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探偵), 의뢰를 받아 사건과 사고를 조사하는 민간조사원. 

 

소설 등 대중매체에서 ‘탐정’이란 무능한 형사 앞에서 자신의 빛나는 성과를 자랑하는, 거만한 인물들이나,

 

―현실에선 그저 흥신소 사장에 불과한 것이다. 

 

보장된 권리에 비해 제약은 많다. 조사 난도에 비해 큰돈을 기대하기엔 쉽지 않다. 

 

2020년, 한국에서도 흥신소에 ‘탐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허용되어 있으나 17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열약한 것이다.

 

‘그래도 그 이름에 고집을 부리는 사람도 있긴 있지. 이 사람처럼….’

 

내 소개가 늦었을 지도 모르겠다. 

도일현, 23살.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메이저 신문사인 ‘고려일보’에서 기자를 하고 있다. 말단 중의 말단이나, 나름 직장 내에서 평은 좋다고 할 수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 [보라 탐정사무소], 나는 오늘도 이 사무소의 문을 열 수 밖에 없었다.

이 사무소는 나와 같은 학교, 즉 ‘국립과학수사학교’를 나온 선배가 혼자 운영하고 있다.

 

“보라 선배, 저 왔습니다.”

 

선배는 내가 왔다는 기척이 들리자, 자리에 앉아서 꾸벅-거리며 졸다가 인기척이 화들짝 놀라 깨어난다.

 

“일현이, 왔어요? 에헤헤, 깜빡 졸았네요. 업무 중에 이러면 안 되는데.”

 

남보라(24), 짙은 밤색 머리카락을 치렁치렁 늘어뜨린 여성. 굉장한 미인으로 이런 케케묵은 곳에서 썩기 아깝다. 전엔 골동품 점이었으니까.

보라 선배는 멋쩍게 웃으면서 나에게 살짝 고개를 숙인다.

 

‘언제나 굉장하네.’

 

군청색 와이셔츠에 검은 넥타이라는 캐주얼한 차림이나, 그것으로도 숨길 수 없는 볼륨감이라는 게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숨길 수 없는 볼륨감이라는 게 있다. 정말로.

 

“어차피 업무란 거, 없지 않았을 거 아닙니까.”

“응! 일주일 째 아~무 의뢰도 없어요. 집세는 내 소유니까 안내도 다행이지만요.”

 

그녀가 해맑게 웃으면서 말해도, 딱히 해줄 말이 없다.

저 밤색 머리 아가씨, 그나마 돈에 여유가 있으니까 이런 엉망진창인 사무소를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오늘 저를 부르신 이유는?”

 

어깨를 으쓱하곤 보라 선배에게 물어봤다.

내가 비교적 착하니까 친한 선배의 부탁에도 바로 달려왔지, 대부분 사람은 일이 있다는 이유를 대며 거절했을 것이다. 

 

“그냥 보고 싶었단 걸로 안 될까요? 어차피 일현이도 오늘은 프리잖아요? 밥 사주는 거, 좋죠?”

“한 가지만 여쭤볼게요. 제가 프리인 걸 어떻게 아셨나요?”

 

흠칫 놀란 선배가 머뭇거리다가 볼을 부여잡곤 둘러댄다. 

 

“어…그러니까…그렇지. 회, 회사 사이트에서 봤어요.”

 

회사 사이트에서 봤다, 라…. 변명이 어설퍼도 너무 어설프다. 내 개인 일정이 회사 사이트에 나올 리가 없다. 

 

“뭐, 됐습니다. SNS나 제 직장 선배들에게 들으신 거겠죠.”

“으으…그래요. 그 말 대로랍니다. 전화는 왜 안 해? 응? 그래서 알아봤잖아요?”

“요즘 전화비가 필요이상으로 많이 나오고 삐-소리가 같이 나기도 합니다. 허 참, 무슨 조환지.”

 

마치 누가 도청 장치라도 심어놓은 것 같다. 도청 장치일리는 없으니 굿이라도 해야 할까?

 

“히, 힘들겠네요. 제가 뭐라도 해줘야할까요? 기분 전환이라도 할래요? 좋은 거해요.”

 

보라 선배가 적갈색 눈동자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알 수 없는 소리를 해, 머리 뒤를 긁적이며 부정했다.

선배, 간혹 섬찟할 때가 있다.

 

“좋은 거? 괘, 괜찮습니다.”

“아, 맞다. 냉장고에 음료수가 있으니까…시원하게 쭉 들이 키고 쉬세요.”

 

남보라는 친절하게 웃으면서, 사무소 안의 작은 냉장고를 가리킨다.

 

“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거네요. 역시….”

“나는 모든 걸 알고 있어요. 모든 걸. 응!”

 

솔의 눈, 게다가 솔의 눈 스파클링.

누구는 물파스 맛이 난다고 싫어하나, 청량함만큼은 따라잡을 수 없다. 

뚜껑이 따져있는 것이 못내 걸리긴 하나, 벌컥벌컥 들이켜도 아무런 맛의 변화가 없다. 그냥 솔의 눈.

 

“어땠어요?

 

보라 선배는 의자에 대충 걸터앉은 나에게로 다가와 속닥거린다. 와이셔츠 단추를 두 개까지는 풀어, 어딘가 느낌이 야릇한 구석이 있다. 

 

“아, 준비해줘서 고마워요. 괜찮네요.”

“그런 소리가 아니에요. 졸리지…않나요? 아니, 졸릴 걸요?”

 

졸리다, 평소의 헛소리라고 생각해서 한 마디 할까하다가 몸의 이변을 눈치 챘다.

 

“선배님, 뭔 소리를…흐읏!? 잠깐만요. 무슨 짓을 하신…겁니까?”

 

정말로 눈꺼풀이 감겨져 온다. 즉효성 수면제, 실수로 여러 번 먹었지만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다.

 

“푹 자고 일어나서 이 누나랑 재밌는 일하고 놀자? 응?”

 

의식이 끊기기 전, 나는 연상 탐정 아가씨의 빙글빙글 돌아가는 눈동자만 흐릿하게 볼 수 있을 따름이었다….


***


문피아에 연재하는 작품 외전이긴 한데 몰라도 아무 상관 없을 거 같아서 올려봅니다

소연갤 터지고 얀갤 라이브 생긴거 며칠 전에나 알았어요. 꽃집 아가씨 올렸던 사람인데...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