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붕 선배"


"선배는 운명을 믿어요?"


함께 과제를 하던 얀순이가 말을 걸었다.


"음... 조금?"


"오 진짜요? 왜요?"


"가끔 그럴때 있잖아. 안될 날에는 다 안되고 될 날에는 다 되는 그런 때."


"운명이란건 사실 무거운게 아니라, 일상속에서 무심코 대하게 되는 그런거 아닐까?"


"...헤-에. 그럼 운명의 상대는 믿어요?"


"믿지.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고."


"이미 일상속에서 무심코 대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그렇다면 좀 미안하네."


"...왜요?"


"주변에 있는데도 눈치도 못채주니, 얼마나 둔해."


"헤-에. 그러면 찾아 볼 생각은 없어요?"


"운명이잖아. 일어날 일은 언젠가 반드시 일어나겠지."


"... 그렇게 생각하는 구나."


얀순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배. 저희 술마셔요."


"응? 갑자기?"


"네. 선배랑 마시고 싶어요."





...





"왜 선배는 연애 안해요?"


술을 급하게 들이키더니 또 주제가 달라진다.


"그냥 할 사람 없어서."


"치, 아까는 운명 어쩌고 했으면서."


"그거랑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운명의 상대를 언제 만날 지, 끊임없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할 지 그런 건 모르니까."


"...헤-에. 그렇단 말이죠?"


"그럼 선배, 얀진 선배랑은 안 사귀는 거죠?"


얀진.
같은 기수의 동기이자 과내 최고 인기녀.
물론 그 수식어도 얀순이와 나눠 가졌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 나에게 대시를 해오는 그녀인지라, 오해 할 만도 하다고 생각한다.


"안 사귀어. 나 그런 애 취향 아니야."


"...그럼 뭐가 취향이에요?"


"그냥, 한결 같은 여자. 언제나 내가 사랑할 수 있고, 나를 사랑해 줄 여자."


"...헤-에. 멋있네요. 그런거 낭만 있죠."


"하하, 이러니까 연애를 못하는 걸지도."


"...선배."


"응?"


"저랑 사귀실래요?"





...





"얀붕아. 얀순이한테 고백받았다며?"


버스를 기다리던 와중에 얀진이가 말을 걸었다.


"...누구한테 들었어?"


"아니 뭐, 친구가 얘기해 주던데."


"아무튼, 그래서 왜 찬거야?"


"딱히. 별 이유는 없어. 연애 할 때도 아닌 것 같고."


"그럼 언제쯤 할 수 있는데?"


"적어도 군대는 다녀와야지."


"음, 좀 오래 걸리네."


누가봐도 대시인 상황.
굳이 응대해 줄 생각은 없다.
취향이 아닌 건 사실이니까.







...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군대를 전역한지 벌써 두 달.
방학도 끝나가는지라 복학 준비도 해야했다.


"에휴... 복학 준비는 어떻게 하나."


그때였다.


까똑!


[김얀순: 선배 혹시 복학 준비 중이세요?]


'참 끊질기네 얘도.'


그 때의 고백을 매몰차게 거절한 나인데도, 얀순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복무 기간에도 끊이지 않고 연락을 해왔다.


'혹시 그 때 취향 어쩌구 때문인가.'


[응 혹시 도와줄래?]


[김얀순: 얀챈 도서관에서 만나요]


[김얀순: 가능한 도와드릴게요]







...







"오랜만이네요, 선배."


"오랜만이야. 옛날보다 더 예뻐졌네."


"고백하면 받아 주실 정도로요?"


"그니까 그건 외모 관련된 문제가 아니래도."


그렇게 도서관에서 함께 전공 서적 몇권을 챙기고 있던 때였다.


툭툭


"오랜만이야, 얀붕아."


얀진이었다.






...







"이 조합으로 술을 마시게 될 줄이야."


"저는 선배랑은 마시기 싫었는데요."


"얀순아 그러지 말고."


"그래 얀순아. 나도 너랑 친해지고 싶어."


"전 싫어요. 오빠 좋아하잖아요?"


"응, 그렇지. 그건 그렇고 은근슬쩍 오빠라 부른다?"


"제 맘인데요 뭐."


"아니 진짜 얘들아 그러지 말고..."







...







"...내가, 진짜, 오빠 좋아, 한다고요."


"얀붕아, 나도, 나도 기다렸어..."


둘 다 술은 약해가지고.
하는 수 없이 둘다 내 집으로 데리고 온 상황.


...일단 씻고 생각할까.


덥썩


"얀붕 오빠."


"오빠는 운명을 믿는다 했죠?"


"난 오빠가 운명의 상대라 생각해요."


"아니라해도 그렇게 만들거에요."


"그니까 한번만, 한번만 더 고민해줘요."


"나랑 사귀면 안돼요?"






...






그 날부터 우리는 사귀기 시작했다.


크게 달라진 것 없었다.
데이트 비용이 조금 더 들어갈 뿐.


"좋은 아침, 얀붕아."


골키퍼 있는 골대에도 골은 들어간다 했던가.
얀진의 대시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그만해. 나도 이제는 연애 중이라고."


"알아. 아니까 더 그러지. 후회하라고."


"후... 적당히 해. 저번에 이 꼴 얀순이가 보고서 어떻게 반응했는지 기억 못해?"


"알지. 막 죽여버릴 거라고 대드는 거. 그렇게 질투가 심한 여자랑 왜 사귀어?"


"내가 좋다는 데 문제 있어? 너도 그만하고 딴사람 알아봐."


"너만큼 맘에 든 남자는 없어."


"진짜, 적당히 좀..."


"얀진 선배?"


아. 좆됐다.


"어머, 이게 누구야. 우리 얀붕이 여친 아니야?"


"왜 그 쪽 얀붕이죠? 제꺼라고요."


"어머 이 년 요망한 것 봐. 얘가 누구 소유물이니?"


"제꺼라고요. 제가 제 물건에 소유권 주장하는 데 문제있어요?"


"...얀순아 일단 진정..."


"진정 못해요. 오늘 끝장을 봐야겠어요. 어떻게든 할거에요."


얀순은 밖으로 향하며 말했다.


"각오하세요."






...






그렇게 말한 것 치곤 별 일 없었다.

그냥저냥 평화로운 하루였다.


끼릭.


"오빠 왔어요?"


어라. 얀순이가 왜 여기에.


"진짜, 방해꾼이 너무 귀찮네요. 진짜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그래서 말이에요."


"오빠를 감금하기로 결정했어요"


..?
이건 또 무슨 신박한 미친 소리지?


"얀순아 그게 무슨..."


"잘자요. 나의 얀붕 오빠."


파지지지직


이게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


여담

판타지 세계관으로 하나 더 쓰고 있는데 분량이 너무 길어져서 환기 겸 써봅니다.

뻘글이지만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