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용사님.

편지를 쓰는 건 꽤나 오래간만이네요.

그간 평안하셨을까요? 부디 그러셨길 바라요.


마지막으로 편지를 썼던 게 언제였던지.

몇 달 전이었던가요, 아니면 몇 년 전이었던가요.

혹여 몇 십년 전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요새는 통 기억이 정확하질 않아서.


그래도 오래간만에 편지를 쓰는 건 확실한 것 같아요.

손에 닿는 편지지의 감촉이 꽤나 낯설게 느껴지거든요.

이 바스락거리는 종이의 감촉이란.

한때는 정말 저주라도 걸린 것 처럼 매일같이 느끼던 감촉이었는데 말이에요.


아, 혹시 그동안 많이 외로우셨을까요?

매일 편지를 수십 통씩 쓰던 제가, 어느 순간 갑자기 편지를 뚝 끊어 버렸잖아요.


왜 이렇게 편지를 안 써줄까. 무슨 일이 있는걸까. 나를 잊은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제 편지를 기다리진 않으셨나요?


만약 그렇게 기다려 주셨다면 조금 기분이 좋아질 것 같네요.

안절부절하며 저를 기다리는 용사님의 모습이라니, 상상만 해도 너무나 귀엽게 느껴지는걸요.


너무하다고 생각하시나요?

후후, 죄송해요. 사과드릴게요. 그동안 편지를 보내지 못한 것까지 전부요.


그래도 부디 오해하지 말아 주셨으면 해요.

그동안 편지를 보내지 못했던 건 절대 용사님을 잊어서가 아니랍니다.

조금 바쁘게 지낸 탓에 편지를 보낼 여유가 나질 않았기 때문이에요.


대체 무얼 하느라 그리 바삐 보냈냐구요?

안 그래도 오늘은 그 이야기를 위해 펜을 잡았답니다.

간만에 쓰는 편지인 만큼, 그간 쌓아온 모든 그리움과 이야기를 천천히 토해내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그간 있었던 모든 일을 최대한 간략히 전하도록 노력할테니 부디 양해해 주세요.


그럼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요.

…역시, 그 날부터가 좋겠죠.


그 날.

용사님께서 이물들의 신을 물리치신 날.

한없이 빛이 되어 사라지신 날.

제게는 작은 미소만을 남겨주신 채 산산이 흩어져 버리신, 잊을 수 없는 날.


그 날부터 제 세상엔 빛이 사라졌습니다.


그 어떤 맛있는 음식에도.

그 어떤 아름다운 풍경에도.

귓가를 간지럽히는 고급스런 악기의 선율에도.

몸을 감싸는 부드러운 벨벳의 감촉에도.

함께 사지를 헤쳐나갔던 동료들의 위로와, 구해낸 이들의 감사함이 담긴 인사에도.


저는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직 끝없는 공허함만이, 바닥이 없는 지옥으로 한없이 떨어져가는 하강감만이 저의 몸을 감쌌습니다.

그 어떤 빛도 들지 않는 무저갱에서 저는 홀로 울부짖었습니다.

고통을 짓씹어 삼키고 피로 당신을 그리며.


용사님이 없는 세상에서 저는 그렇게 무너졌습니다.

참으로 우습게도, 잃고 나서야 깨달은 겁니다.


성녀라는 직함을 달게 되었지만, 저의 태양은 신이 아니라 당신이었단 것을.


편지 쓰기에 미친듯이 매달린 것 역시 그래서였습니다.

제가 쓰는 편지들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계시는 용사님께 전해질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일 때면, 이 아득한 무저갱 속에서도 작은 불티들이 피어나는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과거에 모든 것을 두고 온 자들이 흔히 그러하듯 편지를 쓰며 저는 하염없이 기억을 되새겼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순간의 풍경과 그 가운데서 빛나던 당신의 모습을.

추운 길 위에서 함께 지새우던 밤, 은은히 내리는 별빛을 보며 나눴던 이야기들을.

새로운 동료들이 들어온 뒤 그들과 함께 즐거이 먹고 마시던 순간을.

구할 수 있었던 이들과 구하지 못했던 이들을. 서로의 슬픔을 서로가 위로해주던 시간을.


우리가 함께한 모든 순간을.


그렇게 몇 개의 방을 편지로 가득 채우고, 수많은 시간을 잉크와 함께 흘려 보내며.

손가락 마디 사이마다 가느다란 굳은살이 촘촘히 박히게 된 후의 어느 날.


평소와 같이 책상에 앉아 편지를 쓰던 제게, 문득 기묘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용사님이 제 옆에 계신 듯한 느낌이 계속해서 들기 시작한 거에요.


비유가 아니랍니다.

이제는 먼 과거가 된, 제가 처음으로 신을 느꼈던 순간과도 같이.

이번에는 신이 아니라 용사님이 저를 감싸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항상 저와 함께하며.


물론 말도 안되는 일이었지요.

용사님은 이물들의 신을 막기 위해 모든 걸 불태우신 끝에 영혼까지 산산히 흩어지게 되셨는걸요.

분명 제 눈으로 그리 보았고, 제가 기도했던 신 역시 그리 대답했습니다.


용사님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다고.


그렇기에 당시의 저는 차오르는 기쁨을 느끼면서도 현실을 냉정히 파악하고자 애썼습니다.

제가 결국 미쳐버리게 된 건지.

아니면 혹시 모를 어떤 기적이라도 일어나게 된 건지.


수 많은 책과 비밀들을 탐닉하고, 온갖 곳에서 다양한 지식들을 접하며 금지된 영역에까지 손을 뻗었습니다.

당연히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날이 드물었고, 돌이킬 수 없는 일도 여러 번 저질렀지요.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후회도 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만큼 절박했으니까요.

만약 어떤 기적이 제게 찾아온 것이라면, 두 번 다시 당신을 놓치고 싶진 않았습니다.

네. 무슨 짓을 저지르더라도.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요? 그냥 착각이었냐고요?

글쎄요. 어떨까요?


용사님.

언젠가 용사님이 신에 대해 여쭤보신 적이 있었죠.


신이란 정확히 무엇이냐고. 

무엇이 그들을 신으로서 존재하게 하냐고.


참으로 불경스럽기 짝이 없는 질문에, 당시의 저는 당황스레 웃어넘겼던 기억이 납니다.

교단의 세가 닿지 않는 외진 마을에서 자라난 용사님이었기에 가능한 질문이었겠지요.


가벼운 흥미로 던지신 질문이셨는지 구태여 답을 캐묻진 않으셨지만, 저는 계속해서 그 질문을 가슴에 품고 지내왔습니다.

어째서일까요. 배워왔던 대로, 신은 그저 자존하는 위대한 자들이라고 말하면 되었을 텐데.


용사님께는 항상 정확한 답만 말씀드리고 싶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당시의 저도 이미 무언가 찜찜함을 느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저는 당신께 정확한 답을 들려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용사님.

이 세상에 자존하는 신 따위는 없습니다.


지금 우리 세상을 지배하는 여섯 종족의 주신들도, 용사님께 토벌당한 이물들의 신도 그렇습니다.

모두 신도들의 염원을 그릇으로 삼아 모인 영혼에 불과합니다.


그렇기에 저희가 이물들의 신을 토벌할 때 먼저 대부분의 이물들을 없애야만 했던 것이죠.

염원을 올릴 신도들이 없는 신은 신기루에 불과할 뿐이니까요.


그리고 이를 반대로 말하면, 강한 염원을 지닌 신도는 신을 만들어낼 수도 있단 뜻이 될 겁니다.


…맞습니다.

저와 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당신을 신으로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당신에 대한 그리움을 염원으로 삼아, 산산히 흩어진 당신의 영혼을 모아서.


제가 써왔던 편지는 당신께 바치는 성경이었고 저는 당신의 유일한 신도였습니다.

저를 포근히 감싸던 느낌의 정체는 흩어진 당신의 영혼이 염원을 따라 제게 모여든 것이었지요.


이러한 사실들을 알고 제가 기뻐했냐고 물으신다면, 네. 물론입니다.

당연히 그러했습니다. 


용사님과 다시 만날 가능성이 생긴 셈이니까요.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을까요. 


…기운이 진해지고 있네요.

슬슬 편지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나 봅니다.


용사님.

저는 이 모든 사실들을 이미 한참 전에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지금에 와서야 용사님께 편지를 쓰는 것은, 약간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이물들의 신을 왜 토벌했는지, 기억하시나요.


네. 그렇습니다.

그것이 세상의 변화를 야기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새로운 신은 새로운 규칙을 가져옵니다.

인간들의 신이 세상에 문자를 가져왔고, 용들의 신이 세상에 마법을 가져왔듯이.

본래부터 다른 생물들과 공존하지 않았던 이물들의 신은 세상에 치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터였고, 다른 신과 종족들은 그걸 원치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용사님은 새로운 신이 되고 계셨습니다.

제 추측으론 마지막 한장의 편지-성경-만 더해진다면, 완전한 신으로서 깨어나게 될 정도로요.


하지만 용사님이 이리 쉽게 신성을 얻으신 건, 분명 저의 탓만은 아니었습니다.

추측컨대 이물들의 신성에 영혼이 영향을 받으셨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상태의 영혼이 단 한 명의 신도를 위한 신으로서 탄생한다면, 세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요.

저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지켜낸 이들.

우리가 사랑한 이들.


우리가 함께한 모든 이들을 우리가 파멸로 이끌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분명, 용사님은 그리 하길 원치 않으실 겁니다.


그렇기에 참았습니다.

편지를 쓰려던 펜을 내려놓고 쌓여있던 편지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치워 버렸습니다.


밖으로 나섰습니다.

우리가 지켜낸 곳들을 돌아보며 스스로를 다잡았습니다.


이물의 군세에 억눌려 죽어가던 마을은 번듯한 도시가 되어 있었고.

당신이 겨우 구해냈던 어린 아이는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노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붉고 검은 피가 강처럼 흘렀던 언덕은 어느새 정돈된 묘지가 되어, 노란 꽃잎들이 그 위를 파도처럼 흐르고 있었습니다.

제국 수도에 세워진 당신의 동상 앞엔, 당신처럼 되겠다며 뛰어다니는 어린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당신의 희생 위에 세워진 보물들이었습니다.

영원히 지켜져야만 할 풍경이었습니다.

그리 생각하며 견뎌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누구와 어울리든 간에.


저는 당신을 지워낼 수 없었습니다.


태양이 없다면 황금에 무슨 가치가 있을까요.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선 그 무엇도 가치를 가질 수 없습니다.

당신 없는 제 삶 또한 그러합니다.


용사님.

아니, 저의 신님.


이 편지가 끝나면 저는 당신과 다시금 만나게 되겠지요.

깨어난 당신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저는 차마 짐작조차 가지 않습니다.


저를 증오하게 될까요.

저를 거부하게 될까요.

그것도 아니면, 저를 잊어버리게 될까요.


두렵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 종이를 찢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당신을 원합니다.

당신이 없는 세상에서 저는 결국 아무런 가치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신님, 부디 돌아와 주세요.


모든 것을 망치고 망가뜨려서 당신을 돌려놓은 저에게.

만인의 삶을 무너트려 스스로의 욕망을 달랜 저에게.


그렇지만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는 저에게.

돌아와 주세요.

벌해 주세요.


당신을 다시 볼 수만 있다면 그 손에 영원히 불타도 좋습니다.

당신 없는 세상에서 홀로 침잠하는 것보다, 당신의 눈을 마주하며 불타 사라지는 것이 훨씬 가치있을 터이니.


모든 것이 무너지더라도.


***


착한 사람이 사랑 때문에 나쁜 짓을 하는 걸 아주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