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자부 할 수 있다.


화 많고 성격 나쁜 나를 항상 친절하게 대해주는 마을 사람들 덕분에.


우정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몸까지 바칠 수 있는 소중한 친구 덕분에.


한낱 농부인 나를 받아준 예쁘고 마음씨 고운 아내 덕분에.


가난한 나를 돕기 위해 하루하루 분골쇄신하여 일하는 나랏님들 덕분에.

 

그리고, 항상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를 보살피시는 여신님 덕분에.


한낱 농부가 가지기에는 너무 커다란 행복이고, 그렇기에 나는 이들과 함께 이 행복을 최대한 나누고 싶었다.


만일 나와 엮인 모든분들이 나와 관련된 일로 웃을수만 있다면, 그것이 내가 바라는 행복이리라.

 

그런 바람을 가득 담아 오늘도 여신님께 감사기도를 올리며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 침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일도 행복한 삶이, 그리고 사람들에게 배풀 수 있는 삶이 계속 되기를.


꾸물꾸물.

꿈틀꿈틀.

왠지는 모르겠지만 잠자리가 참 불편했다.

아마 전날밤에 격렬했던 정사 때문일까? 혈기를 주체 못하는 듯 나는 누워서 꿈틀거리기를 계속했다.

그렇게 한참을 꾸물거리다 옆을보니, 사랑스러운 아내가 색색거리며 자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아내 자랑을 하자면, 우리 아내는 이 조그마한 시골 마을에서도 특출날 정도로 아름다운 미인이다.

나같은 별 볼일 없는 농부에게는 너무 과분한 사람.

아내에게 다시 한 번 고마운 마음이 들어 나는 곤히 자고 있는 아내의 옆에 조심스럽게 다가가 얌전히 그녀를 감쌌다.

"으음... 여보, 일어나셨... 까아아악!"

그런데 뭔가 조금 이상했다. 

평소 같았으면 웃으며 내 이마에 뽀뽀를 해줄 아내가 날 보더니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서 넘어지는 것이 아닌가?

"저리가! 나한테 오지마라고!"

나는 당황하며 천천히 아내에게 다가가면서 평소 속삭이던 달콤한 말들로 아내를 진정시키려 하였지만 목이 막힌 듯 말은 나오지 않았고, 그녀는 내가 다가가면 갈수록 언성을 높힐 뿐이었다.

이 난감한 상황에서 뭘 할수 있겠는가. 그저 아내가 진정될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야지.

나는 아내의 주변에 앉아서 상황을 지켜보려 하였지만, 아내는 그것마저도 원하지 않는지 벌떡 일어서서 울기 시작하더니 나에게 마구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내 남편을 어떻게 한거야! 내 남편을 어떻게 한거냐고 이 더러운 촉수야!"

처음듣는 아내의 절규보다도 그 내용이 더욱 놀라웠다.

일어난 후에 쉴새 없이 꿈틀거리던 내 몸도 그때만큼은 완전히 멈췄을 정도로 그 내용은 놀라웠다.

내가 촉수라니, 그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어제까지만 해도 평범하게 밭을 갈고, 힘든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같이 저녁을 먹으며 하하호호 함께 웃던 남편을 향해 촉수라니.

나는 잠깐이지만 아내가 미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곧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팔뚝.

까무잡잡한 내 팔뚝이 있어야 할 곳에는 촉수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잔가지 중 하나만이 떡하고 자리를 잡아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어떻게 계속 꿈틀 거릴수 있는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꿈틀거리는게 자연스럽다 생각한 나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좀 이상했다.

그래. 믿기진 않지만 오랜 농부 생활을 이어가던 나는 어느 밝은 아침날 촉수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되니, 이후에 해야 할 일은 정말로 명백했다.

나는 서둘러서 이 집을 뛰쳐 나갔다.

아내가 저런 과격한 말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잠깐 떠올랐으나, 급박한 이 상황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사치다.

한참을 꾸물거리며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온 곳은 바로 숲. 아내와 친구의 추억이 깃들어져 있는 우리들만의 비밀 장소였다.

그런데, 내가 왜 이쪽까지 도망을 친거지?




"흠흠흠~ 생각보단 빨리 도망쳐 나오네?"

어느 어두운 방에서, 나는 수정구에 있는 우리 자기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역시, 촉수가 되어도 우리 자기는 귀여워.

인간을 피하게 되는 몬스터의 본능은 생각보다 깊게 각인 된 것같네.

그럼, 그 빌어먹을 암고양이는 이제 끝이고, 슬슬 우리 자기를 좀 고립시킬 필요가 있으려나?

하지만, 촉수는 관리하기 까다로운 몬스터라 잘못하면 죽을텐데.. 아, 내 사역마 친구를 보내야겠다!

사역마 친구라면 분명 우리 자기를 목숨까지 바쳐서 보호하겠지?

완벽한 생각에 콧노래가 멈추질 않는다. 나는 흥흥 거리면서 내 친구들이 사는 친구방으로 향했다.

"안녕 친구들! 좋은 아침이야!"

친구방으로 들어가자 확 풍겨오는 비릿하고 향긋한 피냄새들. 어제 친구들이랑 놀고서 정리를 깜빡한 모양이다.

나는 익숙하게 친구들의 놀이 도구를 정리했다.

사역마 친구들은 지금 치고박으면서 싸우고 있지만, 내가 정리를 끝마칠 즈음에는 잠잠해질거야. 모두 착한 아이들이니까.

"모두 잠깐 조용히 해줄래? 할 말이 있거든."

말 한마디에 조용해지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보며 나는 미리 준비해둔 말을 꺼냈다.

"이번에 너희들에게 시킬 일이 있는데, 인간이었던 촉수를 보호하는 일이야. 혹시, 관심있는 아이 없니?"

......

후우.. 예상은 했지만, 역시 인간이라는 단어에 적개심을 가지는구나. 그렇지만 제일 친한 친구인 내가 말하는데도 저러는 건 조금 짜증이 나려고 한다.

하나 하나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나누려고 해도 슬금슬금 눈을 피하는 우리 귀여운 사역마 친구들.

"어라? 너, 눈빛이 살아있네?"

그렇게 슬슬 포기하려던 찰나, 우리 귀여운 사역마 친구들 중에서 약간 특이한 아이를 찾았다.

인간과 고블린 사이에서 태어나 피부가 초록색인 인간.

태어날 때부터 여기에서 산 아이 치고는 눈빛이 살아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바짝붙이며 말을 걸었다.

"친구야. 우리 친구가 한 번 해볼까?"

왜인지 몸이 경직되어서 아무것도 못하는 혼혈 고블린 소녀.

아하~ 너무 영광이라 아무 말도 못하는거구나!

그럼, 수락이라고 받아드려도 괜찮은거지?

"키릭, 어,어디로 가는건가요?"

"잠깐만 푹, 자러 가는거야. 자고 일어나면 몸도 좀 더 멋있게 변해 있을걸?"

흠... 눈을 절제하고 그쪽에 수정구를 이식할까?

이 소녀가 죽을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다른 아이를 데려오면 되니까.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수술실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