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사각, 조용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저는 시선을 옮깁니다. 보이는 건 붉은 색 정복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사람.
“IWS2000, 이리로 와 봐.”
제 지휘관 되시는 분입니다.
진지한 목소리로 저를 부르는 지휘관님의 얼굴은 한없이 근엄하기만 했습니다. 무언가 다급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 황급히 그의 곁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네, 지휘관님. 어쩐 일로……”
진중한 분위기는 그의 지척에 도달했을 때도 이어졌습니다. 절로 마른침을 삼켰습니다. 과연 무슨 일일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습니다.
다만, 꽉 쥔 손 아래 무언가 감추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과연 저 아래는 무엇이 있을까. 의문이 머리를 맴도는 순간, 지휘관님의 입이 열렸습니다.
“진~짜 큰 거미야.”
“……예?”
거미였습니다.
“꺄아악!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아니, 이거 봐. 이렇게 큰 거미는 지휘부 최고 기록이라니까? 당장 G36 보여주러 가야지.”
말하며, 지휘관님은 그대로 문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G36씨가 거미를 보고 기절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저희 지휘관님은 기본적으로 장난기가 많으십니다. 거짓말도 많습니다. 이에 비례해 다정함과 웃음도 많은 사람이지만, 절대 우스운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상황에는 그 누구보다 냉철했으니까요. 간단히 설명하면 할 때는 하는 사람, 이렇게 칭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그를 사모하는 사람도 적잖게 있습니다. 이 지휘부에서는 아주 흔한 일입니다.
바로 저처럼요.
“…….”
오늘도 멀찍이서 가만히 바라봅니다. 창가로 내려오는 햇빛을 받으며 업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어립니다.
이따금 그의 옆자리에 서는 상상을 하곤 하지만, 저를 포함한 모두 내심 알고 있습니다. 그는 연애 이야기를 은근히 꺼린다는 것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다른 인형이 그런 쪽으로 말을 걸어도 자연스레 주제를 돌리는 것이 태반이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지금 이 자리를 충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살짝 거리가 멀더라도, 그를 바라볼 수 있는 것,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아, IWS이구나.”
그가 고개를 돌립니다. 저를 바라보며 살짝 입꼬리를 올립니다. 그 은은한 미소를 보면 저 또한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냥 이 순간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렇게 영원할 줄 알았습니다.
“……진심이세요?”
잔잔한 목소리가 공간을 메웠습니다.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누구를 대상으로 한 지는 뻔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됐다. 하고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지휘관님이었습니다.
유례없이 진지한 표정을 지은 그가 말합니다. 담담한 목소리로 잔혹한 말을 고합니다.
“나, 당장 내일 전역해야 할 거 같아.”
이별을 고합니다.
손이 떨렸습니다. 다리가 떨렸습니다. 이어 눈동자와 입술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전신이 떨리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전조조차 없이 통보된 이별은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머리가 잘 굴러가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그것이 사모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는 단순히 저에게만 국한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긴급 공지를 위해 지휘부의 모든 인형이 자리에 모인 지금, 당황하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게 더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침착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담담하여 괴리감이 따라올 수준이었습니다.
“푸흐흐…….”
그리고 또, 웃고 있었습니다.
머리가 어지러워질 때쯤, 그의 입이 다시금 열렸습니다. 표정은 평소의 그것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것도 바로 지금이었습니다.
“다들 날짜나 확인해 봐. 난 먼저 갈게.”
그 말을 끝으로, 지휘관님은 그대로 사라졌습니다. 발걸음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황급히 날짜를 보았습니다.
“……아.”
4월 1일이었습니다.
***
아무리 만우절이라지만, 선을 넘은 거짓말에 여러 말이 오갔습니다. 이를 수습하는 데는 한참이 걸렸습니다. 지휘관님 역시 이를 수긍했고, 빠르게 사과했습니다.
“정말 미안해. 매일 같은 짓 하다 보니 가끔은 좀 특별하게 하고 싶었거든, 진짜 미안해, 거듭 사과할게.”
“정말……너무하셨어요.”
“……미안해.”
새벽의 복도, 썩 좋지 않은 표정을 지은 지휘관님은 저를 바라보며 계속해서 사과의 뜻을 전했습니다.
“약속이야. 앞으로는 거짓말 안 할게. 정말로.”
“……정말요?”
“……아, 그냥 하기엔 아쉬우니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하고, 그 뒤는 정말 안 할게.”
“그게 뭐예요…….”
반쯤 울먹이는 눈으로 말했습니다. 이런 상황에도 장난을 치고 있다는 것에 화가 나지 않는다면 그게 거짓말이었습니다. 약간이지만, 그가 미웠습니다.
“진심이야. 언젠가 마지막으로 거짓말 한 번만 더 하고, 그 뒤로 안 할게.”
“……아.”
말하며, 그는 조심스레 제 손을 붙잡았습니다.
따듯했습니다.
“그래도, 미안한 건 진심이니까. 믿어줬으면 좋겠어.”
웃는 얼굴로 말합니다. 정말 비겁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믿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정말……정말 마지막에요…….”
“히히, 믿어줘서 고마워.”
결국은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이어지는 대화에는 결국 웃기도 했습니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대화를 나눴습니다. 웃기도 했고, 당황하기도 했고, 마냥 즐거웠습니다.
“벌써 2시네. 돌아가자. 너무 늦었다.”
“그렇네요. 재밌었어요. 지휘관님.”
그리 말하며, 저희는 각자의 방으로 이동했습니다.
“IWS2000!”
그의 목소리가 또 한 번 제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면 말이죠.
무언가 망설이는 기색이 눈에 띄었습니다. 평소와 사뭇 다른 모습에 무언가 이질감이 따라왔지만, 그의 입이 열리는 게 더 빨랐습니다.
“……내일 봐.”
웃고 있었습니다.
“네. 지휘관님. 내일 봐요.”
저 역시 웃음으로 화답합니다. 지휘관님은 마지막 한 마디와 함께 그대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가만히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지만, 그가 다시금 뒤도는 일은 없었습니다. 상관없었습니다. 그저 바라만 봐도 좋았으니까요.
마침내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그제야 저도 걸음을 옮깁니다. 밤은 어두웠고, 달은 이상하리만치 빛났습니다.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약속했으니까요. 이제 거짓말은 한 번을 끝으로 그만두기로, 내일 보기로.
“……지휘관님?”
그리고 다음 날, 지휘관님은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지휘관실은 난잡하다 못해 혼란스러웠습니다. 자료는 전부 사라져 있었고, 낡은 탁자 위에 편지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미안해. 정말로.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새벽에 지휘관님이 저와 단둘이 대화를 나눈 의도가 무엇인지.
마지막 거짓말이 무엇인지.
그냥 옛날에 썼던 거 기억을 더듬어서 다시 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