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로 내려간 무영은 최대한 사람과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며 걸었다. 쏘아지는 시선과 시선에 담긴 경멸이 그대로 눈에 들어올까봐. 품 안에 작업한 옷을 끌어안고 걷는 무영의 머리에, 동네 꼬맹이가 던진 돌맹이가 날아와 부딫쳤다. 

 

"괴물이다!"

 

"해골이 걸어다닌다!"

 

마을에 내려올 때마다 한 번씩 겪는 일이었다. 돌맹이가 부딪힌 자리에서 피가 나는지, 이마 쪽에서 무언가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아이들을 바라보자 애들이 소리를 지르며 도망쳤다. 

 

"괴물새끼가 날 봤어! 나도 귀신들릴거야!"

 

"도망쳐라!"

 

목 끝까지 차오른 무언가를 애써 억누르고서 그는 서씨 포목점에 도착했다.

 

"....왔냐?"

 

서씨 포목점 주인이자, 제 아비의 친구인 서국창이 보였다. 마을에서 무시당하는 무영에게 그나마 말을 걸어 주는 게 서씨 가족이기에, 무영은 말없이 제가 만든 옷을 그에게 내밀었다. 서국창의 시선이 무영의 머리에 향했다. 그는 혀를 차며 가게에 있던 허름한 천으로 무영의 머리를 싸매줬다.

 

"오는 손님 다 쫒을 셈이냐? 재수없게 시리."

 

무영은 말없이 고개를 숙여보였다.

 

"... 아저씨가 한 제안은 생각해 봤어? 포목점에서 일하면 달에 지금 일해서 받는 것보다 두배를 쳐주마. 혼자 살지 말고 마을로 내려오라는 거다. 그러다 호랑이나 짐승놈들이 헤쳐도 아무도 모르게 죽는거야."

 

"...아뇨. 혼자가 좋아요."

 

"넌 왜... 후우.."

 

서씨의 딱하다는 동정어린 시선이 무영에게 맞닿았다. 무영은 입술을 잠시 깨물다 말했다. 

 

"그냥, 저번처럼 주세요."

 

"저번보다 좀 더 넣었다. 우리랑 같이 살면 정가에 쳐준다고 하지 않았냐. 아직도 미란이가 생각나냐?"

 

무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씨가 탁자에 올려놓은 주머니만 챙겨서 천천히 걸어 나갔다. 

 

"나는 너만 좋으면 너와 무화를 엮어주는 것도.."

"가보겠습니다."

 

그의 말을 끊고서 무영은 그저 적당히 고개를 주억거리고 마을로 나왔다. 서둘러 장을 보고 다시 산으로 올라가야 했다. 산의 해는 짧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저번처럼 또 어두컴컴한 길을 걸어가야 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마을 장터의 사람들은 무영이 장터로 들어오자 얼굴을 찡그렸다. 부정 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역병신이라느니, 귀신들렸다느니, 그것도 아니면 제 부모 잡아먹은 놈이라느니. 

 

무영은 적당히 그들이 자신을 상대로 가격을 올려 받아도 말없이 돈을 지불했다. 무영이 떠나자 가게 입구에 물을 뿌려 씻어내기 바빴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그래도 근처의 높으신 분들이 무영이 만든 옷을 사가는 덕분에 생을 이어가니 그걸로 다행이라고 할수 있을까. 

 

"... 차라리 그 때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마을에서 산으로 향하는 길의 입구에서 무영은 조용히 마을을 돌아보았다. 제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낸 곳이건만 마을은 한없이 차갑기만 했다. 

 

"그러면, 지금이라도 죽는게 어때?"

 

무영이 중얼거리자, 바로 무영의 귓가에 누군가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란 무영이 돌아보기도 전에 강한 손아귀가 무영의 얼굴을 억누르고 길에서 무영을 끌어내고 있었다. 

 

온통 붉은 색 일색으로 차려입은 남자가 무영의 앞에 있었다. 남자는 붉고 괴이할 정도로 긴 혀를 뺴내 제 입술을 핥았다. 그러고는 무영이 얼굴을 가린 천을 뜯어내고서 무영의 눈을 바라봤다.

 

"어차피, 딱 봐도 살아봤자 좋을 게 없어 보이는데. 나에게 눈을 넘겨주면, 내가 마을 놈들을 전부 죽여주마. 어때? 네 스스로 눈을 뽑아내서 내게 건네기만 하면, 그러면 모든게 해결되는거라니까?"

 

남자는 무영의 얼굴을 강한 손아귀로 억누른 채로 무영에게 말했다. 입가에서 침이 뚝뚝 흘러 바닥에 떨어지는 광경을 보며 무영은 혐오감과 무서움에 시달렸다.

 

기이하게 벌어진 입가에서 침이 뚝뚝 떨어지고 식욕과 흥미로 일그러진 얼굴이 무영의 눈에 들어왔다. 

 

"잡아먹히는 대신, 약속을 들어준다 그 말이야."

 

남자의 그 말이 튀어나오고 나서야, 무영의 머리에 강호에 떠도는 소문이 떠올랐다. 잡아먹는 대신 소원을 들어주는 괴해성의 마인, 홍마.

 

"이런 건 흔히 오지 않아. 난 지금 기분이 엄청 좋거든, 귀안을 잡아먹는 건 처음이라서 무슨맛이 날지 정말 궁금해..."

 

남자, 홍마가 낄낄대며 무영을 바라보았다. 무영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홍마의 눈가가 움찔대더니 무영으로부터 손을 놓고 재빠르게 물러났다.

 

콰직

 

방금 전까지 홍마가 서있던 자리에 부적이 내리 꽂히며 한순간에 바닥을 불태웠다. 무영은 다리에서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누구냐!"

 

홍마가 얼굴을 한껏 일그러트린 채 소리치자, 무영의 뒤에서 또각 거리는 발소리가 났다. 최근 노서아 쪽에서 들여온 신발 소리 라는게 뒤늦게 떠올랐다. 백화궁의 시녀나 여인들 사이에서 이 신발에 어울리는 복식을 만들어달라고 의뢰를 받았던 적이 있기에 잘 알고 있었다.

 

"간도 크셔라. 백화궁에 엎어지면 코앞인 곳에서 양민들을 손대려고?" 

 

어제 봤었던 백화궁 쪽 높은 사람이었다. 잿빛의 옷을 걸친 여자가 한손엔 부채를, 한손엔 부적을 들고 서있었다. 

 

"이 하찮은 부적쟁이가..!"

 

"양민이나 잡아먹는 식인귀 주제에."

 

둘이 순식간에 움직이며 두어먼 붉은 그림자와 잿빛그림자가 교차했다. 무공을 모르는 무영의 입장에선 좌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꼴로 밖에 안보였다. 몇 번의 교차 후 둘이 다시 떨어지자, 무영은 그제야 홍마의 손에서 흐르는 붉은 피를 볼 수 있었다.

 

"네년, 잡술을 익혔구나?"

 

"도를 쫒는 도사의 술법이 잡술로 정의될 것은 아니지."

 

홍마가 등 뒤의 검을 뽑으려다 움찔 거렸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검은 무복을 입고 손에 붉은 밧줄을 든 자들이 천천히 수풀을 헤치며 모습을 드러내자 붉은 옷의 남자가 혀를 찼다.

 

"여기선 내가 좀 불리한데..."

 

홍마의 눈이 한 순간 무영을 훝었다.

 

"아쉽지만.. 정말로 아쉽지만... 지금은 내가 불리하네?"

 

"그럼 투항하지 그래?"

 

"글세, 도사 계집년 고기맛이 궁금하긴 해도 여기서 발목 잡혔다간 뒤끝이 안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상청의 도사 여령화님이 고작 발목을 잡진 않을 것 같은데?"

 

상청의 이름이 언급되자 홍마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기로 향하던 손이 한순간 무기 옆의 표주박으로 향하더니 그가 그것을 바닥에 내리쳤다. 사이한 보라색 연기가 나며 매캐하게 바닥이 타들어가자, 여도사, 아니 여령화가 부채를 휘둘러 연기를 쫒아 보냈으나 이미 홍마는 모습을 감춘 뒤였다. 

 

"하아.. 놓쳤네."

 

여령화가 혀를 차더니 무영을 돌아봤다. 

 

"홍마가 붉은 것에 집착을 한다 해서 기대를 걸어봤는데... 그래도 제 목숨을 걸 정도로 미치진 않았나보네."

 

부채를 접어든 그녀가 무영을 바라보더니 잠시 팔짱을 꼈다. 

 

"그럼 목숨을 구해준 값을 셈해볼까?"

 

무림인들이 보수를 요구하는 일은 흔한 일이었던 지라 무영은 품안에 들어있던 주머니를 꺼냈다. 적어도 철전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었지만, 그게 전 재산이라 어쩔 수 없었다.

 

"저는 이것 밖..에는.."

 

공포로 잠긴 목에서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떨리는 손으로 여령화에게 주머니를 내밀었다. 

 

"아니, 너 옷을 그렇게 잘 만든다면서?"

 

"예?"

 

"옷감 대줄테니까. 나한테도 옷 하나 만들어주라. 그걸로 목숨 값 퉁치자고. 옷이라고는 서역 옷만 입는 계집애가 네 옷은 입으니까 말야."

 

"저.. 정말 그걸로 됩니까?"

 

"그럼 돈도 받을까?"

 

"아.. 아뇨.. "

 

무영은 황급히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를 표했다. 여령화는 피식 웃더니 무영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자신의 부하 둘정도를 무영에게 붙여주었다. 

 

"홍마란 놈이 근처에 있을지 모르니까 이 녀석들하고 당분간 마을에 묶도록 해. 서씨 포목점인가? 거기서 일한다지? 며칠 묶는 정도는 될 거 아냐?"

 

무영은 내심 난처했으나 거부할 수도 없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돌아가서 따뜻한 물로 멱이나 감아야겠다아.."

 

여령화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백화궁으로 향했고 무영은 머뭇거리며 마을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