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ㅈ도 부질없네 진짜."


손에 쥐어진 동화 몇푼을 보며 나즈막히 한탄했다.
어린 시절의 사건으로 고향을 떠나, 아카데미도 들어가지 않고 모험가 길드에서 활동을 한지 어언 10년.
남들은 베테랑 모험가로 거듭날 법한 활동기간이지만, 나는 여전히 하급 탐색꾼일 뿐이다.


적은 수입 탓에 입에 풀칠도 간신히인 상황.
그나마 어릴적부터 친분 있던 길드장 아저씨 덕에 길드 숙소에서 적은 비용으로 지낼 수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내일 뵈요."


저런 파티는 꿈을 꿀 수도 없고.


"그니까 내가... 히끅. 그 ㄱㅅㄲ랑 왜 연애같은 걸 해가지고... 히끅."


술 같은 것도 수입좋을 때 즐길 수 있는 미련한 사치다.


"이래서야 언제 승급하냐..."


중급으로 올라가 도굴꾼으로라도 전직해야 파티에 낄 수 있는, 내 신세에 한탄만 하고 있었다.


"요즘 많이 힘드나, 저니?"


털북숭이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건넸다.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나의 은인, 길드장이었다.


"탐색꾼이야 언제나 힘들죠. 항상 다른 파티가 쓸고 지나간 던전이나 유적지에서 남은 콩고물은 없나 열심히 주워먹고 사는 직업인데... 클래스가 이러니 파티에는 안 받아주고, 장비를 맞추자니 돈이 없고..."


"맨날 한탄만 하지 말고. 그래도 탐험 계열 클래스는 나중에 포텐이 좋다니까?"


"그 나중 기다린지 어언 10년입니다."


"... 벌써 그렇게나 됐나... 미안타. 내가 괜한 말 꺼냈다."


"뭐 어때요. 부모님들 돌아가시고 나 데리고 간게 아저씨면서."


버릇처럼 수염을 어루만지며 머쓱하게 웃는 길드장. 좀 어리숙한 곰같은 아저씨지만, 실제로 싸울때는 진짜 곰같은 아저씨라 의지가 된다.
어린 시절, 도적떼가 처들어 와 두 부모님을 눈 앞에서 잃은 나를 지켜준 사람.
이 분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재기불능 상태였을 것이다. 크게 지금과 다르지 않을 것 같지만.


"흠흠, 아무튼 간에. 너한테 괜찮은 건수가 들어왔다."


"...? 또 지도 만들기 인가요? 그건 손 아파서 싫은데."


"내 생각엔 네 인생 통틀어 최고의 기회다. 이 건만 잘 끝내면 어쩌면 상급 탐험 클래스도 노려볼만 해."


솔깃했다. 허나 동시에 불안했다.
이 업계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니까.


"... 일단 들어나보죠. 무슨 일이에요?"


"루인네 파티에 임시 탐색꾼이 필요하다고 한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루인.
나와 함께 고향에서 길드장이 데려온 여자아이.
그녀는 나와 다르게 마검사 계열의 클래스 적성을 타고났고, 3년만에 최연소 엘리트 모험가가 된 아이었다.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은 5년 전.
그녀가 국립 모험 길드에 스카우트 되던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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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난 여기에 남겠다고."


그녀의 제안.
같이 국립으로 가서 파티를 꾸리자는 것이었다.


"어째서?"


그녀가 내게 의문을 던졌다.


"어째서라니. 너랑 내 갭차이는 너도 잘 알텐데."


"그런게 중요해? 승급하고 싶다며. 이대로는 힘든거 너도 알잖아."


"그게 네 곁에서면 좀 달라지니까 그렇지."


그녀는 누구보아도 아름다웠다.
백옥같은 피부, 청량한 푸른 눈에 순백의 머릿결. 거기다 몸매까지.
재능 뿐 아니라 다른 것들까지 타고난 사기캐.


반면 나는 모험가의 재능이라곤 타고나지 않은, 비루하디 비루한 고아 출신.
그나마 재능이라곤 약간의 말재주와 비교적 좀 나은 외모.


내 한계는 내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있어서 장애물이다.
그녀에게는 더 넓은 기회가 필요하다.
더 좋은 곳에 나가, 더 좋은 사람들과 사귀고, 더 나은 가르침과 경험을 얻어, 더 성장할 수 있는 그녀다.
장애물은 이만 물러나야 하는 것이다.


"결론은, 같이는 안가. 난 여기 남겠어."


"... 안된다고 한다면?"


"도데체 왜 그러는데? 네게 있어서는 더 나은 기회일 지 모르지만, 나는 객사할 수도 있다고."


"내가 널 지켜줄 텐데."


"언제까지고는 무리지. 파티원에게 배신당할 수도, 한밤중에 습격 당할지도 모르지. 너는 가치있으니, 주변 것들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분명 존재할거야."


"... 파티원은 너랑 나 둘 뿐. 밤에는 방을 같이 쓰면 돼. 너를 제거하려는 것들은, 사전에 내가 제거할게. 그러면 돼?"


"아니,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억지를 부리는 거야? 말이 될 법한 소리를 해서 설득을 하던가!"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 깨닫고 보니 이미 설득보단 분풀이에 가까워 진듯 했다.


"그쯤하지?"


길드장 아저씨가 우리는 제지하고 들어섰다.


"루인, 초청 받은 건 너야. 그 외에는 저니도, 나도 그들에겐 방해꾼이겠지. 이제는 너 혼자서 이겨내야 할 차례야."


"... 그럼 어떻게 해야 방해꾼에서 벗어나?"


순박하고 어린 질문.
하지만 진심어린 질문이었다.


"너가, 너가 성공해야 한단다. 이 나라 최고의 모험가가 되렴. 그렇게 해서 너의 업적을 세우렴. 그러면 된단다."


아저씨의 설득이 먹혀들어간 듯, 그녀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곤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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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5년이 지났다.
그녀와 만난지 5년만에 그녀에게 연락이 온 것이었다.
5년전 치기와는 다르게, 이제는 나도 현실을 고려할 줄 안다.
이젠 나도 결정을 내려야 했다.


'...더이상 이렇게만 머물다가는 아저씨께 민폐만 끼칠 뿐이겠지.'


그리곤 결정했다. 그녀와 함께 하기로.



...



아침해가 떠오르기 전 새벽녘.
아저씨가 나의 짐을 마차에 싣는 것을 돕고 있었다.


"읏차, 이게 마지막인가."


"네. 마지막... 이네요."


아저씨는 수염을 어루만졌다. 오늘따라 더 푸근한 곰같다.
이제 많이는 못 보겠지.


"...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오냐. 감기 조심하고."


"도착하면, 편지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국립 모험 길드행 마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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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었다. 악몽이었다.


마을은 불타고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비명소리가 흘러 넘쳤다.


"여기 있어야 해."


어머니는 그 말을 하곤 돌아오지 않았다.


"부디 너만큼은..."


아버지는 나를 안은 체로 숨을 거두셨다.


"빨리 도망치거라!"


그의 부모님의 유언이었다.


울기에 바빴다. 도적들은 학살을 벌이고 있었다. 내 차례가 곧 올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그가 보고 싶었다.


한 도적이 내게 칼을 들이밀었다.
한 소년이 그것을 막아섰다.
그다.
벌벌 떨며 내 앞의 서있는 그였다.
애써 미소지어 보이며 그는 말했다.


"괜찮아. 괜찮을거야."


도적은 칼을 높이들었다.
안된다.
안돼.
더는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다.
소중한 이를 지키고 싶었다.
그를... 지키고 싶었다.


"... 안 돼."


그것이,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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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중천. 12시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자, 큰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 와가네. 기대된다. 그치?"


중간에 같이 타 합류하게 된 고양이 수인 소녀.
그녀는 해맑은 웃음으로 내게 말을 건넸다.


... 그녀도 이렇게 웃을 때가 있었는데.


"응. 기대되네."


"소꿉친구랑 만난다고 했나? 부럽다~ 나도 그런 애지중지한 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는데."


"하핫. 애지중지한 사이는 아니야. 그냥 친구지."


애지중지한 친구라. 만난지 5년도 넘었는데 그녀가 그 정도의 애정을 나에게 가지고 있을까.


"그럼 우리도 친구야?"


수인 소녀는 내게 말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랬잖아. 친구지."


그녀는 해맑은 웃음을 내보였다.


"도착했다네. 내리시게나."


마부가 말을 걸었다.


"조금만 대기해주 실 수 있으십니까? 짐이 많아서."


"물론이네. 천천히 하게나."


"앗! 내가 도와줘도 될까?"


소녀는 자연스레 내 손을 붙잡았다.


"어, 응. 그래주면 고맙지."


함께 짐을 들고 국립 모험 길드 정문에 섰다.


"누구십니까? 이름과 소속을 말해주십시오."


오, 국립에는 이런 문지기도 있나.


"이름은 저니. 루인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꺼낸 그 이름.
그러나 문지기에는 가벼운 일이 아닌 듯 했다.


"루,루,루인님 말씀... 이,십니까?"


왠지 모르게 그는 떨고 있었다.


"네. 루인. 마검사 클래스의 루인이요."


"으허억"


이상한 소리를 내며 그가 휘청였다.
그러곤 이내 빠르게 옆에 놓인 서류철을 훑어본다.


"시,실례많았습니다! 부디 좋은 하루 보내시길!"


"아... 통행증은요?"


"아,아 죄송합니다! 부디 목숨만은!"


왜 이렇게 호들갑인지. 누가 잡아먹기라도 하나.
통행증을 받아들곤 길드 안으로 향했다.
뒤의 수인 소녀는 신기하게 길드 안을 보았다.


"혹시 저니님이십니까?


한 사내가 내게 말을 걸었다.


"네 맞습니다."
"따라오시죠. 방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를 따라 이상한 기구에 올라타자 자동으로 위로 올라간다.
역시 국립이구나.
...근데 어디까지 올라가지?


띵동


"도착했습니다. 맨 끝에 문이 보이실 겁니다."


결국 길드의 최상층까지 올라서야 기구는 멈췄다.
그의 말대로, 복도의 맨 끝에는 문이 있었다.
아니, 그 긴 복도의 맨 끝에만 문이 있었다.


무언가, 기이하다.


"높다아~ 공기 좋아~"


그거랑 별개로 수인 소녀는 신난듯 했다.
머쓱하게 웃으며 문으로 향하려던 그때였다.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나왔다.


"...여자?"


오랜만에 듣는 익숙한 목소리. 허나 마지막으로 들었을 때보다 더욱 차가운 목소리.
루인. 그녀였다.


"루인! 오랜만이..."


순식간. 그녀는 순식간에 내게 달려와 안겼다.
짐도 다 떨구게 할 정도로 빠르게.


"루인, 잠깐만! 일단 짐부터..."


"이 년, 누구야."


어라. 뭔가 이상하다. 뭔가 잘못되어간다.


"어... 안녕! 나는 저니 친구..."


"닥쳐 암컷. 나는 너에게 묻지 않았어."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이 년, 누구냐고."


수인 소녀는 적잖이 당황해 보인다.
이 상황을 빨리 무마해야 한다.


"친구, 친구! 여기 오면서 마차에서 만났어."


"...친...구...?"


그녀는 얼어붙었다.
싸늘한 것은 단순히 분위기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점점 싸늘해져갔다.


"...친구라니. 친구라니친구라니친구라니친구라니친구라니친구라니친구라니친구라니친구라니친구라니친구라니친구라니친구라니친구라니친구라니친구라니친구라니친구라니친구라니친구라니친구라니친구라니친구라니친구라니!"


이상하다. 그녀가 어딘가 이상하다.


"이래서 그때 데려왔어야 했는데. 다른 암컷년들이 꼬리 못 치게 데려왔어야 했는데!"


그녀는 수인 소녀를 째려봤다.
소녀는 움찔거렸다.


"당장 꺼져. 다시는 얘한테 접근하지마. 한번만 더 접근하면 나비탕으로 만들어 버리겠어."


소녀는 벌벌떨며 짐을 다 내팽게치고 도망쳤다.


"...이제 방해꾼은 없어. 너도 더 이상 방해꾼이 아니야. 진짜 방해꾼들은 전부 해치웠어. 오직 우리 둘 뿐이야. 우리 둘 만의 파티야..."


그녀는 나를 꽉 껴안았다. 조금 작은 체구의 그녀의 힘에 몸이 터지는 듯 했다.
하지만 그 전에.


"루인."


"응? 오래 간만에 만나서 회포라도 풀려는 거야? 나 그런거 좋아. 네 이야기는 몇달이고 몇년이고 들을 수 있어."


"...루인. 도데체 왜 그래?"


그녀는 순박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뭐를?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당연한 거잖아."


"...잠깐, 사랑한다고?"


"그럼. 사랑하고 말고. 네 모든 걸 사랑해. 너의 전부를 사랑해. 너만이 나의 전부야."


이상하다. 기이하다. 기구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무언가 잘못되었다.


...아니 어쩌면, 그녀에게 5년만에 연락이 온 순간부터.
어쩌면 5년 전 헤어지던 순간부터.


"더 이상 놓치지 않을 거야. 다른 년들이 꼬리치게 하지 않을 거야. 내꺼야. 나의 너야❤️"


안 돼. 이건 아니야. 이건 위험해.


나는 그녀를 떨쳐냈다. 그녀는 이상했다.
어딘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어째서? 어째서야? 내가 싫은 거야? 내가 싫어졌어? 내가 뭘 잘못했어? 미안해. 사랑해. 널 정말 좋아해. 그니까 한번만. 한번만 용서해줘. 다시는 실망시키지 않을게. 기분 나쁘게 하지 않을게. 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


그녀를 진정시켜야 한다. 지금 그녀는 제정신이 아니야.


"... 괜찮아. 괜찮을거야. 걱정하지마. 네 곁에 내가 있어."


곧 그녀는 울음을 그쳤다. 그러곤 실실 웃기 시작했다.


"히, 히힛. 그럴 줄 알았어. 너도 나를 좋아해. 너도 나를 사랑해. 너도 나밖에 없지, 그치?"


"으,응. 너밖에 없어."


"다행이다. 다행이야...❤️"


자, 이제 이걸 어떻게 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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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맨날 챈 눈팅만 하다가 부계파서 글 처음 써봅니다. 비루한 글 실력이지만 좋은 감상 하셨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