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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처음 쓴 지 20일도 채 안 지났는데 벌써 1000명이라니 가슴이 웅장해진다

구독자 700명 돌파 기념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1000명이네. 스토리 더 다이나믹로동하게 짜고올 테니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올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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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시절은 참 설레는 시기야, 그치?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선생님들과 새로운 수업, 그리고 운이 좋다면 중학교로 올라가며 떨어졌던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을 우연찮게 만나기도 하지.

 그래, 참 설레는 시절이야. 특히나 얀붕이에게는 고교 입시를 치르고 겨우 들어온 고등학교라서 더 그런 걸지도 모르겠어.


 설레는 일이라는 게 오기 직전에는 밤잠을 설칠 정도로 느릿느릿 오지만 일단 오고 나면 정말 총알같이 지나가버리거든. 그렇게 뭘 하는지도 모르고 1년이 훌쩍 지나갔어.


 이제 고등학교 2학년, 조금만 주춤하면 고3이 되는 시기면서 동시에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는 마지막 해이기도 하지.


 얀붕이의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들만 나뒹굴고 있었어. 이제 나는 뭐 하고 살아야 하나? 부모님 말 따라 인문계고를 오긴 했는데 생기부에 적을 장래희망에다가는 뭘 적어야 되나? 어제 진혁이놈이 말했던 소녀전선인가 머시긴가는 뭐 하는 게임인가? 오늘 점심 개맛없던데 걍 매점으로 때울까?

 평범한 남고생이라면 다들 그런 생각 하고 사는 거 아니야?


 자기가 1년 전에 과외를 받던 대학생 누나가 하필 자기 학교에 초임교사로 올 줄 어느 누가 알았겠느냐고.


 매년 개학식이 되면 운동장에 모여다가 자기 반을 맡을 담임 선생님을 소개받지? 그리고 새로운 선생님이 온다면 그때 처음 만나기도 하는데,


"다음 역사 선생님으로 올해 아카고에 처음 오신 얀순 선생님입니다!"


 그 말이 자기 학교 운동장에 울려퍼질 줄 얀붕이가 상상이나 했을까? 아니, 애초에 얀붕이 이 멍청한 녀석은 그 겨울방학의 기억들을 그저 예전에 있었던 달콤쌉싸름한 추억쯤으로 치고 묻어놓고 있었단 말이야. 어쩌다 한번 밤에 자기 전 머릿속에서 그날의 기억들이 얀순이를 마지막으로 보낼 때의 씁쓸한 감정과 함께 같이 떠올라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숨만 쉬게 만드는 날이 있기야 하지만.


 정말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렸는데 오랫동안 그대로 잊고 있다가 웬 생각도 못한 날에 슥 하고 찾아본 적 있어? 얀붕이의 기분이 딱 그런 느낌이었지. 




 그리고 얀순이도 그건 마찬가지였고.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미 얀순이는 다 알고 있었어.


 쓰디쓴 마음으로 얀붕이를 보내고 서울로 올라간 얀순이는 교직 전공자로서 이제 내가 갈 길은 초수합격뿐이다 여기고 1년 남은 교사 임용에 몸을 내던진 거지.

 몸을 내던진다고 해봐야 임용시험이 사람도 아니고 걔가 순결을 뺏어가서 비처녀가 되는 것도 아니니 1년 동안 집-독서실-집-독서실만 계속하며 공부에 매진한 얀순이.


 하지만 얀순이는 교사 임용시험에서 1차 시험도 통과하지 못했어.


 그럼 여길 어떻게 왔냐고?

 아카고는 사실 학교법인 현무학원이 경영하는 사립고등학교거든.


 얀순이는 애초부터 이걸 노리고 있던 거야. 일정 기간마다 학교를 옮겨야 하고 얀붕이도 만날 수 없는 공립학교에는 관심도 없었고 임용시험을 친 것도 현무학원 교사 채용시험 조건에 임용시험 1차 성적이 들어가 있어서였을 뿐이지.


 그래서 당당히 현무학원 채용시험에 합격한 얀순이는 아카고 2학년에 재학 중일 얀붕이를 볼 생각에 최종합격 문구를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가슴을 졸이며 기다려왔던 거야.


 물론 그런 복잡한 사정을 알 리가 없는 얀붕이는 그 많고 많은 학교 중에 도대체 어떻게 우리 학교 선생님으로 왔는지 놀라면서도 이렇게 극적인 방법으로 만났다는 것에 너무도 기뻐서 운동장에 서 있는 자기 발을 동동 굴리며 어쩔 줄을 모르지.

 표정 관리가 안 돼. 너희들 만약 모두가 보고 있는 앞에서 로또가 당첨되면 어떨 것 같아? 기뻐 죽겠는데 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 대놓고 로또 당첨됐다 하며 소리지르지도 못하고 표정만 으흫ㅎ흐ㅡㅎ흐 까흐흑 거리면서 손을 꽉 쥐면서 앞뒤로 파닥파닥거리는 광경이 나오지 않겠어?


"역사 선생님 얀순이라고 해요. 여러분 하나하나 다 잘 따라오면 재밌는 수업 할 수 있을 거에요! 잘 부탁드려요!"


 이 목소리. 1년 동안 잊고 있었던 이 목소리… 특유의 매력적인 목소리에 예전보다 더 어른스럽고 나긋나긋한 느낌이 더해지니까 얀붕이에게는 정말 천사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것 같았어.


 그게 얀붕이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는지 남학생들의 폭발적인 환호를 받고 얀순이가 자기 자리였던 오른쪽 3번째 줄로 돌아가려는데,


 얀순이가 홱 하고 몸을 왼쪽으로 틀었어.


 그리고 정확히 얀붕이와 눈이 마주친다..?


"!!"


 얀붕이의 온몸이 굳었고 그게 풀리기도 전에 얀순이는 자연스레 자기 자리로 돌아갔지.


"너 왜그래? 배아파?"


"아니, 아니야. 벌 날아온 줄 알았어."


 얀붕이가 착각하고 있는 걸까? 방금 전 얀순이는 분명 자기를 보고 웃었던 것 같아.


 꼭 얀붕이가 있는 반이 어디라는 것쯤 이미 다 알아두었다는 것처럼.


 꼭 얀순이의 무언가를 위해 자길 점찍어둔 것처럼.


 꼭 1년 전 얀붕이의 마지막 배웅을 받은 순간부터 이미 이렇게 될 거라는 걸 다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글쎄? 마지막 부분은 그럴 리가 없겠지만 그래도 아무튼 그 웃음은 분명 그냥 반가워서 한 미소 같지는 않았단 말이야.


 에이 설마, 수많은 학생들 속에 숨은 나를 얀순눈나가 어떻게 찾았겠어 싶은 얀붕이는 개학식이 끝나고 그대로 교실로 돌아갔는데.


 그런데 짜잔! 교실 문이 드르륵 열리고 얀순이가 들어오는 거 있지?


"아..?"


 그러고 보니 얀순 선생님 소개할 때 담임반이 어디..랬더라…? 정신이 없어서 못 들었는데...


"여기 2학년 3반 맞지?"


"네!"


"와 쌤 진짜 우리 담임쌤이에요?"


"야 노준우 니가 왜 나서냐? 앉어!"


"넌 이미 경험 있잖아 빠져!"


"다들 앉아 봐요, 호호.."


 소란해진 교실을 가라앉히고 교탁을 잡고 선 얀순 선생님.


"일단 다시 선생님 소개를 할게요. 2학년 3반 담임선생님을 맡은 얀순이라고 합니다!"


 얀붕이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졌어.


"후훗."


 그리고 그 눈빛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얀순이가 작게 쿡쿡 웃었지.




 저거거든.

 얀순이가 보고 싶었던 게 바로 저거거든.


 담임교사와 제자로 갑자기 다시 만나게 돼서 기쁘면서도 당황스러워하는 저 귀여운 얼굴….


 학급 담임을 맡게 해 달라는 부탁 정도야 어렵지 않았어. 얀붕이가 다니는 바로 이 학급으로 가게 부탁하는 게 조금 까다롭긴 했지만.


 하지만 얀붕이의 저 얼굴을 다시 보는 것만으로 그 수고는 다 사라졌다고 봐야지?

 얀순이는 얀붕이의 얼빠진 표정을 보며 웃음으로 반갑게 인사를 했어. 모두가 보고 있는 앞이라 그 감정을 대놓고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복닥거리는 교실 사이에서도 그 둘은 짧게 나눈 그 눈짓 정도로 그동안의 인사는 충분했어.


 문제가 하나 있다면 얀붕이는 여자를 사겨본 적도 없고 얘기도 많이 해보지 못한 바보멍청이라 여자의 감각이나 감성을 이해 못했다는 거지.


 그게 왜 문제냐고?




 다른 학생들이 얀순이의 눈빛에서 읽어낸 욕망 비슷한 감정을 지 혼자만 몰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