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너의 아군이야."
이 배틀로얄에서 그런 말을 믿는 바보는 없다.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하는 바보는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다른 녀석이면 몰라도, 지금 저 녀석은 가장 믿을 수 없을 상대다.
이 게임이 시작한 지 막 5분이 된 시점, 첫 전투가 막 시작했을 때.
익숙하다는 듯 주어진 아이템들의 사용법을 시험해보지도 않고 작동시켰다.
그리고는 날 둘러싸고 있던 괴인들을 단번에 정리했다.
심지어 풍기는 분위기부터 좀 수상하다.
사람이 뭘 해야 이렇게나 수상해질 수가 있는지 모를 정도로.
"반대야, 넌... 이 말을 믿을 수 있을까?"
"뭐라는 거야."
"후훗."
저 느낌은... 여우, 라고 할 수 있을까.
_______
철컥-
탕!
"또 홀렸구나."
내 눈앞의 광경이 뒤바뀐다.
방금까지 절박하게 도움을 청하던 여인의 머리통이 깔끔하게 사라져버린 직후, 내 앞에 굴러다니는 건 방금까지 살아있던 괴물의 사체.
식물로 뒤덮인 기괴한 몸체가 특징적인 녀석이었다.
여인으로 의태한 괴물이 내게 달라붙어 있었다고 생각하면 두려움이 샘솟으려 한다.
"이제 날 좀 믿을 마음이 들어?"
"...전혀."
믿고 자시고, 저걸 어떻게 알아챈 건데.
"참고로 다리 쪽을 유심히 살펴보는 게 좋아."
"...!"
"그런 생각을 하는 눈이길래."
_______
[READY, FIGHT!]
끼긱, 끽, 끼기기긱.
삐걱이며 움직이기 시작한 빛무리에서 빛이 떨어져내린다.
천천히 드러난 슈트의 본모습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차마 다 숨기지 못한 그녀의 몸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시선.
"어때? 멋지지?"
"대단하네."
저건 말하자면 최종 단계.
애초에 이 게임의 상정을 뛰어넘은 진화.
그녀가 내 앞으로 걸어나온다.
그리고는 앞을 바라보며, 팔을 벌렸다.
"축복하라! 라던가, 그런 대사 하나쯤은 있어도 좋잖아?"
"하겠냐고."
"그럼, 가볼까!"
그녀는 망설임 없이 악의 구렁텅이 속으로 뛰어들었다.
어느새 믿어버리고 만 걸까.
걱정 따위는 되지 않는다.
_______
"키에에에에엑!!!"
"전부 사라져주면 좋겠는데. 조용하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거든."
화륵-
콰과광!
주변의 소리가 전부 사라진 깔끔한 마무리였다.
이 짓도 몇 번을 했는지 원.
품 속에 감추어둔 카드를 꺼냈다.
나의 소중한 소원.
[그와 이어질 때 까지 이 게임을 반복한다. (12회차)]
첫 번째 게임에서는 그를 사랑하면서도 믿지 못했다.
쓰레기들의 꼬드김에 흔들려버린 나는 멍청하게도 그를 죽여버렸다.
나는 아직도 무너져내리는 헬멧 안의 슬픈 눈을 잊지 못한다.
왜 믿어주지 않았냐는 듯 책망하는 그 눈을.
두 번째 게임에서는 신용받지 못했다.
수상했겠지, 모든 게.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덟 번째 게임까지.
실패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얼마나 도와주고, 구해줘야 호감을 가지는지.'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강해지는 걸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내게서 도망치지 않는지.'
덤으로 그의... 크기, 강직도, 시간까지도 외우고 있다.
"드디어. 내 거야."
_______
"끝...인가?"
"끝이지."
배틀로얄, 이라고 표현했지만 원래 이 게임이 서로 죽이는 게임은 아니다.
괴물을 쓰러뜨리고, 강해져서, 최종 보스를 잡은 사람이 우승하는 게임.
어떻게 보면 협력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우승 상품으로, 뭐든지 이뤄준댔어."
"왜, 나한테 대신 들어달라 하게?"
"그럴 리가."
당연한 결과지만, 그녀의 우승으로 게임이 끝났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너의 소원이 뭐든 나랑은 전혀 상관없어."
"알아, 기대... 솔직히 조금 했다."
"날 믿어주는구나, 이제."
"믿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절대라는 건 없긴 하네."
그때, 하얀 새가 날아왔다.
익숙하다는 듯이 내밀어진 그녀의 오른손 위 에 종이 한 장이 떨어졌다.
이게 그 소원을 비는 종이인가?
"재미있는 걸 보여줄게."
스윽.
그녀는 옷 속에 왼손을 넣더니, 어디서 나온 건지는 몰라도 펜을 하나 꺼냈다.
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 손.
종이에 남은 글자는 이러했다.
[되찾은 그이와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세상.]
"이게 대체 뭔 소원인ㄷ..."
[SET UP. FINAL FORM]
"조금만, 있다가 설명해줄게."
[FAIRY OF SLEEP]
"이게 무슨..."
머ㅓ지.
믿ㅈㅣ 말아써야 한 ㄱㅓㄴ가?
_______
"안녕!"
"으으...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음, 조금 슬픈데. 날 믿어주지 않는 눈."
철컥-
쇠사슬이 내 몸을 감고 있다.
"오해할까봐 말하자면 임시야. 널 그렇게까지 구속할 마음은 없다고?"
"왜 날 묶어놓은 건데?"
"으음... 아, 이것부터 보여줄까?"
그녀는 품 속에 손을 넣더니, 이번엔 카드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차림은 신체의 굴곡이 전부 드러나는 무녀복이었다.
이런 어두운 방과는 맞지 않는 옷이지만, 입은 사람과 베스트 매치를 이루다 보니 아무래도 좋았다.
"짜잔~"
이런 성격이던가.
조금 더 시크하고, 도도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전부 소원 카드야."
"뭐...?"
"뭐랄까, 소원 카드는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우승자에게 귀속돼.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더라도."
그녀의 손에 들린 카드는 넷.
그중 한 장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아픈 건 한순간이야."
"으아아악!"
머리가 아프다.
존재해선 안 되는, 없던 일들이 머릿속에 흘러들어온다.
뭐지?
왜 나는, 같은 시간을 반복한 거지?
이 게임에서- 몇 번이고...
그녀에게 죽임당하고.
그녀를 죽이고.
배신당하고, 배신하고.
난 왜 배신당한 거지?
"처음이란 건 중요하구나, 동기가 되어줬으니까."
"...왜 그런 거야?"
"사랑하지만, 믿지 못한 게 후회됐어. 사랑하는데도 믿어주지 않은 게 미웠어. 날 의심하는 게 두려웠어... 널, 사랑했어."
"미친 년..."
"미친 여우지, 제 주인을 탐하는 미친 여우라고 생각해."
그녀는 쭈구려 앉아서 내 뺨을 쓸었다.
그리고는, 내게 입을 맞추었다.
"사랑해, 네가 날 믿을 수 없다 한들 영원히."
가면라이더 기츠 보다가 "그 말을, 너는 믿을 수 있을까?" 하는 거 보고 회로돌아서 써봄.
글이 엉망진창인 이유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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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단편)
"너는, 그 말을 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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