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마녀와 아이들 (3)

 

 

 

 

“이런, 벌써 다 썼나.”

 

일요일 오후, 평소처럼 엘리샤의 집에서 놀던 중에 들린 목소리였다.

 

“뭘 다 썼다고?”


“재료 말이야. 아, 귀찮아…….”

 

“그게 뭐야? 생긴 게 꼭 마네킹 같네.”


크리스가 가리킨 물건은 나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건 사람을 닮은 인형이었는데, 눈코입도 없고 뭔지 모를 재질로 만들어 희한해보였다.

 

“가작(假作)의 마녀 엘리샤 님의 작품이지. 멋지지? 응? 멋지다고 말해 얼른!”


“아니……뭔지도 모르는데 우린.”


“이건 인공소체야. 인위적으로 영혼을 담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내 발명품이지.”


“그럼 사람도 만들 수 있는 거야!?”


“뭐, 그렇지. 하지만 이래저래 제약이 많거든.”


마녀는 썩어도 마녀인가, 맨날 노는 것 같은데 역시 엘리샤도 마녀가 맞나보다.

 

“아무튼 뒷산에서 가금석을 좀 캐와. 최대한 많이.”


“가금석……?”


“금처럼 생겼는데 금보다 훨씬 단단한 돌이야. 물에 넣으면 녹고.”


그런 돌고 있구나. 크리스는 벌써 신이 나서 방방 뛰어다녔다.

 

“모험이다! 모험이다! 모험이다!”


“시끄러워. 난 자리를 떠날 수 없으니까 너희 둘이서 후딱 캐와.”


“알겠어. 가자, 크리스.”

“응!”


우리는 엘리샤네 집을 떠나 뒷산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도 제이크 형을 떠나보내기 전에 여기 왔었다.

 

형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지금쯤이면 수도 왕성에 도착했을지도 모른다.

 

“크리스, 제이크 형은 지금쯤 뭐하고 있을까?”


“……좋은 곳에 있을 거야. 분명.”


“그렇게 말하니까 제이크 형이 죽은 사람 같잖아!”


“미안.”


크리스는 제이크를 유독 잘 따랐다, 씩씩한 척 하지만 내심 상처를 많이 받았겠지…….

 

“오, 있다. 이게 그 가금석이라는 건가.”


산의 중턱 즈음에 도달했을 때, 나는 바닥에 박혀있는 노란 돌을 발견했다.

 

“얼른 캐보자!”


“이렇게 작은 곡괭이로 캘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나는 우리도 쓸 수 있을 만큼 작은 곡괭이로 바닥을 파냈다.

 

가금석은 내 주먹보다 조금 더 컸고, 엘리샤 말대로 황금이랑 똑같이 생겼다.

 

물론 나야 진짜 황금을 본 적이 없으니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핥아볼까?”


크리스가 혀를 내밀어 돌을 핥자, 정말 끝에 흐물흐물하게 녹았다.

 

“신기하네, 이런 돌이 있다니.”


“근데 엘리샤 누나는 인형을 만들어서 어디다 쓰려고 하는 걸까?”


“……설마 남자친구를 만드는 건가?”


미인이긴 하지만 마녀고, 나이도 많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애인을 자기 손으로 만들지는 않겠지……?

 

“아무튼 더 캐보자! 잔뜩 캐서 칭찬받는 거야!”


“그러자.”


우리는 근처를 돌아다니며 보이는 대로 가금석을 캤다.

 

“있지, 오빠야.”


“왜.”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간다고 생각해?”


이 바보한테 그런 걸 고민할 정도의 지능이 남아있던 건가…….

 

왠지 찡해졌다. 그런가, 이 멍텅구리도 성장하는 구나.

 

“뭐, 천국이나 지옥 아닐까? 성당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잖아.”


“그럼 엄마도 지옥에 갈까?”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곡괭이를 바닥에 던졌다.

 

“너 다신 그런 소리하지 마! 알겠어? 엄마는 절대 지옥에 갈 사람이 아냐!”


“으응, 미안.”


이 녀석이 오늘따라 왜 이런담. 우린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묵묵히 돌을 더 캤다.

 

한참이나 일하다보니 허리가 아팠다. 허리를 펴고 하늘을 보니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크리스, 슬슬 돌아가자. 해가 지면 여기 괴물이-”


눈이 마주쳤다.

 

붉은 눈동자, 삐죽삐죽하게 솟은 털,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흐르는 침.

 

순간 몸이 굳었다. 놈이 크리스 앞에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오, 오, 오빠…….”


“가만히 있어.”


겁에 질릴 새도 없이,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나는 크리스에게 달려들어 팔을 붙잡은 후- 있는 힘껏 달렸다.

 

“도망쳐!!”


“크르아아아아!”


우린 무작정 달렸다. 커다란 늑대를 닮은 괴물이 우리 뒤를 바짝 쫓아왔다.

 

어쩌지? 어떻게 하지? 뭘 해야 하지? 도망쳐, 도망쳐야 돼!


“꺅!”


크리스가 발을 헛디뎌 언덕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거기로 뛰어내려 떨어지는 크리스를 붙잡았다.

 

“다친 곳은 없어!?”


“없- 오빠, 뒤!”


괴물이 내게 덤벼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팔을 들었고, 놈이 물어뜯었다.

 

“아아아악!”


“크르르르륵!”


아파! 날카로운 이빨이 살과 근육을 파고드는 게 느껴졌다.

 

“오빠! 오빠!”


“얼른 거기 들어가! 빨리!”


등 뒤로 나무 밑구멍이 보였다. 크리스가 허겁지겁 그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이 새끼! 떨어져! 떨어지라고! 아아악!”


내가 발로 몇 번 걷어차자 놈이 뒤로 물러섰다.

 

팔이 너덜너덜해졌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다리엔 힘이 안 들어간다.

 

이길 수 없다. 도망칠 수도 없고, 뾰족한 수도 없다.

 

“크르르르르르…….”


“허억, 허억, 허억……!”

 

다음엔 목이다. 개과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목을 노린다고 마렌드가 가르쳐 준 적 있었다.

 

그 다음엔 어떻게 되는 거지?

 

천국과 지옥. 그런 게 정말 있는지 어떤지는 나도 모른다.

 

“엄마…….”


미안해, 엄마.

 

미안해, 형. 얘들아.

 

나 여기서 죽나 봐.

 

“오빠!!”


그 순간, 크리스의 외침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내가 죽으면, 그 뒤엔 크리스다. 천국이니 지옥 걱정을 할 때가 아니었다.

 

‘이제부턴 네가 맏형이야. 그러니까 동생들을 지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야 돼.’

 

형이 말했다. 그 말대로, 나는 동생을- 크리스를 지켜야한다.

 

“크르라아아아!”


“우아아아아아악!”

 

나는 짱돌을 들고 괴물에게 덤벼들었다. 

 

내가 먼저 놈의 머리를 때렸지만, 힘이 약한 탓에 잠깐 비틀거리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크르르륵!”


죽는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다친 곳은 없니, 에단?”


“엄마?”


어떻게 엄마가 여기 있는 거지?


아니, 그보다도- 피가 흘렀다. 괴물이 엄마의 어깨를 물어뜯고 있었다.

 

“어, 엄마……엄마!”


“괜찮아. 이 정도론 엄마는 조금도 아프지 않아.”


엄마가 내 팔을 잡고 상처를 살펴보았다.

 

“많이 다쳤구나. 얼른 집에 가서 치료하자.”


“그보다도 엄마가……!”

 

“별 거 아냐. 봐, 엄마는 아프지도 않아.”


피가 이렇게 흐르는데도 아프지 않다니, 말도 안 돼.

 

하지만 그 말대로, 엄만 주름 하나 구기지 않고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 전에 이 짐승부터 해치우자.”


엄마가 등 뒤에 매달린 괴물을 붙잡더니, 그대로 휙 내던졌다.

 

“크르륵!?”


“에단이 다쳤어. 내 아이를 다치게 한 대가는 목숨으로 갚아줘야겠구나.”


괴물이 자세를 고쳤다. 그리고 다시 달려들었다.

 

“엄마!”


“제 1의 마법, 러블리 봄.”

 

괴물이 공중에서 멈췄다. 그리고 폭발했다.

 

엄마의 손이 닿기도 전에 그 몸이 빛나더니 산산조각 난 것이다.

 

“엄마는 너희의 사랑이 있으면 무적이야.”


이게 엄마의 마법……그 무시무시한 괴물이 눈 깜빡할 새에 죽었다.

 

놀란 것보다도 무서웠다. 그리고 그 두려움 이상으로, 고마웠다.

 

“이제 돌아가자. 엄마가 저녁 맛있게 해놨어.”


“으, 응…….”


엄마는 마녀다.

 

그걸 이런 식으로 자각하게 될 줄은 몰랐다.

 

 

 

 

 

 

 

 

*****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벌써 밤이었다.

 

크리스는 엄마 등 뒤에 매달린 채 잠들어버렸다. 하여간, 태평한 녀석 같으니.

 

“일단 상처부터 소독하자. 피는 멎었니?”

“응.”


엄마는 나를 데리고 침실로 갔다. 

 

그리고 소독약을 꺼내 능숙하게 내 팔의 상처를 닦아주었다.

 

“아윽, 으윽…….”

“이건 흉터가 남겠네. 하지만 자랑스러워해도 돼.”

“왜?”

“동생을 지키려다가 생긴 흉터잖니. 이건 네가 겁쟁이가 아니란 증거야.”


엄마가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저기, 엄마…….”


“왜 부르니?”


“엄마가 쓴 마법, 그게 대체 뭐야?”


“엄마는 사랑의 마녀란다. 즉, 사랑의 힘으로 마법을 쓸 수 있단 거야.”


그래서 사랑의 마녀인가……좀 우스운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틀린 모양이다.

 

“인지한 범위, 정확히 3M 안에 있는 모든 걸 폭파시킬 수 있는 마법. 그게 러블리 봄이야.”

 

“그거 말고도 쓸 수 있는 마법이 있어?”


“있지. 하지만 보여주진 않을 거야.”


“왜?”


“……엄마는 마법을 쓰고 싶지 않거든. 자, 끝났어.”


어라, 어느새 엄마가 바늘로 내 상처를 깔끔하게 꿰매주었다.

 

“부럽다. 크리스도 마법을 배우는데, 나는 못 배우잖아…….”


“마법을 배우고 싶었어?”


“그게 아니더라도 뭐든 할 수 있으면 좋겠어. 나, 약하고……겁쟁이니까.”


그 때, 엄마가 나를 껴안았다.

 

부드럽고 폭신폭신했다. 따스해서 잠이 올 것만 같았다.

 

“너는 겁쟁이가 아냐. 동생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낸 사람이 겁쟁이일 리 없잖니.”


“하지만…….”


“분명 너의 재능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만약 찾게 되면, 엄마한테 꼭 알려줘야 돼?”

“응, 알려줄게.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면…….”

 

눈물이 나왔다. 그제야 안심이 됐다. 

 

“그, 그래도……이건, 어쩔 수 없어…….”


“이젠 괜찮아. 아무것도 무서워 할 필요 없어. 엄마가 지켜줄 테니까.”


강해지겠다.

 

언젠간, 내가 엄마를 지켜줄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고 싶었다.

 

 

 

 

 

 

 

 

*****

 

 

 

 

 

 

 

 

“으음, 화장실…….”


나는 자다가 깼다. 아직 여명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새벽이었다.

 

“어라.”


창고 문이 열려있어……? 평소엔 엄마가 잠가두는 곳인데, 왜 열려있을까.

 

나는 무의시적으로 창고 쪽으로 갔다. 안은 어두워서 잘 안 보였다.

 

“이게 다 뭘까……장난감이랑, 나무칼……엄청 많네.”


다른 애들 주려고 사둔 장난감 같은 건가? 잘은 몰라도 애들 물건이 잔뜩 있었다.

 

“응?”


그 중에, 문득 내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반지였다. 나무로 만든 반지.

 

……내가 제이크 형한테 선물로 준 반지.

 

“이게 왜……여기 있는 거야?”


아니, 그럴 리 없다. 형은 여길 떠났고, 이건 분명 다른 반지일 것이다.

 

“그럴 리 없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반지를 챙겨 주머니에 숨겨놓았다.

 

그래.

 

분명 그럴 리 없었다.

 

 

 

 

 

 

 

 

 

 

 

읽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쓴다

내 계획대로만 쓰면 농부 기사 그 이상의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 이거야

물론 그렇더라도 읽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