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하루였다.

오늘도 귀찮은 일들만 계속해서 내 앞에 나타났다.

진상 손님들부터 귀찮게 따라붙는 이상한 녀석들까지 해서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집 앞에 있는 흡연실에서 담배를 하나 입에 물고서 불을 붙였다.

담배 없이는 이 정신나간 인생을 살아갈 길이 안 보인다.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쌓이고 돈은 돈대로 빠지는 챗바퀴에 갖힌 인생.

행복한 기억이라고는 학생 시절의 기억이 전부인 나에게 있어서 지금의 삶을 계속해서 살아갈 희망이 보이질 않았다.

 "집안이 기독교만 아니었어도 진작에 끝내고도 남았는데."

 모태신앙이 참 무섭긴 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 하나를 무의식 중에 지워버리니 말이다.

물론 이것도 핑계다.그럴 용기가 있었다면 했겠지.

손가락으로 담배를 털어서 불을 끈 뒤에 집으로 들어갔다.

 15평짜리 방 하나 딸랑 주고서 알아서 살아보라면서 내보낸 부모님도 참 이상한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나는 형편이 괜찮았다.

일로 버는 수입도 괜찮았고 조금 작긴 해도 내 명의로 되어있는 집이니 말이다.

그래도 이정도 시작이면 20대 치고는 많이 좋은 편일 것이다.

 집에 들어자마자 보이는 것은 옛날 사진들이다.

학생 때에는 굉장히 열심히 살았다.

전국대회에도 나가보고 상도 받았었다.

지금은 그저 조금 운동한 20대 남성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귀찮게....."

 오늘도 모르는 번호로 많은 문자들과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일하는 곳이 여성을 타겟으로 한 주점이니 이런 일이 꼭 있다.

술 취해서 눈이 풀린 상태로 콩깍지가 씌워져서 나에게 번호를 물어보는 녀석들 말이다.

일을 시작할 때부터 이랬으니 내가 지칠 수 밖에 없다.

전부 다 차단을 하고서 샤워를 했다.

그래도 돈은 많이 주니 참으면서 하고 있지만 이 상태라면 내 정신이 먼저 끝장날 것이다.

 "다른 일을 찾던지 해야지."

 푸념 섞인 말을 내뱉고서 침대에 누워서 바로 잠들었다.

그래도 내일은 주말이니까 조금은 쉴 수 있겠지.

내일은 장을 좀 보고 그대로 자야겠다.

 "도대체 이건 또 뭐야?"

 의문의 편지와 함께 상자 하나가 현관 앞에 놓여있었다.

택배를 시키지는 않았으니 누군가가 보낸 선물일 것이다.

그 누구가 누구인지 모르는게 문제일 뿐이다.

 "프린트한 편지에 운송장도 안 붙은 상자."

 평범한 민간인이 지문을 채취해봐야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 나로써는 이 물건을 보낸 사람을 찾을 방법이 없다.

편지에 적힌 이름으로 보아하니 나한테 온 물건임은 확실했다.

내용은 안 읽었다.그냥 이름만 대충 살펴봤을 뿐이다.

결국은 스토커의 짓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보내는 사람 불명에 내용물도 의미를 모르겠다.

일단은 장을 보자.이 일은 나중에 생각해도 되니 말이다.



"갔네."

비상 계단에서 기다리던 한 사람이 천천히 방금 상자를 확인하던 남성의 집 현관 앞에 섰다.

능숙하게 비밀번호를 누르고서 집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집안 구석구석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잘 연결한 것을 확인한 사람은 조용히 집을 나와서 돌아갔다.

 "이걸로 늘 확인할 수 있겠어."

 엘레베이터에 오른 사람은 우연히도 그 집의 주인과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처음보는 여자가 인사를 해왔다.

 "안녕하세요."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솔직히 요즘 세상에 옆집 얼굴을 잘 아는 것도 이상하니 말이다.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짐을 정리하고서 운동을 시작했다.

실내에서 가볍게 할 수 있는 운동으로 몸상태를 유지하고는 있다.체력이 모자라면 일도 힘들다.

대회를 나가던 시절에 비하면 쓰레기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유지하고 있으니 일반적인 사람들 보다는 낫다.

2시간동안 하고나니 땀이 잔뜩 났다.

옷이 거의 다 젖어서 흡수되지 못한 땀방울이 몸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개운하네.그나마."

 그대로 옷을 벗어서 세탁바구니에 넣고서 샤워를 시작했다.

이틀동안이 아니라 평생 이런 평화로운 일상이면 좋겠지만 어쩌겠는가?삶은 고통의 연속인 것을.

그런 고통이 있기에 이런 짧은 휴식도 만족감을 주는 것이겠지.

 주말간의 휴식을 끝내고서 다시 출근을 했다.

영업 시작은 오후 5시부터지만 나는 3시에 출근을 했다.

약간의 청소와 물품의 수량확인,그 외 기타 잡일을 끝내고서 잠시 쉬는 동안 담배를 피웠다.

 다 피우고서 돌아가자 문이 열리면서 한 사람이 들어왔다.영업 시작하자마자 손님이 온 경우는 별로 없기에 조금 골치아픈 사람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서 접객을 시작했다.

 "어서오세요."

 늘 그렇듯이 조용하고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

"블랙 러시안 한잔 주세요."

 해도 떨어지지 않았는데 독한 걸 마시는걸 보면 정상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아니면 사람은 정상인데 처해있는 상황이 비정상이거나.

 "주문하신 블랙 러시안입니다."

 커피 리큐르와 보드카를 섞은 그야말로 술에 술을 섞은 놈이다.

보통이라면 남자가 먼저 찾는 칵테일이다.

폼 잡으려고 주문했다가 오만상 쓰는 놈을 꽤 봤었다.

 "혹시 여기 마스터는 아직 안 오셨나요?"

"마스터는 심야에 저랑 교대하십니다."

 "너무 일찍 와버렸네."

 그러고는 별 다른 말 없이 한잔을 가볍게 비웠다.

단 맛을 넣은 것도 아닌데 가볍게 비우는 모습을 보니 더더욱 모르겠다.

 "너무 빠르게 마시면 몸에 안 좋습니다."

 "몸에 좋으라고 술을 마시지는 않잖아요?"

 그녀는 조용히 웃으면서 다음 잔을 주문했다.

이번에는 미키 슬림이었다.

압생트와 진을 사용하는 칵테일이며 도시전설도 있던 유명한 물건이다.

 "예전에 압생트를 좋아하던 예술가가 있다고 들었었는데 누구인지 기억이 안 나네요."

 "빈센트 반 고흐입니다.중증 알코올 중독자였죠."

 그렇게 5시부터 12시까지 장장 7시간동안 꽤 많은 술을 마셨지만 취한 기색이 전혀 없는 이 무서운 여자에게서 나를 구해줄 마스터가 도착했다.

 "이야,여기서 보네?"

 "오랜만이야,언니."

 마스터의 가족이었나?

나는 조용히 빠져서 가족끼리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게끔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그건 그렇고 저 여자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거기에 마스터한테 여동생이 있었던가?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아직 관계가 모자란 모양이다.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았다.

기회가 있다면 나중에 알게 되겠지.

 "들어와봐,할 말이 있으니까."

 다시 안으로 들어가자 직원복을 입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내일부터 같이 일하게 된 이하리라고 합니다.잘 부탁드려요."

 회색 머리카락을 묶어서 정리하고 정갈한 옷을 입으니 굉장한 미인이었다.

지금까지 일하면서 나에게 치근덕거리던 여자들보다 훨씬 예뻤다.

 


 내일부터는 3명이서 일을 하게 되었으니 조금은 편해질 것 같았다.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은 일이 줄어드는 것이니 말이다.

"자,그럼 사람도 늘었으니 너도 좀 건강한 모습 좀 보여줄거지?"

 "노력은 해보죠."

 그렇게 오늘은 조용히 지나갔다.

월요일에는 그렇게 사람이 많이 오지는 않으니 말이다.



 "언니,저 오빠는 원래 저래?"

 "원래 저렇지는 않았어.작년까지만 해도 상쾌한 느낌이었거든."

 "그래도 난 저런 느낌도 좋아."

 "네 취향은 나도 모르겠다.나도 정리하고 돌아가서 재충전해야지."

 이하리는 씩 웃으면서 돌아가는 남자의 등을 보았다.

삶에 지쳐있으면서도 그 삶을 내려놓지 않고 이어가는 이상한 남자.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들었지만 지금은 더욱 더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는 꼭 언니처럼 묶어둬야겠어."

 그녀는 그렇게 다짐하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집은 굉장히 단촐했다.

최소한의 것들만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벽면에는 한 사람의 사진이 잔뜩 붙어있었다.

그 사람이 이 모습을 봤다면 공포심을 느낄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오늘은 뭘 하고 있으려나?"

 콧노래를 부르면서 모니터를 켠 그녀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모니터 속의 사람을 바라보면서 책상에 엎드려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