벅 저벅…


“기억하고 있다면… 알고 있을 거야. 부모에게 한창 사랑받고 있어야할 나이에 인적이 드문 어딘지도 알 수 없는 동굴에 버려진 나의 기분을”


저벅 저벅…


“절망… 실망… 분노… 그런 단순한 단어로 그때 나의 기분을 설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단 한 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면 그때의 나는 누군가에게 버려졌다는 것에 크게 절망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해”



저벅. 척!


“나는 오늘 그것과 똑같은 기분을 느꼈어.”


“그때의 절망감이 가득했었던 내가 배웠던 것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지도 받지도 말 것 관심을 주지도 받지도 말 것 하지만 만약… 내가 정말로 언젠가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고 싶게 된다면…?”


설마하고 나는 뒤를 바라보았다. 그곳엔…


"신학씨... 그러니까... 이건 그러니까...!"


그곳엔 신학이 있었고 신학의 몸에 있던…


붉은 끈은 보이지 않았다.


시… 신학의 눈에서는 아무런 빛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공허 그 자체였다.


시… 신학의 모습에서 나는…!


“그리고 도망친다면…”



“철저하게 부숴버려서 다시는… 나를 버리지 못하도록… 오직 나를 의지하도록 만들어버리면 되는 거겠지?”

“으… 으아!! 으으읍.으으으읍!!”


공포에 빠진 나는 도망치려 했지만, 신학에 의해 제지당했다.


신학은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의 공허한 눈은 나를 패닉상태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약속했잖아, 얀붕아...? 나와 '평생' 함께 하기로 그런데 왜 배신하는 거야?"


"왜?"


"왜?"


"왜?"


"왜!?"


그녀의 광기가 넘치는 표정과 모습에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선택을 한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다시는 도망치지 못하도록 만들어줄게.”


신학의 장창은 나의 무릎을 향했다.


“이번은 처음이니까… 도망치지도 못할 정도로만 부숴줄게. 괜찮지?”


“읍! 으으으읍!!”


제발 봐달라고, 살려달라고 다시는 도망치지 않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신학이 내 입을 막아버린 탓에 아무런 말도 그녀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괜찮아… 고통은 한순간이야.”



“으으으읍! 읍! 으으읍!”


그리고 그녀의 무기는 나의 무릎으로 직격했다.



며칠이 지나고 나는 어색한 다리의 움직임으로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그녀를 맞이했다.


신학은 최근 스승(?)에게 필요한 게 있다고 자주 자리를 비웠다.

그 틈을 봐서 도망치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젠 쉽지 않게 됐다.


외다리가 되어버린 나는 이젠 산을 탈 수도 없어 하산은 꿈도 꾸지 못한다.


신학은 그때의 광기 어린 모습에서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때 신학의 모습이 정말 신학이었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후훗… 오늘도 얌전히 집을 지키고 있었네?”


“응 뭐, 그렇지”


그녀도 조금은 감정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다.


“좋아… 이제야 나의 뜻을 알아주었다는 것이 너무나도 기뻐. 우리 이제 평생을 이렇게 함께하자.”


이젠 나도 모르겠다. 원신 속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생각해보려 했지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졌다.


“응, 그러자”


그녀가 나를 의존하듯.


“사랑해… 얀붕아…”


나도 그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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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줘서 고맙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다음 글은 얀붕이들이 좀 더 만족할만한 글로 찾아올게.


개인적으로 신학이라는 캐릭터가 최애인지라 꼭 써보고 싶었음.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