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













사람들은 각자의 우상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대상은 단순한 청소부가 될 수도 있고



항상 옆에 계셔주시는 부모님이나 깨달음을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




아니면 누구나 우러러보는 위인 등.




개개인에 따라 흔히 존재하는 이들부터 숭고한 이들까지 다양하다.




"부관, 이 서류 좀 부탁하네."




그리고 지금 내 앞에 계시는 분은


앞 서 말했던 위인들 중 한 분으로서


아마 수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고 확신 할 수 있을 만큼 찬송 받는 존재이자,




"네, 알겠습니다."




한 때의 추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는 동생이었다.







◇◇◇







세인 바르비




현 왕국 근위대의 대장 




모두가 올려다보며 존경 받아 마땅한 고결한 위치.




허나 처음부터 그녀가 이리도 숭고한 존재로 거듭된건 아니었다.




눈 덮힌 길목,




나와 세인은 차디 찬 뒷 골목에서 처음만났다.



뼈가 시린 매서운 날씨에도 


헤진 누더기에 의존하며 추위에 부르르 떠는 신체,


그것이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으니...




사실 세인은 버려진 고아였다.







가족도 집도 금전도


그 무엇하나 가지지 못하며


그나마 가진 것 마저 모두 잃어, 그저 죽도록 내버려진 불쌍한 운명.





어린 나이임에도 영혼을 잃은듯한 생기 없는 눈동자에 나는 손을 내밀었다.



그저 단순한 동정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나도 경비병 일이나하며 근근히 버티고 있던 삶인지라, 갈 곳 없는 그녀에게 해준건 무척이나 소박했다.



그저 꼬질꼬질한 피부를 씻겨주고 


진수성찬이라 할 순 없지만 그래도 나름의 끼니를 떼울수 있는 음식을 제공하며


포근하다 할 순 없어도 겨울을 나기엔 충분한 잠자리에 재우고


가끔씩 침울해 할 때면 오글거리지만 격려가 될 만한 말을 전하는 등.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마땅히 보장해 준 것 뿐 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마치 돌덩이를 거둬내니 사실 눈 부신 보석이 된 것 처럼



세인은 훗날 근위대장이 되어, 정의로 비져진 강한 신념으로 왕국을 평정하고, 모두의 인정과 존경 받는 여기사가 되었다.




그저 흥미로워해서 가르쳐준 것으로 시작했는데, 뜻 밖에도 검의 재능이 뛰어나다는걸 발견한 것이 운명의 순간이었다.






당연히 나와 그녀의 격차는 자연스레 역전되어, 이젠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지게 되었는데.





그런 모습을 보자면 분함이나 질투 보다는 딸을 휼륭히 키워낸 아버지의 기분이었다.




한낮 길거리에서 추위에 떨며 사경을 헤매던 아이는 이리도 휼륭한 위상이 되다니.



뿌듯하면서도 최근에는 아쉬운 생각도 하게 된다.



이젠 그녀를 놓아주어야 된다고




아무리 곁에두고 싶어도 자식의 더 큰 미래를 위해선 언젠가 독립시켜야 되는 것 처럼.



딸 같은 그녀가 내 품을 떠나, 넓디 넓은 세상을 봐라보았으면 했다.







"사직서..?"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아침,



허나 이번엔 묵직한 정적이 내리 앉아 있었다.



"이게 무슨 말이지 부관?"


나는 오늘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유는 개인 사유


사실은 그녀와 서서히 떨어지기 위해 쏘아올린 신호탄이었다.





"보시는 대로 입니다."



"이해 할 수 없네만?"



허나 세인은 이해 할 수 없다는듯 째릿한 눈빛으로 불쾌함을 드러낸다.




"왜 그만두려는 것이지?"


"높은 자리에 올랐으면 그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졌으면 좋겠네."



그녀는 더 이상 볼 필요도 없는 내용이라는 건지 사직서를 뒤집어 놓는다.




"그렇기에 떠나고 싶습니다, 저에겐 아까운 자리니까요."



허나 나는 오히려 당돌한 태도로 내 주장을 밀어 붙힌다.



"제게 이런 자리는 솔직히 제 자신이 생각해도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입니다."


보통이었으면 배가 부른 소리였겠지만은



애초에 이 위치도 그녀 덕분에 얻은 것인지라 미련도 없어서 이리도 당당 할 수 있었다.



"......"



그러자 세인의 표정엔 점차 압박감이 사라지며 그 자리엔 조급함으로 채워져간다.



또한 자신도 이건 예상 못한 태도인지 조금이지만 당혹감도 엿 보인다.




"어쨋든... 난 이 사안을 승낙 할 생각 없으니 철회 하도록."



그러나 다시 표정을 다잡으며 내 퇴역을 덤덤히 거부했지만



"굳이 대장님께 승인을 받지 않더라도 관련 부서에 넘기면 문제 없이 퇴역 절차를 밟을 수 있습니다."





"........."



확고한 마음에 약간 주눅든 것인지 잠시 침묵하였고


"진지하게 묻고 싶군, 그리도 사직을 꿈 꾸는지."



"모두가 갈망하는 위치인데도 손 쉽게 포기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말이다."



이내 무의미하게 같은 질문을 되풀이한다.




"아까 말씀 드렸듯, 제게는 어울리지 않는 자리 입니다."


"한 마디로 직책에 비해 그릇이 작다는 뜻이죠."



"그러니 저보단 다른 사람이 이 자리를 맡는게 현실적으로 좋다는 겁니다."




그래서 대못을 박아넣듯 좀 더 자세하게 서술하며 반박하고



"아니, 내가 보았을 땐 부관 보다 휼륭한 인재는 없어."



"대장님의 안목을 부정하고 싶지 안사오나, 찾아본다면 저보다 대단한 인물은 널렸을 겁니다."



여전히 떳떳하게 퇴직을 주장한다.



"..... 하아.."



그러자 세인은 탄식 같은 한숨을 내쉬더니



"그냥 솔직히 말할게... 내겐 아직 오빠가 필요해."



이제서야 자기 본심을 털어놓으며 옛날의 말투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오빠라니요... 공과 사는 구분해 주시지요."



"아니.. 공과 사가 아니라..."



허나 그럼에도 뻔뻔한 태도에 그녀는 답답하면서도 당혹한 기세를 보였다.



".. 그냥 계속 내 옆에 있어주면 안돼?"



날선 눈매는 사라지고 이내 어렸을적이 생각나는 여리고 연약한 눈빛으로 내게 간절히 부탁하는데.



"이건 근위대장과 그 부관이 아니라.. 옛날 오빠와 나의 입장에서 말하는거야..."




"하아, 대장님..."



슬슬 매듭을 지어야된다는 생각기 천천히 본심을 꺼낸다.



"대장님은 아직도 과거의 사로잡혀 있습니다."


"대장님 눈엔 아직도 제가 뭐든 할 수 있는 만능인 처럼 보이시는 것 같은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흔히 굴러다니는 돌 처럼 널린 존재란 말씀입니다."



"아니.. 아니야..."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퇴직의 정당성을 부여하려 하지만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 주장을 부정한다.


"오빤 확실히 유능한 인재야.. 내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봐왔는걸?"


"내가 어려울 때도.. 괴로울 때도... 삶이 막막한 순간에도..."


"오빠만 곁에 있어준다면 마법 같이 잘 풀리는 기적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그녀는 눈물 마저 흐를 기세로 간절히 외쳐왔지만




"대장님... 그건 다 옛날 이야기 잖습니까."




허나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대답해야 했다.





"대장님은 아직도 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지만은,"



"실상은 제가 없어지는 것이 진정으로 대장님을 위한.. ㅡ"





쾅 ㅡ!





"아니!!"




그러자 그녀는 더 이상 못 들어주겠다는듯 책상을 내리치며 이성 잃은 고함을 질러댄다.



"오빠가 필요한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



"길 바닥에 나앉아 추위에 떨던 예나,


근위대장에 올라 모든걸 누리는 지금이나,


내겐 오빠 밖에 없어..."



마치 달궈진 철이 물을 만나 차게 식혀지는 것 처럼


"어째서 내 마음을 몰라주는거야...?"


급격한 분노는 급격히 사그라들고, 그 빈자린 다시 서글픔으로 대체되어간다.


"제발...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떠나지 말아줘.."




"대장님의 마음은 헤아리오나, 사적인 감정 탓에 욕심을 부리시려는건 좋지 않습니다."



그래도 변치 않는 태도에 




"왜.. 왜... 왜 그런 소리만 하는거야? 대체 뭐가 부족해서?!"


세인은 큰 충격을 받은듯 배신감과 실망감이 섞인 눈을 휘둥그레 뜬다.



"내가 이제 뭐든 해준다는데..."


"부유한 재력과 누구도 함부로 못 대하는 권력, 어떤 상대가 와도 지켜 줄 수 있는 무력까지도... 이젠 내게 있는데."


"그러니 오빠만 고개를 끄덕여준다면 모든게 해결되는건데..."


"그저 맡겨만 준다면 모든걸 누릴 수 있고... 그저 사랑만 준다면 꼭두각시라도 되 줄 수 있는데......"


"정말... 어째서 그러는거야..?"




슬픈 눈시울은 축축히 적셔져갔고


덤덤했던 처음과는 달리, 목소리는 활력을 잃어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바로 그거 때문이야."




자신감이 허물어진 지금이라면 설득 할 수 있을거라 직감한 나는, 결정타를 날리듯 진실을 전하는데.





"세인.. 너는 예나 지금이나 내게 너무 의존하고 있어."


일부로 말까지 놓아가며 진중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독립심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지."


"실제론 나 없이도 충분히 해내면서, 내게 어떻게든 안기려 하잖아."


"필요이상으로 기댈려고 해."





"아.. 아니야... 난 오빠가 진심으로 필요.. ㅡ"





"아니? 잘 생각해, 세인. 내가 영원히 너의 곁에 있을 순 없어.".


"그러니 이젠 혼자 해내야만 해."


"매정해 보여도 널 '아직까지도 딸 처럼 아끼고 있기에' 주는 진지한 충고야."



내가 떠올렸던 모든 문장을 모조리 던지며 제발 이해해주길 바라는데.



".....!!"



그 순간 세인은 마치 알면 안될 진실을 마주한 것 마냥 눈을 부릅뜬다.



"아아... 그래?"



그리곤 마치 감정을 잃어버린 것 마냥 힘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는데...





".... 알았어.."




"그렇게 말한다면... 오빠를 포기할게.."



갑자기 무슨 변덕일까, 대뜸 나의 퇴역을 허락한다.



".... 정말?"



"응.... 어차피 내가 무엇을 말해도 계속 날 떠날려고하니까..."


"계속 붙잡을 자엔 차라리 속 편하게 포기할게."




지금껏 그리도 반발했으면서 이젠 쉽게 마음을 져 주는 모습에 의아함도 들었지만...



"... 미안 세인..."


"하지만 이건 모두 널 위한 거라는 것만 알아줘."



이제라도 현실을 받아들여 준 것에 고마우면서도 방금따지 너무 막대했던게 아닐까 하며 세삼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








◇◇◇





어둑한 밤



달은 하늘의 중앙을 향해 나아가고 무수한 별들이 그 주변을 채우는 아름다운 밤 이었다.







똑똑똑




"누구냐?"



낮과는 다룬 근엄함과 위엄이 섞인 목소리,



"세인, 나야."



"어엇..? 으. 응... 들어와..."




허나 정체를 밝히자 비에 젖은 고양이 마냥 의기소침해진다.




"세인?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이제 퇴역을 앞 둔 어느 깊은 밤에 그녀가 나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였다.




요건은 말해주지 않은체...





"응? 아아~ 그리 대단한건 아니고.... 이제 마지막이니까, 같이 식사라도 하고 싶어서."




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옅은 걱정과는 다르게, 그녀는 하얀 천을 거둬내고 진수성찬을 내게 보여준다.







"... 뭐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솔직히 마음 한 켠엔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세인이 날 붙잡기 위해 초대한게 아닐까 했지만.




상상이상으로 현실을 받아들여줘서 안도감이 몰려왔다.





"저녁은... 이미 먹었을려나?"



"아니, 괜찮아. 너만 괜찮다면 착석할게."



그녀의 반대편에 앉아, 그녀가 따르는 와인을 얌전히 받아든다.



".... 수고했어, 오빠."



애뜻한 광경 속에서도 알게 모르게 흐르는 과묵함은 세삼 씁쓸함을 느끼게 해주었고





"뭔가.. 미안."



괜스레 한번 더 사과의 말을 전하며 그녀를 위로한다.




"아니, 괜찮아..! 솔직히 오빠가 이럴거라는걸 어렴풋이 느꼈으니까."




"그러니 굳이 사과하지 않아도 돼..!"



팅 ㅡ



애써 괜찮은 모습을 보이며 내미는 와인잔을 튕기고 



"꿀걱...."



짙은 색을 띄는 와인을 목 넘어로 삼켜버린다.



"..."




그 순간 




"어차피 내게서 못 떠날 거니까."





평온한 말투와는 어울리지 않는 살벌한 한 마디가 귀에 들려온다.



"ㅁ.. 뭣..?"



허나 ㅡ





털썩!!




"......"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시야가 암전되버린다.









◇◇◇






"읏차..."



그가 쓰러지고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것 마냥 난 다음 행동을 개시한다.



오빠의 몸을 꼭 끌어안고 침대에 고이 눕혀주며




"으음...♡"



옷을 벗기고 자연스레 입술을 탐한다.







"츄으.. 츕♡"







사실 오래 전 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오빠가 나를 멀리하려는 것이.



내가 충분히 성장했으니까.



이젠 자기 따윈 필요 없다고 멋대로 정해버렸다.




하지만 오빠에겐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어.




신 없는 추종자는 그저 영혼 없는 빈 껍데기인 것 처럼



오빠가 없는 난, 그저 밑 바닥 쓰레기보다도 못한 존재야.






그러니 어떻게든 붙잡을 거야.




"하아.. 하아..."



입술을 때자, 뇌가 타들어 갈듯한 짜릿한 전류가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간다.




"키스가 이 정돈데... 섹스는 얼마나 더 기분 좋을까...."


기대감에 침을 꿀떡 삼키면서도


벌써부터 달아오르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옷을 벗어 던진다.






"아으?! ♡"



그저 자신이 술에 취해 뻗은 걸로 착각해 뒤척이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이제 진실은 나 밖에 모를 것이다.




오빠가 눈을 떳을 땐 발가 벗은 자신과 나, 그리고 격한 사랑을 나눈 흔적이 흔건한 이불.


또 필름이 끊겨, 술을 마셨다는 기억 밖에 가지고 있지 않겠지.




자연스레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를거고 그건 도저히 풀 수 없는 족쇄가 될 것이다.




책임감




오빠라면 분명 둘러 말하지 않더라도 내게 묶이겠지만은



만약 반발하더라도 강간으로 꾸민다면 더 이상 도망치지 못 할 것이다.





"하읏, 오빠 ♡"


이게 다 오빠 잘 못이야.



내가 그렇게 원하는데.


오빠가 아니면 안된다고 말하는데.



충분히 먹여 살려준다고 하는대도,


항상 딸 처럼 여겨온 내가 여자로 보이지 않으니까.


끝 까지 부모님 행세를 하며 나를 떠나려고한 오빠 탓이야.







"읏.. 읏.. 으응..! ♡"





난 아직도 기억해.



어렸을적 오빠가 내게 해준 따스한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 중에서도 우울해 할 때면 줄곧 이런 말을 해 주었지.






'너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마, 설령 진짜 그렇게 되더라도 내가 책임지고 행복한 길로 이끌테니까.'




이젠 내 차례야.




오빠가 굳이 편한 삶과 행복한 미래를 내버려두고 애써 불행한 인생으로 가려고 한다면 ㅡ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시 끌어오는 수 밖에.









"하앗?! ♡♡"



"우우... 헤으..♡"




아아... 행복해.



이제 즐거운 고민 밖에 들지 않는다.



신혼집은 어디가 좋을까?



아이는 몇 명 정도 낳고,




이름은 무엇으로 지어줘야 할까?





"후훗 사랑해 오빠♡"



..... 천천히 생각하자.



어차피 이제는 시간이 많으니까.





그저 즐거운 나날들을 꿈 꾸며






"한번 더 할게?"




지금을 음미하자...♡




"아윽..."


"헤에~? 오빠도 무의식 속에서 느끼고 있는거야? ♡"





응응, 분명 행복한 나날들만 펼쳐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