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생각했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가족 하나없는 나는 대체 왜.


무엇을 위해 이토록 간절하게 살아 가는지.


부모 대신 길러준 옆 집 노부부에게 보답하고 싶기 때문에?


내가 없으면 말 벗이 없어서 심심한 건너편 고시생 형 때문에?


아니면 나 말고는 직원이 없어서 고민인 사장님? 


적어도 사장님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런 질문을 던진 지 어느덧 십 여 년째, 아직도 답을 얻지 못했다. 


그 답이 무엇인지 궁금하긴 하지만


답을 알기 위해 더 이상 기다리는 짓은 이제 관두려고 한다.





================


알바가 끝난 늦은밤.


나는 죽으려고한다.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도, 사는 이유도 모르기 때문이다.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 네 캔을 사서 집으로 간다.


우리 동네는 흔히 말하는 달 동네다.


사실 좋게 말해서 달동네지 시궁창이랑 다를게 없다.


쥐와 벌레가 들끓는건 기본


쓰레기가 여기저기 나뒹굴고


차 하나 들어오기 힘든 좁은 길


빛 이라곤 오래된 가로등 하나가 전부인 그런 곳.


심지어 길이라곤 전부 오르막길이다!


하지만 이런 곳이라도 마음에 드는 장소 한 개 쯤 있는 법.


바로 꼭대기에 위치한 낡고 오래된 놀이터.


놀이터라고 부르기엔 놀이기구는 그네 하나 뿐에 낭떠러지 근처라 위험하지만, 여기서 보는 야경은 최고급 빌딩에서 보는 야경 못지않다.


아무도 관리하지 않아서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지만 아무렴 어떤가.


낭떠러지 앞 추락 방지 난간에 몸을 기대어 맥주를 마신다.


이대로 떨어져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간은 맥주 네 캔을 다 비울만큼 시간이 흘러도 무너질 생각따윈 하지않았다.


맥주를 다 마시고 밤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보름달이 떠서 그런건지 취기때문에 그런건지.


오늘따라 더 예뻐보였다.


넋 놓고 밤하늘을 감상하던 중.


더 이상 이 풍경을 못 본다는 사실에 잠시 울적했지만.


하기로 한 건 해야겠지.


나는 난간을 넘어 벼랑끝에 섰다.


벼랑끝에 서니 여러 생각이 든다.


'떨어지면 많이 아프려나.'


'떨어지는 동안은 어떤 기분일까'


'내가 죽으면 슬퍼해줄 사람이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중, 뒤에서 누군가 소리친다.


"저기요! 지금 뭐 하시는 거에요!"


거리가 좀 되는데도 귓속에 박히는 목소리, 


내가 많이 위급해 보였는지 나를 향해 달려온다.


그러다 넘어질텐데..


그런 생각이 들기 무섭게, 달려오던 여자는 무언가에 걸린 듯 앞으로 꼬꾸라졌다.


넘어진 여자는 잠시 아파 하더니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흑.. 아파.. 아프다고.. 으아앙!!"


모른 척 하고 뛰어 내릴까?


그래도 다친 사람을 앞에 두고 떨어지는건 좀 아닌가 ..


하는 수 없이 여자에게 다가갔다.


"저기 괜찮으세요 ?"


여자는 나를 쳐다보더니 더욱 크게 울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일단 그녀를 진정시켜야겠다.


"저.. 진정하세요."


"그히만... 그쯔기.. 이흠흐기..."


뭐라는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잠시만요."


나는 여자를 근처에 앉히고 지갑 주머니에 넣어뒀던 밴드를 꺼냈다.


그리곤 그녀의 무릎과 손바닥에 붙여줬다.


밴드를 다 붙여주고 나니 울음을 그친 여자가 눈물을 닦으며 나에게 물었다. 


"왜 그런 곳에 서 있어요.. 위험하잖아요."


나는 대답했다.


"그냥요, 사는 게 별 재미도 없고 사는 이유도 모르겠어서 죽으려고요.'


너무 쉽게 죽는다는 소리를 해서 그런가.


여자의 눈동자가 귀신이라도 본 것 마냥 커졌다. 


여자에게 물었다.


"여긴 왜 올라오셨어요. 할만한 것도 없는데."


여자가 답했다.


"그냥요. 어렸을 때 추억이 여기 많아서 가끔 힘들 때 마다 올라와요."


나만 알고있던 공간이 아니었나.


왠지 나만 알던 맛집이 유명해진 것 처럼 기분이 묘하다.


그렇게 서로 말 없이 한참을 앉아있었다.


근데 이 여자 도대체 언제 가는걸까.


먼저 정적을 깨고 여자에게 물었다.


"집에 안 들어가세요?"


그러자 여자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제가 집으로 돌아가면, 그 쪽이 쓸데없는 짓 할까봐 먼저 못 가겠네요."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빨리 여자를 보내려고 말했다.


"그 쪽이 생각하는 그런 짓 안 할테니까 그만 들어가 보세요"


하지만 여자는 내 말을 못 들은 척 흘려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방금 전까지 죽으려던 사람이 안 죽겠다니.


나 같아도 못 믿겠다.


시간이 더 흐르고.


도저히 먼저 일어 날 것 같지 않아서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여자가 내게 물었다.


"가시려고요?"


"네. 그냥 가서 잠이나 자려구요."


그러더니 여자도 따라 일어나더니 내게 말했다.


"같이가요. 어두워서 혼자 가긴 무서워요."


"그래요."


그렇게 그녀와 함께 내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 앞에 도착했다.


"아무튼,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저도요. 다음에 또 봐요."


다음에 또 보자니. 무슨 소릴까.


집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침대에 들어 누웠다.

 

'내일 죽던지 해야겠다.'


그리곤 잠에 들었다.






================


그렇게 밤이 지나고.


"아으.."


잠에서 깨자마자 욱씬거리는 머리를 붙잡는다.


'빈속에 너무 마셨나 ..'


깨질 듯한 머리를 누르며 물을 마시러 냉장고로 향했다.


그렇게 물을 마시면서 정신을 차리고 있던 중. 


' 쿵 쿵 쿵 '


문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누구세요 ?"


누구냐고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은 계속해서 문을 두드릴 뿐.


' 쿵 쿵 쿵 ㅡ '


"나가요- 나가."


뭐가 그렇게 급한지 내가 문을 열 때 까지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자 문 앞엔 어제 만났던 여자가 서 있었다.


또 보자고 하더니. 바로 다음날 만날 줄은..


" .... "


이 사람이 왜 여기있나.. 하고 멍하니 서 있던 중 여자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 어제 그 분..? 또 뵙네요. 근데 어쩐일로 ..?"


"그 쪽 살아있나 확인하러 왔어요."


잘못들었나?


"네?"


"말 그대로에요. 살아있나 보러 왔어요."


살아 있는걸 확인 하러 왔다니, 이상한 여자다.


"... 살아있는거 확인 하셨죠? 그럼.."


빨리 이 자리를 뜨고 싶어 문을 닫으려는 순간, 여자가 문틈 사이로 발을 집어넣었다.


깜짝 놀라 여자에게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지금 뭐 하시는 거에요?"


하지만 여자는 발이 끼인 것이 아무렇지 않은 듯 내게 말했다.

 

"아직 식사 안 하셨죠? 이거 같이 먹어요."


그렇게 말하는 여자의 손에는 포장된 콩나물 국밥이 들려있었다.


가뜩이나 숙취 때문에 라면 하나 끓이기 귀찮았는데. 


갑자기 여자가 천사로 보인다.


그렇게 얼떨결에 여자를 집에 들였다.


.

.

.


함께 밥을 먹던 도중 여자가 내게 물었다.


"아직도 자살 할 생각이에요?"


"네."


한치의 고민도없이 즉답하자 여자는 내 대답이 맘에 안 드는 듯 나를 쳐다본다.


이내 여자가 다시 물었다.


"죽으려는 이유가 어제 말씀하신 그거죠?"


나는 일부러 대답하지 않고 계속 밥을 먹었다.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서 그런가.


여자가 날 빤히 쳐다보더니 갑자기 황당한 말을 내뱉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이건 또 무슨 소릴까


당황한 나머지 여자를 쳐다봤다.


그러자 여자가 해명하듯 얘기했다.


"아. 물론 같이 죽어준다는게 아니고요. 살아갈 이유를 모르신다하시길래 제가 도와 드릴까 해서요."


이 여자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신경 써 주셔서 고마워요 근데 안 그러셔도 돼요."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갑자기 여자가 벌떡 일어났다.


"아뇨. 이건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에요."


"그쪽이 불쌍하다거나 해서 하는게 아니구요."


그리고 나선 내 손을 붙잡더니 얘기했다.


"앞으로 일주일 딱 일주일 안에 제가 찾아드릴게요."


"그러니까 한 번만 믿어보세요. 네?"


귀찮게 왜 이러는걸까. 


"진짜 괜찮아요. 굳이 안 그러셔도 된다니까요."


하지만 그녀는 포기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여전히 내 손을 꽉 잡고 나를 설득하려고 한다.


감히 예상 하는데 여기서 거절한다고 그냥 포기 할 사람인것 같진 않다.


승낙할때까지 언제든 몇 번이고 계속 찾아 올 것 같은 그런 느낌.


눈이 그래 눈이.


그렇게 얼떨결에 그녀의 제안을 승낙하고 말았다.


여자의 표정이 잠깐 밝아지더니 나에게 말했다.


"그럼 이제 앞으로 자주 볼 사인데 서로 이름은 알아야겠죠?"


"도 현 입니다."


"저는 양세희에요. 편하게 세희 라고 불러주세요."


서로 이름을 주고 받은 후 세희씨가 나한테 핸드폰을 내민다. 아마 연락처를 달라는거겠지.


 그렇게 연락처를 받은 세희씨는 이따 보자는 말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보다 이따 보자니. 다시 온다는 건가.


.

.

.

.


저녁이 되고.


그녀가 문방구에서 팔 법한 아기자기한 계획표를 들고 찾아왔다.


"이게 뭐에요?"


"앞으로 일주일 동안 현씨가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들 적으려구요."


" 네? "


"인생을 바꾸려면 가장 기본적인 것 부터 바꿔야 되지 않겠어요?"


"앞으로 일주일동안은 계획표에 적어둔거 빠짐없이 하셔야 돼요. 아시겠죠?"


아니 저기요 ..


잠시 뒤.


계획표를 완성한 그녀가 내게 물었다.


"현씨, 어디 뭐 가고 싶은 장소라던가 있어요?"


"가고 싶은 장소요?"


"네, 아무 데나 말씀 해 보세요. 해외말구요."


글쎄. 딱히 가 보고 싶은 곳은 없는데 ..


"글쎄요."


"그럼 좋아하는건요?"


내가 좋아 하는게 뭐지?


밤 하늘 보면서 술 마시는거?


이걸 좋아한다고 해야 하나?


"글쎄요. 딱히 없는것 같아요."


그녀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와.. 진짜 재미 없게 사셨네요."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녀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말했다.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하나하나 알면 되죠, 저한테 맡기세요."


정말 믿어도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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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은  세희씨가 짠 계획표 대로 행동 해야 한다.


주방에 걸린 계획표를 봤다.


「꼭 해야 하는 행동.」


「첫째.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기.」


「둘째.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과 베개를 정리하고 창문 열어 환기 하기.」


「셋째. 삼시 세 끼 잘 챙겨 먹기.(특히 아침!)


「넷째. 하루에 한 번 씩 생존 메세지를 보낸다.」 (중요!!)



"생존 메세지는 또 뭐야.."


간단해 보이긴 하지만 일주일 동안 매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귀찮다.


그래도 일어나기 - 알바 - 잠자기를 반복했던 전보단 나은 것 같기도.


그렇게 정해진 일을 모두 마치고 소파에 앉아 생각했다.


'평소랑 다른게 없는것 같은데.'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일주일이 지나도 변화가 없다면 어떻게 되는거지?'


'그냥 죽으면 되나?'


'만약 죽더라도 세희씨 몰래 죽어야하나?'


'아니 잠깐, 애초에 죽는건 내 마음이잖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도중 문 앞에서 세희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씨 문 좀 열어주세요."


현관으로 가 문을 열자, 양손에 무언가를 잔뜩 든 세희씨가 집 안으로 들어온다. 


"뭐에요 그건?"


"반찬 만들 재료에요."


"반찬이요?"


"네, 어제 냉장고 열어 보니까 텅 텅 비어 있더라구요."


냉장고는 또 언제 열어 본 걸까.


"반찬 만들어 드릴 테니까, 앞으론 시켜 드시지 말고 밥 하셔서 반찬이랑 드세요."


세희씨가 커다란 비닐봉투에 담긴 여러 식재료들을 꺼내며 중얼거렸다.


"우선.. 가지볶음이랑 미역줄기, 그리고 노각무침.. 그리고 또 도라지무침 먼저.."


맙소사. 내가 잘못 들었나?


"무슨 메뉴가 그래요?"


"현씨가 뭐 좋아하는지 몰라서요, 그래서 일단 제가 좋아하는걸로 하려구요."


"...."


아무래도 세희씨 입맛은 다른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한 50살 정도?


하지만 음식이란 정성이 제일 중요하지 않겠는가. 


물론 맛도 중요 하지만.


비록 호불호 갈리는 메뉴가 걸리긴 하지만 약간의 기대를 해본다.


주방에서 나오는 음식 냄새를 맡으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세희씨의 뒷 모습을 바라봤다.


세희씨는 주방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중얼댄다.


"이렇게 하는게 맞나? 너무 많이 넣었나?"


"소금을 더 넣어야 하나? 이정도?"


"엑.. 너무 짠데.. 어떡하지? 물을 넣어야 하나?"



..제대로 된 요리가 나오긴 하겠지?


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


요리를 완성한 그녀가 나를 불렀다.


"현씨? 다 만들었어요."


다 만들었다는 말에 주방으로 향했다.


"현씨 입 맛에 맞았으면 좋겠네요."


식탁에 앉아 완성된 음식의 냄새를 맡았다.


"냄새는 괜찮네요."


"그쵸, 맛은 안 봤는데 냄새는 괜찮더라구요."


맛을 안 보면서 요리를 할 수가 있나?


"한번 드셔보세요."


뭔가 미심쩍긴 하지만 약간의 기대를 부풀고 미역줄기를 집어 먹었다.


.

.

.


나는 반찬투정을 안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급식도, 군대 짬밥도, 가리지 않고 웬만해선 뭐든지 잘 먹었다.


그런데 내 눈 앞에 있는 이 요리.


이건 도저히 못 먹겠다. 


아니 먹을 수가 없다.


애초에 호불호가 심한 메뉴인데다.


이 정도는 좋아하는 사람도 못 먹을 정도다.


간도 세고, 양념과 재료가 따로 논다.


심지어 잘못 볶았는지 비린내까지 난다.


가지볶음은 너무 오래 볶은 건지 너무 물러서 식감이 없어졌고.


노각무침은 말 할 것도 없다.


먹으면 먹을수록 표정이 굳어져만 갔다.


그런 나를 의식한듯. 


마주 앉은 세희씨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이내 마지막으로 남은 도라지무침을 먹은순간. 


"음, 이건 괜찮네요. 맛있어요."


생각보다 먹을만 했다. 


아니 먹을만 한게 아니라 맛있었다. 


드디어 먹을 수 있는 반찬이 나왔다.


내가 맛있게 먹자, 세희씨의 어두웠던 표정은 금새 밝아졌다.


"맛있어요? 정말로요?"


"네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 맛있네요."


칭찬을 하니 꼬마아이처럼 기뻐하는 그녀.


"다행이네요. 사실 만드는 건 처음 해보는거거든요."


어쩐지 요리하는 모습이 많이 어색하더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남기고 세희씨가 주방으로 달려갔다.


'설마 다른 요리도 준비 했나?'


도망칠 타이밍을 재던 중 세희씨가 무언갈 가지고 돌아왔다.


"이건 뭐에요?"


"도라지 무침이요. 밀폐용기라 뚜껑만 잘 닫으시면 오래 드실 수 있을거에요."


그렇게 말 하면서 락앤락 통에 담긴 도라지무침을 냉장고에 넣었다.


"이건 너무 많은거 아니에요?"


"많이 드시면 되죠." 


이걸 언제 다 먹을까. 


앞으로 삼시세끼 도라지만 먹어야 되게 생겼다.





=============


다음날 아침.


"흐암..."


기지개를 펴고 휴대폰을 켜 시간을 확인한다.


 '오전 7시 46분'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일어났다.


더 자고 싶지만 이대로 더 자면 분명 저녁에 일어날게 뻔했다.


곧바로 화장실로 가 양치와 세수로 남은 잠을 깨우고.


세희씨에게 생존 메세지를 보낸 후, 아침을 먹으며 까먹고 놓친게 있나 생각했다.


"아 맞다 이불정리."


까먹고 못 한 이불정리까지 마치면.


비로소 오늘 하루를 보낼 준비가 완성된다.


'이불정리 정도는 빼달라고 할까..'


그리고 세희씨가 올때까지 아무 생각이나 하며 기다린다.


"현씨, 저 왔어요."


30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세희씨가 왔다.


"오셨어요?"


문을 열자 어제와 그저께랑은 다른 꾸민 모습을 한 세희씨가 서 있었다.


"세희씨? 오늘은 꾸미셨네요."


"네, 오늘은 어디 좀 갈까 해서요."


어디 가는줄은 몰랐는데.


"그러면 옷 좀 갈아입고 올게요."

 

나갈 줄 알았으면 미리 입고 있었을텐데.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문 밖으로 나섰다.


"많이 기다리셨죠? 옷 좀 찾느라.."


"아뇨. 그렇게 오래 안 기다렸..."


갑자기 그녀가 말을 멈추더니 나를 훑어보았다.


맘에 안 드는 것이라도 있는걸까, 그녀가 나를 훑어보더니 말했다.


"집에 옷이 그거 밖에 없는거에요?"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건가.


그래도 내 딴엔 나간다고 챙겨 입은건데.


"아뇨, 이거 말고도 다른 것도 있어요."


"다른 옷 뭐요?"


"어.. 청바지랑, 체크무늬 난방, 주황색 티셔츠, 그리고.."


집에 있는 옷들을 한 가지씩 말 할 때마다 그녀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그만.. 그만 말 하셔도 돼요.."


전부 다 맘에 안 드는건가.


하지만 옷이라곤 저것들 뿐 인데.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내 손목을 잡고 말했다.


"계획 변경이에요. 옷 부터 사러가죠."


"네? 아.. 괜찮..."


세희씨는 내가 무어라 말 할 틈도 주지 않고 무작정 내 손목을 잡으며 동네를 내려왔다.


"자, 타요."


"잠시만요 세희ㅆ.."


"얼른. 타요."


"아- 아파요 세희씨-"


그렇게 그녀에게 구겨지다 싶을 정도로 차에 태워졌고. 


그렇게 어디론가를 향해 출발했다.


10분 쯤 지나, 백화점에 도착했다.


그녀에게 이끌려 도착한 백화점은 엄청나게 컸다.


난생 처음 와보는 백화점에 낯설어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던 중 세희씨를 봤다.


하지만 날 이끌고 온 그녀도 백화점이 익숙하지 않는 듯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그런 그녀에게 물었다.


"저기 세희씨."


"네? 왜요..?"


대답하는 목소리가 묘하게 떨린다.


"혹시 세희씨도 백화점 처음 와보시나요?"


"그게 무슨소리에요..?"


"주변을 자꾸 살피셔서.. 처음 온 건가 싶길래요."


"ㅇ..아뇨 그..럴리가요."


"그냥 그.. 새로온 옷 있나 살펴본거에요. 아하하.."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 과는 달리 그녀의 몸짓과 표정은 뻣뻣하게 굳어있다.


아무래도 세희씨는 거짓말을 잘 못 하는 것 같다.


"우리 일단 저기부터 가요."


그녀가 가르킨 곳은 스포츠의류 매장이였다. 


다른 매장보다 사람이 많은 걸 보니 그렇게 비싼 편이 아닌가?


라는건 내 착각이었다.


괜찮다 싶어 본 옷의 가격은 14만원.


처음보는 옷 가격에 경악하며 티셔츠 칸으로 갔다.


티셔츠 한 장에 4만원.


이 정도면 옷에 금이라도 박혀 있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터무니 없이 비쌌다.


'백화점은 원래 이런가?'


라는 생각이 들어 뒤에 있는 세희씨를 봤다.


하지만 세희씨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듯, 작게 중얼거렸다.


"흐엑.. 왜 이렇게 비싸..?? 고작 츄리닝 한 벌이.." 


"...."


아마도 오늘 옷 사기엔 글른것같다.


가격을 보며 경악하는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 세희씨.."


"현씨! 이 옷 좀 보세요. 이거 어때요??"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옷을 꺼내들며 말을 끊는다. 


"괜찮네요, 근데 너무 비싸지않아요?"


"뭐가 비싸다고 그래요 옷 사는데 이 정도는 써야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세희씨지만 옷을 들고있는 손은 벌벌 떠는 중이었다.


이럴거면 왜 백화점에 왔는지.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여기 옷이 별로네요. 제가 아는 곳 있는데 거기로 가요."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는지 그녀는 잠시 눈을 깜빡였다.


"네? 그럼.. 그럴까요..??" 


"네, 근데 그 매장은 여기 백화점에 없어요."


"그럼 어디로..?"


"저희 동네 근천데 제가 위치 알려드릴게요."


그렇게 백화점을 나와 차를 타고 동네 근처 시장으로 갔다.


세희씨가 나를 보며 실망한듯한 말투로 얘기했다.


"여긴 시장이잖아요.."


"네. 시장이죠. "


"그래도 모처럼 사 드리는건데 시장에서 파는 옷이라뇨.."


"시장 옷이 어때서요, 저는 여기 옷이 더 좋아요"


세희씨는 마음에 들지않는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잠시 뒤.


아까의 실망한 기색은 어디 갔는지 흥얼 대며 옷을 고르고 있다.


참 이상한 사람이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옷을 찾았는지 나에게 가져오며 말했다.


"현 씨 이거 어때요? 현씨랑 잘 어울릴 거 같아요."


아까 백화점에서 본 옷이랑 비슷한 옷이다. 


"아까 백화점에서 본 옷이랑 비슷하네요?"


"그쵸, 근데 가격은 여기가 훨씬 저렴해요."


"이거랑 이거. 이렇게 한번 입어보세요."


그녀가 내게 옷을 건네며 탈의실을 가르킨다


탈의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세희씨가 나를 보더니 말했다.


"현씨 생각보다 비율이 좋네요?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잘 어울려요."


확실히 전에 입던 옷 보단 나은 것 같기도..


"현씨, 그거 말고 이것도 한번 입어보세요."


그렇게 옷 갈아입기를 다섯 번 정도 하고.


세희씨는 마음에 드는 옷이 많았는지 옷을 여러 벌 계산한다.


계산 한 후 밖에 나와서 보니 해가 저물고있었다.


"맘에 드는 옷이 많아서 과소비 해버렸네요."


과소비라 해도 백화점에서 옷 네 벌 산 것 보단 적겠지만.


"근데 너무 많이 산 거 아니에요? 저는 위 아래 한쌍만 있어도 되는데."


"아뇨, 옷이라는건 아무리 많아도 부족한법이에요 그러니까 한 두 벌로는 택도 없다구요."


저게 무슨 소린지.


"그게 무슨소리에요?"


"아무튼, 그만큼 옷이 많이 필요하다는 거에요-." 


"그리고 오늘 새 옷 많이 샀으니까 전에 입던건 좀 버려요."


"아깝게 왜 버려요? 아직 몇 년 더 입을 수 있는데."


"저걸 어떻게 몇 년동안이나 더 입어요? 그리고 누가 요즘 그런 옷을 입는다고. 유행도 다 지났는데."


그녀가 답답하다는듯 얘기한다.


"그래도 보다 보면 괜찮은데.."


자꾸 말대꾸를 해서 그런지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아니요. 그런 옷은 몇 년이고 몇 십년이고 봐도 저얼때 예뻐보일 일 없어요. 만약 그런 날이 오면 전 차라리 발가벗고 다닐래요."


그정도인가. 


그렇게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걷다보니 어느덧 집 근처에  도착했다.


"다 왔네요. 이쯤에서 헤어지죠 우리."


"그래요. 오늘 재밌었어요, 덕분에 좋은 가게도 알고. 오히려 제가 도움 받은거 같네요."


"아뇨. 덕분에 새 옷도 얻고. 제가 더 도움 받았죠."


그녀는 내 대답에 미소지었다.


"그럼, 들어가세요."


인사를 하고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그녀가 나를  불러세웠다.


"저.. 현씨!"


"네?"

 

그녀가 할 말이 있는 듯 쭈뼛 거렸다.


"세희씨? 하실 말씀 있으세요?


"그.. 저.. 다름이 아니라..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부탁? 뭔 부탁을 말하는 걸까.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거 라면 들어드릴게요."


"큰 부탁일 수도 있는데요.. 앞으로 저랑 만날 때는 제가 사 드린 옷만 입어 주실 수 있나요?


이런걸가지고 뭘 부탁까지 하는걸까.


"네. 뭐 어려울 거 없죠."


어차피 집에 남은 옷은 그녀가 전부 버리라고 해서 입을수도없는데.


대답을 들은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내일 다시 봬요!"


"네, 내일 봬요."


그렇게 그녀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곤 안방 장롱을 열고 기존에 있던  옷 들을 꺼내고 그 자리를 새 옷들로 채운다.


장롱을 새 옷들로 채우고 기존에 입던 옷을 쳐다 봤다.


'아직 버리긴 아까운데..'


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장롱을 열어 기존의 옷을 장롱 구석에 몰아 넣었다.


'세희씨가 장롱까지 열어 보진 않겠지.'


그렇게 밤이 되고.


자려고 침대에 누웠으나, 왠지 잠이 오질 않는다.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


'불면증인가? 원래 이 시간대면 자고 있을 시간대인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이나 하던중 갑자기 세희씨가 생각 났다.


'세희씨 잘 들어가셨으려나..'


'오늘 너무 많이 받았는데.'


'다음에 뭐라도 하나 선물 해 드려야하나..'


'여자들은 보통 뭘 좋아하려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벌써 새벽.


슬슬 눈꺼풀이 감긴다.


이만 잘까?


가뜩이나 내일 알바도 있는데.


근데 지금 자면 분명 늦게 일어날게 뻔한데..


하지만 걱정과는 반대로 내 눈은 자꾸만 감겨 갔다.


참 힘든 하루였다.


하지만 가슴속 무언가가 채워지는 그런 하루이기도 했다.





=============



"으음.."


오늘은 어제와 달리 엄청 개운하다.


거의 하루를 잔 것 같은 그런 기분? 


잠깐만, 하루?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봤다.


아침 치고는 너무 어둡다.


순간적으로 불안함을 감지한 나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오후 7시 38분'


큰일이다, 지각이다.


곧장 일어나 아무 옷이나 걸치고 알바장소로 뛰었다.


이미 늦었지만 미친듯이 달려 가게에 도착했다.


가게에 들어서자 마자 카운터에 서 있는 사장님과 마주친다.


"헉...헉..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냐 괜찮아. 근데 현이 너, 뭔 일 있냐?"


"네? 아뇨 딱히.. 왜요?"


"아니.. 웬일로 니가 지각을 다 하나 해서.."


"아.. 어제 잠을 늦게 잤더니.."


"다음부터는 일찍 좀 자고 그래, 오늘 나 없었음 어쩔뻔했어."


"죄송합니다.."


"아냐, 아무튼 너 왔으니까 나 간다? 이따 봐."


"네 들어가세요."



"후아.."


손님이 별로 없는 작은 카페이긴 하지만 직원이 나 하나 뿐 이라 펑크라도 내면 곤란하다.


그래도 사장님이 계셔서 다행이다..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사장님이 떠나시고 얼마 안가 갑자기 손님이 몰려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차피 지각한거 조금 만 더 늦게올걸 그랬나..


한 시간쯤 지났나 손님들이 하나 둘 떠나고 이젠 슬슬 새로 들어오는 손님도 눈에 띄게 줄었다.


그렇게 어느덧 카페엔 나 혼자밖에 남지 않았다.


'심심하다, 손님이라도 안 오려나..'


그렇게 멍하니 시간을 보내던 중. 


'우우웅-'


휴게실에서 충전 하고있는 휴대폰이 울렸다.


'누구지? 사장님인가?'


사장님인가 싶어 급하게 휴대폰을 확인했다.


'세희씨'


사장님이 아니라 세희씨에게 온 전화였다.


세희씨? 것도 왜 이 시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셨나?


무슨 일 이라도 생겼나 싶어 전화를 받는 순간.


"여보세..."


"현씨! 지금 어디계세요!"


전화를 받자마자 휴대폰을 넘어 귀가 울릴 정도로 들리는 목소리.


나도 모르게 휴대폰을 든 손을 멀리 뻗어버렸다.


매번 드는 생각인데.. 세희씨는 목소리가 너무 큰 것같다.


다시 휴대폰을 귀에 갖다대고 말했다.


"세희씨? 무슨 일 있으세요? 저 지금 알바중이에요.


내가 세희씨한테 알바한다고 말 안했었나? 


"알바요..? 아.. 아 다행이다.."


뭐가 다행이라는걸까,


"세희씨 왜 그러세요? 갑자기 큰 소리로.."


그러자 그녀가 큰 소리로 얘기한다.


"큰 소리 안 내게 생겼어요? 하루 종일 메세지도 없어서. 직접 찾아갔는데, 찾아가서 불러도 대답도 없고. 뭐에요 진짜!!"


아. 맞다 메세지. 급하게 나오느라 깜빡했다.


근데 집 까지 찾아 왔다고?


"죄송해요, 메세지 보낼 시간이 없어서.."


"보낼 시간이 없었다구요? 저녁에만 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침도 있고, 점심도 있는데. 그때도 안 보내셨잖아요?"


아 그건 늦잠자서..


"아.. 그건 제가 오늘 늦잠을 자서.."


"그 말을 지금 저 보고 믿으라는 거에요?"


진짠데..


"진짜에요 세희씨.. 어제 잠이 안와서 새벽까지 깨 있었더니.."


내가 많이 걱정됐는지 그녀가 말 끝을 흐리며 말한다.


"저 진짜 현씨가 쓸데없는 짓 하신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미안해요 세희씨."


"앞으로는.. 앞으로는 이런 일 생기지 않게 조심해주세요.. 네? 저 이런거에 예민하단 말이에요.."


"진짜 미안해요 세희씨, 앞으로는 이런 일 안생기게 주의할게요."


"..."


"세희씨?"


"..진짜죠..? 약속할 수 있어요?"


"네 약속할게요."


"...."


"미안해요. 갑자기 큰 소리내서. 잠깐 놀라서 그만..."


"괜찮아요. 제가 잘못 한건데요."


"...."


"...."


그리고 찾아온 침묵.


얼마 안가 그녀가 침묵을 깬다.


"...근데요 현씨.. 아까 알바 한다고 하셨죠?"


"네."


"저 현씨 알바 하는 곳 한번 가 보고 싶은데..가도 될까요..?"


갑자기 여길 왜 오려고 하는걸까. 할 만한 것도 없는데.


"여길요? 어.. 오셔도 되기는 한데 할 것도 없고 아마 지루하실껄요."


"괜찮아요, 그냥 현씨가 일 하시는거 구경하고 싶어서요."


"그럼 주소 알려 드릴테니까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오시면 음료라도 한 잔 서비스로 드릴게요"


서비스라고 해도 내 돈으로 사는거지만.


서비스 준다는 말에 그녀의 톤이 높아졌다.


"진짜요? 진짜죠? 지금 갈게요. 어디로 가면 돼요?"


방금 전 까지 화내던 사람이 맞나?


"OO카페로 오시면 돼요."


"금방 갈게요!"


그녀에게 가게 위치를 알려주고 그녀가 마실 음료를 준비하고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저 멀리서 그녀가 걸어 들어왔다


"생각보다 그렇게 큰 카페는 아니네요?"


"그냥 아는 사람만 오는 그런 카페에요."


세희씨가 카페 내부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저는 이런 카페가 좋아요. 북적이지도 않고 조용하니 좋잖아요."


"그건 세희씨가 손님 입장이라 그래요. 사장님은 손님이 많이 오는 걸 더 좋아하시죠."


그녀에게 음료를 건네며 말했다.


세희씨는 음료를 홀짝이더니 내게 물었다.


"일은 몇 시에 끝나시나요?"


그녀의 질문에 시계를 쳐다 봤다. 


9시 23분..


"11시에 끝나니까 2시간 정도 남았네요."


"엑- 두 시간이나요..? 그냥 좀 일찍 끝내시면 안돼요?"


"제가 사장도 아닌데 어떻게 맘대로 정해요 그리고 끝날때 쯤 되면 사장님 오셔서 안돼요."


"치이-"


"그래서 제가 지루할거라고 말했잖아요."


"금방 끝날 줄 알았죠.."


"정 심심하시면 노래라도 틀어 드릴까요? 뭐 원하시는 곡 있으세요?"


노래를 틀어준다는 소리에 그녀가 잠시 고민한다.


"노래요? 어.. 기왕이면.. 음.. 재즈가 좋겠네요."


재즈?


세희씨는 보이는 것 과는 다르게 올드한 취향을 가진 것 같다.


좋아하는 음식이나.. 노래가 그렇다는 걸 알려준다.


꽤 놀림 받았을텐데.


"세희씨 학교 다닐때 늙은이 같다는 소리 많이 들으셨죠."


그녀가 어떻게 알았냐는 듯 놀란 표정으로 말한다.


"어떻게 아셨어요? 현씨 저랑 같은 학교셨어요?"


모를 수가 있나..


그렇게 그녀가 추천해준 곡을 틀자 스피커에서 여러 악기의 소리가 흘러나온다.


"어때요 현씨.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랜데."


잘 모르겠다.


"제가 음악을 즐겨 듣는편이 아니라 잘 모르겠네요."


"원래 처음엔 다 그래요, 저도 그랬구요."


그렇게 음악을 들으며 그녀와 대화를 주고 받았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시계가 11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슬슬 마감해야겠다.'


문 앞 팻말을 뒤집은 후 주방의 식기들을 정리하던 중 때마침 사장님께서 오셨다.


그런데 사장님이 급하게 주방으로 들어오더니 내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야. 저분 누구셔? 너 기다리고 있다는데?"


"그냥 아는 지인이에요."


"뻥치지 말고 임마, 저런 미인이 어떻게 그냥 아는 지인이야."


"진짜에요.."


"그러고 보니 너 갑자기 옷도 거지같은거에서 멀끔한거로 갈아 입고.. 진짜 아무 사이도 아니야?"


사장님 마저 내 옷이 그렇게 보였었나.


"그냥 아는사람이라니깐요.."


그렇게 사장님의 질문공세를 받으며 정리를 마무리 했고.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어 그래~ 여자친구분도 잘 들어가세요~."


저 사람이 진짜..


"죄송해요 세희씨, 사장님께서 장난기가 많으셔서.."


"..아뇨.. 괜찮아요.."


괜찮다고 말하는 그녀의 귀는 빨갛게 변해있었다.


그렇게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말했다.


"..사장님께서 참 미인이시네요."


"네?"


그런가?


"사장님이요? 전 잘 모르겠는데."


그녀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에이. 지금 제 앞이라고 거짓말 하시는 거에요? 솔직하게 말 하셔도 돼요."


진짜 잘 모르겠는데..


"진짜에요. 사장님보다 세희씨가 더 예쁜거 같은데.."


"...!"


갑자기 분위기가 조용해진다.


'왜 말이 없으시지?'


갑자기 조용해진 탓에 고개를 돌려 세희씨를 쳐다 보았다.


"세희씨? 왜 말이.."


그녀의 얼굴이 당장이라도 터질 듯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 세희씨한테 무슨 말을 했나?'


뭔가 잘못 말한게 있나 곰곰히 생각했다.


'아.'


마지막으로 한 말이 떠올라 그녀와 마찬가지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방금 한 말은 잊어주세요.."


그렇게 서로 한참을 말 없이 걷던 중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현씨, 저 질문 하나만 해도 돼요?"


"..뭔데요?"


"현씨는 웃을 줄 모르는 사람이에요?"


이건 또 무슨 소릴까.


"그게 무슨소리에요?"


"현씨 웃는걸 한번도 본 적이 없어서요."


내가 세희씨 앞에서 웃은 적이 없었나?


"제가 세희씨 앞에서 한번도 웃은적이 없었나요?"


"네. 그래서 못 웃는 사람인건가 했는데 아까 주문 받을때 보니까 잘 웃으시더라구요"


그야 손님 응대 할땐 당연히 해야하니까..


"손님 응대할땐 억지로라도 웃어야죠. 그렇게 안 하면 사장님께 혼나는걸요."


내 말에 그녀가 잠깐 고민 하더니 말했다.


"그럼요.. 현씨. 저를 손님이라고 생각 하고 한번만 웃어주시면 안돼요?"


그리고 세희씨는 도대체 왜 내가 웃는 모습을 보고싶어 하는 걸까.


"지금은 피곤해서 힘드니까 나중에 보여드릴게요."


"네? 나중에 언제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두루뭉실하게 대답하자 맘에 들지 않는듯 그녀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참 알기 쉬운 여자다.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 꼭 보여드릴게요, 약속해요."


약속한다고 말하자 그녀가 재차 물었다.


"약속 한거에요? 나중에 가서 딴 말하기 없기에요?"


"네. 그때까지 제가 살아 있으면요."


내가 그녀의 심기를 건드린걸까? 갑자기 정색을 하고 나를 노려본다.


"..농담이에요."


"그런 농담은 안 하셨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정색까지 할 정도인가..


"아무튼 약속 하신거에요?"


그녀가 새끼손가락을 보여주며 내게 말했다.


"네, 약속한거에요."


나는 그녀의 새끼 손가락에 내 새끼 손가락을 걸며 말했다.


그렇게 그녀와 언제 지킬지 모르는 약속을 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갈림길에 도착했다.


"저는 이쪽으로 가야 해서요,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인사를 마치고 들어가려는 중 그녀가 내 팔을 붙잡았다.


"...."


"세희씨..?"


팔을 붙잡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세희씨 왜 그러세요.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내일은 메세지 꼭 까먹으시면 안돼요.. 아시겠죠??"


이걸 말 하려고 잡은 건가.


"네. 안 까먹을게요, 걱정마세요."


.

.

.

.

.

.

.


그렇게 집에 도착한 후.


대충 몸을 씻고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아무리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는다. 


벌써 뒤척인 것만 해도 열 댓번.


또 늦잠 자면 안되는데..


물이라도 한 잔 마시러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에서 물 한 잔 마시고 다시 방에 들어가려는 순간. 


저 멀리 창문 밖으로 밤하늘이 보였다. 


세희씨를 만났던 날에 봤던 밤하늘보단 덜하지만,


그렇다고 안 보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반달이 뜬 예쁜 밤하늘이었다.


만약 그때 세희씨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 밤하늘을 볼 수 있었을까.


방으로 들어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창문쪽으로 향했다. 


창문을 열자 들어오는 찬 바람.


찬 바람에 잠시 몸을 떨었지만, 이내 보이는 밤하늘.


나는 발코니 난간에 기대어서 보려고 난간에 몸을 살짝 기대었다.


그러자 난간에서 삐그덕 소리가 났다.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 난간이 많이 낡아있었다. 


아마 이대로 몸을 기대고 보면 그대로 떨어지겠지.


그래서 난간에 기대는건 포기하고 보기로 했다.


그렇게 멍하니 밤 하늘을 보던 중 갑자기 세희씨 생각이 났다.


이렇게 예쁜 밤하늘인데 세희씨는 지금 쯤 주무시느라 못 보셨겠지?


또 이런다.


세희씨 생각할 때마다 저번에 느꼈던 이상한 기분이 느껴진다.


가슴속이 무언가로 채워져가는 느낌.


아마 내가 잠을 못 자는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닐까.


문득 그녀가 뱉은 말이 생각났다.


일주일 안에 찾아주겠다는 그 말.


처음엔 불가능할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지금은 잘 모르겠다.






===========


'우웅..'



"으음.."



'우우웅...'


아침부터 울리는 벨소리에 눈을 살짝 떠졌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휴대폰 화면이 들어온다.


'세희씨'


세희씨가 아침부터 무슨 일로 전화 하셨지?


"네 세희씨.."


"어머? 현씨 아직까지 주무시고 계셨어요?"


"아.. 어제 잠이 안와서 늦게까지 깨어있다보니.."


"벌써 10시에요 일어나요. 그리고 오늘은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 좀 늦을 것 같아요."


"아.. 네.. 괜찮아요.."


"다행이네요. 그럼 이따 봬요."


뚝.


"하암..."


이불을 걷어내고 기지개를 편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이불을 정리하고.


몸을 씻고, 그녀가 만들어 준 반찬으로 아침을 챙겨먹은 후 창밖을 보았다.


날씨는 흐릿하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비 오니까 오늘은 집에서 있으려나..'


아침 먹은걸 치우고 소파에 앉아 티비를 켰다.


켜자마자 나오는 영화채널.


한 우주영화가 재생되고 있었다.


방금 시작한건지 주인공의 독백이 진행되고 있었다.


영화같은걸 딱히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세희씨가 올때까지 마땅히 할 게 없기도 하고..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이라도 영화를 보기로 했다.


영화는 그냥 일반 로맨틱 영화였다. 배경이 우주일뿐.


다른 사람들에겐 시시하다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겐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나, 영화에 집중하고 있을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현씨, 저 왔어요."


"잠시만요."


문을 열자 우산을 든 그녀가 서 있었다.


"많이 기다리셨죠.. 죄송해요."


"아뇨. 영화 보고 있어서 괜찮아요."


신발을 벗고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곤 티비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이거 로맨틱 영화 아니에요? 현씨 생각보다 감성 있는 사람이네요?"


"세희씨도 이 영화 보셨어요?"


"네. 작년쯤 티비에서 본 것 같은데.."


작년에도 티비에서 틀어 줄 정도면 생각보다 오래 된 영화인가.


"현씨 이거 재밌어요?"


"네. 생각보다 재밌더라구요."


재밌다는 내 말에 세희씨가 잠시 생각하다 휴대폰으로 무언가 검색하더니 말했다.


"현씨 그거 알아요?"


"네? 뭘요?"


"이 영화 후속작 나온거요. 괜찮으시면 저랑 보러 가실래요?"


그녀가 내게 영화를 보자고 제안한다.


"좋죠, 근데 밖에 비가 이렇게 오는데 괜찮겠어요?"


"날씨가 무슨 상관이에요. 보고 싶으면 보는거죠."


그렇게 세희씨와 영화관으로 갔다.


영화관에 들어서자 고소한 팝콘 냄새가 반겼다.


영화관이라.. 중학교때 마지막으로 가 본 것 같은데.


"그럼 표 예매하고 올테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세희씨가 표를 예매하러 간 사이. 


주변을 보니 대부분이 커플들이었다.


'나랑 세희씨도 커플로 보이려나.'


'좀 부끄러운데.'


금방 표를 예매하고 온 그녀가 내게 물었다.


"현씨는 팝콘 뭐 드실래요? 저는 캬라멜팝콘 먹을건데."


"저는 세희씨 드시는거랑 똑같은거로 먹을게요."


"그럼 음료도 같은거로 할게요."


그렇게 팝콘과 음료까지 준비하고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스크린에는 광고가 한창 나오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영화를 기다리며 휴대폰 알람을 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광고가 끝나고 상영관 내부 불이 꺼졌다.


"현씨, 시작 하나봐요.."


"기대 되네요."


그렇게 인트로가 시작되고.


영화가 시작됐다.


그렇게 영화를 보는데 아까완 달리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려 영화에 집중 할 수가 없었다.


'영화관에서 보는게 오랜만이라 그런가..'


'세희씨는 괜찮으신가?'


시선을 살짝 옆으로 해서 세희씨쪽을 살펴봤다.


세희씨는 영화에 푹 빠졌는지, 눈을 크게 뜨며 보고 있었다.


'금방 해결되겠지.'


하지만 이 두근거림은 영화가 끝날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영화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나왔다.


"후아.. 재밌었다.. 현씨도 재밌게 보셨어요?"


"네.. 재밌었어요."


"다행이네요, 현씨가 맘에 들어하셔서."


그러더니 그녀가 물었다.


"현씨 배 안고프세요? 밑에층에 식당 많은데, 우리 밥 먹고 들어가요."


"좋죠."


그렇게 그녀와 식당코너로 향했다.


영화가 끝나고 바로 가서 그런지, 손님이 많이 붐볐다.


"죄다 줄 서 있네요.."


"그러게요, 사람들이 꽤 많네요.."


"현씨, 저기 어때요?"


세희씨가 꽤 비싸 보이는 스테이크 집을 가르키며 말했다.


'줄도 없고. 메뉴도 그렇게 나빠보이진 않는데.'


"좀 비싸보이는데.. 괜찮으세요?"


"음식이 비싸봤자죠. 들어가요."


'어디서 경험해 본 느낌이..'


그렇게 가게에 들어선 후 메뉴판을 봤다.


메뉴판을 본 세희씨가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현씨.. 다른 곳 갈까요..?"


이럴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대가 시간대라 다른곳에 가면 오래 줄 서있어야 할텐데..


하는 수 없이 그녀에게 말한다.


"세희씨가 영화표 사셨으니까 식사는 제가 살게요. 드시고 싶은거 고르세요."


그러자 그녀가 손사래를 치며 사양한다.


"네? 아뇨아뇨. 안 그러셔도 돼요. 여기 가격도 꽤 나가는데.."


"괜찮아요. 사양말고 고르세요."


"..그래도 돼요..?"


"네."


세희씨는 잠시 고민하더니 한가지 선택했다.


"그..그럼 이거로 할게요."


제일 싼 메뉴를 고르는 세희씨.


"세희씨, 제 눈치 보지 마시고 드시고 싶으신거 고르셔도 돼요."


내 말에 세희씨가 다시 고민하더니 고른다.


"그럼.. 이거.."


아까 고른 메뉴 바로 옆에 있는 거대한 스테이크. 


이걸 먹겠다고?


"이거.. 혼자 다 드실 수 있어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세희씨.


그렇게 음식을 주문하고.


세희씨가 말했다.


"저.. 현씨 오늘 음식값은 제가 나중에 값을게요.."


"아뇨, 오늘 영화비도 내주셨는데 밥 한끼는 제가 사 드려야죠."


"제가 받으면 안되는데.."


"괜찮아요. 편하게 드세요."


그렇게 나온 내가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세희씨가 주문한 스테이크가 마저 나왔다.


"잘 먹을게요 현씨."


"맛있게 드세요."


세희씨가 잘 먹겠다는 말과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그나저나 저 스테이크.. 사진으로 본 것 보다 더 큰 것같은데.. 세희씨가 다 드실 수 있으려나..


하지만 걱정한 것과는 달리 세희씨는 고기는 물론 옆에있는 가니쉬까지 전부 깔끔하게 비웠다.


"세희씨 생각보다 많이 드시네요.."


내 말에 세희씨가 째려보며 말했다.


"그런 말은 여자한테 실례에요 현씨."


식사를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어느덧 비가 그치고 날이 어두워지고있었다.


"이대로 가긴 아쉬운데, 산책 좀 하다 갈까요?"


"네, 좋죠."


그렇게 그녀와 영화관 근처 산책로에 갔다.


세희씨와 산책을 하는데, 긴장해서 그런지 아까부터 심장이 두근 거린다.


"밥 먹고 걸으니 좋네요. 바람도 선선하니."


"그러게요."


"현씨, 아직도 그런 마음 들어요?"


갑자기 그녀가 내게 물었다.


"무슨 마음이요?"


"자살하고싶은 마음이요."


갑자기 들어온 민감한 질문에 잠시 말 문이 막혔지만 이내 대답했다.


"글쎄요."


"글쎄요라뇨, 좀 더 생각하고 말씀해주세요."


"생각 해 봤어요. 근데 아직 잘 모르겠네요."


"그럼 제가 좀 더 노력 해야겠네요."


"...."


그렇게 서로 말 없이 산책로를 걷던 중 세희씨가 말했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 갈까요?"


"그래요."


.

.

.

.

.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아까 나갈때 끄지 못했는지 안방에서 티비 소리가 흘러나온다.


'아까 못 끄고 나왔나.'


나는 티비를 끄러 안방으로 들어 갔다.


티비에선 아까완 다른 영화가 재생되고 있었다.


50년은 더 되보이는 흑백영화.


티비를 끄려고 리모컨을 찾던 중, 영화 대사가 귓속에 들어왔다.


[혹시 모르죠. 당신이 원했던게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장 가까이 왔을지도.]


삑.


마침내 찾은 리모컨으로 티비를 끄고 침실로 향했다.




=====================


다음날 아침.


얼굴에 비춰지는 햇빛에 눈을 떴다.


몸을 일으키고 몸을 보니 어제 외출복 그대로다.


'그냥 골아 떨어진건가.'


휴대폰을 꺼내 시계를 본다.


'오전 8시 32분'


침대에서 일어나 정리를하고.


어제 씻지못한 몸을 씻었다.


그 후 메세지를 보내고, 아침을 준비한다.


아침을 먹던 중 세희씨한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현씨, 오늘은 깨어 있네요?"


"아..네 어제 집 오자마자 잠들었더니.."


"오늘 날씨 보셨어요? 진짜 좋더라구요. 이런 날씨엔 어디 놀러가야죠."


"어디로요?"


"그건 비밀이에요. 아무튼, 곧 있으면 도착하니까 준비 해 두세요."


"네."


통화를 마치고 창문 밖을 보았다.


적당히 따뜻한 온도, 화창한 날씨. 나가서 놀기 딱 좋은 날씨다.


이런 날씨를 세희씨가 가만 둘 리가.


평소엔 날씨가 어떻든 집에만 박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평소랑 다르다.


'똑똑'


세희씨 왔다보다.


"오셨어요? 근데 제가 지금 머리가 덜 말라서.. 잠시만 기다려줄래요?"


"네. 천천히 하세요."


급하게 머리를 말리고 세희씨가 사준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세희씨가 내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짓더니 장난스럽게 말했다.


"누가 골라 준 건진 모르겠지만, 그 옷 진짜 잘 어울리네요."


나도 장난으로 응수했다.


"아. 네.. 아는 사람이 골라줬는데 생각보다 괜찮더라구요. 그래서 앞으로 이것만 입을까 생각중이에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만 부끄러운듯, 세희씨가 고개를 숙이고 웃는다.


이내 다시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럼 빨리 가요, 좋은 날씨에 좋은 옷까지 입었는데 어디라도 가야죠."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내 손을 잡더니 어린이마냥 내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그녀에게 물었다.


"근데 우리 어디 가는거에요?"


"가보면 알아요. 사실은 저번에 가려고 했는데 현씨 옷 사느라 못 갔잖아요"


"저는 사달라고 한 적이.."


"아무튼. 현씨도 마음에 드실 거에요, 아마도."


도대체 어딜 가길래.. 벌써 동네로부터 한 참 멀어진것같은데.


.

.

.

.

.

.


"현씨? 현씨??"


"!.. 아.. 네.."


"벌써 다 도착했어요, 내려요."


잠깐 졸았나.. 근데 여긴 어디지?


"저 옛날부터 여기 한번 와 보고 싶었거든요."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봤다. 놀이공원?


"놀이공원이네요?"


"네, 어제 식사대접도 받았으니 답례로 준비 해봤어요. 맘에 들어요?"


"네.. 뭐.. 근데 제가 놀이공원에 한번도 가 본적이 없어서.."


내 말에 세희씨가 살짝 미소지었다.


"그럼 우리 둘 다 처음이네요~."


처음인게 그렇게 좋은건가.


세희씨가 미리 예매한 표를 확인받고 놀이공원에 들어갔다.


놀이공원에 들어서자마자 세희씨가 어린 아이처럼 반응한다.


"우와아.. 엄청 크다.."


"현씨 저거 봐요, 엄청 크지않아요? 저런건 처음봐요.."


"세희씨. 세희씨 지금 엄청 어린애같아요."


'퍽'


세희씨가 내 배를 주먹으로 친다. 


주먹은 어른일지도..


"어린애 같다뇨.. 그런 농담은 하지마세요."


"미..미안해요.."


"그나저나 현씨는 안 신기해요? 전 되게 신기한데.."


신기하기는 하다. 나도 저렇게 큰 놀이기구는 처음보니까..


세희씨가 가이드맵을 펼치며 말했다.


"현씨, 뭐부터 탈까요? 보니까 여기 롤러코스터는 꼭 타야된다는데.."


"저도 잘 모르는데.. 일단 아무거나 막 탈까요?"


대충 몇 개 타면 지치시겠지.. 


하지만 곧 깨달았다. 세희씨는 체력이 엄청나다는걸..


쉬지않고 4개를 탔을 무렵.


"허억..허억.."


"어? 현씨 더 안 타세요?"


아마 웬만한 성인남자보다는 더 좋은거같다.


"아.. 세희씨.. 좀만 쉬면 안될까요..?"


쉴 틈도 없이 빙글 도는걸 계속 탔더니 속이 울렁거린다.


세희씨가 잠깐 쉬자는 나를 보더니 말했다.


"현씨 보기보다 체력이 안 좋으시네요.."


그.. 내가 안좋은게 아니라 세희씨가 이상하게 좋은건데..


"그럼 잠깐 쉬는김에 뭐 좀 먹을까요?"


"그..그럴까요?"


그렇게 세희씨와 푸드코트로 갔다.


"우와.. 생각보다 먹을게 많네요.. 뭐 먹을까요..?"


메뉴를 보던 중 츄러스가 눈에 띄었다. 


문득 예전에 건너편 집 고시생형의 말이 떠올랐다.



"현아, 형 어제 여자친구랑 놀이공원 갔다왔다."


"공부나 하지 무슨 놀이공원이야."


"시끄러 임마, 원래 이렇게 한번 쯤은 쉬어 줘야 돼."


"맨날 쉬면서 뭘 새삼스레."


"아무튼. 사진찍고, 놀이기구타고, 밥 먹고 다 하고 왔다."


"뭐 특별한거 없어?"


"특별한거? 글쎄.. 음... 아 맞어."


"츄러스."


"츄러스? 그건 집 앞에서도 팔잖아. 놀이공원에서 먹으면 달라?"


"확실히, 가서 먹으니까 다르긴 다르더라."


"뭐가 다른데."


"이게 설명하기 좀 그런데 기분? 느낌? 아 몰라 궁금하면 니가 한번 가서 먹어봐."


"뭐야 그게-."


그렇게 형의 말이 떠오른 나는 츄러스를 택했다.


"저는 츄러스먹을게요, 세희씨는 뭐 드실래요?"


"츄러스요? 이거 맛있나요?"


"전 별로 안 좋아해요."


"츄러스 고르셔놓고 그런 말 하시는거에요?"


"놀이공원에서 먹으면 다른 맛인가 싶어서요."


"그럼 저도 츄러스 먹을래요."


나는 츄러스 두 개를 주문했다.


잠시 뒤 주문한 츄러스가 나왔다.


"츄러스..몇 번 들어는 봤는데 먹어보는건 처음이네요.."


"한번 드셔 보세요."


"그럼.."


말을 마치고 세희씨가 츄러스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음 ...음..! 들크믄기 므싯니요..!"


다 먹고 얘기하시지. 아무튼 표정을 보니 맛있다는 뜻이겠지. 


그렇게 세희씨를 따라 나도 한 입 베어물었다.


한 입 무니 느껴지는 시나몬 향과 달콤한 맛.


뭔가 다른 맛을 기대했지만.


집 앞에서 먹었던 츄러스랑 별 반 다른게 없는 맛 이었다.


'뭐야, 똑같잖아. 뭐가 다르단거야.'


라는 생각을 하며 세희씨를 보자.


츄러스를 금새 다 먹은 세희씨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맛은 있는데 양이 좀 적네요.."


양이 적은거 같진 않은데..


"제꺼 나눠 드릴까요?"


"아뇨아뇨, 괜찮아요. 현씨 드세요, 전 배가 불러서.."


그렇게 말 하지만, 시선은 내 츄러스에 가 있다.


"배부르시면 어쩔 수 없죠."


"네? 아..네.."


한번 더 물어보길 바란건가.


그녀가 아쉬워 하는 기색을 보였다.


"아 근데, 너무 많아서 다 못 먹겠는데.."


"아.. 그럼..?"


세희씨가 뭔가 기대하는 눈치다.


참 알기 쉬운 사람인 것 같다.


"세희씨가 절 반만 먹어주시면 안될까요?"


이 말을 기다렸다는 듯 세희씨가 대답했다.


"뭐.. 그럼 어쩔 수 없죠,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렇게 세희씨에게 츄러스 절 반을 나눠 주고.


츄러스를 한 입 더 베어 물었다.


여전히 집 앞 츄러스와 별 다를게 없는 맛이였다.


그런데 묘하게 아까 전에 먹었던 것 과는 좀 다른 느낌이였다.


표현하고싶지만, 딱히 표현 할 방법을 모르겠다.


아마 형이 말한 느낌이 이 느낌이 아닐까 싶다.


츄러스를 다 먹고난 후.


"자 그럼 배도 채웠겠다. 다시 가죠?"


아. 제발.


"세희씨, 조금 더 쉬다 가면 안될까요?"


"안.돼.요 많이 쉬었잖아요."


"전 조금 더 쉬고싶.."


내 말을 듣기 싫은 듯 그녀가 내 손을 잡고 움직였다.


"그런 약한 소리 하지마요, 오늘 본전 뽑아야죠."


빨리 집에 가고싶다..

.

.

.

.

.

.

.

.


그렇게 세희씨는 날이 어두워 지고 나서야 만족했다는 듯이 말했다.


"후아ㅡ 재밌었다, 현씨도 재밌었죠?"


"네.. 재밌었어요.."


날이 어두워져서 그런지, 놀이공원에 설치된 조명들이 켜지기 시작했다.


"우와.. 이쁘네요.."


그러곤 세희씨가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우리 잠깐 걸을까요?"


"그래요."


그렇게 밝게 빛나는 놀이공원을 함께 걸어다녔다.


호수 근처도 걷고.


빛나는 꽃밭도 걷고.


오르막길도 걸었다.


걷다보니 문득 든 생각.


'근데 어디 가는걸까'


"근데 세희씨, 우리 어디 가는거에요?"


어디 가는거냐는 질문에 세희씨가 대답했다.


"저도 몰라요, 그냥 목적없이 걸어다니는거죠 뭐."


"맘에 드네요 그거."


30분쯤 지났나. 계속 걷다 보니 마주한 한 건물.


우린 건물이 목적지인 것 마냥 건물에 들어갔다.


건물에 들어서자 놀이공원의 마스코트 모형이 우릴 반긴다.


마스코트를 지나 발 밑에있는 화살표를 따라 걸었다.


화살표를 따라가니 앞에 보이는 어두운 방.


방에 들어서자.


천장에 꺼져있던 무수히 많은 별 그림에 약한 빛이 들어왔다.


빛이 들어온 천장은 마치 밤 하늘을 연상케 했다.


"와아.. 현씨, 이쁘지않아요?"


"그러게요, 꼭 밤하늘 같네요."


방 내부에는 놀이공원의 시대별 모습, 여러 기념일날 찍은 사진 등.


놀이공원의 역사가 담겨 있었다.


나와 세희씨는 방 내부를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판넬에 적힌 글을 보던 중 뒤에서 세희씨가 소리쳤다.


"현씨, 여기요! 여기 위로 올라가는 길이 있어요!"


세희씨를 따라 도착한 건물 옥상.


"와아.."


옥상에 올라가자마자 무언가 홀린듯 세희씨가 난간쪽으로 달려간다.


"현씨! 빨리와봐요!"


아직도 뛸 체력이 남았나.


"천천히 가요 세희씨."


세희씨를 따라 난간에 도착하자. 눈앞에 보이는 풍경.


바로 아래에서 보이는 밝게 빛나는 놀이공원.


이런걸 보고 반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확실히 위에서 보니까 더 이쁜것 같아요.."


그렇게 나와 세희씨는 난간에 기대 풍경를 감상했다.


그렇게 잠시 풍경을 감상하던 중 스피커에서 나오는 안내 메세지.


"잠시 뒤 불꽃놀이가 시작 될 예정입니다."


"여러분 모두 즐거운 감상 되시길 바랍니다."


"현씨, 불꽃놀이 한대요, 불꽃놀이!"


불꽃놀이라.. 한번도 본 적 없는데..


"한번도 본 적 없어서 기대되네요.."


"세희씨도 불꽃놀이 한 번도 본 적 없으세요?"


"네. 현씨도 본 적 없으세요?"


"네. 한 번도 본 적 없네요."


내 말에 세희씨가 웃으며 얘기했다.


"현씨, 저랑 처음 하는게 많네요? 저 못 만났으면 어쩔뻔했어요."


그녀가 우쭐대며 말했다.


"그러게요. 세희씨도 저 만나서 백화점도 가보고."


약점을 찔린듯, 세희씨가 말했다.


"!!..아니래도요! 제가 얼마나 백화점을 많이 가봤는데..."


"많이 가본 사람 치고는 많이 굳어 있던데요?"


"....티 많이 났어요..?"


"네. 그것도 엄청요."


세희씨는 부끄러운듯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손가락 틈 사이로 날 쳐다봤다.


"현씨.. 방금 웃으신거에요?"


손가락 틈새로 날 보던 세희씨가 말했다.


"네?"


내가 방금 웃었나?


"제가 방금 웃었어요?"


"네. 자세히 못 보긴 했는데 분명 입꼬리가.."


"잘못 보신거겠죠."


"아닌데.. 웃은거 같았는데.."


세희씨가 긴가민가 한다.


나는 주제를 돌리려고 밤 하늘을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오늘 하늘 참 이쁘네요. 별도 많이 떠있고."


"그러게요. 예쁘네요."


나는 고개를 돌려 옆을 봤다.


내 옆에는 밤 하늘을 바라보는 세희씨가 있었다.


세희씨의 표정은 뭔가 모르게 어딘가 슬퍼 보였다.


그때의 나는 세희씨를 보고 무슨 감정이 들었을까.


그러던 중 세희씨도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나는 세희씨와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눈이 마주 친 순간. 


느껴졌다.


마음속이 채워지는 느낌이.


그리고.


이 느낌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나 세희씨를 좋아 하고있었구나.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쳐다 보던 중.


"저.. 세희씨."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네?"


"저 아무래도 세희씨를 좋아하는..."


"펑ㅡ 퍼엉ㅡㅡ펑펑ㅡ"


"우와! 현씨! 불꽃놀이 시작 됐나봐요!"


불꽃이 터지는 소리에 가려져 세희씨에게 내 말이 전해지지 않았다.


"예쁘다.."


"그러게요 예쁘네요.."


그렇게 불꽃놀이가 끝나고.


"현씨, 아까 불꽃놀이 하기 전에 뭐라고 하신거에요?"


세희씨가 내게 물었다.


"아.. 그거요? 까먹었어요."


물론 거짓말이다.


하지만 어째선지 다시 얘기 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까먹었다고 둘러댔다.


세희씨가 실망했다는듯 얘기한다.


"에- 그게 뭐에요, 까먹는게 어딨어요."


"저도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죠. 그리고 까먹은거 보면 아무 말도 아니었겠죠."


"그럼, 이제 집으로 돌아갈까요?"


"네, 집으로 돌아가죠."

.

.

.

.

.

.

.

.


집으로 돌아가는 중 차 안.


"오늘 즐거웠어요 세희씨."


"네, 저도요 현씨."


"벌써 내일이 마지막이네요."


"..그러게요..."


세희씨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현씨.. 드릴 말씀이 있어요."


"네. 말씀하세요."


"...제가 내일은 현씨하고 만날 수가 없어요.."


당황한 나머지 그만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네?"


"죄송해요. 진작 말씀 드려야 했는데.."

"..이유 여쭤봐도 될까요?"


".. 죄송해요. 대답 해 드릴수가 없네요.."


"..아뇨 그럴 수 있죠.."


그렇게 돌아가는 차 내부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


다음날. 


세희씨와의 일주일이 끝났다.


세희씨도 없겠다. 푹 자려고 했으나


눈이 일찍 떠졌다. 


'습관들었나..'


그리곤 습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평소처럼 이불을 정리하고 몸을 씻었다. 


몸을 씻고 나서 아침을 먹으러 주방으로가 밥을 푸고, 계란을 구웠다.


그리곤 반찬을 꺼내려 뚜껑을 여는데.


언제 다 먹었는지 오늘 하루 먹을양만 남아있었다.


'오늘 먹으면 완전히 끝이네.'


남은 반찬을 모두 꺼내고, 통을 싱크대에 넣었다.


아침을 먹던중, 생존 메세지를 보내지 않은것이 생각나 급히 휴대폰을 찾았다.


휴대폰을 찾으니 든 생각.


'아. 이제 안 보내도 되지.' 


휴대폰을 식탁위에 올려놓고 식사를 마무리 했다.


아침 먹은 걸 치우고 티비 앞 소파에 앉았다. 그리곤 핸드폰을 켰다.


'오전9시23분'


'원래 이쯤 세희씨가 오는데..'


왜인지 자꾸 세희씨 생각이 났다.


'이러면 안되는데..'


핸드폰을 끄고 옆에 있는 리모컨으로 티비를 켰다.




딱히 즐겨보는 채널이나 프로그램은 없지만 계속 채널을 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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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을 계속 돌리다 더 이상 돌리기가 지겨워 리모컨을 손에서 내려놓는다.


'원래 이 정도로 지루했었나..'


'내가 평소에 어떻게 시간을 떼웠더라..?'


'그리고 하루가 이렇게 길었나..?'


생각이 많아질수록 눈꺼풀이 다시 감겨왔다.


.

.

.

.

.

.

.

.



'삐리리-'


'삐리리리-'


'휙-'


휴대폰 알람소리에 혹시나 세희씨의 전화일까, 기대를 품고 화면을 확인한다.


        '알람'

'오후 6시 30분'


'알람인가..'


소파에서 부스스 일어나 생각했다.


'아... 알바가야지..'


대충 옷을 갈아입고 카페로 향한다.


"안녕하세요."


"어 현이~ 오늘은 지각 안 했네?"


"오늘은 일찍 일어나서요."


"그래? 근데 어찌 표정은 더 피곤해 보이네."


"그래요?"


"어, 전보다 좀 기운이 없어보여."


그런가..


그렇게 옷을 갈아입고 카운터에 섰다.


"아무튼 너 왔으니까 나 간다~ 이따 봐~"


"네 들어가세요."


오늘따라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다.


손님이 조금 와서 그런가.


쓸데없이 카페 안 식기들을 정리한다.


원래 이렇게 심심었나? 


통 가질 않는 시간을 보내려고 음악 어플을 켰다.


'무슨 노랠 들을까.."


고민 하던 중.


최근 재생한 목록에 세희씨가 알려준 재즈가 보였다.


'..이거 들을까.'


그렇게 세희씨가 알려준 재즈를 틀었다.


스피커에서 여러 악기들의 연주가 흘러나온다.


'듣다보니 괜찮은거 같기도..'


음악을 들어서 그런가 어느덧 퇴근시간이 됐다.


"야 현아, 오늘은 그 지인분 안 오시냐?"


퇴근을 하던 중 사장님께서 물었다.


"네. 오늘은 일이 있어서.."


"아쉽네. 우리 카페에서 알바 해 볼 생각 없냐고 물어볼랬는데."


"아. 너가 한번 말 해줄래?"


"시간 되면 물어볼게요."


"에이- 그러지말고."


"알았어요."


그렇게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근처 편의점에 들려 맥주 한 캔을 샀다.


그리곤 집을 지나 꼭대기 놀이터로 향한다.


"오랜만에 오네.."


전에는 매일 왔었는데.


근처 벤치에 앉아 밤하늘을 보며 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다 마시고.


오늘따라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어 놀이터 건너 낭떠러지쪽으로 향했다.


동네를 넘어 저 멀리 도시까지 보이는 야경.


항상 이 야경을 바라보면 마음속이 차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이 느낌이 들때만은 잡생각이 사라지고, 행복한 감정이 들었다.


분명 나는 그 기분을 느끼러 온 건데. 왜 이럴까.


하얗게 뜬 달, 무수히 많은 별,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도시의 건물들.


평소와 다른게 없는데, 분명 똑같은데.


왜일까,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아무런 느낌도 들지않는다.


아니. 아마도 그녀를 알고 난 후부터 그랬을지도.


취기가 돈건지, 휴대폰을 꺼내 '세희씨' 라고 저장되어 있는 연락처를 눌렀다. 


통화하기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정신이 번쩍든다.


"에휴, 이 늦은시간에 뭐 하는거냐.. 잠이나 자자.."


그렇게 집으로 돌아갔다.




=====================



"...."


"으음.."


추위에 눈이 살짝 떠졌다.


눈 앞에 보이는 벌레 한 마리.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펴본다.


"... 여긴 어디지?"


주변을 살펴보니 우리 동네 같았다.


'분명 집으로 돌아가서 잤는데..'


"꿈인가 ..?"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리고 있던중.


바닥에 길게 뻗어있는 검은줄이 보였다.


'이게 뭐지 ..?'


궁금증이 든 나는 검은 줄을 잡고 따라 가 보았다.


검은 줄은 도저히 끝을 보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계속 따라가다 보니 한 장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줄은 이 장소를 기점으로 엉망으로 풀어져 있었다.


'뭐야, 무슨 줄이 이렇게..'


주변을 살피니 느껴지는 익숙함.


'여긴 놀이터잖아..'


검은 줄이 왜 나를 놀이터로 데려왔을까.


줄을 잡고 계속 따라 가 보았다.


중구난방으로 얽혀있지만, 천천히 따라 가 보았다.


그렇게 줄을 따라가 도착 한 곳은 낭떠러지 앞.


그리고 그 낭떠러지위엔 세희씨가 서있었다.


"세희씨..?"


나는 소리쳤다.


"세희씨! 거기서 뭐 하시는거에요!!"


그러자 세희씨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넋이라도 나간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희씨! 정신 차리세요!!


세희씨는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렸다.


마치 지금 당장 죽을사람처럼.


더 이상 뭐라 말 하지않고 몸을 움직여 세희씨에게 달려갔다.


추락방지 난간을 넘어 세희씨에게 거의 다 다랐을때.


그녀가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졌다


" ㅡㅡ !!! "

.

.

.

.

.

.


"안돼ㅡ !!!!!!"


소리치며 잠에서 깼다.


"하아..하아.."


'꿈이구나..'


휴대폰을 켜서 보니 시간은 오후 8시17분.


사장님께 부재중 전화 한 통이 와 있었다.


'무슨 꿈이..'


그때, 놀이공원에서 본 세희씨가 떠올랐다.


묘하게 슬퍼보이던 그 표정.


나는 사장님께 연락 하지않고 곧바로 세희씨한테 전화했다.


'뚜르르..'


'뚜르르르..'


'뚜르르르르..'


'연결이 되지 않아 .."


받지 않는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장롱 문을 연다.


불이 켜져있질 않아 하나도 보이지 않지만


손을 뻗어 아무 옷이나 집는다.


옷에 몸을 쑤셔 넣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곤 놀이터로 미친듯이 뛰었다.


'제발.. 제발...'


정신없이 뛰던 중 계단 턱에 발을 접질러 앞으로 꼬꾸라진다.


제대로 넘어졌는지.


시야가 흐리고 이마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늦을 순 없다


흐르는 피를 옷 소매로 닦고.


접질러진 다리를 질질 끌며 놀이터에 도착했다.


그리곤 곧장 소리를 질렀다.


"세희씨!!" 


"어디 계세요!!!"


대답이 없다.


'안돼.. 안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놀이터를 샅샅히 뒤진다.


그러다 도착한 낭떠러지 앞.


낭떠러지 앞 추락 방지 난간 앞에 세희씨가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었다.


접질러진 다리를 끌며 세희씨에게 갔다.


"..세희씨.."


그러자 세희씨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본다.


"..현씨..?"


순간 세희씨를 찾았다는 안도감은 분노로 바뀌었다.


"왜!! 전화를!! 안받아서 사람을!! 걱정하게 해요!!!!"


내가 소리치며 말했다.


그러더니 세희씨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미안해요...현씨..진짜... 진짜...미안해요..."


우는 세희씨의 모습을 보자 나도 눈물이 났다.


"나 정말... 세희씨가.. 나쁜짓 한 줄알고..."


한번 흘러 나온 눈물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를 껴안고 한참을 울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서로 진정이 조금 되었을 무렵. 


세희씨가 내게 물었다.


"현씨.. 제가 여기 있는건 어떻게 아셨어요?"


나는 장난스레 대답했다.


"그냥요. 제 직감이죠."


내 말에 세희씨가 피식 웃었다.


그리곤 내 모습을 보더니 깜짝 놀란다.


"현씨 어디 다치셨어요? 피가.."


"그게 .. 급하게 오다가 넘어져서요 .. 근데 괜찮아요."


"괜찮긴요, 이리 와보세요."


그녀가 가방에서 빨간약과 밴드를 꺼낸다.


"앗 따가-."


"좀 만 참으세요."


그렇게 밴드까지 붙이고 나서야 그녀가 만족한다는 듯이 말했다.


"됐다"


"..고마워요 세희씨."


"고맙긴요.. 근데 현씨. 꼴이 그게 뭐에요?"


"네?"


짝짝이 신발에 거꾸로 입은 주황티셔츠, 체크무늬 자켓에 청바지. 내가 봐도 거지꼴이긴 하다.


"그 옷 제가 분명 버리라 했을텐데요"


"아.. 저..그게.."


"됐어요, 이번 한번만 봐 드릴게요."


"고마워요."


"풋-"


그녀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잠시 웃더니 이내 다시 조용해졌다.


그리곤 내게 말했다.


"현씨, 저 사실 부모님이 없어요."


"유일한 가족이라곤 할머니 뿐이셨는데 할머니도 얼마 전에 제 곁을 떠나셨어요."


"버틸 수가 없더라구요. 현씨한테 전화 해볼까도 했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다 끝내려고 왔어요. 현씨처럼."


"근데. 막상 앞에 서보니까 너무 무섭더라고요."


"그래서 여기 앉아있었어요. 바보처럼."


"세희씨 .."


"현씨, 우리 잠시만 조용히 있어요. 잠시만요."


그렇게 우린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있었다.


먼저 말을 건건 세희 씨였다.


"그거 아세요 현씨?"


"네?"


"엊그제 놀이공원에서 저한테 하신 말씀 있잖아요."


"..네"


"저 사실 들었어요."


"분명 그때 못 들었다고.."


"아뇨. 정확하게 들었어요. 좋아한다는 말."


"근데, 너무 겁나더라구요. 내가 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


"그래서 못 들은 척 했어요. 미안해요 현씨."


"괜찮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지금이라도 대답 하고싶은데. 혹시 너무 늦었나요?"


".. 아뇨 .."


"다행이네요."


세희씨가 싱긋 웃더니 말했다.


"저도 좋아해요. 현씨가 절 좋아하는 것 보다 몇 배는 더요."


쿵.


쿵.


가슴이 미칠듯이 요동친다.


뇌가 멈춘듯,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동시에 얼굴이 녹아 내릴만큼 뜨겁다.


"현씨..? 얼굴이 빨개지셨어요."


"네? 아...저..그..."


얼타는 내 모습을 보던 세희씨가 웃음을 터트린다.


"하하하.. 뭐에요 현씨, 부끄러우신거에요?"


"...."


그리곤 내 손을 잡더니 내게 말했다.


"저.. 생각보다 질투도 심하고 집착할수도 있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오히려 좋은걸요."


"그럼 우리 완전 천생연분이네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네, 완전 천생연분이에요."



문득 그날 세희씨와 본 밤하늘을 떠올려 보았다.


달도 뜨지 않았고 별도 적게 보였다.


살면서 본 밤하늘 중에 최악이었다.


하지만 살면서 본 밤하늘 중에 최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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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커넥션 노래 듣다가 감성 터져서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네. 얀데레 요소도 없는거 같고..


짧게 쓰려던걸 길게 쓰다보니 내용도 좀 부실하고 빨리 끝난거 같기도하고..


모바일로 쓰는데 한 2만자 쯤 됐을때부터 렉 걸려서 쓰기 힘들드라.


암튼 재밌게 읽었음 좋겟어.


아무튼 장문 소설 쓰는 친구들 진짜 대단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