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때 안면을 터서 친하게 지내다가 고등학교 졸업 때 고백해서 2년 동안 사귀던 커플 얀붕이와 얀순이.


어렸을 때 사고로 얀붕이가 검지 끝이 잘린 탓에 굳건이조차 쉽게 데려갈 수 없어 이 커플은 누가 봐도 무난하게 오래 갈 것 같았지.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오늘까지였어. 바로 얀붕이가 오늘 얀순이에게 이별 통보를 할 생각이었으니까.


사귀기 전에는 재밌는 성격, 예쁜 얼굴에 가려져서 몰랐던 소유욕에서 오는 심각한 집착, 칼로 자해를 하는 걸 서슴치 않는 과격함 등을 버틸 수 없던 얀붕이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오히려 2년이나 얀순이 같은 정신이상자와 함께 하면서 이를 낫게 하려고 노력한 본인이 대견하게 느껴질 정도였지.


그렇게 얀붕이는 카톡에 장문으로 된 이별 통보를 보내고선, 얀순이 몰래 타 지방으로 이사를 가.


몰래 가는 이사이기 때문에 가구를 챙길 수 없어. 그래서 집주인한테 가구 처리에 따른 추가 비용까지 지불해야만 했지.


하지만, 텅텅 빈 지갑을 보는 얀붕이의 마음은 너무나도 상쾌했어.


온몸에 족쇄를 단 것 같은, 얀순이의 집착에서 해방되었다. 돈이 얼마나 나가던 당장 굶어 죽지만 않을 정도면 상관 없었지.


그렇게 두 달이 지났어.


고졸이기에 받아주는 직장이 없어 박스를 접는 공장 알바를 뛰며, 하루 먹고 살기를 반복하던 얀붕이.


일이 힘든 건 아니었지만, 술이 땡겼기에 캔 맥주 2개를 까면서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한 영상을 보던 와중이었지.


쿵쿵!


갑자기 누군가가 두들기는 문. 저녁에 남정네 하나 사는 방에 누가 찾아왔다는 사실이 이상했던 얀붕이는 순간 식겁했지만, 이내 들려오는 소리에 경계심을 풀었지.


"&$&@!#"


뭔 말인지 못 알아들을 외국어. 옆집에 사는 딱 봐도 불법체류자처럼 생긴 외국인 커플에게서 자주 들어본 말투.


목소리가 저번에 들은 것에 비해 조금 가늘은 게 거슬렸지만, 계속해서 두드리며 이상한 외국어를 말하는 게 더 거슬렸던 얀붕이는 문을 열고 한 마디를 하려 했지.


"아니, 그만 좀 두드..."


파지직!




얀붕이는 눈을 떴어.


몽롱한 정신을 조금씩 가다듬던 와중 얀붕이는 마지막 기억, 살이 타들어가는 끔찍한 고통을 기억하고선 몸을 떨었다가, 자신의 몸이 바닥에 고정된 의자에 묶여 있다는걸 깨닫지.


"이런 씹... 아무도 없어요! 살려주세요! 여기 사람이 갇혀있다고요!!"


손가락만큼의 굵기의 밧줄이 저항한다고 풀릴 일은 없겠지만, 일단 온힘을 다해 몸을 뒤흔들며 계속해서 구조 요청을 하는 얀붕이.


그렇게 격하게 힘을 쓰며 저항하는 탓에 생긴 땀이 흘러내려 입에 닿아 너무 소리쳐서 쉰 목구멍에 넘어갈 때가 되자 눈앞에 문이 열렸어.


"얀붕이 일어났어?"


그 문고리를 붙잡고 있는 것은 2달전에 자기가 헤어지자고 일방적으로 이별 통보를 넣은, 예쁜 얼굴보다 커터칼을 갖다대는 손목에 신경이 쓰이는 얀순이었지.


"뭐야, 시발. 이거 설마..."


"응. 내가 한 거야."


너무 쉽게,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인정하는 얀순이.


그 모습과 함께 눈에 짙게 깔린 다크서클, 자세힌 기억 못해도 명백히 늘은 손목의 흉터가 그녀의 광기가 이전보다 더하면 더 했지 줄어들진 않았던 것을 얀붕이는 깨달았지.


"그야. 이렇게 안 하면 얀붕이 벌 받기 싫어서 도망갈 거잖아? 2달이나 술래잡기를 시킨 것에 대한 벌은 제대로 받아야지."


"술래잡기..?"


이게 뭔 미친 개소리인가 하는 말이 육성으로 튀어나오는 것을 겨우 참으며 얀붕이는 우선 얀순이의 말을 듣기로 하였어.


"응. 얀붕이 네가 그랬잖아. 카톡으로 나 한 번 잡아보라고. 그런 식으로 문자를 보냈잖아?"


시발, 저 미친 년은 드디어 세종대왕님의 유산조차 자기 멋대로 해석할 정도로 미친 건가.


자기는 분명히 이별 통보를 보냈으나, 그걸 나 잡아봐라. 하는 정도로 해석한 얀순이의 광기에 얀붕이가 몸을 떨던 와중 천천히 얀순이가 다가왔어.


그러고선, 의자에 묶인 얀붕이를 꼬옥 껴안으며 말했지.


"얀붕아. 나 정말 힘들었어. 원래도 네가 겉핥기로 배운 특수 분장 같은 거 이용해서 나 놀리는 등 장난을 좋아하는 건 알지만, 설마 2달동안이나 술래잡기를 하는 등 짓궂은 장난을 칠 줄이야."


'떨어져 이 현실이랑 망상도 구분 못하는 미친년아!' 라고 외치고 싶었던 얀붕이지만, 미친 사람을 자극하는 것만큼 위험한 건 없었기에 가만히 있었어.


"그러니까 이건 좀 벌을 받아야지? 내 허락도 받지 않고 갑자기 무슨 어린애처럼 2달 동안 술래잡기 같은 걸 하자 한 얀붕이는?"


"버, 벌이라고?"


"응. 근데 너무 심한 건 안 할 거야. 그냥 술래잡기잖아? 애들 놀이니까. 애들 놀이에 맞는 벌을 줘야지. 그래. 예를 들면..."


그렇게 말하는 얀순이는 얀붕이를 껴안은 팔에 힘을 주면서 더욱 밀착했지.


서로가 서로의 어깨에 얼굴을 대고 있는 상황. 얀순이의 입김이 목에 닿는다는 것을 얀붕이가 느낀 순간, 아~하고 얀순이가 입을 벌렸어.


"아니, 잠시만... 지금 뭐 하는..."


콱!


정리가 잘 된 치아가 살점에 파고드는 소리.


얀순이에게 어깨가 깨물렸다는 것을 곧장 뇌에 전해지는 통증으로 이해한 얀붕이는 곧바로 소리를 지르며 몸을 뒤흔들었지.


"아악! 그르긁..."


"츠읍... 하아... 얀붕이 정말 맛있다... 어렸을 때 이렇게 한 번 꼭 해보고 싶었는데, 좀비 게임 할 때마다 얀붕이는 도망을 너무 잘 가서 한 번도 잡질  못했지..."


한 쪽은 괴로움에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고통을 호소하고, 다른 쪽은 추억에 잠기며 입안에 풍기는 살내음에 황홀감을 느끼고 있다.


이 미쳐 돌아가는 상황 속에 있다는 것이, 끔찍한 고통을 호소하는 게 자신이라는 것에 참을 수 없는 화가 치솟은 얀붕이는 결국 입을 열었어.


"...이 시발... 미친 년이... 당장 안 떨어져?!"


"으, 어? 야, 얀붕아?"


얀붕이가 이럴 줄은 몰랐다는 듯 곧바로 다시 어깨를 물려던 얀순이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어.


그 모습에 몸을 하나도 움직이지 못하는 주제에 엄청난 용기가 샘솟은 얀붕이는 쉰 목으로 끊임없이 소리를 쳤지.


"뭐, 술래잡기? 벌? 이젠 망상이랑 현실도 구분 못 하게 된 거야? 나는 그때 너한테 헤어지자고 했는데, 무슨 초등학생 때 하던 놀이를 하는 걸로 착각을 하는 거..."


짜악!


금이 간 댐에서 물이 터져나오듯 얀붕이의 화가 가득 담긴 말이 쏟아져나오는 순간, 경쾌한 소리와 함께 돌아가는 얀붕이의 턱.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하며 눈을 깜빡이던 얀붕이는 왼쪽 턱에서 올라오는 화끈함, 그리고 눈앞에 있는 얀순이의 자세에 얀순이가 뺨을 갈긴 걸 깨닫지.


"아니야. 그렇지? 얀붕아. 우리가 헤어지다니 그런 농담을 하면서까지 벌을 피하고 싶은 네 마음은 알겠는데, 일단 우리 서로가 좋아하는 사이잖아? 그런 말은 자제해줬으면 해."


"아니, 그게 무슨.."


짜악!


얀붕이가 입술을 들썩이는 순간, 다시금 휘둘러지는 흉터 투성이인 얀순이의 손.


반대쪽 뺨을 후려맞았다는 것을 깨달은 얀붕이가 시선을 옮기자, 빨개진 손바닥을 보이며 얀순이가 다시 말했어.


"자제해줬으면 좋겠어."






그렇게 얀붕이가 뭘 하던 간에 전부다 부정하고, 이후 깨물기라던가 회전 의자에 고정시켜서 마구잡이로 돌리는 등 어린애나 할 법한 장난으로 미치도록 괴롭히는 얀데레는 없냐?