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잇자국이다.


목덜미가 간지럽길래 손으로 살짝 긁었더니 우둘투둘한 느낌이 들어, 손거울까지 동원해서 목을 살펴보았더니 잇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도대체 누가 장난을 친 건 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사람의 치열이다.

좀비에게 물린 게 아니고서야 이상한 취미를 가진 사람에게 물렸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옷을 입으면 가려지는 위치니까, 별 생각 없이 옷을 차려입고 출근을 했다.

곧 있으면 사라지겠지...




이상하다. 잇자국이 며칠 째 사라지지 않는다. 

내 피부가 그렇게까지 탄력이 없나 싶어 팔뚝에 잇자국을 내 보았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자국은 사라졌다.

분명 퇴근해서 집에 올 즈음에는 제법 흐릿해지는데, 자고 일어나면 다시 선명해진다.

이로써 도출되는 결론은, '매일 내가 잠든 사이 똑같은 자리를 물어 자국을 남기는 사람이 있다' 라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잠이 싹 달아났다. 집의 창문을 모두 잠그고 현관문의 안전고리까지 걸었지만, 여전히 무섭다. 

결국 새벽 3시가 넘어가서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어제 잠을 못 잤더니 피로가 가시질 않는다.

일어나서 체크해보니 분명 창문은 얌전하게 잠겨있고, 현관문의 안전고리도 제 위치에 있다.

하지만 잇자국만큼은 다시 선명해져있었다. 

뭐야 이거, 몰라, 무서워...

더이상 집에 있기도 찜찜해서 평소보다 빠르게 출근했다.

직장에서도 새어나오는 하품을 겨우 참아가며 억지로 깨어 있자면 오늘이 금요일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오늘이 월요일이었다면 한 주 동안 어떻게 버티나 싶었지만, 그래도 주말이 왔다는 사실이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하루 죙일 커피를 들이키고 있었더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었고 동료들이 회식을 하자는 말을 꺼냈다.

오랜만에 배에 기름칠할 생각에 신이 났던 나는 이에 흔쾌히 응했으며, 그 날은 술에 진탕 취해서 집으로 들어갔다. 




가뜩이나 술도 약한 놈이 과음을 했던 탓에 11시 즈음에나 눈을 떴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숙취를 견디며 옷을 갈아입고 있으려니...

와이셔츠 안 쪽에 붉은 색의 무언가가 묻어있는 자국과 다시 선명해져 있는 잇자국이 보였다.

술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머리를 억지로 굴려 생각해 보면, '옷을 입으면 가려지는 위치'를 물었다는 것은

옷자락을 끌어 내리거나 벗긴 다음에 물었다는 뜻인데...

분명 어제는 회식에서 진탕 마셨기 때문에 옷을 갈아입을 틈 조차 없이 곯아떨어졌다.

그 말은 즉슨, 넥타이와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고 잇자국을 남긴 뒤 다시 단추를 채우고 넥타이까지 매주었다는 뜻이다.

이를 깨달은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이대로는 언젠가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누군지 모를 사람이 단순히 잇자국 하나 내자고 내 집에 멋대로 들어와서 옷을 풀어헤치고는

아무 일 없었던 것 처럼 주변을 정리하고 사라진다는 게 정말, 정말이지...

무섭다.

도대체 뇌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으면 이렇게나 수고스러운 뻘짓을 매일마다 하는 거야?  

왜 하필이면 나한테 그러는 거야?

내가 뭔가 잘못한 거라도 있는 건가?

...생각해 보니 그동안 쌓였던 화가 몰려오는 것 같았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오늘 그 이빨을 모조리 뽑아버릴테다.

그렇게 하루종일 분노를 곱씹으며 베개 밑에 펜치를 숨겨두고, 취침 시간이 다가오자 자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누워서 눈을 감고 있으니 잠이 솔솔 오기 시작했지만

팔 안쪽을 꼬집으면서 억지로 버티고 있었다.

매일매일 잇자국을 남기는 것으로 보아, 분명 오늘도 올 것이다.


...몇 시간을 기다렸을까.

분명 깨어있지만 반 정도는 자고 있는 듯한 그런 상태에서 무언가 부스럭대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최대한 소리를 죽인 발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베개 밑으로 손을 뻗어 펜치를 잡으려는 순간...


"파지ㅣㅈ지지짖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