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미래의 아내를 구해줬더니 집착당한다 - 1 - 얀데레 채널 (arca.live)

2화 : 미래의 아내를 구해줬더니 집착당한다 - 2 - 얀데레 채널 (arca.live)


사람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저도 모르게 당황하게 된다.

김현우는 갑작스레 이아영과 마주칠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다.

 

못 마땅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는 이아영.

 

머리를 긁적이며 김현우는 하지 않아도 될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 그게 우연히 만나게 돼서...유시아 알지?”

“유시아?”

 

핑계를 늘어놓는 모양새가 마치 바람을 피다 걸린 남편같은 느낌이다.

 

‘근데 내가 왜 쩔쩔 매고 있지?’

 

아무래도 꿈에서의 상황이 현실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모양새다.

지금의 김현우는 이아영과 결혼은커녕 특별한 사이도 아니다.

 

이아영이 유시아를 빤히 바라보더니 박수를 쳤다.

 

“와! 정말이네? 최근에 노래나온거 잘 들었어요! 저 연예인 실물은 처음봐요!”

“아...감사합니다.”

“혹시 사진 같이 찍을 수 있을까요?”

 

유시아는 내키지않은 얼굴로 이아영과 나란히 붙었다.

 

-찰칵!

 

“감사합니다!”

 

그녀는 뜻밖의 수확을 얻은 얼굴로 스마트폰에 찍힌 사진을 바라봤다.

싱글벙글 웃으며 김현우에게 간단히 작별인사를 하고서 원래 모임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던 김현우는 아쉬운 한숨을 쉬었다.

 

“아주 눈에서 꿀이 떨어지겠네. 예쁜 여자애가 돌아가니까 붙잡고 싶어?”

“그럼요. 한 마디라도 붙여 봤어야 했는데. 이게 쉽지가 않네요.”

“둘이 같은 학교야?”

“네.”

“너 방금 여자애 좋아하지?”

“에?”

 

김현우의 20년 인생에서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가진 여자애는 없었다.

당연하게도 유시아의 말에 적잖이 당황할 수 밖에 없었고, 금방 행동에서 티가났다.

 

“콜록, 콜록!”

 

그는 마시던 술이 목에 걸려서 한참을 기침을 해댔다.

 

“푸흐흡,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 누구를 좋아한다는 게 창피한 일은 아니잖아?”

“아직 좋아한다는 말은 안 했어요.”

“그래, 그래. 그래서 언제 고백하게?”

“아니라니까요.”

“얼굴 시뻘개져서 말하면 잘도 믿어주겠다.”

“아오, 진짜.”

 

페이스에 말려든다는 기분이 이런걸까?

대부분 대화의 주도권은 유시아에게 있었다.

김현우가 처음 술집에 끌고 왔을 때만해도 나름 대화를 이끌어갔다.

 

‘이럴려고 데려온게 아닌데.’

 

술이라도 한 잔하면서 그녀의 속마음을 듣고 싶었다.

취중진담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 말대로 왜 유시아가 자살을 결심했는지 알고 싶었다.

 

정말로 단순히 악플 때문에 그런건지.

 

하지만 여전히 웃고 있는 유시아를 보면서 김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솔직한 심정으로 지금의 모습만 본다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으로는 전혀 비춰지지 않는다.

꿈에서도 자살소동 이후에 따로 알게 된 정보도 없지만, 유시아가 10년 동안 잘 살아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

 

‘이거면 충분한 거겠지.’

 

-콕콕.

 

“왜요.”

“뭐야? 왜 갑자기 말이 없어? 너무 놀렸나?”

“그냥 생각 좀 한다고...”

“그 여자애 생각? 흠, 좋아하는 건 자유지만 책임은 본인이 해야하는 거 알지?”

“책임이요?”

“나중에 까였다고 너무 슬퍼하지는 마.”

 

이미 미래에 이아영과 결혼한다는 정보를 아는 김현우는 퍽 웃음이 나왔다.

 

“제가 왜 까인다고 생각해요?”

“너한테는 관심 일절 없어보이던데. 나랑 사진찍고 금방 돌아갔잖아.”

“사람일은 모르는거죠. 혹시 알아요? 나중에 결혼하게 될 지.”

“으엑, 아무리 상상은 자유라도 그건 좀...”

 

미래를 안다는 점이 때로는 답답함으로 돌아올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경우다.

여기서 다짜고짜 정말로 결혼한다고 말하는 순간 이상한 놈으로 낙인찍히는 건 당연하다.

 

‘진짜 꿈을 보여줄 수도 없고.’

 

유시아가 질색하는 얼굴로 술을 한 모금 마셨다.

 

둘의 잡담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어느 샌가 술집 마감시간 무렵.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나중에 고민 같은 거 있으면 들어 줄 테니까.”

“난 너 같은 애 취향아닌데.”

“...저도 마찬가진데요.”

 

미래를 알게 된 이후로 김현우의 마음은 이아영 일직선이 되었다.

유시아의 전화번호를 물어본건 정말 혹시나 해서다.

기껏 자살을 막았는데 또 다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죽어버리면 안 된다.

 

 

“푸핫, 농담이야, 농담. 알려줄게.”

 

.

.

.

 

 

싱그러운 벚꽃이 피는 계절인 4월 봄.

스토커에게 찔리고 유시아의 자살을 막고.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되었다.

 

유시아와 술을 마신게 벌써 1주일 넘게 지났다.

그 동안 놀랍게도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간간히 이아영과는 마주치면서 인사는 하고 있지만, 그 뿐이다.

유시아도 뮤직차트 조작사건이 정정보도 되면서 상황이 한결 나아졌다.

 

‘다들 참 행복해 보이네.’

 

모든 일이 잘 풀렸다. 

그러니까 분명 미소를 짓고 있어야하는데.

 

“벚꽃이 참 예쁘네.”

“굳이 남자 둘이 꽃 구경을 하러 왔어야 했냐?”

 

유현승은 투덜거리며 벤치에 앉아서 빵을 건냈다.

 

“S대에 오면 여자친구가 해주는 도시락을 먹으며 행복하게 벚꽃 구경할 줄 알았는데.”

“쯧, 그런거에 너무 환상 갖지마라. 막상 해보면 별 거 없다.”

“너는 고등학생 때부터 사귄 여자친구가 있으니까, 이 마음을 모르겠지.”

 

이 기만자 자식.

유현승은 가볍게 어깨를 으슥거렸다.

 

“여자가 해주는 도시락이 목적이면 만들어달라해.”

“그런 사람이 있어야지.”

“있잖아. 이아영.”

 

김현우는 그 이름을 듣자마자 허탈하게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에게 유일한 구원이었던 정치철학 수업의 꿈.

마치 수학 문제지의 정답과도 같았다.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의존해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그런 답지를 빼앗긴 상태의 김현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먹고 싶다. 이아영이 만들어준 도시락.”

“네가 스토커 대신 칼도 맞았는데 그 정도는 해주겠지.”

“...이미 도시락이 아니라 많은 걸 받았어.”

 

병원의 치료비부터 해서 변호사 선임 비용까지 전부 이아영이 내줬다.

추가적으로 보답이랍시고 돈까지 받은 김현우다.

 

즉, 더 이상은 볼 일이 없다는 소리와도 같았다.

 

-깨톡!

 

김현우의 주머니에서 알람이 울렸다.

보낸 사람은 유시아.

 

-최근에 바빠서 연락할 시간이 없었네. 미안.

-생각해보니까 저번에 고맙다고 말을 못해서 이제야 말하네. 그 때는 진짜 죽고싶다는 생각뿐이었거든.

-고마워. 구해줘서.

 

뜻 밖에 감사인사를 전해주는 메시지를 본 김현우는 한 동안 멍하니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사람을 도와준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일평생 봉사활동이라곤 의무적으로 채워야 하는 것만 해온 김현우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누군가를 도와준 경험은 드물다.

남에게 진심어린 감사를 들어본적도 처음이고.

 

-오히려 제가 고맙죠. 계속 살아서 활동 하실거잖아요.

-그렇게 말해주니까 더 열심히 해야겠네.

 

김현우는 흐뭇함에 절로 미소가 줄줄 새어나온다.

 

“뭐 보냐?”

“아.”

 

황급히 스마트폰을 숨긴 김현우였지만, 이미 늦었다.

 

“유시아? 뭐야, 따로 연락하는 여자 있었네. 그냥 그 사람한테 도시락 만들어 달라해.”

“그런 사이 아니야.”

“뭐라도 해봐. 여자랑 꽃 구경하는 게 소원이었다면서.”

“그렇긴 한데...”

 

김현우는 한 가지가 걸렸다.

혹시나 이 사람 저 사람 찔러보는 게 아닌가.

그렇다고 이아영에 대한 마음이 변했다는 건 아니다.

 

‘꿈에선 결혼 1주년에 이아영의 눈에선 꿀이 떨어졌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꿀은커녕 정말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였다.

 

지금도 마주치면 인사를 하긴해도 그게 전부였다.

누군가에게 이아영과 나중에 결혼까지 한다고 말하면 대단한 착각이라 말할법하다.

 

‘고작 인사해준다고 결혼이라니...’

 

한참을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던 김현우가 조심스레 터치를 했다.

 

-혹시 이번주에 시간 있어요?

 

답장은 얼마안가 금방 왔다.

 

-시간? 갑자기 왜?

-바쁘지 않으면 꽃 구경 가지 않으실레요?

 

보낸 순간 김현우는 아차 싶었다.

친근한 누나처럼 대해줘서 상대가 연예인이라는 사실을 잊어먹었다.

 

‘이게 다 분위기 탓이야.’

 

커플로 가득한 S대 벚꽃 거리의 핑크빛 기운과 친구의 부추김에 그만 넘어가 버렸다.

 

애써 상황을 부정해도 저질러버린 행동은 주워담을 수 없다.

 

‘딱 봐도 거절하겠지.’

 

하지만 얼마안가 온 답장은 김현우의 예상밖이었다.

 

-언제갈래.

 

이번주 주말.

 

“그게 뭐에요? 아주 꽁꽁 싸매고 오셨네.”

“야, 누가 알아보기라도 하면 귀찮아져.”

 

유시아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무장을 한 상태로 벛꽃 거리에 왔다.

 

둘은 가까운 곳에 돗자리를 펴서 자리를 잡았다.

 

벚꽃이 만개한 4월초.

바람이 불어오면서 주위로 벛꽃이 흩날린다.

 

“여기 도시락. 네가 하도 먹고 싶다길래 없는 시간 내서 만들었어. 고마워해.”

“감사합니다. 제 일생의 소원이었거든요.”

“은인이 하는 부탁인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김현우가 나무젓가락을 뚝 떼서 가지런히 말려있는 계란말이를 집었다.

평범하게 입에 넘어가는 맛있는 계란말이다.

누군가 자신을 위해서 만들었다는 사실에 입에서 사르르 녹는 기분이다.

 

“맛있어?”

“크흡, 감동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오버 좀 하지마. 그 정도는 아니야.”

 

얼굴을 붉히며 툴툴 거리는 유시아.

그러거나 말거나 김현우는 여러 반찬을 맛보면서 순식간에 도시락을 비워갔다.

 

“정말 맛있어요. 부모님이 싸준 것보다 훨씬.”

“그렇다면 다행이고.”

 

기분좋게 불어오는 바람과 천천히 떨어지는 벛꽃.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이 순간은 영원토록 잊지 못할 것 같다.

 

김현우의 얼굴에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

.

.

.

 

“아영아, 왜 그래?”

“아. 미안. 잠깐, 멍 때렸네.”

 

대학에서 사귄친구가 벚꽃 구경을 가자기에 마지못해 따라나선 이아영.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발견했다.

 

‘김현우랑...유시아?’

 

본인은 정체를 숨긴다고 꽁꽁 싸매도 자세히 보면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겉으로 삐져나온 금발과 눈에 띄는 미모는 쉽게 숨길 수 없다.

 

김현우에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도 그럴게 괴한으로부터 자기 대신 칼에 맞는 걸 봤으니까.

 

“쟤 김현우 아냐? 여자랑 같이 있네?”

 

때마침 친구가 손가락으로 그쪽을 가리킨다.

 

“쟤도 여자친구가 있나보네.”

 

움찔.

 

친구의 말에 이아영의 몸이 들썩거렸다.

 

“여자친구? 그럴 리가.”

“에어, 여기에 단 둘이 온 거보면 빼박이지.”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수렴했다.

상대가 그 유시아라는 걸 안다면 친구도 여자친구라는 소리는 못 할거다.

 

‘신경끄자. 본인의 사생활인데.’

 

김현우가 누구랑 사귀든간에 자기랑은 상관없는 일이다.

이미 은혜를 입은 보답은 충분히 했다.

 

친구가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부럽다는 듯이 말했다.

 

“나도 같이 올 남자친구 만들고 싶다.”

“그건 네 눈이 높아서 그렇잖아.”

“아냐, 그냥 이상한 놈들만 꼬여서 그렇지. 그러는 너도 작업 거는 남자들 전부 차면서.”

 

이아영은 한숨을 쉬었다.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단 둘이 뭘 하자는 남자가 뭐 그렇게 많은지.

 

‘정작 관심가는 상대는 아무 반응도 없고.’

 

매일 같이 김현우와 만나면 먼저 인사를 건낸 그녀다.

근데도 상대는 어째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지금도 헤벌레 하면서 유시아랑 도시락을 먹고 있다.

 

-빠직.

 

“어? 나무 젓가락 부서졌네. 새 거 줄게.”

“고마워.”

 

친구에게서 새 젓가락을 받은 이아영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 신경끄자. 저런 남자.’

 

자고로 연애란건 먼저 좋아하는 쪽이 진다고 그랬다.

지까짓게 뭐라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두고보자.

 

얼마 안가 자기에게 달려와서 고백해달라 할게 뻔하다.

 

‘참자. 참아.’

 

“어머, 어머. 둘이 껴안는 거 봐. 쟤네 둘 사귀는 거 맞다니까.”

 

이아영은 참지 못하고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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