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왕이다.

다른 마족들은 전부 용사 파티에게 몰살당했지만, 어쨌든 나는 여전히 그들의 왕이었다.

그런 마왕으로서 부탁하건대, 제발 당신이 내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간청한다.


누구한테 얘기라도 하지 않으면 곧 미칠 것 같거든.



-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음, 그래. 용사가 성문을 박차고 들어온 순간부터 설명하면 될 것 같다.


용사는 황제의 명을 어깨에 짊어지고 나를 죽이러 왔다.

낡은 백색 수도복을 입은 성녀,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땅딸막한 마법사, 이국적인 복장을 하고 있는 짐꾼과 함께였다.


전쟁은 이미 종전을 향해가고 있었다.

우리 마족과 제국 사이의 전쟁은 전쟁이라기보다 치기 어린 꼬마를 향한 노련한 싸움꾼의 일방적인 폭행과도 같았다.

내 충성스러운 부하들은 용사의 성검을 견디지 못했고, 나도 곧 그들과 같은 최후를 맞이할 것이었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났다.

용사가 생각보다 너무 약했던 것이다.

흑마법을 쏘니까 가슴이 뚫려서 죽을 줄은 나도 몰랐지.


그 이상한 짐꾼을 말을 빌리자면 '저 새끼, 용사보다는 성검 든 일반인에 가까워...'라고.


하지만 짐꾼을 제외하고선 모두 무능하지만 얼굴은 반반했던 용사를 사랑한 것 같다.

내가 그의 가슴을 꿰뚫자마자 성녀의 표정이 돌변하는 것이 그 증거였다.

마법사는 별 변화가 없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용사는 죽였으니, 내가 이길 줄 알았다.

이미 재가 되어 스러진 부하들에게 승리를 가져다주는 것이 그들에 대한 추모라고 생각했다.


안타까운 점이 하나 있다면 이미 추모를 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이었다.


쓸데없이 강한 짐꾼 녀석이 내 심장을 터뜨리지만 않았어도 승리할 수 있었는데.

그놈은 이제 시시하다며 빠른 속도로 다가와 내 가슴에 손을 집어넣고 심장을 쥐어 터뜨렸다.

반응할 새도 없었다. 알아챈 순간에 이미 고통은 엄습해 왔다.


그래. 결국 나도 죽었다.

왕으로서 내 백성을 지키지도 못하고, 그들을 볼 면목 없이.



-



아, 너무 지루한 얘기만 했군.

당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이게 아닐 텐데 말이다.


재미있는 일은 그 후에 일어났다.

내 육체가 흙으로 돌아가고, 정신만이 안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이거, 성공한 건가?"


갑자기 어떤 목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수많은 손이 나를 붙잡더니, 그대로......


"오, 눈을 떴군."


"...여기는?"


"말까지 하다니, 이런 결과는 예상 못 했는데."


눈을 뜨니 갑자기 마법사가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무슨 술수를 쓴 게 분명한데.


"마왕, 여기는 마탑 지하의 연구실이다. 내 말을 알아듣겠나?"


"네가, 날 살렸나?"


혼란스러웠다.

머리가 깨질 듯이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운 느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아마 새롭게 얻은 생명을 향한 일종의 거부 반응이었던 것 같다.


"그래. 내가 살려냈다. 그리고 넌 영원히 여기서 살게 될 예정이지."


"...뭐라고?"


"흠, 다시 말해주지. 너 여기서 못 나간다고. 알았어?"


"..."



충격적인 말이었다. 두통이 싹 가실 정도로.

어쨌든 그리해서 나는 용사 파티의 마법사에게 감금당했다.

이유도 모르고, 어떻게 했는지도 몰랐지만 아무튼 그런 것 같다.


지금 당신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아무래도 지금 온몸이 묶여 있어서 오래 말하기는 힘들 것 같으니까,

조금만 나중에 찾아오면 금방 다시 이야기해주지.


그럼 잘 가게나, 이름 모를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