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네가 싫어.


네가 날 잘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싫고.


내가 네 옆에서 여우짓한다고 오해받는 것도 싫어.


네가 옆에서 나한테 웃겨보겠다고 광대짓하는 것도 꼴보기 싫고.


네가 너무 싫어. 더 이상 나에게 관여하지마.



중학교 2학년정도의 남녀가 서로 마주보고 있고, 남자애는 울고 있고, 여자애는 담담하게 남자애에게 독설을 내뱉고 있다.


아, 또 이 꿈인가.


"그래, 알았어."


남자애가 입을 뗐다.


아... 안돼, 하지마...


"그게 네 행복이라면..."



"으아아악 씨발 하지마아아아!"


격한 욕설을 하며 일어났다.


내 인생 최대의 흑역사.


아 씨발... 차이면 차인거지. 그때 그런 말을 왜 했지? 개쪽팔리게...


화끈거리는 얼굴을 식히며 아침을 먹으러 나왔다. 그리고 이미 3일째 보이는 똑같은 김치찌개가 나를 반겼다.


고등학생인데도 벌써 자취를 시작한 나는, 어차피 학교에서 점심 저녁을 주기에 한가지 요리를 만들면 한동안 쭉 먹었다. 정말 편하고 좋지만


"역시 질린단 말이지..."


처음 만든날은 와 미친 개맛있게 만들었네 싶었던 김치찌개도 3일째 되니까 아무리 그래도 물린다..


그래도 별 수 없지. 대충 먹고 샤워를 한뒤, 구깃구깃해진 교복을 대충 차려입고 아무도 없는 집에 인사를 남겼다.


"다녀 오겠습니다."


현관문이 잠긴걸 두 세번 확인하고, 원룸촌을 나왔다.


그리고 늘 가던 길을 걸어. 늘 타던 버스를 타, 늘 보던 친구를 만났다.


"어이 소현"


"하세진 어서오고."


소현이라고 불리는 이 여자애는 아쉽지만.. 아니, 다행스럽게도 꿈에 나왔던 그 여자애는 아니다.


키가 좀 작고 꽤나 긴 머리에 자연갈색의 머리, 눈을 반쯤 감고 있지만, 눈을 다 떠버리면 그 깊은 눈동자에 빠져버릴 것만 같아서 다행스러울 정도의 눈.


"아침부터 왜 이렇게 죽상이야."


"꿈 꼬라지가 나를 꼴받게 하잖아 씻팔"


서로 메신저로 야 너 이거봄? 하면서 보고 낄낄댄 만화의 어투를 따라하며, 실없는 대화를 나누고는 웃었다.


"또 그 년 꿈 꿨냐? 맘 접을 때도 됬지 않았냐 세진아?"


"마음은 접은지 5754년 됬거든? 나 싫다는 데 별 수 있냐?"


구라가 아니다. 진짜다.


처음차이고 한 6개월 동안은 꿈을 꿀때 마다 너무 아련해서 아침부터 물빼고 시작했다.


이상한 뜻 아니다. 눈물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아픈 이유가 변했다. 내가 한 쪽팔리는 대사로..


아 씨발 또 생각했네


"야 이 년아 니때매 또 생각났잖아!!!"


"지랄 그게 왜 내때문임? 키만 멀대같이 커서 남탓 준내 하네"


씨빨련...


"근데 나 한동안 너희 집 에서 자도 되냐?"


"미친년... 외간 남자방에서 외박을 한다고?"


"한 두번도 아니고 새삼스럽게... 그리고 이건 질문이 아니야, 통보야."


"뭐?"


"이미 부모님한테 친구 집에서 이번 연휴동안 놀고 온다고 말해놨지롱~"


"이걸 허락한다고? 우리 고등학생이다?"


"고 3부터 공부하면 됨~"


초등학교 때 부터 보던 애라서 그런 감정은 없고, 생각도 들지 않는다. 실제로 요즘에도 몇번 자고 가기도 했고.


"하... 별 수 없지."


어쩔 수 없다. 얘는 한다면 하는 애니까.


거기에다가 얘네 집은 무조건 새벽 12시에 전체 점등이다. 군대도 아니고.


연휴동안 새벽놀음을 못즐긴다는건 너무 불쌍하지.


실없는 대화를 하는 사이에 학교에 도착했다.


1학년 4반, 소현이와 내 반에 도착했다.


거기에서 나에게 인사해주는 애들의 인사를 건성건성 받고. 늘 하듯이. 내 자리로 가서 엎드리고 수면을 청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 왜 벌써 점심시간이지?"


"하하하~ 미안 깨울려고 했는데 너무 곤히 자더라고~"


오늘 하루의 절반을 날렸다.


어차피 연휴를 앞두고 오늘은 무려 특별 단축수업이기에 (고작 야자를 안하는것 뿐이지만.) 오늘은 수업시간에도 쉬려고 했다.


소현이와 함께 점심을 먹고. 늘 그렇듯 점심시간의 담소를 친구들과 나눴다.


"야 근데 세진이 솔직히 좀 멋있어. 키도 크고 얼굴도 그정도면 좀 잘생겼지 않아? 야 세진아 나랑 사귈래?"


"내가 좀 되긴하지?"


이런말을 하는 여자애는 최수진, 허구한 날 고백을 해대는 미친년이다. 어차피 다 구라고백이라서 별 생각도 안들지만.


"푸하핰!! 야 이 새끼 키만 멀대같이 크고 속은 완전 애새끼야 애새끼!!"


박소현이 웃으면서 폰을 꺼내 무슨 동영상을 튼다.


뭔가 싶었더니


[오렌지! '변신!' 으리야! 오렌지 암즈! 하나미치 온 스테이지!]


내가 집에 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동영상이었다.


" 아이 씨빨 미친년아 하지마!!!"


"에읶 쒸빨 미췬년아 해지마~~"


박소현이 내 말을 따라하며 나를 놀린다. 주변 애들도 의외라는 반응과 이미 알고 있던놈 들은 그걸 보면서 마구 쪼갰다.


내가 미쳐가지고 저때 술처마시고 변신한번 때렸지..


"야 근데 좀 귀여운데? 안성진이 했으면 개병신같았을텐데 하세진이 하니까 의외라서 좀 귀엽다. 나랑 사귈래?"


"시즌 2호 고백 입갤~"


최수진이 또 고백해왔다. 이런 곳에서 내 흑역사가 이렇게 마구 퍼져나갈 줄이야.


애들이 그걸 보면서 마구 웃고 있을때, 나는 무심코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자신의 남자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던 여자아이.


꿈에 나왔던 여자아이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


"...."

오래 마주치진 못했다. 바로 표정을 구긴 그녀는, 곧바로 자신의 남자친구를 보면서 다시 활짝 웃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정말 마음아팠지만,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


지금 생각해보니 찰거면 그냥 찰것이지. 그런 말을 할건 또 뭐야...




어느덧 학교가 끝나고, 야자를 안한다는 사실에 좋아 죽는 중생들이 미쳐 날뛰면서 신발장으로 뛰었다. 나와 소현이는 같이 좀 기다렸다 한산해 지고 나갔다.


"저녁은?"


"내가 살게, 숙박비로 치고."


"뭐 사줄건데?"


"오래 묵을 거니까 좀 비싼거 사줄게 걍 누나만 믿고 따라와 이 자식아"


키도 작은게 누나는 무슨... 이라고 생각하자마자 점프를 하면서 까지 나에게 헤드락을 걸어 끌고 갔다


작은 키와 다르게 풍만한 그것이 내 머리에 닿았다.


야!야! 닿는다고 ! 더 쌔게!



"어때? 마음에 들지?"


"아이고 누님 맞습니다요 헤헤"


그녀가 데려온 곳은 무려 고기뷔페. 정말 누나로 섬겨도 될 정도였다.


오랜만에 고기를 맘껏 먹은 뒤, 함께 우리집으로 향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게임을 마음껏 같이 해준뒤. 심야가 되어버렸다. 이제 슬슬 잘 준비를 하자 싶었는데


툭 투툭 툭


비가 오네. 갑자기 엄청 쏟아지기 시작한다.


"야! 이불 깔지마! 너 오늘 못자!!!"


저 년이 또 왜저러지


싶을때 수현이가 자신의 책가방을 열었다.


안에는


술이 가득 차있었다


"야 이 미친년아 학교에 이런걸 들고 갔었어?"


"아 쌤은 절대 내 가방은 검사안해"


하긴, 쌤들은 얘가 이런 미친년인걸 모르지. 평소에는 모범생도 이런 모범생이 없으니깐.


술은 좋아하지 않는다. 쓰고 맛없다. 하지만 얘는 좋아한다. 왠지는 모른다. 하지만 얘가 마시면 나도 마신다. 그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술이 들어가길 한창. 헤롱헤롱한다. 저년은 아직 괜찮은가? 하여간 술 하나는 더럽게 쌔요.


그러다 갑자기 입을 열었다.


"좋아해"


"...뭐?"


내가 잘못 들은건가.


"좋아해, 진짜 좋아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이 말할려고 한동안 묵는다고 한거야."


나 취했나보다. 환청이 들리네.


"여기서 이번 연휴 일주일 동안 나갈 수 있는 진도 끝까지 다 나갈거야. 손잡기에 하루, 뽀뽀에 하루, 키스에 하루, 섹스에 하루 씩 나갈거야."


... 환청 맞겠지?


"물론 네가 원하면 더 빨리 진도를 나갈 수 도 있어"


혀를 깨물어 봤다. 취기때문에 아픈게 뒤늦게 온다.


환청 아니네.


"수현아. 나는..."


"닥쳐, 언제까지고 이렇게 친구긴 싫어. 넌 이제 내게 되는 거야."


말 좀 들어 이 년아


"그년에게서 마음을 떼기를 한참을 기다렸어. 너는 그 동안 그년에게서 맘을 뗐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아냐, 그 동안 네가 그 년 꿈 이야기를 하면서 지은 표정을 보면 절대 그렇게 생각 못해."


....


"좋아해 세진아. 처음 본 그날부터, 네가 나를 구해준 그날부터, 한낮 한시, 언제나, 네가 그 년을 좋아할때도."


....


"진짜 쓰레기 같은 말이지만, 네가 그 년에게 차였을 때, 울고 있는 너를 위로해줄때,  솔직히 너무 기뻤어, 행복했어, 다행스러웠어. 그날따라 울고 있는 네가 더 사랑스러워 보였어."


....


"근데 오늘, 네 표정을 보니까 드디어 완전히 그 년에게서 마음을 뗐더라. 예전에 그 아련한 얼굴이 아니라. 그야말로 아는 사람 이야기를 하는 얼굴이었어."


.....잘 모르겠는데.


"좋아해 세진아. 진짜로. 어린이들 갖고 노는 이상한 파워레인저벨트가지고 노는 너를 볼때도, 어설픈 영웅놀이를 하는 너를 볼때도, 너무너무, 사랑스러워서 미칠거같아."


"...파워레인져가 아니라 가면라이던데"


"닥쳐, 분위기 깨지마."


"넵"


농염한 분위기를 해소하고자 건냈던 농담이었는데 소현이를 더 자극해버렸다.


"싫으면 밀쳐내, 솔직히 나같은 여자애 밀어내는거 일도 아니잖아."


그녀가 나를 천천히 땅바닥에 눕힌다. 술에 취해서 힘이 잘 안들어간다. 이런 조막만한 여자애가 내는 힘에 내 몸은 제대로 가누지 못하도 그녀에게 덮쳐 쓰러졌다.


그리고 입술과 입술이 덮쳐지려는 그 순간


띵동~


일 순간 멈췄다.


소현이가 신경쓰지 않는 다는 듯이 계속 입술을 겹칠려고 했지만


띵동~띵동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광기가 섞인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에, 소현이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열어봐."


"넵.. 지금나가요~!"


뭐지? 이 시간에 왜 초인종을 울리지? 나 혹시 묻지마 칼부림 당하는거 아니야?


슬슬 제정신이 돌아오며, 정상적인 사고가 돌아온다. 혹시 칼부림을 당할까봐 위쪽 체인을 건뒤, 문을 살짝 열었다.


그러자 그 곳에는


"...이세연?"


비에 젖은 체, 내 꿈에 나왔던 소녀가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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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마! 이 나쁜놈들아!'


내가 그 애를 처음봤을때, 처음 들었던, 기념비적인 첫 마디


그 애가 누군진 몰랐지만, 괴롭힘 당하는 나를 보고 혼자서 세명에게 달려들어 나를 구해줬다.


'어떡해.... 괜찮아?'


나는 울먹이며 그 애에게 물었다.


나를 구해주느라 세명에게 생긴 타박상, 넘어지며 생긴 찰과상. 군데군데 몸에 성한 구석이 없었으니까.


'괜찮아! 이런건 침바르면 나아!'


그 아이를 처음 봤을때의 그 첫 눈에 사랑에 빠진다는 그 상황.


그 상황을 떠올리며, 나는 그에게로 내 마음을 부딪혔다.


"...싫으면 밀쳐내, 솔직히 나같은 여자애 밀어내는거 일도 아니잖아."


솔직히 그 년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을때는 절망했다. 내가 꿀리는 건 키밖에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세진이의 성격상 한번 좋아하는 여자애는 바꾸기 힘들테니깐.


그에게서 마음을 접을려고 온갖 짓을 다해봤지만, 다 실패했다. 나는 그야말로 망망대해의 등대속에 갖힌 기분이었다.


전해지지 않는, 못하는, 오도가도 못하는 마음을 가져버렸으니깐


그래서 그년에게 차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너무 행복했다. 그 순간이 증오스러웠던 그 년에게서 유일하게 기쁨을 받은 일이었다.


한참을 기다렸다. 그년에게서 마음이 사라질때 까지.


드디어 사라졌다. 이제 그는 내것이다.


표정을 보니 거의 나에게 넘어왔다. 이제 이 입맞춤 한번이면 그는 영원히 나의 것이다.


띵동~


....


무시하고 키스를 진행하려했다.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어떤 개새끼야 진짜


한숨을 푹쉬며 세진이에게 문을 열어보라 했다. 중간에 멈춰버렸으니 키스로 안끝낼 것이다. 오늘 진도를 하루만에 어디까지 빼는지 보자.


"...이세연?"


뭐?




걍 마음을 미친듯이 부딪히는 여자애가 보고싶어서 써봄

반응 좋으면 2편 써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