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이지않는 광활한 평야, 과거 2군단과 5군단에 의해 정복된 제국의 주요 속주령중 하나.


과거에 그랬듯이 양 군단의 전사들은 끝이 없을거같이 펼쳐진 평야를 마치 매우기라도 하듯이 수 많은 인원들이 대열을 갖추고 사열해있었다.


다른점이라면 어깨를 맞대고 함께 싸우던 영광스러운 과거의 기억과는 다르게 두 군단은 꽤나 먼 거리를 사이에 두고 대립중이었다.


2군단은 평야에서 가장 높은 구릉지대에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5군단은 구릉지 아래 평야에 대열을 갖추고 언제라도 진격 가능하게 긴장상태를 유지중이었다.


"전하, 7군단과 8군단에서 파발들이 도착했습니다." 5군단의 친위대장 루시우스가 고했다. "저희의 뒤를 봐줄 준비가 끝났다고 합니다."


"저희 양 군단의 전하들께서 2군단과 9군단의 반역소식을 듣고 바로 지원코자 그분들의 전력을 온전히 이끌고 오셨으니 5군단장님께서 가증스러운 반역자들을 붙잡아두신데 감사를 표한다 하셨나이다."


7군단과 8군단에서 보내온 파발들이 자신들 군단의 메세지를 전하자 5군단의 주인은 매우 흡족해하며 일렀다.


"내 형제들에게 고마움을 표해야겠구나. 이제 저 녀석들은 부상당하고 굶주린채 3개 군단의 분노를 맛보게될것이니라. 돌아가 너희 주군들에게 알리거라. 반역자들의 수급을 황제폐하께 바칠일이 머지 않았다는것을!"


파발들은 절을 하며 물러갔으며 5군단장 루서는 곧바로 부하들에게 장비를 최종적으로 정비할것을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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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서, 나와 함께하자." 나는 마시던 포도주잔을 내려놓고 그녀의 진지한 눈빛을 응시했다. 몇 개월만에 만나 오랜만에, 그러나 언제나처럼 단 둘이서 친위대도 동원하지 않은채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던 참이었는데. . . 단 둘이 있을때 그녀가 이렇게 진지한 태도로 나온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무슨 말이야 사린?" 내가 포도주잔을 내려놓고 양손을 모아 진지한 자세로 임하자 사린이 숨을 길게 내쉬더니 결심했다는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전쟁이 끝나면 우리가 어떻게 될까?"


"전쟁이 끝나면?"


영원할것만 같은 전쟁이 끝이 난다면? 어릴적부터 전쟁만을 치루며 살아온 인생으로는 상상도 가지 않았고 상상도 해본적이 없었다.


"글쎄... 전쟁이 끝이 난다면, 아버지께서 형제들이 각자 원하는 바를 들어주시겠지. 난 생각해본적이없어."


사린에게 답을 내주고 다시 골똘히 생각하다 문뜩 생각나는걸 다시 말해줬다.


"저번에 부득이하게 작은 마을에 머무른적이 있었는데. 거기 소작농들이 행복해보였어, 명예도 영광도 없는 일개 농부에 불과하겠지만.. 가정을 이루고 오순도순 사는게 참 부럽더라고."


"흐응."


"그래서 만약 전쟁이 끝나고 군단을 아버지께 반납하게된다면.. 작은 농지를 하사받고 거기서 가정을 일구면서 소박하게 살고싶네."


사린이 내가 내놓은 답을두고 열심히 생각하는듯 싶더니, 이내 나와 눈을 마주보고 그녀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한다.


"넌 더 원대한 운명이 기다리는 사람이야."


"뭐?"


"그리고 만약 전쟁이 끝난다해도 네 바램은 이루어질 수 없어."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 나는 살짝 웃어보이며 물었다.


"...'아버지'란 작자는 우리 모두를 살려둘 생각이 없거든."


난 내가 그녀의 말을 잘못 들은것인가 했다. 그러나 수 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그녀가 진심으로 말한것이란걸 깨닫고 경악에 차서 그녀를 불렀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망발이야!"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으며, 여전히 포도주잔을 들고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를 향해 해명하기를 종용했다. 그녀는 내 눈을 마주보고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황제는, 우리를 목판위의 장기말로밖에 생각안해. 그 자는 우리 모두를 숙청하고 우리가 이루어낸 위업과 업적을 모두 자신이 독차지하려고 할거야! 루서, 내 말을 들어줘."


"만인이 우러러보는 황제 폐하께서, 우리 열 군단의 지휘관들의 아버지께서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러신다는거야!!!"


사린은 옷매무새를 다듬고 일어나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우리는 평생을 함께해왔어. 악취나는 빈민굴의 구덩이속에서부터, 역겨운 아동성애자 산적들의 손아귀에서부터 황제에게 거두어지고 그 이후까지를 쭉!"


혼란스러웠다, 정신을 차리고자 눈두덩이를 마사지하는동안 그녀가 계속 말을 이어나간다.


"내가 너에게 거짓말한적 있어? 루서?"


"..없지" 내가 힘없이 답했다.


"내가 너의 믿음을 배신한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어?"


. . .


"없지.." 


후우. 그녀가 한숨쉬더니 내 양 볼을 잡으며 부드럽게 말한다.


"널 좋아해 루서. 남매로서가 아니라, 이성으로서."


"우린.. 아버지의.."


"그자"는 우리 아버지가 아니야!


사린이 힘주어 소리쳤고, 바로 앞에서 큰 소리로 말하는걸 들으니 다시 정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그 분께서 우릴 거두어주셨어, 사린."


"난 그 자를 거부할거야. 루서."


그녀는 완고했다.


"4군단과 9군단은 나와 함께하기로 했어 루서. 너야 충성주의자라는걸 온 제국의 온 신민들이 다 알겠지만.. 나는 너를 믿어보고싶었어. 나와 함께하자. 언제나처럼."


하지만


"아니."


나도 그녀 못지않게 완고했다.


"넌 더 이상 내 자매가 아니다. 반역자야."


내 입은 냉정하게 말을 뱉어내고 있었지만, 나는 울고있었을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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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군단원들아! 내 아들들아!" 내가 강렬한 목소리로 병사들을 부르자, 희열과 영광스러움이 벅차오르는 군단원들이 경례했다.


"""5군단에 영광있으라! 군단장 전하께 영광있으라!"""


"우리 앞에, 한때 형제였던 자들이 기다리고있다. 저들은 추악하게도 변절했으며 우리가 지난 15년간 이루어놓은 모든 위업들과 훗날 이루어질 모든 영광들을 파괴하기 위해 친히 일어났다, 우리 또한 나의 아버지이시자 만 신민의 어버이이신 황제 폐하를 위하여, 또 우리가 이루었고 이루어낼것들을 지키기 위해 저들이 노력하는만큼 노력할것이다!"


열광하는 병사들 사이로 환호성이 터져나왔으며 함성소리는 평탄한 대지를 지나 여과없이 구릉지 위의 반역자 진지에까지 퍼져나갔다. 분에 못이기는듯한 반역자 군단병 한명이 활을 쏘았지만, 곧 역풍에 얼마가지 못하고 땅바닥에 쳐박히고 만다.


"바람도 우리편이다, 제군들!!"


내가 웃음을 터트리며 소리지르자 병사들 사이에서도 웃음과 환호성이 다시금 터져나왔다.


"저들은 제국 최고의 정예 군단이었다. 2군단과 9군단. 과거에는 영광스러운 이름들이었지,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변한 내 말투에 병사들 사이의 환호성도 잦아들었으며 곧 엄숙한 분위기로 내가 하는 말들을 듣는다.


"하지만 우리 또한 그렇다, 나와 내 군단원들, 황제 폐하를 대적하는 반역의 탄생소식을 듣고 충성심에 먼 거리를 한달음에 달려온 내 고귀한 형제들도 그렇다."


"""7군단에 영광을! 8군단에 영광을! 양 군단의 군단장 전하께 영광을!"""


병사들의 외침을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중앙을, 7군단이 좌익을 8군단이 우익을 맡기로했다! 제군들이여, 용감하게 싸우다 죽어 세상 저편에서 만나자!"


나는 투구를 쓰고 신호병에게 신호를 내렸다. 형형색색의 작전기들이 올라갔다 내려가며 각 중대들에게 신호를 보내고 

나팔소리가 울리며 부대의 진격을 알렸다. 이제 모든것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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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궁병들의 초기 사격전에서 우리 군단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으며 이윽고 벌어진 백병전에서도 숫적 우위를 활용해 지형의 불리함을 크게 상쇄시키고 있었다.


나는 앞길을 가로막는 적 군단병들을 쓸어버리며 앞쪽으로 전진했으며, 내 앞길을 막는 적들이 너무나도 적다는걸 깨달았을때는 이미 늦었었다.


그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나와 친위대들은 그녀의 친위대와 베테랑 중대원들에게 둘러쌓인 형태가 되버리고 만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말한 내 소박한 꿈을 이룰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나와 그녀사이의 일을 끝내고 반역의 씨앗을 뿌리째 뽑아버릴 수 있다면 여기서 죽어도 괜찮을거라고 생각했다


굉장히 안일하고 전혀 괜찮지 않았다. 반역은.. 이미 뿌리내린지 오래였으니.


우리와 함께 진격하던 7군단과 8군단이 점점 진격속도를 늦추더니 결국 우리 군단이 4개 군단에 둘러쌓여버렸으며 그때서야 내가 심각하게 안일하고 멍청했다는걸 깨달았다.


내 형제자매들이라면, 결코 우둔하게도 고작 3개 군단으로 반역은 꿈도꾸지 않았을거란걸. 그들또한 제국 최고 지성이자 최강 전사들이라는걸.


"도대체.. 무슨.."


내가 넋을 놓은채 부대 후미의 예비대들이 거의 일방적인 학살을 당하는걸 지켜보는것을 보면서 그녀가 즐겁다는듯 깔깔 웃었다.


"지금 이 상황을 얼마나 고대해왔는지 알아 루서?"


내가 사방을 둘러보며 전황을 살폈을때, 이미 내 군단의 절반이. 아니 7~8할은 무력화당한지 오래였고 상황파악이 안된채 사방에서 들어오는 공격들을 베테랑 중대들만이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와 친위대원들은 그녀의 병력들에 둘러싸여서 고립되어 있었기에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아마 그녀가 계획한거겠지.


"5개 군단."


내가 허탈감에 속삭이자 그녀가 맞받아쳐줬다.


"그래, 5개 군단. 제국 절반 이상을 순식간에 점령해버리기 쉬운 숫자지. 1군단,3군단,6군단,10군단은 제국의 정 반대에 있으니까 말이야."


어쩔줄을 몰라하는 휘하 병력들을 주변에 두고, 지휘관이라는 놈인 나는 고개를 푹 떨궈버렸다. 조금만. 조금만 더 신중하게 생각했더라면.


"절망하지마, 언제나 희망은 존재하는거잖아? 예전에 '아버지'가 산적무리를 쓸어버리고 우릴 거두었을 때처럼."


그녀가 날 조롱하지만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저 멀리에서 내 병사들이 학살당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저들의 죽음은 온전히 내 잘못이다.


"마지막 기회를 줄게 루서."


그녀가 속삭이듯 말해온다.


"무장을 해제하고, 무릎꿇어. 적어도 휘하 친위대들은 살려줄 수 있어."


그리고 내가 여제가 된다면 결혼해서 너를 황제로 만들어줄거야!


꺄르륵 웃는 그녀였지만 내 마음은 오로지 심란하기만 하다.


결국 난 결단을 내렸다.


"미안하다, 아들들아."


내 눈시울은 저번 그녀의 천박에서처럼 붉어졌으며 나의 검을 빼들고 그녀의 눈을 쳐다보았다.


"나는 굴복하지 않을것이다. 반역자야."


그녀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으며 안타깝다는듯 뒤로 돌며 그녀 자신의 병사들에게 명령한다. 일부러 내가 들으라는듯이.


"5군단의 친위대원들은 전부 최대의 고통속에 비명지르게 만들어주거라, 5군단의 군단장은 되도록 멀쩡한 상태로 생포해오도록. 제국 최고 검사중 한명이니 팔다리 하나쯤 잘려오는건 용서해주마."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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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작품


상황따라 구어체<->문어체 바꿔쓰는거랑


1인칭<->3인칭 바꿔쓰는게 되게 어렵네


상황 묘사하는것도 그렇고


잼있게 읽어줬으면 좋겠다 1500자쯤에 현타왔다가 간간히 써서 7시간 걸린듯


원래 쓸때는 소6 얀4 정도로 넣고싶은데 막상 쓰니까 

소9.5 얀 0.5 들어가는데 용서해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